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키넷 단편야설

한 편 완결 소설

성인소설 목록

최신 단편

야설 읽기
밍키넷 소설
토스트 메세지 나오는곳
텔레그램 공식채널

밍키넷 공식보증업체

31화 고장난 거울


1. 현재: 전시된 폐허 거울 앞에서 눈을 감은 채 악몽과도 같은 한참의 회상을 마친 보윤이 천천히 눈을 떴다. 방금 샤워를 마친 욕실 안은 하얀 수증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수건으로 몸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몽환적인 안개처럼 김이 서린 거울을 손바닥으로 벅벅 문질러 닦았다. 끼익- 끼이익- 물기 어린 유리가 긁히는 불쾌한 마찰음과 함께, 흐릿했던 그녀의 나체가 잔인할 정도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거울 속의 여자는 기이했다. 비현실적으로 거대한 유방, 한 손에 잡힐 듯 잘록한 허리, 그리고 아이를 낳기 위해 빚어진 듯 넓은 골반. 길거리의 남자들이 침을 흘리며 뒤돌아보게 만들고, 회사 남자들이 음담패설의 소재로 삼는 그 압도적인 육체는 여전했다. 하지만 그 하얀 캔버스 위에는 폭력과 굴종의 기록들이 어지럽게 새겨져 있었다. 왼쪽 가슴팍에는 박 차장이 "내 거"라며 소유욕을 과시하듯 세게 꼬집어 생긴 검붉은 피멍이 꽃처럼 피어 있었다. 허벅지 안쪽에는 윤 대리가 싫다는 다리를 억지로 벌려 잡아 뜯듯이 생긴 손가락 자국이 푸르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목덜미와 쇄골, 엉덩이 여기저기에 묻어 있는, 비누로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수치심의 얼룩들. 마치 여기저기 부딪혀 멍이 든 복숭아 같았다. 겉은 탐스럽고 달콤한 향기를 풍기지만, 껍질을 아주 살짝만 벗겨봐도 속은 시커멓게 썩어 문드러져 과즙 대신 고름이 흐르는 과일. 보윤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가슴에 난 멍을 꾹 눌러보았다. "아..."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아프다. 하지만 견딜 수 있다. 아니, 견뎌야만 한다. 이 멍 자국들은 그녀가 이 정글 같은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고, 쫓겨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훈장이자, 자신이 아직 남자들에게 쓸모 있는 '구멍'이라는 인증 마크였으니까. 2. 행복 회로 보윤은 거울 속의, 초점 없는 눈을 한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주문을 외우듯이. "괜찮아, 보윤아. 잘하고 있어. 이게 최선이야. 넌 지금 아주 잘 살고 있는 거야." 그래, 이게 맞다. 과거에 겪었던 그 지옥 같은 갈등들. '거절할까 말까', '이게 맞는 걸까', '나를 쉬운 여자로 보면 어쩌지', '미움받으면 어떡하지'... 사랑받으려 애쓰고, 인정받으려 발버둥 치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에너지 낭비였나. 감정 노동이 육체노동보다 백 배는 더 힘들었다. 지금은 편하다. 너무나도 편하다. 복잡하게 머리 굴릴 필요가 없다. 자존심을 세울 필요도 없다. 그저 박 차장이 부르면 가서 무릎을 꿇고, 윤 대리가 비상구로 나오라고 협박하면 가서 다리를 벌리면 된다. 그러면 그녀에게는 야근도 없고, 갈굼도 없고, 왕따도 없다. 심지어 가끔은 그들이 기분 좋을 때 던져주는 두툼한 용돈이나 명품 가방 같은 선물도 떨어진다. [수락 = 평온 + 생존 + 보상] [거절 = 고립 + 파멸 + 죽음] 이 완벽하고 심플한 생존 방정식을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백윤겸, 기해주, 김지은... 그들이 나를 이용하고 버린 게 아니다. 내가 너무 뻣뻣하게 굴어서, 비즈니스의 룰을 몰라서 실패했던 것이다. 나는 피해자가 아니다. 나는 내 육체라는 자본을 이용해 권력과 거래하는 성실한 비즈니스맨이다. 보윤은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며 스스로를 필사적으로 합리화했다. '내 몸은 닳지 않아. 그냥 살덩어리일 뿐이야. 정액? 더러운 거 묻으면 비누로 씻으면 그만이야. 내 영혼? 그런 건 애초에 없었어. 있으면 괴롭기만 해. 차라리 없는 게 나아.' 그녀는 스스로의 영혼을 난도질하여 쓰레기통에 처박고 있었다. 그것이 살길이라 믿으며. 3. 균열 "자, 웃자. 성보윤. 오늘도 출근해야지. 돈 벌러 가야지." 보윤은 거울을 보며 양손 검지로 입꼬리를 억지로 당겨 올렸다. 박 차장이 그녀의 안에 사정할 때, 혹은 윤 대리가 그녀의 입에 쑤셔 넣을 때 보여주는 그 '좋아 죽겠다'는 서비스용 미소. 눈은 웃지 않고 입만 웃는, 훈련된 가면. 그런데, 거울 속의 여자가 이상했다. 입은 분명히 기괴하게 찢어져 웃고 있는데,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초점이 없는 텅 빈 동공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와 창백한 뺨을 타고, 떨리는 턱을 지나, 쇄골을 적시고 깊은 가슴골 사이로 툭, 툭 떨어졌다. "어...? 왜 이래..." 보윤은 당황해서 손등으로 눈물을 벅벅 닦았다. 하지만 닦아도 닦아도 멈추지 않았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댐이 무너진 것처럼. 그녀의 뇌는 '행복하다'고 세뇌하고 있었지만, 몸은 그 거짓말을 거부하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도망쳐.' 어디선가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7살 때 겨울, 내복 바람으로 문밖에 쫓겨나 덜덜 떨던 어린 보윤의 목소리. '제발 도망쳐. 이건 아니야.' '죽여버려.' 이번엔 다른 목소리였다. 더 낮고, 더 섬뜩하고, 목이 쉬어버린 짐승 같은 목소리. '너를 망가뜨린 그 새끼들을 다 죽여버려. 그리고 너도 죽어.' 보윤은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젖은 머리카락이 채찍처럼 뺨을 때렸다. '환청이야. 피곤해서 그런 거야. 어제 너무 무리했어. 나는 행복해. 나는 안정적이야. 나는 이 삶에 만족해. 나는... 나는...' 보윤은 미친 듯이 웃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으하하하! 흑, 으흐흑... 하하하! 거울이 고장 났나 봐... 내가 왜 울어? 웃긴다, 진짜. 미쳤나 봐." 욕실 안에 그녀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공명했다. 타일 벽에 부딪혀 돌아오는 그 소리는 웃음이라기보다, 갈라진 성대에서 터져 나오는 단말마의 비명에 가까웠다. 4. 출근 준비 한바탕 발작 같은 웃음을 터뜨린 후, 보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욕실을 나와 화장대 앞에 앉았다. 눈물 때문에 엉망으로 번진 화장을 티슈로 지우고 다시 고쳤다. 창백한 안색을 가리기 위해 파운데이션을 두껍게 바르고, 멍 자국 위에는 컨실러를 덧발랐다. 그리고 립스틱을 더 붉고 진하게 발랐다. 입술이 부각되어야 남자들이 좋아하니까. 옷장 문을 열었다. 단정하고 수수한 블라우스나 슬랙스는 구석에 처박혀 먼지가 쌓여 있었다. 보윤의 손은 자연스럽게 옷장 한가운데 걸린, 가슴이 깊게 파인 타이트한 붉은색 니트 원피스를 집어 들었다. 그녀가 고른 옷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지은이가 "언니는 이게 어울려, 예쁘다"라며 입혔다면, 지금은 박 차장이 "내일 그거 입고 와. 꼴리니까. 내 취향 알지?"라고 명령한 옷이었다. 이것은 그녀의 패션이 아니라, 주인이 지정해 준 작업복이자 유니폼이었다. 옷을 입으려는데, 어젯밤 박 차장이 보낸 카톡 내용이 떠올랐다. [박민석 팀장]: 팬티랑 브라 입고 오지 마. 거추장스러워. 벗기기 귀찮으니까 바로 박을 수 있게 준비해 와. 검사한다. 보윤은 서랍장에서 속옷을 꺼내려던 손을 멈췄다. 수치심이 발끝에서부터 벌레처럼 기어 올라왔다. 노브라에 노팬티로, 이 얇은 니트 원피스 하나만 달랑 입고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야 한다. 유두가 튀어나올 것이고, 걸을 때마다 허벅지 사이가 허전할 것이다. 스치기만 해도 흥분하거나, 혹은 수치스러워 얼굴을 들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팀장님 말을 안 들으면... 또 화내실 거야. 업무 폭탄 던지고, 사람들 앞에서 망신 줄 거야. 그냥 시키는 대로 하자. 그게 편해. 아무도 모를 거야.' 보윤은 속옷을 도로 서랍에 넣었다. 그녀는 맨몸 위에 붉은색 니트 원피스를 입었다. 브래지어가 없으니 거대한 가슴이 중력을 받아 묵직하고 육감적으로 출렁거렸다. 얇은 니트 원피스 위로 유두의 돌기가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아래는 더했다. 팬티가 없으니 원피스 자락이 엉덩이 라인에 그대로 달라붙었고, 걸을 때마다 허벅지 사이로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그녀의 가장 은밀한 치부를 스쳤다. "완벽해. 팀장님이 좋아하시겠어. 칭찬해 주시겠지?" 보윤은 전신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거울 속 여자는 회사원이 아니었다. 그녀는 출장용 성인용품, 혹은 주인의 취향대로 세팅된 살아있는 인형이었다. 5. 두 마리의 하이에나 띠링. 핸드폰이 울렸다. 보윤은 화들짝 놀라 화면을 확인했다. [박민석 팀장]: 보윤아, 오늘 좀 일찍 나와라. 아침부터 몸이 뻐근하네. 대회의실 3번 비어있지? 문 잠가놓고 대기해. 속옷 안 입고 왔는지 검사할 거니까 딱 벌리고 있어. 박 차장의 호출. 그는 그녀를 '검사'한다고 했다. 아침부터 그녀의 몸을 탐하겠다는 노골적인 선전포고였다. 그런데 동시에 또 다른 알림이 떴다. [윤 대리]: 야, 성보윤. 점심시간 비워놔. 비상구 알지? 저번처럼 늦게 오면 뒤진다. 입 청소 좀 해놓고. 두 마리의 하이에나가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한 명은 아침부터 그녀의 구멍을, 다른 한 명은 점심에 그녀의 입을 원하고 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보윤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가, 아무런 감정도 없는 표정으로 기계적으로 답장을 쳤다. [보윤]: 네, 팀장님. 알겠습니다. 먼저 가 있겠습니다. [보윤]: 네, 대리님. 시간 맞춰 가겠습니다. 거절하면 박 차장이 화를 내고 인사 고과를 망칠 테니까. 거절하면 윤 대리가 "너 박 차장이랑 떡치는 거 다 까발린다"며 협박하고, 몰래 찍은 영상을 유포할지도 모르니까. 그냥 눈 딱 감고 두 명 다 받아주면 된다. 구멍은 위아래로 두 개고, 시간차를 두면 되니까. 나는 감당할 수 있다. 나는 튼튼한 구멍이니까. 보윤은 핸드백을 챙겨 현관을 나섰다. 또각, 또각. 하이힐 굽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속옷을 입지 않은 탓에, 걸을 때마다 거대한 가슴이 심하게 요동치고 치맛자락이 다리 사이로 말려 들어갔다. 온몸의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섰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옷을 뚫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지옥으로 걸어 들어간다. 낮에는 얌전하고 일 못하는 성 대리로, 틈날 때마다 회의실 책상 위와 비상구 계단에서 다리를 벌리고 입을 여는 창녀로. 그 이중적인 지옥이, 이제 보윤에게는 가장 안전하고 익숙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거울에 비친 보윤의 얼굴이 사라졌다. 그곳에는 영혼 대신 주인의 더러운 정액과 명령만을 채워 넣을 준비가 된, 예쁘게 포장된 빈 껍데기 하나만 서 있을 뿐이었다.

고객센터 Sup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