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불행의 낙차
1. 청구서
현관문이 닫히고, 적막이 찾아왔다.
보윤은 지갑에서 방금 찍은 '인생네컷' 사진을 꺼내 보았다.
토끼 머리띠를 쓰고 해맑게 웃고 있는 두 여자.
사진 속의 성보윤은 회사에서의 '공용 육변기'도, 박 차장의 '승진 미끼'도 아닌, 그저 평범하고 행복한 20대 아가씨였다.
"하하..."
사진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그 웃음은 3초를 가지 못했다.
곧이어 서늘한 불안감이 발목을 잡고 기어올랐다.
보윤의 인생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이유 없는 행복'은 언제나 '가혹한 불행'을 위한 선입금이었다.
하늘 높이 올라갈수록 추락할 때의 충격은 커진다.
오늘 설아와 보낸 이 달콤하고 평온한 시간은, 내일 닥쳐올 더 큰 굴욕과 고통을 극대화하기 위해 신이 배치한 잔인한 장치일지도 모른다.
행복해질수록 무서웠다.
이 웃음의 대가로 내일은 또 얼마나 비참하게 다리를 벌려야 할까.
보윤은 사진을 화장대 서랍 깊숙한 곳에 보이지 않게 뒤집어 놓았다.
2. 육체의 용도
샤워기 물줄기 아래서 보윤은 자신의 나신을 내려다보았다.
풍만한 가슴에는 아직도 며칠 전 태인이 움켜쥐었던 손자국이 멍처럼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보지는 윤 대리와의 비품실 강간으로 인해 붉게 쓸려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거울을 깨버리고 싶을 만큼 혐오스러웠을 것이다.
벅벅 문질러 씻으며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보윤은 덤덤했다.
마치 고된 노동을 마친 막노동꾼이 자신의 굳은살을 확인하듯, 몸에 남은 흔적들을 건조하게 응시할 뿐이었다.
'여기가 좀 부었네.
내일은 진정 크림 좀 발라야겠다.'
그녀의 육체는 이제 '자아의 성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회사의 비품이나 공용 PC처럼, 필요에 따라 사용되고 관리되어야 하는 '도구'일 뿐이었다.
3. 새로운 매뉴얼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보윤은 생각했다.
이제 섹스는 그녀에게 더 이상 '사랑'도, '폭력'도 아니었다.
그것은 '고된 업무'의 카테고리로 재분류되었다.
누군가의 성기가 자신의 질 안으로 들어오는 행위.
점액질이 섞이고, 살이 부딪히고, 상대방이 사정할 때까지 허리를 흔드는 과정.
그것은 마치 하기 싫은 '근력 운동'이나, 불쾌한 '치과 진료'와 비슷했다.
남들은 재앙이라고 부를지 몰라도, 보윤에게는 그저 일상이었다.
헬스장에서 무거운 쇠질을 하며 근육을 찢는 고통을 참아내듯, 박 차장의 성기를 받아내며 질 근육의 고통을 참아낸다.
치과 의자가 입안을 헤집는 불쾌함을 견디듯, 윤 대리의 손가락이 내벽을 헤집는 불쾌함을 견딘다.
그저 그뿐이었다.
'10분만 참으면 돼.
땀 좀 흘리고 샤워하면 그만이야.'
그 대가로 월급이 나오고, 승진이 보장되고, 조직 내에서의 '평온(비록 가짜일지라도)'이 유지된다면, 이것은 꽤 효율적인 거래였다.
스스로 생각해도 미친 합리화였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혀를 내두를 것이다.
하지만 보윤은 알고 있었다.
이 미친 합리화야말로, 멘탈이 바스라지지 않고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내일 아침 눈을 뜨게 해주는 유일한 마취제라는 것을.
수치심을 느끼는 순간 무너진다.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견딜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차라리 '성실한 업무 수행자'가 되는 편이 나았다.
"그래... 별거 아니야. 다들 그렇게 살아."
보윤은 이불을 끌어당기며 중얼거렸다.
그것이 정말 남들도 그렇게 사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만 망가진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늘 느꼈던 행복의 낙차만큼 내일 더 깊은 곳으로 떨어지더라도, 그녀는 이제 '업무'로서 그 불행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기이할 정도로 차분한 밤이었다.
그녀의 영혼은 이미 괴사하여,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진화하고 있었다.
새벽 1시.
적막이 흐르는 자취방 침대 위.
보윤은 잠들지 못하고 스마트폰 불빛에 의지해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들을 읽고 있었다.
[회사 탕비실에서 몰래 하는데 스릴 쩔더라...]
[당하는 거 즐기는 사람 있어?]
화면 속 익명의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상황을 '놀이'나 '취향'으로 즐기고 있었다.
그들에게 섹스는 폭력이 아니라, 더 큰 자극을 위한 유희였다.
보윤은 문득 기이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어쩌면 나도 즐길 수 있는 게 아닐까? 매일같이 내 몸을 탐하는 그들이 느끼는 그 황홀경이라는 게,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다들 그렇게 미쳐서 덤벼드는 걸까.
만약 나도 이 행위에서 쾌락을 느낄 수 있다면, 나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보윤이 고안해낸 또 하나의 생존 전략이자, 슬픈 합리화의 연장선이었다.
"......"
보윤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천천히 이불을 걷어찼다.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나이였지만, 스스로 위로를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성욕이라는 건 그녀의 인생에서 거세된 기능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녀의 몸은 타인에 의해 강제로 '개발'되어 있었다.
4. 탐구
보윤은 떨리는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모든 불행의 원흉이자, 남자들이 그토록 환장하는 G컵의 살덩어리.
그녀는 남자들이 했던 것처럼, 손바닥을 펴서 자신의 유방을 움켜쥐어 보았다.
묵직했다.
한 손에 다 들어오지 않아 손가락 사이로 살이 흘러넘쳤다.
'이게... 그렇게 좋은가?'
스스로 만지는 감각은 생경했다.
타인의 거친 손길과는 달리, 자신의 손은 따뜻하고 조심스러웠다.
그녀는 설아가 했던 것을 떠올리며, 엄지와 검지로 유두를 살짝 비틀어 보았다.
"흐음..."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놀랍게도, 유두 끝에서 찌릿한 전류가 척추를 타고 내려갔다.
수많은 타액과 손길에 시달리며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유두는, 주인의 서툰 손길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딱딱하게 굳어갔다.
보윤은 조금 더 과감하게 가슴을 주물렀다.
출렁이는 무게감과 말랑한 촉감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남자들이 왜 이 살덩어리에 집착하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손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했다.
잠옷 바지를 벗어 던지고, 팬티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아..."
보윤은 자신의 몸 상태에 경악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단지 가슴을 조금 만졌을 뿐인데, 다리 사이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녀의 뇌는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지만, 육체는 이미 '준비 완료' 상태였던 것이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극이 오면 자동으로 애액을 쏟아내도록 완벽하게 개조된 몸.
보윤은 비참함과 동시에 묘한 배덕감을 느꼈다.
'나, 진짜 변태가 된 건가 봐.'
그녀는 중지 손가락으로 젖은 질 입구를 문질렀다.
윤 대리가 비품실에서 급하게 비벼대던 그곳.
콩알만 한 클리토리스가 도드라져 있었다.
손가락 끝으로 클리토리스를 둥글게 굴리기 시작했다.
찌걱, 찌걱.
정적 속에서 점막이 비벼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곧 쾌락의 요령을 터득했다.
조금 더 세게, 조금 더 빠르게.
"으으윽... 하아..."
호흡이 가빠졌다.
뱃속이 간질거리고 발가락이 오그라들었다.
이것은 분명 고통이 아닌 쾌락이었다.
자극을 높이기 위해 상상력이 필요했다.
보윤은 눈을 감고 쾌락의 대상을 떠올리려 했다.
로맨틱한 영화 속 주인공? 짝사랑했던 대학 선배?
아니었다.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대신 그녀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지독한 현실의 기억들이었다.
태인의 거대한 성기가 꽉 차 들어오던 압박감.
설아의 혀가 내벽을 핥을 때의 소름 돋는 감각.
회의실에서 수많은 남자들의 시선이 자신의 알몸에 꽂히던 그 순간의 수치심.
놀랍게도, 그 기억들이 떠오르자 쾌락이 배가되었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며, 수치스러웠던 순간들이 이제는 자위의 소재가 되어 보윤을 흥분시키고 있었다.
"하아, 하아! 아앙!"
보윤은 손가락 두 개를 질 안으로 깊숙이 찔러 넣었다.
박 차장이 했던 것처럼 거칠게 쑤셔 박았다.
'그래, 나는 육변기야. 다들 나를 따먹고 싶어 해.'
스스로를 비하할수록, 쾌감이 날카로워졌다.
뇌가 완전히 망가져 버린 것 같았다.
고통과 쾌락의 회로가 뒤엉켜, 학대받는 상황 자체를 즐기도록 변해버린 것이다.
손놀림이 빨라졌다.
침대 시트를 움켜쥔 다른 한 손에 땀이 흥건했다.
내벽이 손가락을 꽉 물었다 놔주지 않았다.
태인이 말했던 '명기'라는 게 이런 걸까.
내 몸이 내 손가락을 삼키려 하고 있었다.
"갈 것 같아... 나, 나..."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도, 누구의 명령도 아니었다.
오로지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낸 쾌락의 파도가 밀려왔다.
보윤은 허리를 튕기며 클리토리스를 맹렬하게 비 벼댔다.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흐아아앙-!"
길고 높은 교성과 함께, 보윤의 몸이 활처럼 휘어졌다.
허벅지 안쪽이 경련하며 뜨거운 애액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지난번 설아가 만들어줬던 분수만큼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시트를 적실만큼의 양이었다.
짜릿한 전율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발끝부터 머리카락까지, 세포 하나하나가 쾌락에 떨며 비명을 질렀다.
5. 현자타임
격렬했던 절정이 지나가고,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보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손은 여전히 젖은 다리 사이에 머물러 있었고, 콧등에는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었다.
'기분... 좋다.'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명백한 쾌감이었다.
몸에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일시적으로나마 해소된 느낌이었다.
보윤은 끈적해진 손을 들어 코끝에 가져다 대 보았다.
비릿하고 짭짤한, 자신의 냄새.
눈물이 날 줄 알았다.
비참해서 울 줄 알았다.
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입가에 희미하고 자조적인 미소가 번졌다.
"뭐야... 나 혼자서도 잘하네."
그녀는 이제 자신의 불행을 즐기는 법을 터득했다.
고통을 쾌락으로 치환하고, 수치심을 흥분제로 사용하는 법.
그것은 그녀가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가장 슬프고도 완벽한 진화였다.
보윤은 젖은 손을 대충 이불에 문질러 닦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내일 출근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