518화 스물한 번째 이야기 - 연연불망(戀戀不忘) (104)
518.
물론....
그가 우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언제나....
곧바로 지워지고 일상의 얼굴로 돌아온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 들어가요. 민희씨.... "
보통은 배웅의 말로 들렸어야 했다.
그런데 석진의 행동과 말이 일치하지 않았다.
그의 한 손이 민희의 등 뒤로 조심스럽게 둘러지고...
장례식장 안으로 데려가려는 듯 움직였다.
나는 멈춰 서서 석진을 올려다보며 눈을 깜빡였다.
덕분에 그의 손이 등에서 닿았다 떨어졌다.
" 왜요? "
" 아니.... 집에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
내 말에 석진 또한 눈을 깜빡이더니 금방 웃었다.
이 때 웃음은 가짜가 아니었다.
하하하 소리가 맑게 울렸다.
물론 그렇게 크게 웃은 건 아니었다.
작은 웃음소리였다.
" 갔다 올꺼에요. 어머니께 인사는 드리고 가야죠. 누님들께도. "
" 아.... "
바보 같았다.
어서 석진씨를 보내고 쉬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당연히 인사라는 과정을 잊어먹었다.
그는 이런 것을 지나칠 사람이 아니었는데.
같이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갔더니 새로운 문상객은 보이지 않았다.
친척들 몇몇.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자리를 잡고....
언니들은 살짝 거리를 두고 형부들과 함께 모여 앉아 있었다.
엄마는 먼저 들어가서 주무시는 중이었다.
석진씨가 미안한 표정과 죄송스러운 목소리로 집에 갔다 오겠다고 하자....
오히려 언니들과 형부들은 어서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어제, 오늘 너무 고생했다며 자고 내일은 천천히 나와도 된다고 말까지 덧붙여주었다.
" 배웅하고 올께. "
" 배웅은 무슨! 너도 같이 들어갔다 와! "
눈을 홀기며 톡 쏘는 둘째 언니의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고 함께 나왔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석진씨에게 물었다.
" 혹시 차... 운전해서 왔어요? "
" 아... 그랬어요. 참... 민희씨도 차 가지고 왔죠? "
" 네에.... "
" 이론.... 민희씨 차도 가지고 가야 하는데.... "
" 아니에요. 석진씨도 운전하지 말아요. "
" 응??? "
" 피곤하잖아요. 쉬러 가는 사람이 운전하면 위험해요. 그냥 차 두고... 택시 타고 가세요. "
졸음운전은 음주 운전보다 더 위험하다고 했다.
지금 석진의 얼굴은 누가 봐도 피곤에 쪄들어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 10시가 넘어가면 슬슬 들어가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이전 회사 다니면서 생긴 습관이랄까.
거긴 특이하게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한 시간 빨리 퇴근시키는 규정이 있어서...
다른 회사와는 다른 생활 습관을 만들게 되었다고 언젠가 말했다.
나름 출퇴근 러시아위에서 벗어나서 좋았다만...
대신 술자리는 잘 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쓴웃음을 짓는 석진의 얼굴이 눈앞에 선했다.
하지만 지금 다니는 회사는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와서 적응하는데 힘들었다고....
그래도 이 생활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래서 한 달에 한번...
야근하는 날이면 지금처럼 피곤에 쩔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몰골로 집에 왔었다.
그런 날이면 정말 죽은 듯 잠에 빠졌다.
그런데 참 믿기지 않은 게 저런 상태가 되어도....
회사에선 잠을 자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어쩜....
그렇게 자지를 못하는지.
예전에 남들과 함께 가는 여행에서도...
숙소가 조금 불편하다 싶으면 잠을 설치며 얕은 수면만 잠깐씩 잘 수 있었다.
아무튼....
지금은 석진이 운전하고 가는 건 말려야 했다.
" 흠... 그럴께요. "
잠시 생각하는 듯 싶더니....
빙그레 미소 지으며 대답하는 석진.
이럴 때는 정말 말 잘 듣고 순수한 아이와 같은 얼굴을 했다.
아마....
어렸을 때도....
이렇게 시어머니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나는 같이 그와 함께 병원 앞....
택시 타는 곳까지 걸어가려는데 순간 앞서 걷더니 뒤로 돌았다.
그리곤....
" 더 나오지 말고 들어가요. "
" 아니.... "
" 괜히 밤도 늦었는데 멀리 나오지 말고 그냥 들어가요. 데려다주지도 못하는데 어딜 자꾸 나오려고 해요? "
" 아.... "
석진씨는 내가 어두운 데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언제나 같이 데려다주거나 늦었다 싶으면 마중 나와 있었다.
하긴....
밤늦게 다니는 일이 거의 없긴 했지만....
그럴 일이 생기면 변함없이 지켜졌다.
지금도 대학 병원이라 사람들이 많은데도 혼자 들어가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 알았어요... 들어갈께요. 꼭... 꼭 택시타고 가여? "
" 하하... 알았어요. 꼭 그럴께요. "
그리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주차장하고 정반대 방향.
따로 그곳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난 잠시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장례식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때였다.
우태 오빠가 생각난 것은.
내내 오빠에게 전화해야지 하면 시간을 재다가....
깜빡 잊어버린 그 사실이 어쩜....
석진씨와 헤어지자마자 떠올렸는지....
정말 공교롭게도....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그가....
번쩍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생각났다.
" 오빠..... "
시간을 보니 벌써 세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순간 자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괜히 걸었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냥....
문자를 보내는 것인데 하며 후회하는 중....
바로 그 순간에 전화가 연결되어 버렸다.
" 아아... 미안.... "
약간 목이 잠긴 듯한 우태 오빠의 목소리.
역시 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미안했다.
전화를 늦게 한 것도...
그리고 이렇게 깨워버린 것도.
아마 집에 간 뒤에도 한숨 자지 못했을 거다.
우태의 성격상 내 전화를 기다리며 내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중간에 문자라도 보냈던 것인데....
생각보다 너무 늦게 전화를 걸 수 있었다.
" 오빠... 미안.... 내가 너무 늦었지? "
괜히 눈물이 날 거 같았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우태의 목소리는 한없이 따듯했다.
" 아니야.... 늦긴.... "
그리고 이어지는 말.
" 피곤하겠다.... 좀 잤어? "
그건 나도 지금 제일 궁금한 것이었다.
우태가 잠을 잤는지...
좀 쉬기는 했는지...
밥은 먹었는지...
그가 어떻게 있었는지....
그리고 너무 보고 싶었다.
걱정했을 그를 위해 최대한 목소리를 다듬어 대답했다.
" 생각보다 피곤하진 않네. 오빤... 좀 잤어? 내가 괜히 깨운 건 아니지? "
" 깨우긴 무슨.... "
싱겁다는 듯 대꾸하는 그의 말투에 절로 마음이 따듯해졌다.
" 오빠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 들으니까... 좋다. "
" 나도... 너 목소리 들으니까 좋아. "
좋다는 말에 마음속에서 하나의 감정이 점점 부풀어 올랐다.
정말...
정말 진심으로.....
그런데 이번에도 우태 오빠가 선수를 쳤다.
" 보고 싶다. "
순간 왼쪽 눈에서 또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언제부터인가 눈물이 나면 왼쪽에서부터 흘러내렸다.
목이 잠겨왔다.
" 으응.... 나도... 나도 보고 싶어, 오빠..... "
많이 보고 싶다는 말이 채 나오지 못하고 목에 걸려버렸다.
더 말하면 정말 흐느낄 것 같았다.
우태의 목소리가 토닥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들렸다.
"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이제 조금이라도 자.... "
나도 서둘러 감정을 추슬렀다.
" 으응.... 오빠도 이제 좀 자.... 참.... 오빠... 언제 출근해? 내일 출근하는 거 아니야? 출근하려면 자야지.... 그래야 출근하지..... "
문득 여행이 취소되고 올라오는 바람에 바로 출근해야 하는데 잠을 자지 못하게 한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떠올랐다.
심장이 쪼이며 아파왔다.
하지만....
" 훗... 나 출근 안 해.... 휴가 냈잖아.... "
웃음기 섞인 그의 말에 제대로 된 치료제를 맞은 듯 아픔이 사라졌다.
정말 다행이었다.
" 그랬구나.... 언제까지 쉬는데? "
오빠가 쉬는 것에 감사하고....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엉켜들었다.
" 이번 주 주말까지는 휴가야. 그러니까 내 걱정 말고 민희 너나 몸 챙겨. 지금은 문상객 없을 꺼 아냐? 이런 시간에 자는 거래. 안 그러면 몸 상해. 알았지? 조금이라도 꼭.... 꼭 자. "
아까 석진씨에게 했던 말을 오빠에게서 듣는 기분이었다.
무슨 데쟈뷰 같은 느낌이었다.
절로 미소가 흘러나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 알았어.... 나도 이제부터 잘 거니까 오빠도 한숨 자. "
" 그래. "
더 통화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우태는 밤을 새울 것이다.
정말....
아쉽지만 끊어야 할 때였다.
" 그럼.... 오빠 전화 끊을께. 또 시간 되면.... 연락할게. "
" 응... "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모질게 마음을 먹고 전화를 끊었다.
툭 떨어지는 손.
전화기의 무게가 너무도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진짜 짓눌러 대는 무게감은 심장에 얹혀 있었다.
천천히 쪼그려 앉게 될 정도로....
무겁고 또 무거웠다.
" 오빠..... "
주변에 켜져 있는 등불에 드리운 내 그림자가....
동그랗게 뭉쳐서는 사방으로 길게 드리웠다.
마치 이 많은 갈림길에서 어디도 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 싶었다.
아니야....
난 이미....
선택했어....
고개를 힘껏 저으며 일어났다.
하지만 다음 순간 떠오른 생각이 등에 차가운 소름이 피어올랐다.
하...
석진씨가 이걸 봤다면....
생각이 몸을 지배하며 바로 병원 정문 쪽을 향했다.
그곳에 석진씨가 우뚝 서서 보고 있을 것 같아 온몸에 소름이 번졌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여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두어 명 지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전혀 그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우태 오빠와 통화하기 위해 그를 집으로 보낸 꼴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차에 대해 오갔던 대화.
어쩌면 내가 운전했던 차에 대해 가지 못하게 하느라....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의도는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그것을 보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흉하고 더럽게 그려질 수 있었다.
정말 그렇게 보인다면....
석진씨에게 그렇게 알려진다면....
날 얼마나 교활하고 음흉한 여자로 생각하게 될까.
정말....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물론 그가 그렇게 받아드리고 생각할 리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간 바라왔던 시간을 보면 그는 그런 생각을 할 리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면....
그 믿음이 얼마든지 깨질 수 있었다.
모르겠다.
괜한 생각을 다 하는 거 봐선....
나도 좀...
피곤한 것인지도....
모르겠네....
훗...
괜스레 흘러나오는 헛웃음.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전등 불빛이 환해서 그 너머 별들이 있는 밤하늘은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 와중에도 구름을 막 나온 달은 어슴푸레 보였다.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환한 빛 아래....
내가 내는 발걸음 소리가 하나하나 새겨지고 있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