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7화 스물한 번째 이야기 - 연연불망(戀戀不忘) (63)
477.
주차할 곳을 찾아서 빙글빙글 돌다가.....
간신히 차를 세우고서야.....
혹시 오빠가 퇴근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것 하나 생각하지도 못하고....
무작정 이곳에 와버리다니.....
바보 같았다.
바보....
멍청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동안.....
파란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오빠를...
우태 오빠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가까워진다는 의미였으니까.
결국.....
한참 시간을 보내고 전화를 걸었을 때.....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받는 그의 모습에.....
그간 간신히 진정되었던 심장이 다시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며....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자마자 들리는.....
우태 오빠의 목소리.
" 그...래. 오랜만이네. 바빴나 보다. 잘 있었어? "
분명 살짝 떨리는 음성이었다.
약간....
삐진 듯한 가운데에서도 느껴지는....
반가움.
그때서야....
나만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재회를 결심하고 만났던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렇지 않은 듯....
그 긴 시간을 뛰어넘어서 다시 만났던 그 시간도....
오빠의 얼굴엔 아무렇지 않은 듯 감추고 있었지만.....
반짝이는 눈동자 안에는 뜨거운 열기가 타오르고 있었다.
버섯매운탕집.
저녁시간이 살짝 지났는데도....
이상하게 손님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내 관심은 음식에 있지 않았다.
들어오자마자....
쌀쌀한 기온에도 땀을 흘리던 오빠가....
겉옷을 의자에 걸치고 물을 따라주었다.
그리고.....
갈증이 난 듯....
물 한 컵을 순식간에 비우고....
다시 한잔을 채우고는 또다시 마셨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의 모습에 나 또한 목이 말라오고 있었다.
보고 있는데도....
마음이 바짝 마르고.....
그리움이 몰려오는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좋은 것일까.
나도 모르게 컵을 들어서 한 모금 물을 마셨다.
하지만....
뜨거운 가슴 속 열기는 전혀 가시지 않았다.
" 미안.... 나 화장실 좀.... "
" 응. "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자리를 일어섰다.
우태 오빠가 테이블 사이를 지나서 안쪽 구석으로 향했다.
순간....
화장실에 당연히 보여야할 표시가 보이지 않았다.
남녀 구분이 붙여 있지 않은 그곳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빠르게....
오빠가 지나갔던 길을 따라서 화장실로 향했다.
역시나 생각대로 남녀 공용 화장실인 듯 싶었다.
닫혀 있는 문.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딱딱하게 걸려서 움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잠겨 있지 않았다.
그리고 열린 문 뒤에는.....
당황하는 우태 오빠의 얼굴이.....
시야에 가득 들어오고 있었다.
" 헛... 민희야 너..... "
바지춤을 서둘러 잠그는 그를 보면서 나는 그대로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문을 잠갔다.
띵....
찰칵.
이게 무슨 의미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화장실 문은 잠겼지만.....
이건 모든 것을 잠그고 있는.....
내 마음 속 자물쇠는 열리고 만다는 것.
하지만 더 이상 외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참을 수 없는 감정의 흐름 속에서 질끈 눈을 감고 말았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우태 오빠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팔로 그의 목을 감싸고 입을 맞추었다.
" 미...민희야... 흡....... "
마른 듯한 우태 오빠 입술의 감촉 속에서....
어지러운 현기증이 내 머리를....
온몸을 흔들어댔다.
세상이...
핑그르르....
돌아갔다.
**************
#22. 겨울이 오는 건 그 다음이 봄이라는 뜻. (1)
" 오빠 어제 저녁에 말이야. "
아침에 함께 학교에 가는데 네가 갑자기 말했지.
내가 눈을 깜빡거리는 사이 들리는 목소리.
" 칼국수집.... "
그제서야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채고 난 웃었다.
" 아하... 어제 갔었던 칼국수집? 바지락 칼국수 정말 맛있더라. 난 조개 별로 싫어하는데 거기 바지락은.... 쫄깃하고 맛있었어. 처음이었어, 그렇게 맛있게 먹은 건. 훗... "
" 피이... 내가 맛있다고 했었잖아. "
" 훗... 맞아.... 그랬지, 참..... 미안. "
그러고 보니 거기....
민희 네가....
계속 맛집이라고 말했었지.
근데....
난 칼국수 별로 안 좋아하니까...
거기에 조개는 정말....
질색이었거든.
그래서 못들은 척 했어.
정말...
미안해.
네 덕분에....
조개도 먹을 수 있을 거 같아.
이제는.
하지만 그런 말은 내 마음 속에서 둥둥 떠 있는 동안...
넌 또 재잘댔지.
귀여운 새 울음소리처럼.
" 그거보다... 어제 오빠 동동주 마셨잖아? "
" 아... 그랬지. 거기... 동동주도 맛있었어. "
덕분에 반나절이 휙....
날아갔지.
은근히 독하더라...
그 동동주.
쑥스러움에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데
그때....
민희 너....
살짝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 오빠 어제 무리했었지? "
" 응? 내가? "
내 물음에 넌 고개를 끄덕였지.
" 응..... 오빠.... 취한 거 같았거든... 거기에다가 완전 행복해 보였어. 얼굴에 웃음이 방긋방긋..... "
에....
그랬나?
조금은 당황하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가만 생각해보니 그랬던 거 같기도 했다.
배불리 맛있는 칼국수 먹고....
네 손 잡고 너희 집에 가는 동안.....
휘청이는 발걸음 속에서도...
너무 좋았다.
" 어제... 동동주 많이 마셔서 취하긴 했지. 남기기엔 너무 많았잖아.... 갑자기 마시고 싶어서 시키긴 했는데 그렇게 많이 나올 줄은 몰랐거든. 하하..... "
쑥스러웠다.
음식을 남기지 못하는....
내 욕심이 부른 결과물이었다.
민희 넌 얼굴을 살짝 붉혔지.
" 그러긴 했어. 거기에다가 오빠 혼자 동동주 거의 마셨잖아. "
집에 가야되는 시간이라...
민희 넌 한잔 만 마셨으니까....
시킨 동동주 항아리는 왜 그리 크던지.
아까워서 박박 긁어서 마셨더니....
술기운이 모락모락 올라왔거든.
" 근데.... "
" 응? "
" 보통 취하면..... 웃기만 하는 건 아니잖아. 슬프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근데 오빠는 왜 그렇게 웃었어? 무언가 좋은 일 있는 거 아냐? 그런 거 있음 말해주지.... 나한테는 말도 안 해주고 혼자만 웃으니까..... 언제나.... "
순간 깨달았다.
민희가 왜 이 말을 꺼냈는지.
취하면....
좋기만 한 건 아니었는데....
민희 네 말대로 화내기도 하고....
마음에 쌓였던 무언가를...
가끔 터드리기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난 언제나 네 앞에서 억지로 웃어 보였다.
그런데....
어제는 그런 마음이 전혀...
손톱만큼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그 이유는....
내 옆에 있는 누군가 때문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내가 말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서....
민희 네가 서운해 한다는 것이....
내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었다.
난 민희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 피이... 내가 너한테 말 안하는 게 뭐가 있겠냐....? 훗.... 요새.... 내가 구김이 없었나 봐. 그냥 행복했나 보지 머. "
그리고 잡고 있던 민희의 손을 조물조물 만졌다.
그때 민희의 목소리도 작게 들렸다.
" 피이... 그러면 나도 다행이구.... 오빠가 행복하다니까 좋다..... "
작은 민희의 손가락도 깍지 낀 내 손가락을 마주 잡고 꼼지락거렸다.
알고 보면 민희 너도 참....
욕심이 많은 것 같다.
나에 대해 하나라도 모르는 것 같으면....
이렇게 불안해하고 서운해 하니까....
아니...
어쩌면 우리는....
너무도 닮은 거겠지.
나도 널....
독점하고 싶거든.
따스한 그녀의 체온.
그리고 살포시 기대오는....
민희의 몸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옆에 네가 있어서....
행복하기 짝이 없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영원히 함께 하기 만을 바랬다.
**************
여자에게 몇 개의 얼굴이 있는 걸까.
아니....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었다.
민희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게 될 것이라고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다.
여자란....
정말 알 수 없는 존재라고 했던 말처럼....
조금은 당황하고....
조금은 민망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에 비해....
민희는 너무도 태연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맛있게 매운탕을 먹고 있었다.
처음 먹어본다며....
매운탕 국물이 보글보글 끓으면서....
그 위에 올려진 대나무 찜기 속에 있는...
배추나 양배추 같은 채소와 두부, 그리고 버섯과 소고기 수육 같은 고기를....
와사비가 섞인 소스에 찍어서 우물우물 냠냠....
정말 야무지게 볼 빵빵하게....
먹는 중이었다.
얌전하고 순진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
나와 시선이 마주치면 생끗 미소 지는 저 얼굴 속에는....
아직도 이십대 초반처럼 느껴지는....
아니, 사춘기 소녀 같은....
천진난만함까지 엿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전....
화장실.....
거기에서 나누었던 우리 둘의 키스는...
입맞춤에서는....
뜨거운 정열을 넘어서서....
욕망에 휩싸여 화끈 달아오르는 유부녀의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 또한....
그 속에서 정염의 불꽃 속에서....
짜릿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내 얼굴은...
내 심장은 부끄러움 속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 몰라 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민희는....
태연자약(泰然自若)하게 정말 맛있다며....
방긋 웃었다.
어느새 바닥을 드러낸 찜기를....
종업원 아주머니가 치우고는....
본격적으로 국물에 샤브샤브와 버섯....
그리고 야채를 집어넣어 주었다.
" 조금씩 넣어서 드세요. 칼국수는 맨 마지막에 넣으시고요. 겉절이나 반찬은 저쪽에 있으니 필요하시면 셀프로 가져다 드시면 됩니다. "
친절한 아주머니의 말씀.
" 네. 감사합니다. "
" 네에. 고맙습니다. "
거의 동시에 대답을 한 우리에게....
소리 없는 미소를 보여주고 아주머니는 빠르게....
다른 테이블로 이동했다.
" 훗.... 여기 되게 친절하다. "
민희가 고개를 숙이며 속닥거리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피식 웃었다.
" 오래 일하셨으니까 그런가 보지. 여기 처음 알았을 때부터 계셨던 분이시거든. "
" 아항.... 베테랑이시구나? 어쩐지.... 후훗..... "
민희는 조용히 배시시 미소 짓고는 아주머니 쪽으로 시선을 돌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