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129화 악신진영 플레이어 장미연(4) 전직
뭐?
뭘 선택해야…?
괴물이 다시 달려들었다. 민석은 몸을 낮추며 재빠르게 회피했다. 남은 한 팔과 다리가 엉켜 부딪히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는지 내내 입을 벌렸다.
철렁거리는 근육의 힘, 땀에 젖은 손바닥, 쇳소리 섞인 울림. 한순간의 빈틈을 노리며, 괴물의 이빨을 피하고 반격을 시도하고 막길 반복했다.
“미연! 빨리 도와줘!”
“잠시만요! 제발!”
그러다 한 번의 반격이 성공해 괴물의 몸이 튕겨 나가듯 굴러가고, 민석도 뒷걸음질 치며 나무에 등을 부딪쳤다. 심장이 터질 듯 뛰고, 숨이 가빠오지만, 눈은 날카롭게 빛났다. 이리저리 몸을 날리며 상대의 힘과 속도를 계산하는 눈.
민석은 한 발짝, 한 움직임이 곧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나 역시 민석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택 퀘스트]
1.[한민석 제거(0/1)] 뛰어난 보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2.[Gǒumàu 제거(0/1)] 그저 그런 보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괴물이 재차 달려들자, 민석은 가까스로 몸을 비틀며 날카롭게 부서진 뼈로 옆구리를 가격했다.파육의 울림이 귀를 울렸고, 괴물은 움찔하며 균형을 잃었지만 피하고 말았다.
숨소리, 근육의 긴장, 눈빛, 몸의 각도까지 모든 것이 치열하게 맞부딪히고 있었다.
“미연ㅡ! 도와줘! 어서어어어ㅡ! 쓸 수 있는 스킬이 몇 번 안 남았어!”
민석의 다급한 외침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반사적으로 손이 아래쪽으로 내려가다, 뜨거운 열기라도 닿은 듯 중간에서 굳어 멈췄다.
잠깐…보상이?
그 순간, 얇게 스치는 공기와 함께 민석의 거친 숨이 들려왔고, 내 손끝은 허공을 더듬다 조심스레 제자리로 돌아왔다.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 끗 차이의 망설임이 손목을 붙잡은 채, 주관 시간이 길게 늘어졌다.
그저 그런 보상….
그 말이 머릿속을 스치자, 코끝이 싸해졌다. 흥미가 떨어졌다. 하지만 눈길을 위로 올리자, ‘뛰어난 보상’이라는 글자가 번쩍였다. 가슴 한가운데가 뜨겁게 울리고, 손끝이 떨렸다. 이제야, 마음이 제대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건 기회?
정말로?
내게? 드디어?
마침내! 내게도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ㅡ!
흥분으로 희열을 느끼는 것과는 달리 손은 마치 말라붙은 나뭇가지처럼 굳어, 쉽게 앞으로 뻗어지지 않았다.
빠르게 머리를 굴려 생각했다.
우선 1번을 골랐을 때다.
한민석을 제거한다면.
뛰어난 보상을 얻는다 하더라도 저 끔찍한 괴물을 혼자 처리할 수 있을 만큼일까? 오히려 나도 죽는 꼴이 되는 게 아닐까?
그 보상이 스킬이든 육체적 능력이든, 감히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보상을 얻더라도 지금의 모습과 별 차이 없는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한 초라한 몰골이라면….
내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확실치 않은 이상 한민석과 함께 저 뭐라 읽을지도 모를 괴물을 제거하는 것이 맞는 일이었다.
그래. 답은 2번이야.
꿀꺽-
역시 저 괴물을 죽여야 해.
한민석을 도와 괴물을 죽이려는 퀘스트를 선택하려ㅡ
“빨ㅡ리! 뭐라도ㅡ해! 이 씨발!”
“기, 기다려요!”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잠시 생각하는 그 사이에 한민석의 몸에, 눈에 띄게 상처가 늘어나 있었다.
괴물과 합을 주고받는 실시간으로 오직 한민석의 피만 허공에 피가 튀며 자수를 놓았다가 바닥으로 힘없이 추락했다.
그가 황급히 쏘아대거나 우리를 감췄던 어두운 막 같은 스킬들은 떨어져 나간 팔 때문인지 위력이 한껏 낮아져 있었고 괴물에게 별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엉성한 발걸음, 흐트러진 호흡, 다급한 눈초리 등.
그의 몸은 리듬이 서서히 깨지고 있었다.
반면 괴물은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전신엔 여유가 넘쳐흘러 보였다.
한 번에 끝낼 수 있음에도 유예하고 있었다.
우리의 목숨줄을 쥐어튼 죽음을 선고하는 판사였다.
“뭐하냐고 빨리ㅡ!”
“지, 지금 하려고 하는 중이….”
“뭐든 주워서 괴물의 이목을 끌어! 한순간이면 되니까!”
...내 말을 끊어?
“씨발ㅡ! 나라고 좋아서 이러고 있는 줄ㅡ”
“빨리 해! 한순간만이라도 어서 만들란 말이다!”
또!
민석의 거침없는 외침에 나도 모르게 허리를 숙여 각진 채 바닥을 구르고 있던 돌을 집어 들었다.
무겁다. 한 손으로 들기엔 버겁다.
양손으로 들자, 상체가 절로 앞으로 숙여졌다.
그 무게를 느끼며 고개를 들고 괴물을 쳐다보자 두 손이 덜덜 떨려왔다.
던지자마자 내게 달려들면 어떡하지? 내가 막을 수 있을까?
한민석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 안엔 다급함과 묘한 기대가 얽혀 있었다. 숨을 죽이며 상대를 노려보는 그의 시선은, 마치 이 괴물에게 돌을 던지길 바라는 듯했다.
던지는 그 찰나.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 이미 머릿속에 계산이 끝난 눈빛이었다.
지금, 이 순간, 오직 한 번뿐인 기회를 기다리는 짐승의 눈이었다.
그 순간 민석의 눈빛이 수상쩍었다. 내 쪽이 아닌 주변을 빠르게 훑는 눈초리.
“한순간? 웃기지 마!”
한순간의 틈을 주면, 괴물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래, 도망갈 거지, 너! 넌 도망갈 거야!”
“뭐? 아니야! 씨발 미친소리하지마! 빨리 도우란 말이다! 난 널 도와줬잖아! 살려줬잖아!”
괴물이 내게 달려든 사이, 도망가려는 걸까? 배신자 새끼!그래, 저 새끼! 도망갈 셈이다!그 사이에 민석, 씨발놈은 튀어버릴 것이다.
나만 남아 팔과 다리가 뜯겨 죽을 거다.
나만 남는다!
팔, 다리, 피——
젠장, 젠장, 젠장.
[둘 중 하나가 제거되면 소멸되는 퀘스트입니다. 선택하세요.]
민석이 죽기 전에 어서 고르라는 듯, 절벽에서 떠미는 손처럼 내게 선택을 강요하는 창을 꺼버리고 싶었다.
[선택하세요.]
[선택하세요.]
[선택하세요.]
알아! 안다고! 제발… 닥쳐!
[선택하세요.]
[선택하세요.]
닥치라고!
우선 돌을 던져본 뒤에 저 새끼가 튀어버리면 1번에 손을 뻗을 것이다.
1.[한민석 제거(0/1)] 뛰어난 보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튀지 않고 계속 상대한다면 2번을 선택할 것이다.
2.[Gǒumàu 제거(0/1)] 그저 그런 보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내가 이 돌…”
“그래! 빨리 그거라도 던져서! 놈의 시선을 끌어!”
…저 새끼 왜 아까부터 내게 반말하는 거지? 귀를 파고드는 반말이 신경을 톡톡 건드렸다.
“근데 왜 아까부터 반말해?”
“미친년ㅡ! 지금 그런 거 따질 때야?”
“씨발놈아아앗!”
“뭐 하는 거야! 우리 둘 다 죽는다고! 너 설마!”
민석은 잠시 입을 다물고 괴물 놈에게서 뒤로 멀어지며 외쳤다.
“설마 퀘스트냐? 퀘스트가 뜬 거냐! 퀘스트냐! 그거 믿지 마! 악의 간계다!”
헛소리.
이건 악의 간계 따위가 아니야.
그래, 확실해졌어.
이건 ㅡ!
“끄어어억ㅡ!”
괴물의 짧은 팔이 순식간에 길어졌고, 그것을 예상하지 못한 민석은 명치에 충격을 받자, 자세가 무너지고 말았다. 꽥꽥대던 소리가 마침내 사라졌다.
“크윽, 컥.”
거친 숨을 컥컥 몰아쉬던 민석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질질 끌고 오던 괴물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오자, 몸속 어딘가에서 딱, 하고 스위치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 듯 힘이 한순간에 풀려버렸다.
“아으으…아….”
다리에 감각이 사라지며 균형을 잃은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손바닥에 전해지는 차가운 바닥의 감촉과는 별개로 심장이 터질 듯 뛰며 고막 안에서 울렸다.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그때였다. 괴물의 미간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살이 옆으로 갈라져, 마치 입처럼 벌어졌다. 그 틈 사이로 천천히 드러난 세 번째 눈동자가 나를 정확히 겨냥했다. 냉랭한 시선이 살갗을 칼날처럼 긁고 지나가자, 심장은 늪에 빠진 짐승처럼 더 거칠게 요동쳤다.
-장미연이다,그씨발년,혜정의손을짓밟았던,이쁜그림을그리던그손을,이건내게내려온기회,혈월길드에창녀로팔아버리자,나를믿고있다,포탈파괴자(Portal Breaker)
이건?
민석의 머릿속을 떠다니던 생각과 감정의 잔향이 괴물의 눈을 거쳐, 미세한 떨림과 함께 생생히 전해져왔다.
목적 없는 행동은 없었다.
한민석. 그래 한민석.
아아, 퍼즐이 맞춰져 간다.
“너 내 집에서 일했었구나?”
[한민석 제거(0/1)를 선택하셨습니다.]
민석의 두 눈이 번쩍 커졌다.
그 커진 동공을 똑바로 바라봤다.
나는 생각이 앞서기 전에, 본능이 먼저 움직였다. 두 손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낙뢰처럼 내리꽂혔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손끝이 목표를 포착하고.
그리고—탁.
메마른 파열음이 돌 위에서 튀어 올랐다. 부딪힌 무언가는 진동을 남기며 산산이 부서졌고, 깨진 육편이 바닥을 긁으며 흩어졌다.
[한민석 제거(1/1)]
괴물은 마치 장난감을 만난 아이처럼 재미있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움직일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 그 태도는, 오히려 여유롭게 상황을 굽어보며 입꼬리를 올린 듯한 비웃음으로 느껴졌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뛰어난 보상을 얻으셨습니다.]
[포탈파괴자(Portal Breaker)를 살해하였습니다. 당신은 새로운 포탈파괴자(Portal Breaker)입니다.]
[이종교배(異種交配)(S)]
다른 종족과 교배를 통해 상대의 의지를 제어하거나, 정신을 연결해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인다. 동화된 존재는 사용자와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움직이며, 그 충성은 에너지의 균형이 유지되는 한 절대적이다.
[이종매혹(異種魅惑)(S)]
다른 종족의 감정 파동을 읽고, 그 틈새로 미묘한 ‘매혹의 기류’를 흘려보낸다.상대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끌림과 호기심에 사로잡히며,일시적으로 사용자의 의지에 호응하게 된다.정신력이 약한 대상일수록 효과가 크며, 지속시간은 감정의 깊이에 따라 달라진다.
[연계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전직퀘스트(1)]
세력 형성 (0/3)
“헉, 헉ㅡ. 내, 내가 진짜 사람을…죽였ㅡ”
위의 가장 아래부터 끌어올려지듯, 그동안 억지로 삼켜온 형편없는 것들이 하나둘 뒤집히며 토사물이 되어 목구멍을 긁고, 뜨겁게 끓는 듯한 덩어리로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우웨에엑-”
끔찍한 맛이 섞인 시큼한 냄새가 코끝을 날카롭게 찔렀다. 끈적한 열기와 함께 입 안이 얼얼해지고, 눈물이 저절로 고였다. 흐릿하게 번진 시야 속에서 토사물이 내 앞을 가르며 튀어 올랐다. 그것이 나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줄 알았다.
아니, 내 몸이 그쪽으로 기울어, 바닥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피할 수 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강제로 꺼지듯 감기는 눈 사이로 상태창이 보인다.
[상태창] 장미연 | 종족(플레이어) | 진영(악)
신체(E: 4)
정신(E: 7)
스킬(2) | 칭호(1)
[스킬]
이종교배(異種交配)(S) LV.1
이종매혹(異種魅惑)(S) LV.1
[칭호]
포탈파괴자(Portal Breaker)
해냈다.
마지막으로 눈이 감기기 전.
그 끔찍했던 괴물이 있던 자리에서 어느새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괴물의 형체가 모래알갱이처럼 흩날리며 사라지고.
그 틈 사이로 본래의 얼굴이 조금씩 드러나는 것 같았다.
숨이 막힐 듯한 경이로움과, 그동안의 공포가 한순간에 뒤섞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