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118화 완성된 둘만의 비밀스러운 세계
안은 고요한 적막과 포근한 온기가 뒤섞인 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스팀에서 은은한 라벤더 향이 퍼져나가며, 물방울이 타일 바닥에 떨어지는 잔잔한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여성 플레이어들의 나신이 희뿌연 증기 사이로 어렴풋이 드러났다. 그들은 홀로, 혹은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곳을 만끽했다.
주변에서는 낮은 목소리로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웃음 섞인 속삭임으로 동료의 농담에 답했고, 또 다른 이는 조용히 눈을 감고 물의 온기에 몸을 맡긴 채 미소를 띠었다.
한 여성이 나른한 동작으로 뜨거운 물이 담긴 바구니를 들어 올렸다. 그녀가 물을 등 뒤로 부었을 때, 따뜻한 물줄기가 그녀의 매끄러운 어깨와 허리의 곡선을 타고 흘렀다. 물은 그녀의 피부를 어루만지며 반짝이는 궤적을 남기고, 곧 바닥으로 흩뿌려졌다.
촤아아-
한 구석엔 목재로 지어진 정사방면의 구조물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자연 그대로의 날것 나무의 은은한 향을 풍기고 있었다. 나무로 지어진 그 사우나 안엔 선반에 무엇인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 그것을 들어 쥐곤 자신의 등을 향해 휘둘렀다. 작은 잎들이 촘촘히 매달린 나뭇가지였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문화를 은연중에 하지만 자연스럽게 내보였다. 온탕 자체를 낯설어하는 자들도 간간이 보였으나 충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나로 융화되어 다 같이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샌! 옆은 신입?”
누군가 샌을 부르며 한껏 웃고 있었다.
샌 자신의 이름을 부른 곳에 고개를 돌리기 전 신입이라고 묻는 내용에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아니면 기도사제님의 신분을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정시은이 살짝 고개를 저음으로 명쾌하게 답을 정할 수 있어 마음속으로 안도하며 그녀의 배려에 감사하며 샌은 상냥하게 웃음지으며 답했다.
샌을 부른 것은 붉은빛이 감도는 머리를 양옆으로 늘어트린 여인이었다.
“쥬안드 씨! 안녕하세요! 이분은 이번에 새로 오신 신입이에요.”
아마도 기도사제인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면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평신도에게 편히 쉬지 못하게 함으로써 이 멋지고 평화로운 장소의 역할을 못 하게 되는 불상사를 막고자 하는 정시은의 배려였다.
샌은 그것을 느끼며 한 번 더 생각하며 말했다.
“아마 얼마 안 있어 다른 구역으로 이동할 것 같아요.”
“오, 특수한 스킬을 뽑은 모양이지?”
“네 맞아요.”
신입은 프렝코를 만나게 되는데 그 때에 누구도 알 지 못하는 프렝코만의 기준으로 종종 다른 구역으로 이동되곤 했다.
“신입! 우리 오래 보자고. 게임 클리어때까지. 여신님이 우릴 보는 한, 우린 이길꺼니까.”
정시은이 쥬안드를 무표정으로 쳐다보다, 이내 그것이 어색하단 것을 깨닫곤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쥬안드는 그것을 신입의 긴장으로 이해하곤 멋쩍으며 받아들였다. 다시 한번 호탕한 웃음을 짓곤 말을 이었다.
“고생 많았네. 잘 쉬다가. 밖에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내 이름으로 달아둬도 좋아.”
쥬안드는 속으로 자신이 즐겨 먹는 옥수수구이를 떠올리며 매번 샌을 챙겨줬다. 이번에도 그 친절은 행해졌고 마찬가지로 언제나처럼 샌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이것이 작별 인사를 겸한다는 것도.
“난 이제 곧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먼저 나가볼게?”
“네 쥬안드씨도 고생이 많아요.”
탕 안의 희뿌연 증기 사이로 쥬안드의 커다란 엉덩이가 리듬감 있게 흔들리며 멀어져 갔다. 그 부드러운 곡선이 물결처럼 출렁이는 모습에 정시은의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
따뜻한 물방울이 그녀의 뺨을 스치며 타일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고요한 공간을 채웠다. 이내, 시은은 고개를 돌려 널찍한 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맨발이 축축한 바닥을 밟을 때마다 미끄러운 감촉이 발바닥을 간질였다.
옆에서 묵묵히 따라오는 샌의 존재를 느끼며, 시은은 그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녀의 음성은 증기에 녹아들 듯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날카로운 여운을 남겼다.
“쥬안드. 저렇게 당당한 것도 부러운 재주야.”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미소인지 조소인지 모를 표정이 스쳤다. 따뜻한 공기가 그녀의 피부를 감싸며 숨을 깊게 들이쉬게 만들었다. 샌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저 멀리 탕의 잔잔한 물결에 고정되어 있었다.
“샌, 이곳에서 산 지 얼마나 됐지?”
샌은 순간 흠칫하며 놀랬다. 계속해서 몸을 타고 올라오는 미열이 야릇한 기분을 불러오기도 했기 때문이고,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정신을 그쪽으로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부르는 정시은이 점점 샌의 눈에 매혹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려 같은 성별이란 것을 상기하자 더욱 배덕감을 느끼며 억눌렀다.
그렇기에 샌은 처음 느끼는 성욕에 당황하며 고의로 정시은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자칫하면 무례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이었으나 그것은 정시은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샌은 자신의 아랫배에 번지는 미열을 고의로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횟수를…세어보진 않았어요.”
“주로 포탈 안에서 지냈나 보군.”
포탈안은 질서가 철저히 지켜져야 하는 세계다. 그러므로 변화는 매우 드물다. 유일한 변화라면 신입이 새로운 구역만으로 들어오거나 가끔 찾아오는 위 계급의 플레이어들뿐이었다.
허나 그들로 인해 시간이 가는 것과 연관 짓기 어려웠고 그로 인해 포탈에서 상주하는 인원들은 시간의 흐름을 둔하게 받아들였다.
반대로 그녀의 묻는 말로 인해 샌은 정시은이 포탈 밖을 왕복하는 플레이어란 것을 눈치챘다.
고요히 퍼지는 수증기는 마치 부드러운 안개처럼 주변을 감싸안았고, 그 속에서 피부를 적시는 물방울들은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피로를 녹여내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정시은은 벽에 설치된 샤워기로 간단히 샤워를 마쳤다.
정시은의 굴곡진 여인의 몸이 샌의 눈을 간지럽혔다. 정시은 역시 자신의 몸을 씻으며 시야를 이동할 때 언뜻 들어오는 샌의 몸을 보며 입술을 앙 깨물었다.
‘안되, 평신도야. 시은아 무슨 생각이니. 정신 차리자.’
시은은 그런 다짐을 하며 무심코 시선을 이동하다, 샌의 다리 사이에 탐스럽게 위치한 보지 둔덕을 보며 침을 삼키고 말았다. 당장이라도 만져보고 싶은 욕망이 들지만 뭘 어떻게 만져야 할지 모르는 그런 애매한 욕망이었다.
샌 역시 조용히 그 옆에서 샤워를 마쳤다.
“네, 포탈 속에서 여신님의 은혜 안에 게임 클리어를 위해 몸을 바치고 있습니다.”
샌은 자신이 내뱉은 ‘몸을 바친다’라는 어절에서 잠시 실수한 것이 아닐까, 자신의 마음이 들키진 않은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정시은의 눈치를 보게 됐다. 어째서 자신이 하필 그런 단어를 지금 꺼냈는지 자책했다.
큰 동요 없는 정시은의 얼굴을 바라보며 샌은 다행히도 기도사제님이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보였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정시은도 그 대목에서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야 말았다.
탕 안의 뜨거운 증기가 정시은과 샌을 부드럽게 감쌌다. 두 사람은 나란히 널찍한 탕으로 다가가며, 희뿌연 안개 속에서 서로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뜨끈한 물속에 발을 담그는 순간, 미세하게 찌릿한 온기가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퍼져나갔다. 그 따뜻함은 피부를 어루만지며 다리와 허리를 타고 올라, 온몸을 나른하게 녹였다. 물결이 그들의 발목을 부드럽게 감싸며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시은의 시선은 여전히 탕의 물결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물속에서 가볍게 움직이며 표면을 스쳤다. 샌은 그 옆에서 조용히 물속에 몸을 더 깊이 담갔다. 뜨거운 물이 그녀의 피부를 감싸자, 그녀의 뺨에 살짝 홍조가 돌았다. 시은의 질문이 여전히 공기 중에 맴도는 듯,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은 묘한 긴장감으로 채워졌다.
증기 사이로 서로의 윤곽이 흐릿하게 드러나는 가운데, 탕 안의 온기는 그들의 마음 까지는 부드럽게 풀지 못했다.
따끔할 만큼 뜨거운 물이었지만, 곧 이 열기는 피로를 쥐어짜듯 온몸을 감싸안았다. 발목, 종아리, 허벅지, 그리고 어느새 허리까지, 탕 속의 물결은 한 겹 한 겹 긴장을 벗겨내듯 그녀의 살결을 어루만졌다.
“하아, 노곤해지는군. 이대로 몇 시간이라도 있고 싶어.”
샌 또한 그녀의 옆에 앉고 나지막하게 입으로 숨을 쉬었다.
“마음에 드셔서 다행입니다. 원하시는 만큼 얼마든지 있으셔도 됩니다.”
“…그러고 싶네.”
샌은 순간 자신이 정시은의 사정을 모른 채 멋대로 친절을 베푼아닐까라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내 정시은의 입이 한탄이 깊게 묻어난 말을 내뱉었다.
“내가 여기 있는 만큼 어디선가 에선 그 썩을 놈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
“호의로 받아들이지. 언젠가 게임 클레어 이후엔 정말로 푹 담그고 말 거야.”
숨을 들이마시면, 뜨끈한 증기가 코를 간질였다. 뺨과 이마에 촉촉이 맺히는 땀방울이 몸속 깊은 데서부터 올라오는 열기를 말없이 증명해 주었다.
“그때같이 하겠어?”
“…네. 좋아요.”
이제 그저 조용히, 물결 위에 몸을 맡기면 되었다.
몸서리쳐질 정도로 강한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끔찍한 필드를 뚫고 이곳에 도착한 정시은에게, 이 적막하고 포근한 평화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안식이었다.
그녀의 어깨는 물속에서 살짝 떨리며, 그곳을 지나온 기억의 무게를 떨쳐내는 듯했다. 증기 사이로 드러나는 그녀의 윤곽은 단단하면서도 어딘가 연약해 보였다.
샌은 그 모습을 보며, 시은의 한탄 속에 담긴 깊은 피로와 갈망을 어렴풋이 느꼈다. 탕 안의 온기는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지만, 그들 사이의 공기는 여전히 미묘한 긴장과 묵직한 감정으로 채워져 있었다.
정시은은 남주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확신을 얻은 이상, 점점 차도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강화’
뜨거운 증기 속에서 그녀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 듯했다.
게다가 강화된 베개를 만진 이후로 스킬 페이트 콜에게서도 미미한 반응이 느껴졌다.
결정적으로 종국엔 퀘스트가 발생한 상태였기에, 그 내용이 다소 성적인 내용이 포함 되었고 그 대상이 바로 옆에 있지만! 그녀의 메마른 눈에는 생기가 돌 법했다.
다시 온 적이 없다고 확인받은 이상 남주는 아직 그 악마와 함께 있으리라 생각했다. 추적할 만한 결정적인 단서가 없다는 사실을 안은채, 이 희미한 희망은 최선의 위안이었다. 탕 안의 따뜻한 물결이 그녀의 피부를 어루만지는 동안, 그녀의 시선은 물속 깊은 곳에 잠긴 듯 미묘한 결의로 빛났다.
“하아.”
어깨가 물속에 잠기는 순간, 묵직하게 짓누르던 무게가 서서히 물에 녹아 흘러가는 듯했다.
정시은의 피로가 서서히 풀리고 있음을 숨소리로 인증받은 샌은 생긋 웃으며 말을 걸었다.
“기도사제님.”
“말해.”
“마귀 놈들.”
정시은은 샌이 말하는 ‘마귀 놈들’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채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해지면, 더 빨리 처리할 수 있죠?”
정시은은 샌의 당연한 말에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하는 바는 있었다. 샌은 그것을 수면위로 바로 끄집어낸 것이다.
“정시은님의 급정도로 오르면 보너스 스탯 하나가 정말 귀중하실 거예요. 맞죠?”
“그래. 최소 A급 상자는 열어야 하지. 거기에 들어가는 포인트도 만만치 않고.”
정시은은 자신이 출발한 곳에서 이곳까지 필드를 관통해 왔기에 많은 몬스터들을 죽였음에도 겨우 B급 상자 하나를 열 만큼의 포인트가 모이지 않은 것에 실망했다.
“그럼… 제 몸을….”
샌의 목소리가 뜨거운 증기 속에서 낮게 울렸다. 정시은의 다크써클이 짙게 드리운 눈이 커지며 샌을 바라봤다.
“마음껏…써주세요.”
샌의 얼굴이 사과처럼 붉게 익었다. 그것이 뜨거운 물의 온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샌은 정시은에게 자신의 몸을 헌신, 희생 등의 표현으로도 될 수 있는 ‘바친다’라는 행위를 고결하게 내뱉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직설적이었기에 정시은에게 약간의 거부감을 일으켰다.
“하지만…넌-”
“같은 여자라고요?”
“…그리고 평신도잖아. 난 너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내가 하고자 한다면 무력이든, 위계든 그것을 쓰면 억지로 되겠지만은. 그건 아무래도…”
샌은 뽀얀 엉덩이를 들썩이며 시은의 옆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그녀의 시선은 물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시은을 직시했다. 샌의 말캉거리면서도 촘촘한 근육으로 단단한 전신이 시은의 피부에 닿으며 따뜻한 감촉을 전했다.
그 묵직한 존재감에 시은의 숨이 가빠지며 머리가 팽 돌기 시작했다. 뜨거운 탕의 열기 때문인지, 샌의 대담한 말과 가까워진 거리 때문인지, 그녀의 감정은 서서히 뒤엉켰다.
시은은 정신을 다잡으려 반대편으로 살포시 몸을 빼려 했지만, 그녀의 손은 물속에서 미세하게 떨리며 망설였다. 탕 안의 공기는 두 사람 사이의 긴장으로 한층 더 농밀해졌다.
“정시은님!”
이름을 불렸지만 그 속 엔 ‘기도사제님!’ 이라고 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로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다급한 목소리는 당연히 클 수밖에 없었고 탕 안의 적막한 고요를 가벼이 깨며 울렸다. 욕탕을 이용 중인 몇몇 여성 플레이어들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들 잠시 눈길을 줄 뿐, 샌을 아는 몇몇이 들이 고개를 돌리자, 모두가 이내 자신의 피로를 푸는 일에 집중했다.
“샌.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 아니야.”
정시은은 샌과 반대로 목소리를 낮춰 나직이 말하며 저 멀리 시선을 던졌다. 샌이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도록 피했다.
“나는…그런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물론 매력적인 퀘스…”
잽싸게 뻗어 나온 샌의 손이 정시은의 손을 붙잡자마자 자기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풍만하고 말캉거리는 다른 여성의 가슴을 손에 쥐게 된 정시은은 당황했다.
예상치 못한 감촉에 시은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당황한 숨이 터져 나왔다.
샌의 유두가 그녀의 손바닥 가운데를 간지럽히듯 스쳤다. 그 부드러운 감촉은 시은의 일상적인 감각과는 달리, 샌의 격정 어린 흥분으로 단단해진 상태였다. 그 미묘한 단단함은 시은이 아슬아슬하게 지키던 한계선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도화선이 되었다.
“아…읏!”
샌의 촉촉한 입술 사이로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시은의 손가락은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며 샌의 유방을 자유롭게 탐닉했다.
뜨거운 물결과 증기 속에서 그녀들의 숨은 점점 더 가빠졌다.
샌은 그 모든 행동을 덤덤히 받아들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며, 시은의 반응을 느끼는 듯 미묘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탕 안의 공기는 두 사람의 얽힌 감정과 뜨거운 긴장으로 한층 더 짙어졌다.
‘기도 사제님은 역시 망설이고 있던 거였어. 이렇게 된 이상…’
샌의 탄력적이고 풍만한 가슴을 만지던 시은의 이성이 머릿속에서 수증기처럼 형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흩어지고 지워졌다. 떨리는 손이 이윽고 샌의 부드러운 허벅지를 헤집고 그사이를 향해 천천히 파고들었다.
샌은 이 과감함에 놀라며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살폈으나, 대게의 플레이어들은 이 구석진 곳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찰박-
일부로 턱 아래까지 몸을 담근 샌은 가늘게 뜬 푸른 눈으로 시은을 쳐다봤다. 그녀의 다크써클이 그동안의 고초를 대변해 주고 있었다.
반쯤 벌린 채 다물어지지 않은 입이 그 흥분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시은의 떨리는 손가락 끝이 샌의 클리토리스를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못한 채 둔덕 주변을 맴돌기만 할 뿐 그 이상 다가오지 못했다.
샌은 그것이 오히려 더 자신을 달아오르게 한다는 것을 굳이 입 밖으로 내밀어 소리 내지 않았다. 다만 목구멍을 치솟아 오르는 얕은 신음을 억누르며 입술에 힘을 주었다.
동시에 자신을 스스로 구속해야 하며, 동시에 은밀하기까지도 한 쾌락 속으로 밀어 넣는 일이 되었다.
찰박-
물 위로 파문이 일어나며 그녀들의 볼을 간지럽히곤 흩어졌다.
시은 역시 턱 밑까지 몸을 탕 안으로 담갔고 샌의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원하는 것처럼, 입술 사이로 혀가 슬며시 나왔다가 침을 바르곤 들어갔다.
수면 아래로 흔들리는 정시은과 샌의 몸체는 뜨거운 물결 속에서 서로에게 선명히 드러나지 않았다. 그 흐릿한 윤곽은 오히려 상상력을 증폭시켰다. 마치 검은 담요를 덮은 듯, 물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은 암묵적인 동의 아래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있는 비밀처럼 느껴졌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의 의지를 읽은 듯,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들의 손끝은 물속에서 미세한 파문을 일으키며, 뜨거운 증기와 얽힌 긴장감 속에서 서로의 피부를 스쳤다.
팔뚝과 팔뚝이 스쳤고
허벅지와 허벅지가 스쳤고
그 고혹적인, 야릇한 숨이 얽혔다.
샌이 입술을 앙다물며 시은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시은의 당황한 짙은 검은 눈과 샌의 가늘게 뜬 푸른 눈이 뜨거운 증기 속에서 마주쳤다.
그 순간, 시은의 고개가 조심스레 다가가자, 샌은 고개를 살짝 틀며 부드럽게 거부하는 듯한 몸짓을 보였다. 그 동작에 정신을 차린 시은은 주변을 재빨리 살핀 뒤, 숨을 깊이 들이쉬고 수면 아래로 고개를 잠수시켰다.
“하윽-!”
샌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시은의 머리가 샌의 다리 사이로 파묻히며, 그녀의 말랑거리는 혀가 샌의 클리토리스를 톡톡 건드렸다.
섬세하면서도 대담한 자극에 샌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시은의 손가락 끝에 맴돌던 부끄러움은 어느새 물결과 함께 녹아내렸고, 그녀의 움직임은 점차 대담해졌다.
수면 아래의 흐릿한 세계는 두 사람만의 은밀한 공간이 되어, 탕 안의 공기를 더욱 농밀하고 뜨겁게 채웠다.
이로써 구석에서 완성된 둘만의 세계에선 일어나는 야릇한 일을 누구도 알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