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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개화


1. 낯선 쾌락 첫 키스의 여운을 가득 안고 돌아온 밤. 보윤은 침대 위에서 이불을 뻥뻥 걷어찼다가, 다시 끌어안고 뒹굴기를 반복했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가, 천장을 보고 누워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입을 막았다.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입술에 닿았던 해주의 온기가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남아, 혀로 입술을 핥으면 달콤한 맛이 날 것만 같았다. 징- 징- 머리맡에 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보윤은 빛의 속도로 핸드폰을 낚아챘다. [해주]: 잘 들어갔어요? 저는 집에 왔는데... 아직도 심장이 너무 뛰어서 잠을 못 자겠어요. 화면 속 글자만 봐도 해주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보윤]: 저도요... 오늘 꿈에 해주 씨 나올 것 같아요. 너무 좋았어요. 달콤한 카톡을 주고받으며 보윤은 갤러리에 저장된 해주의 프로필 사진을 확대해 보았다. 워크숍 때 찍힌 듯한 자연스러운 사진. 하얀 셔츠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눈매, 단정하면서도 어딘가 섹시한 입술. 그 입술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는데, 갑자기 아랫배 깊은 곳, 자궁 언저리에서 묵직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하고 치솟았다. '아...' 보윤은 본능적으로 다리를 비비 꼬았다. 허벅지 안쪽이 저릿했다. 낯선 감각이었다. 과거 윤겸과 그의 친구들에게 당할 때, 혹은 억지로 술을 마시고 모텔에 끌려갔을 때도 몸은 반응했었다. 하지만 그때의 반응은 공포와 생존 본능이 만들어낸 비참한 생리 현상이었다. 애액이 나올 때마다 그녀는 수치심에 치을 떨었다. '더러운 년. 발정 난 암캐처럼 몸은 솔직하네.' 그들의 조롱과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뒤섞여, 자신의 성적 반응을 저주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녀의 몸이 스스로, 주체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억지로 다리를 벌려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녀 자신이 그를 너무나 원해서. 그의 입술을, 그의 체온을, 그의 모든 것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고 싶어서. 보윤은 떨리는 손으로 이불 속, 자신의 속옷 위를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뜨끈한 열기가 손끝에 전해졌다. 하지만 그 감촉은 과거에 느꼈던 끈적하고 불쾌한 오물의 느낌이 아니었다. 마치 맑은 새벽, 꽃잎에 맺힌 영롱한 이슬처럼 깨끗하고 성스럽게 느껴졌다. "아으... 해주 씨..." 보윤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 해주의 이름을 속으로 부르며 달뜬 신음을 흘렸다. 자신이 음탕한 게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건, 죄악이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럽고 황홀한 본능이었다. 그녀는 생애 처음으로, 사랑 때문에 젖어 든 자신의 몸을 혐오하지 않고 사랑하게 되었다. 2. 점화 주말 저녁, 드라이브 데이트. 해주와 근교에서 저녁을 먹고 난 뒤, 해주는 "야경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며 보윤을 태우고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한적한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 안에는 빗소리를 닮은 차분한 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차창 밖으로는 도시의 불빛들이 강물 위에 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보윤 씨." 시동을 끄고 잠시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른 뒤, 운전석의 해주가 보윤을 불렀다. 보윤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차 안, 가로등 불빛이 역광으로 비쳐 해주의 표정이 더욱 깊고 그윽해 보였다. 그 눈빛은 평소의 다정함을 넘어, 짙고 깊은 갈증을 담고 있었다. 마치 사막을 걷는 여행자가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한, 절박하면서도 뜨거운 눈빛. 보윤 역시 그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내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 달칵. 해주가 안전벨트를 풀었다. 그 소리가 마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같았다. 그가 상체를 보윤 쪽으로 천천히, 하지만 거침없이 기울였다. 보윤은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들었다. 이번에는 깃털 같은 뽀뽀가 아님을 직감했다. 두 사람의 입술이 맞물렸다. "으음..." 보윤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해주의 입술이 보윤의 아랫입술을 머금고 부드럽게 빨아들였다가, 그 틈을 비집고 뜨거운 혀가 들어왔다. 질척. 젖은 혀가 얽혔다. 과거의 키스는 '침략'이었다.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휘저어놓는 폭력, 타액을 억지로 밀어 넣는 고문. 거부하면 뺨을 맞거나 욕설을 들어야 했던 강제 노동. 하지만 해주의 키스는 '탐험'이었다. 보윤의 입안 구석구석을, 치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집요하고 열정적으로 어루만졌다. 보윤의 혀가 도망가지 않게 감싸 안으면서도, 그녀가 숨 쉴 틈을 주며 리듬을 맞췄다. 츄릅... 츕... 질척이는 타액 소리가 조용한 차 안을 가득 메웠다. 예전 같으면 그 소리가 역겨워 구역질이 났을 테지만, 지금은 그 소리조차 세상에서 가장 야하고 자극적인 음악처럼 들렸다. 해주의 혀가 닿는 곳마다 불꽃이 터지는 것 같았다. 보윤은 해주의 목을 끌어안으며 더 깊이 파고들었다. 3. 욕망 키스가 격렬해질수록 차 안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창문에 하얗게 김이 서릴 정도였다. 밀폐된 공간이 주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두 사람을 더욱 자극했다. 해주의 큰 손이 보윤의 뒷목을 단단하게 감싸 안고, 더 깊이, 더 진하게 파고들었다. 보윤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하얀 목선이 드러났다. 해주는 입술을 떼고 그 하얀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하아... 하아... 보윤 씨 냄새... 너무 좋아요..." 그가 보윤의 목덜미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으며 웅얼거렸다. 보윤의 손은 자연스럽게 해주의 셔츠 깃을 움켜쥐었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더 가까이, 더 깊이 닿고 싶었다. 서로의 숨결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해주의 손이 조심스럽게 보윤의 잘록한 허리를 타고 올라왔다. 얇은 블라우스 위로 느껴지는 그의 손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그의 손은 허리를 지나, 등줄기를 타고 오르더니, 천천히 앞쪽으로 넘어와 보윤의 풍만한 가슴 근처에서 멈칫했다. 그곳은 보윤에게 트라우마의 집합체였다. 과거의 남자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옷을 찢을 듯이 벗기고 거칠게 주물러댔던 그곳. 가슴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젖소 취급을 받으며 유린당했던, 수치스러운 살덩이. 하지만 해주는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손을 멈췄다. 그리고 목덜미에 묻었던 얼굴을 들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보윤의 젖은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욕망으로 붉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이성이 살아있었다. 허락을 구하는 눈빛. '당신이 원하지 않으면 여기서 멈출게요. 당신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욕망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기 직전인 순간에도, 그는 보윤을 존중하고 있었다.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않으려, 그녀를 쉬운 여자 취급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참는 것이 느껴졌다. 턱 끝에 맺힌 땀방울이 그의 인내심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 눈빛을 보자, 보윤의 안에서 마지막 빗장이 풀렸다. 마음의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 남자라면... 괜찮아. 아니, 이 남자라면 내 모든 걸 주고 싶어. 내 몸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아.' 보윤은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 근처에서 갈곳 몰라 망설이는 해주의 큰 손을 덮어 잡았다. "......!" 해주의 몸이 움찔했다. 보윤은 그의 손을 이끌어, 자신의 터질 듯한 가슴 위로 가져갔다. "해주 씨..." 보윤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눈동자는 확신에 차 있었다. "저... 준비됐어요." 4. 열린 문 해주의 눈이 커졌다. 그는 보윤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의 크고 따뜻한 손이 보윤의 가슴을 부드럽게, 그리고 묵직하게 감쌌다. 움켜쥐거나 꼬집는 폭력이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깨지기 쉬운 보물을 다루듯, 손바닥 전체로 둥글게 어루만지는 애무였다. "하아... 읏..." 보윤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체온이 옷감을 뚫고 피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찌릿한 전율이 척추를 타고 머리끝까지 퍼져나갔다. 그것은 쾌락이자 치유였다. 더러운 손때가 묻어 썩어가던 자리가, 해주의 성스러운 손길에 의해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마치 성수가 닿은 것처럼. "보윤 씨... 좋아해요... 진짜 많이..." 해주가 보윤의 귓가에 속삭이며 다시 입을 맞췄다. 이번에는 더 깊고, 더 진하게. 서로의 타액이 섞이고, 체온이 섞이고, 영혼이 섞였다. 격렬했지만 추하지 않았다. 뜨거웠지만 더럽지 않았다. 해주의 손길이 블라우스 단추 사이로,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보윤은 거부하지 않고 그를 받아들였다. 그의 거친 손가락이 부드러운 맨살에 닿는 순간, 보윤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쾌락에 몸부림치는 자신이 더 이상 '음탕한 년'이 아니라, '사랑받는 여자'임을 온몸으로 느꼈다. '내 몸은 더러운 구멍이 아니야. 쓰레기통이 아니야.' 차창 밖에는 도시의 불빛이 강물 위에 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 빛들이 두 사람을 축복하는 것만 같았다. 보윤은 해주의 목을 끌어안으며 눈을 감았다. 그의 심장 소리가 자신의 가슴에 닿아 쿵쿵 울렸다. 이제 두렵지 않았다. 이 남자의 품 안에서라면, 그 어떤 밤도 아름답고 안전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자신을 허락했다. 아니, 스스로 선택했다.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성보윤'이라는 이름으로, 온전히 사랑하고 사랑받는 여자가 되기로. 그녀의 인생에 비로소, 진짜 꽃망울이 터지며 만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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