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미팅
1. 반가운 호출
오후 2시.
윤 대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챙겨 입으며 보윤을 불렀다.
"성 주임, 짐 챙겨. 거래처에서 급하게 보자고 하네. 같이 가자."
"......네, 알겠습니다."
보윤은 뱃속에서 요동치는 바이브레이터의 진동을 참아내며 힘겹게 대답했다.
식은땀으로 젖은 등을 떼어내고 일어섰다.
아이러니하게도, 윤 대리의 그 호출이 구원의 동아줄처럼 느껴졌다.
사무실은 지옥이었다.
숨소리조차 조심해야 하는 적막 속에서, 뱃속의 진동을 감내하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밖이 나았다.
외근 핑계로 모텔을 가든, 차를 태우든 상관없었다.
적어도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마음껏 신음하고 싶었다.
윤 대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뻔뻔한 표정으로 서류 가방을 챙겨 앞장섰다.
보윤은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잠시만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찰나, 타 부서 신입 사원이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보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단둘이 탈 줄 알았는데.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는 윤 대리, 보윤, 그리고 신입 사원 셋이 탔다.
지이이잉- 지이잉-
하필이면 그때, 윤 대리가 주머니 속에서 리모컨을 조작해 진동 패턴을 '맥스'로 올렸다.
"흐읍...!"
보윤은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꽉 깨물었다.
뱃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신입 사원이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숨소리가 조금만 거칠어져도 이상하게 생각할 거리였다.
"성 주임님, 어디 편찮으세요? 식은땀이..."
눈치 없는 신입이 걱정스레 물었다.
"아, 아냐... 그냥 좀 더워서..."
보윤은 핸드백을 배 앞에 꼭 끌어안고 몸을 비틀었다.
윤 대리는 층수 표시판을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보윤이 사색이 되어 바들바들 떠는 꼴을 거울을 통해 즐기면서.
1층에 도착하는 그 짧은 시간이 1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지하 주차장.
윤 대리의 중형 세단 조수석에 타자마자, 차 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외부와 차단된 밀실.
"성 주임, 제법인데? 엘리베이터에서 쌀 줄 알았는데 잘 참더라?"
윤 대리는 시동을 걸며 킬킬거렸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리모컨을 꺼내 전원 버튼을 눌렀다.
하루 종일 보윤의 내장을 휘젓던 기계음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하아아... 아으응...! 하아..."
참았던 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보윤은 시트에 파묻히듯 쓰러져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뱃속이 텅 빈 것처럼 고요해지자, 눈물이 핑 돌 만큼의 안도감이 찾아왔다.
"제... 제발 그만... 그만해주세요..."
보윤이 애원하자, 윤 대리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훈련 잘된 애완견을 칭찬하듯.
"그래, 고생했어. 거래처 가는 동안은 좀 쉬어."
보윤의 보지에 비로소 평온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공짜가 아니었다.
기계가 멈춘 대신, 이제 주인의 손길을 받아내야 했다.
2. 핸들 위의 유희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윤 대리의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기어 변속기가 아닌, 보윤의 왼쪽 가슴 위로 올라갔다.
"역시 기계보단 이게 손맛이 좋아. 성 주임 가슴은 만져도 만져도 안 질린다니까."
그는 운전대를 한 손으로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블라우스 위로 보윤의 거대한 가슴을 주물러댔다.
신호 대기에 걸릴 때마다 옷 안으로 손을 넣어 유두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보윤은 반항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저 손을 거부하면 다시 바이브레이터의 전원이 켜질 테니까.
차라리 가슴을 내어주는 편이 훨씬 평화로웠다.
"자, 내 자지도 좀 만져줘. 아까 네 거 보니까 꼴려서 말이야."
윤 대리는 보윤의 손목을 잡아채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끌고 갔다.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바지 위를 문지르게 했다.
"어? 빨간불이네."
사거리 신호등이 적색으로 바뀌고, 정지선 앞에 차가 멈췄다.
신호 대기 시간은 약 2분.
"성 주임, 알지?"
윤 대리가 지퍼를 내리고 보윤의 머리를 꾹 눌렀다.
보윤은 익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운전석 아래로 머리를 파묻은 보윤이 윤 대리의 성기를 입에 물었다.
밖에서는 선팅 된 유리 때문에 안이 보이지 않겠지만, 바로 옆 차선에는 버스가 서 있었다.
그 아슬아슬한 상황 속에서 보윤은 열심히 혀를 놀렸다.
"흐으... 그렇지. 목구멍까지 깊게..."
윤 대리는 창밖 풍경을 감상하며 보윤의 봉사를 받았다.
보윤은 생각했다.
차라리 이게 낫다고.
뱃속을 헤집어놓는 기계보다는, 빨아주고 뱉어내면 그만인 이 살덩어리가 훨씬 견딜만하다고.
그녀의 도덕적 기준은 이미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내려가 있었다.
초록불이 켜질 때까지, 차 안에는 질척한 타액 소리만이 가득 찼다.
3. 회의
거래처인 '세인트 어패럴'의 중회의실.
"이번에 저희가 개발한 원단의 인장 강도 테스트 결과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존 제품 대비 30% 이상 향상되었습니다."
윤 대리는 프로페셔널한 미소를 지으며 PT를 진행했다.
차 안에서 보윤의 가슴을 주무르고 입으로 봉사를 받던 난봉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완벽한 '능력 있는 대리님'의 연기였다.
보윤은 그 옆에서 말없이 샘플 원단과 유인물을 거래처 직원들에게 나눠주었다.
"여기 자료입니다."
보윤이 허리를 숙여 테이블 위에 서류를 놓을 때마다, 셔츠 안에서 묵직한 움직임이 발생했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묵직한 가슴.
와이어나 패드의 지지 없이 오로지 중력의 법칙을 따르는 자연산 유방은, 보윤이 팔을 뻗거나 움직일 때마다 출렁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얇은 상의 위로 유두의 돌기가 스치듯 윤곽을 드러냈다.
거래처 담당자인 김 대리의 옆에 앉아 있던 젊은 남직원의 시선이 자꾸만 보윤에게 머물렀다.
그는 짐짓 스크린을 보는 척했지만, 눈동자는 보윤이 움직이는 동선을 쫓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가슴이 만들어내는 육감적인 파동을 훔쳐보고 있었다.
보윤은 시선을 느끼고 있었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옷을 여미거나 가슴을 가리는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다.
회의실, 엘리베이터, 길거리.
어디를 가든 남자들의 시선은 늘 그녀의 가슴에 꽂혔다.
그것은 마치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당연한 자연 현상이었다.
'닳는 것도 아닌데.'
보윤은 무심하게 남 주임과 눈을 맞추며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히려 남자 직원이 당황하여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뱃속에 바이브레이터를 품고 있는 여자에게, 고작 저 정도의 훔쳐보기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4. 삼쏘
미팅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자연스럽게 저녁 회식으로 이어졌다.
장소는 회사 근처의 솥뚜껑 삼겹살집.
"자, 자! 오늘 미팅 수고하셨습니다! 위하여!"
챙그랑!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 냄새와 소주잔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윤 대리는 거래처 김 대리와 형님 동생 하며 분위기를 주도했고, 보윤은 막내 격인 그 젊은 직원의 맞은편에 앉게 되었다.
"성 주임님도 오늘 고생 했는데 많이 드세요."
윤 대리가 짐짓 챙겨주는 척, 상추쌈을 보윤의 접시에 놔주었다.
보윤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다행히 기계의 전원은 꺼져 있었다.
뱃속의 이물감만 무시한다면, 겉보기엔 화기애애한 직장인들의 회식 자리였다.
술이 몇 바퀴 돌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맞은편의 남직원이 보윤에게 말을 걸어왔다.
"저... 성보윤 주임님이라고 하셨죠? 저는 남시우 사원이에요."
남 사원은 소주 한 잔을 비우고 용기를 낸 듯했다.
얼굴이 약간 발그레해져 있었다.
"네, 맞아요."
"회사에 계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일하시는 거 보니까 되게 능숙해 보이셔서요."
지극히 평범하고 상투적인 질문이었다.
거래처 직원끼리 친목을 다지기 위해, 혹은 호감이 있는 이성에게 건네는 탐색전 같은 질문들.
"저는 입사한 지 2년 좀 넘었거든요. 주임님 같이 능숙한 사람이 되고싶어요."
남 사원은 사람 좋게 웃으며 자신의 잔을 채웠다.
"혹시 댁은 어디세요? 출퇴근 힘들지 않으세요?"
"주말에는 보통 뭐 하세요? 취미 같은 거 있으신가?"
그의 질문에는 음습한 성욕이나 비틀린 의도가 느껴지지기 보다는 그저 '일 잘하고 몸매 좋은 거래처 여직원'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호감이 묻어있었다.
보윤은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주말엔 그냥 쉬어요."
대답을 하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지금 내 뱃속에는 당신 상사가 쑤셔 넣은 바이브레이터가 들어있고, 내 자궁 안에는 정액이 말라붙어 있는데.
이 남자는 나를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대우해주고 있다.
이 완벽한 괴리감.
보윤은 남 사원의 선량한 눈빛을 마주하며,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알코올의 쓴맛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며 비참한 현실을 잠시나마 소독해 주는 것 같았다.
"성 주임님, 인상이 참 좋으세요. 되게... 선해 보이신다고 해야 하나."
남 사원의 칭찬에 보윤은 쓰게 웃었다.
선해 보이는 게 아니라, 멍청해서 당하고 살고 있었으니까.
5. 해방
"야! 김 대리! 너 오늘 집에 못 가! 2차 가야지, 2차!"
"아이고, 형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노래방 가시죠!"
식당 앞 거리.
윤 대리와 거래처 김 대리는 이미 인사불성이 되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넥타이는 풀어헤쳐졌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꼴이 가관이었다.
보윤은 그 난장판을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오늘은 이걸로 끝이네.'
윤 대리가 저렇게 취해버리면 자신을 건드릴 정신도 없을 것이다.
오늘은 모텔행도, 차 안에서의 봉사도 없이 집으로 도망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주임님, 저희는 따로 한잔 더 하시죠?"
안심하며 택시를 잡으려던 보윤의 앞을 막아선 건, 거래처 신입 사원 남시우였다.
"네? 아... 저는 내일 출근도 있고 해서..."
보윤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시우는 생각보다 끈질겼다.
"에이, 주임님. 아까 고기 드실 때 보니까 표정이 너무 안 좋으시던데. 시원한 맥주 딱 한 잔만 하고 가시죠. 제가 살게요, 네?"
순진무구한 눈빛.
윤 대리 같은 능구렁이들의 음흉함과는 다른, 사회 초년생 특유의 열정과 패기가 부담스러웠다.
"진짜 딱 한 잔만요. 저 주임님이랑 이야기 좀 더 하고 싶어서 그래요."
보윤은 결국 져주듯 고개를 끄덕였다.
윤 대리에게 시달린 스트레스를 시원한 맥주로라도 풀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근처 호프집.
시우는 편의점에서 사 온 숙취해소제를 보윤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거 드시고 드세요. 속 버려요."
"고마워요, 남 사원님."
보윤은 씁쓸하게 웃으며 약을 삼켰다.
하지만 이미 1차에서 억지로 받아마신 소주가 치사량을 넘은 상태였다.
"짠! 반갑습니다, 주임님."
얼음이 낀 차가운 맥주잔이 부딪쳤다.
보윤은 목을 타고 넘어가는 탄산의 자극을 느끼며 맥주를 들이켰다.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숙취해소제도, 시우의 배려도, 이미 한계치에 다다른 알코올을 이길 수는 없었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정신의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6. 낯선 천장
"으음..."
머리가 깨질 듯이 울렸다.
눈을 뜨기도 전에 낯선 섬유유연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익숙한 모텔의 락스 냄새도, 윤 대리의 차 냄새도 아니었다.
보윤은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어? 깨셨어요?"
바로 옆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우였다.
그는 보윤의 어깨를 단단히 부축하고 있었다.
"여, 여기가... 어디..."
보윤은 비틀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좁은 복도였다.
도어락 뚜껑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저희 집이요. 주임님이 맥주 두 모금 드시더니 갑자기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기절하셔서... 깨워도 안 일어나시고, 댁 주소를 알 방법이 없어서 일단 데려왔어요."
시우는 난처한 듯 웃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일단 들어오세요. 좀 쉬셔야죠."
보윤은 시우의 부축을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전형적인 사회 초년생의 자취방 원룸이었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그리고 옷가지들이 걸린 행거.
남자 혼자 사는 집치고는 꽤 깔끔했다.
'침대... 로 가겠지.'
보윤은 본능적으로 몸을 굳혔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여자를 집에 데려왔다.
다음 수순은 뻔했다.
침대에 던져놓고 옷을 벗기겠지.
윤 대리나 박 차장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시우는 보윤을 침대가 아닌, 책상 앞에 있는 게이밍 의자로 이끌었다.
"여기 앉으세요. 침대는 좀 찝찝하실 것 같고, 이 의자가 제일 편해요. 뒤로 젖혀지거든요."
시우는 보윤을 푹신한 가죽 의자에 깊숙이 앉혀주었다.
그리고 등받이를 뒤로 젖혀 반쯤 누운 자세를 만들어주었다.
"......"
보윤은 멍한 눈으로 시우를 올려다보았다.
몸은 의자에 파묻혀 편안했지만, 정신은 혼란스러웠다.
아직 블라우스 단추는 그대로 잠겨 있었다.
하지만 숨을 쉴 때마다 터질 듯 솟아오른 흉부의 압박감과, 뱃속에 여전히 들어있는 바이브레이터의 묵직한 이물감이 그녀의 현실을 자각하게 했다.
시우는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따주며 걱정스레 물었다.
"속은 좀 어떠세요? 토할 것 같지는 않아요?"
이 남자는 정말 순수한 호의를 베푸는 걸까, 아니면 더 세련된 방식의 사냥을 준비하는 걸까.
보윤은 의자 팔걸이를 꽉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