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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완벽한 삼각형


1. 승인서 "뭐? 그 남자가 먼저 고백했다고? 대박! 진짜?" 주말 오후, 강남의 한 브런치 카페. 지은의 목소리가 톤 높게 울려 퍼졌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지만, 지은은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반짝이며 내 손을 꽉 잡았다. "응... 저번 주에 만나서 꽃다발 주면서... 만나보자고 하더라." 나는 얼굴을 붉히며 해주와의 연애담을 털어놓았다. 비 오는 날의 첫 만남, 마카롱 선물, 모텔에서의 배려, 그리고 그가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대해주는지까지. (물론, 침대 위의 적나라하고 뜨거웠던 사정은 뺐다. 그건 나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으니까.) 지은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물개박수를 쳤다. "와... 언니 진짜 계 탔네, 계 탔어. 그 모델 같다는 신입 연구원이 언니한테 푹 빠졌단 거지? 역시 내가 골라준 옷이 효과가 있었네. 내 안목 봤지?" "응, 맞아. 다 네 덕분이야. 지은아, 나 진짜... 너무 행복해. 이게 꿈이면 어떡하지?" "에이, 꿈 아니야. 언니는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 있어. 이제 꽃길만 걷는 거야." 지은은 내 손등을 토닥여주며 안심시켰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눈빛이 장난스럽게, 그러면서도 날카롭게 변했다. "근데, 그 남자 진짜 괜찮은지 내가 한번 검증해 봐야겠는데? 말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시꺼먼 놈일 수도 있잖아. 내 소중한 언니를 아무한테나 덜컥 넘겨줄 순 없지." 지은이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도 바라고 있던 바였다. 해주에게도 이미 지은이 이야기를 입이 닳도록 해두었다. 나를 지옥에서 건져준 은인이자,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능력 있는 내 베프라고. "그래! 셋이서 보자. 해주 씨도 너 엄청 궁금해해. 내가 맨날 네 얘기만 하니까, 맛있는 거라도 사드리고 싶대." "콜. 날짜 잡아. 내가 언니 친정 오빠 빙의해서 아주 깐깐하게 면접 봐줄 테니까. 긴장하라고 해." 2. 두 개의 태양 약속 장소는 지은이가 즐겨 찾는 청담동의 고급 프라이빗 룸소주방이었다. 해주와 나는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해 있었다. 해주는 긴장한 듯 연신 물을 마시며 넥타이를 고쳐 맸다. "보윤 씨, 저 괜찮아요? 머리 안 이상해요? 친구분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보윤 씨한테 제일 소중한 친구라면서요." "걱정 마요. 해주 씨는 누가 봐도 멋있으니까. 그리고 지은이 성격 진짜 좋아. 털털하고 시원시원해서 금방 친해질 거예요." 나는 해주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며 웃었다. 잠시 후, 룸 문이 열리고 지은이 들어왔다. "어머, 안녕하세요! 제가 좀 늦었죠? 차가 너무 막혀서." 오늘따라 지은은 작정한 듯 화려했다. 어깨선이 드러나는 검은색 오프숄더 미니 원피스에 반짝이는 드롭 귀걸이, 그리고 진한 스모키 메이크업. 마치 시상식에 온 여배우 같았다.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 만큼 압도적인 비주얼이었다. 지은이 상큼하게 웃으며 들어오자, 해주가 벌떡 일어나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아닙니다. 저희도 방금 왔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기해주라고 합니다. 보윤 씨 남자친구입니다." 두 사람의 첫 만남. 나는 내심 불안했다. 혹시 어색하면 어쩌지? 지은이가 해주 씨를 마음에 안 들어 하면 어쩌지? 혹은... 해주 씨가 지은이를 보고 너무 예쁘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였다. 아니, 겉보기엔 완벽한 조화였다. 지은은 해주의 훤칠한 키와 조각 같은 외모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눈을 반짝였고, 해주는 지은의 세련된 매너에 감탄하는 눈치였다. "와... 언니가 왜 입이 닳도록 자랑했는지 알겠네요.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잘생기셨어요. 연예인인 줄 알았네." "과찬이십니다. 저도 보윤 씨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보윤 씨 가장 힘들 때 곁을 지켜주신 은인이라고... 정말 감사합니다." 해주는 진심을 담아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내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내가 존경하는 친구에게 감사를 표하는 모습. 이보다 더 완벽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있을까? 3. 화음 술자리는 예상보다 훨씬 화기애애했다. 지은은 타고난 분위기 메이커였다. 그녀는 특유의 거침없는 입담으로 좌중을 휘어잡았고, 해주는 적재적소에 맞장구를 치며 분위기를 띄웠다. "아니, 글쎄 언니가 취업 스터디 첫날에 쭈뼛거리면서 구석에 박혀 있는 거예요. 후드티 뒤집어쓰고 눈도 못 마주치고. 제가 그거 보고 '아, 저 언니는 내가 납치해서 키워야겠다' 싶었다니까요?" "하하, 보윤 씨가 좀 수줍음이 많죠. 그게 매력이긴 하지만." 해주가 웃으며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샌드위치처럼 끼어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야, 김지은! 너 내 흉만 볼 거야? 해주 씨, 듣지 마요. 얘 과장하는 거예요." "칭찬이야, 칭찬. 그만큼 언니가 순수하다는 거지. 때 묻지 않은 천연기념물이라니까." 지은이 칵테일 잔을 흔들며 짓궂게 웃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표정을 싹 바꾸고 진지하게 해주를 쳐다봤다. "해주 씨, 근데 이건 진심인데요. 우리 언니 진짜 여려요. 상처도 많고 눈물도 많아요. 겉으로는 안 그래 보여도 속은 문드러져 있다고요. 해주 씨가 혹시라도 언니 울리면... 저 가만 안 있어요? 저 한 성깔 하는 거 아시죠?" 지은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뼈 있는 말을 던졌다. 백윤겸을 감옥에 보냈던 그 '성깔'을 나는 알기에, 웃으면서도 등골이 서늘했다. 해주는 지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내 손을 꽉 잡으며 대답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보윤 씨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언제든 절 찾아오세요. 뺨이 아니라 그 이상도 맞겠습니다. 제 목숨 걸고 지키겠습니다." 해주의 눈빛은 확고했다. 지은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든다는 듯 휘파람을 불었다. "오~ 남자네. 합격! 우리 언니 맡겨도 되겠어요. 안심이다." 지은이 건배 제의를 했다. 짠- 세 개의 잔이 부딪쳐 맑고 경쾌한 소리를 냈다. 나는 술을 마시면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오른쪽에는 나를 세상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는 방패 같은 친구, 왼쪽에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안식처 같은 연인. 내 인생을 지탱하는 든든한 두 기둥이 양옆에 버티고 있는 기분이었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4. 탐색 "해주 씨는 연구소에 계신다고요? 와,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머리도 좋으신가 봐요. 근데 키도 크시고... 완전 사기 캐릭터시네. 불공평하다." 지은이 턱을 괴고 해주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윽한 눈빛. 그 시선이 조금 끈적하다고 느낀 건 내 착각일까? 아니, 지은이는 원래 사람을 뚫어지게 보는 버릇이 있으니까. 호기심이 많아서 그럴 거야.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지은 씨야말로 대단하시던데요. 인플루언서 준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팔로워도 많으시고." "네, 뭐... 그냥 취미로 하는 거죠. 아, 해주 씨. 혹시 인스타 하세요? 저랑 맞팔해요! 언니랑 데이트 사진 올리면 제가 '좋아요' 1등으로 눌러드릴게요." "아, 네. 영광입니다." 두 사람은 즉석에서 핸드폰을 꺼내 인스타그램 맞팔을 했다.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내 친구들과 남자친구가 친하게 지내는 것, 모든 여자의 로망이 아닌가. 지은은 해주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집은 강남 어디인지, 부모님은 뭐 하시는지, 차는 무슨 기종인지. 조금 세속적이고 민감할 수 있는 질문들이었지만, 지은이 특유의 애교 섞인 말투로 "궁금해서 그래요~" 하며 물어보니 해주도 거부감 없이 술술 대답했다. "아버지는 건축 사무소 하시고, 어머니는 작은 갤러리 운영하세요." "와, 집안도 좋으시네. 예술가 집안이구나. 어쩐지 귀티가 나더라. 우리 언니 시집 잘 가야겠는데? 꽉 잡아, 언니." 지은이 깔깔거리며 내 허벅지를 찰싹 쳤다. 나는 얼굴이 붉어졌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해주와의 결혼, 그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설렜으니까. 5. 완벽한 삼각형 술자리가 파할 무렵, 우리는 기념으로 사진을 찍기로 했다. 가게 앞, 조명이 예쁜 포토존에서였다. "자, 다 같이 모여봐요! 남는 건 사진뿐이야." 지은이가 자연스럽게 가운데에 섰다. 나와 해주는 지은을 중심으로 양옆에 섰다. "하나, 둘, 셋! 김치~" 찰칵. 지은이 바로 사진을 확인하며 감탄했다. "와, 사진 진짜 잘 나왔다. 대박. 근데... 해주 씨랑 나랑 그림체가 좀 맞는데?" 지은이 핸드폰 화면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사진 속의 세 사람. 화려하고 도도한 고양이상의 지은, 차갑고 날카로운 조각 미남형의 해주. 두 사람은 마치 화보 속 커플처럼 세련된 분위기가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순하고 동글동글하게 웃고 있는 강아지상의 나. 지은의 말대로, 시각적으로 두 사람은 묘하게 잘 어울리는 한 쌍 같아 보였다. 나는 그 사실이 아주 잠깐, 가시처럼 따끔하게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내 남자친구가 내 친구만큼이나 잘나서 그런 거야. 끼리끼리 노는 거지.' "언니, 오늘 진짜 즐거웠어. 해주 씨, 늦었는데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언니 잘 부탁해요!" 지은이 택시를 타고 떠났다.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드는 지은의 얼굴은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해주가 내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보윤 씨 친구분, 되게 매력적이시네요. 말도 잘하시고. 무엇보다 보윤 씨를 진짜 아끼는 게 보여서 좋았어요." "그치? 내가 뭐랬어. 지은이 진짜 진국이라니까." 나는 해주의 품에 안겨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울의 밤하늘치고는 별이 유난히 많이 보였다. 스토커 백윤겸은 감옥에 갔고, 나는 대기업에 다니며 커리어를 쌓고 있다. 그리고 나를 죽도록 사랑해 주는 완벽한 남자친구와, 나를 위해 대신 싸워주는 최고의 친구를 가졌다. 내 인생의 삼각형이 빈틈없이 채워졌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이 완벽한 행복이 영원히 깨지지 않기를, 나는 밤하늘에 빌고 또 빌었다. 징- 그때,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지은에게서 온 카톡이었다. [지은]: 언니, 잘 가고 있어? 오늘 너무 재밌었어. [지은]: 근데 해주 씨 진짜 괜찮다. 센스도 있고 매너도 좋고. 탐난다, 진짜. ㅋㅋㅋ [지은]: 농담이고, 예쁘게 잘 사귀어! 오늘 고마웠어❤️ 나는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보윤]: ㅋㅋㅋ 탐내지 마! 내 거야. 오늘 고생했어, 잘 자! '탐난다, 진짜.' 나는 그 말이 그저 친구로서 할 수 있는 짓궂은 농담, 혹은 내 남자에 대한 최고의 칭찬이라고만 생각했다. 지은이가 내 것을 뺏을 리가 없으니까. 그녀는 나에게 주기만 하는 천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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