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1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해당 명언을 남긴 세익스피어는 당시에 무슨 심정이었을까?
뭐 지금 시점에서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고 세익스피어의 심경을 절대로 알 수 없기에 의미는 전혀 없겠지만, 만약에 자신이 건강하고 또 내일, 미래 걱정때문에 고심하는 평범한 이라면 그런 고찰따윈 할 필요도 생각조차도 안 들었을 것이다. 당장에 머릿속에 오늘, 내일할 회사 업무이니 가정사때문에 바쁠테니 말이다.
하지만 막상 자신이 죽기 직전까지 몰리니까 머릿속에 계속 떠오른다.
지금 이곳은 24년 10월 새벽4시, 인적인 드문 뒷산 외진 곳에 있는 강가.
비루한 잠바 차림인 중년이 된 남자가 소주병을 연일 들이키고 있었다.
"크으...."
공허한 표정인 그는 어느덧 옆에 있던 검은 봉다리에 손이 간다.
봉다리에서는 사연이 깊은 바나나우유가 있었다.
창현의 손은 덜덜 떨린 채 오른손으로 우유를 들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는 조소하듯이 저절로 욕지거리가 내뱉어진다.
"... 빌어먹을."
그의 이름은 안창현, 불우한 인생 끝에 결국에는 수억원의 빚쟁이로 몰려서 이제는 인생을 자포자기할 예정일 44살의 중년 남자였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누가 더 흙수저인생이니같은 신파극은 싫어하지만 그의 인생은 나름 불우했다.
본래 평범한 회사원 아버지와 순둥순둥한 성격의 현모양처같은 가정부모 어머니와 중학교까지 1남1녀, 까칠하지만 나름 정있던 여동생과 함께하는 행복한 일상이었지만 웬걸 1997년 imf라는 게 터지고 당시 잘나가던 기업 한국통신의 대리가 직업이었던 아버지가 상사 등쌀에 못 밀려 강제 퇴직당하하고선 집안에 비극이 찾아왔다.
하루 아침에 밥벌이가 사라진 우리집, 마음씨 착한 어머니는 친구 분이 주인으로 있던 식당일을 전전하며 현시국을 타개하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웬걸 주식으로 그나마 받았던 은퇴금은 물론 빚까지 잃더니 이내 괜히 술을 마시다가 술주정을 하며 너희 자식새끼들때문에 주식이 망했다는 얼토당토 않는 책임전가를 하며 나와 여동생을 수시로 줘패는 가정폭력의 일상이 빈번했었다.
술취한 아버지는 항상 주먹을 휘두르면서 중얼거리던 말이 자신은 시골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채 깡과 독학으로 나름 자수성가한 인생이었는데 여편네랑 너희 자식놈년들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라나. 어릴 적 당시엔 별욕이 다나왔지만 나이 먹고 생각해보니까 아버지 본인의 자괴감으로 인한 대리표출이었던 거 같다.
그러다가 몇년 뒤 아버지는 술에 많이 취했던 걸까. 아니면 술기운에 너무 비관적이 됐던 걸까? 어느날 농약을 물처럼 드시고선 그대로 영영 볼 수가 없었다. 우리 가족 몰래 주식 실패로 생긴 1억원 이상의 사채 빚을 남겨둬서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긴 채.
20년 전의 1억원의 사채 빚, 지금도 1억원은 평범한 대한민국 소시민에게 있어서 듣기만 해도 어깨가 움찔거릴 큰돈이지만 당시 imf 직후 물가에 힘들었던 체감까지 감안하면 최소 3,4배는 나올까? 게다가 아버지란 놈이 대부업자들한테 사채 대출을 받을 때 그 복리란 놈으로 받아서 매달 점점 불어나는 이자 갚기도 힘든 실정이었다.
순식간에 편부모, 그리고 빚더미가 된 집이었지만 어머님은 슬픔을 내색하지 않고선 식당, 가게 알바 등 투잡을 하셨고 나랑 여동생도 합격한 대학교 입학까지 휴학으로 포기해가며 매일 알바를 하며 20대, 30대에 걸쳐서 빚과 이자를 조금씩 갚아나갔다.
이후 30대 중반이 넘어서 빚이 어느 정도가 끝나가는 게 보일 때, 창현은 이제서야 어머니께 효도하고선 인생 시작이라면서 은행 대출 등으로 치킨집을 개업해보고선 제2의 인생 도약을 생각했지만... 치킨집은 하필 코로나 등 불경기때문에 매달 월세, 대출 이자 내기도 벅차다가 결국에 폐업해버렸고 그는 어떻게든 타개책을 마련하고자 다시금 대출을 받고선 코인, 주식 등을 노렸지만 웬걸 그거마저도 처음에 조금 따는가 싶더니 결국엔 개미투자자 아니랄까봐 폭삭 망하고 도리어 빚만 수 억원이 넘고 말았다.
나이 40 넘어서 여유가 전혀 없어서 연애란 것도 제대로 못해봐서 변변찮은 가정도 마련하지 못했는데 다시 그 끔찍한 빚이 수 억이 있다고?
게다가 한평생 그토록 자식바라지에 고생하셨던 어머니는 일주일 전부터 이상하게 아래배가 아프시다고 해서 병원에 건강검진을 받아봤더니 웬걸 의사가 독대를 청하더니 심각한 얼굴로 어머님이 과도한 음주 및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서 대장암 3기라고선 급히 입원해야한다고 한다.
어릴 적에 그토록 예쁘신 얼굴에 술 한 잔, 담배 한 모금 피실지 몰랐던 세상에서 제일 소중했던 엄마가 시한부환자가 되다니.... 불효자식인 자신의 잘못이리라.
여동생도 그토록 공장에서 공순이로 고생하더니 이제서야 공장에서 만난 좋은 사내자식이랑 연애끝에 결혼에 성공해서 이제야 좋은 가정을 이뤘는데 한 집안의 가장이자 오빠였던 나란 놈은 대체 뭘하고 있는 걸까?
여기까지 몰리다보니까 창현은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서 비참한 몰골로 있는 게 여기까지의 이야기다.
이제껏 흙수저 인생을 글로 표현해보니까 참 한심하네. 분명 자신보다도 불우한 사람들도 엄청 많았을테고 또 이겨내고 자수성가한 사람들도 많을텐데 말이다. 아왜 그렇게 인생극복하고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실화가 취미로 봤던 드라마, 웹소설에 자주 나오지 않나?
하지만 현실과 웹소설은 다르다. 가령 웹소설은 고작 몇줄, 몇 장면으로 고난 극복하고선 또 회귀같은 특별한 계기라도 생기지 않나.
현실은 나이는 불혹을 넘겨서 신체에 힘이 잘 돌아가지 않고 그 나이될 때까지 제대로 배운 것도 없고 인맥도 없고 특별한 계기도 없어서 매일, 매시간이 괴롭고 비참한데? 게다가 투병 중인 어머니를 생각하니 괴로워하는 시간조차 개탄스럽다.
하지만 회귀라... 정말 그런 게 있으면 좋겠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로 회귀해서 계기를 갖고선 후회없이 살고 싶으니까 말이다.
그래, 계기만 생긴다면....
창현은 희미한 눈빛으로 시선을 내려본다.
시선은 어느새 오른손에 들었던 바나나우유에 고정돼 있었다.
빚 갚느라 휴학한 대학교 가지도 못하고선 편의점, 피시방 알바만 했던 00년대 20살 청춘 때 며칠에 한 번씩 겨우 마시던 유일한 간식거리였는데... 게다가 비록 아련한 추억이지만 못다했던 첫사랑이자 짝사랑하던 그녀가 좋아하던 우유이기도 하고선 말이다.
어째서일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라고 회상하는데 왜 20대인 00년대 그때가 생각나네. 정작 빚 이자 갚느라 돈도 없었고 연애란 것도 전혀 못해봤는데....
창현은 공허한 표정으로 결심이 선 채 바나나우유를 주저없이 마시려고 한다.
"...."
문득 창현의 의식은 흐릿해진다.
마치 시공간을 이동하듯이 달팽이 껍질의 고리처럼 흔들리더니 이내 창현의 의식이 사라지고 주변의 모든 경관이 바뀌기 시작한다.
'안창현 22년 전, 2002년으로 회귀.'
****
이틀 뒤 아침, 한 원룸방.
침대에서 벌떡 기상한 창현은 곧장 두눈이 부릅 떠진다.
"아....?"
창현은 잔뜩 긴장해서 식은땀을 뻘뻘 흘린 채 직후 서둘러서 핸드폰을 확인해본다.
"제길...."
그의 핸드폰은 익숙한 스마트폰이 아닌 폴더폰 형식의 피처폰이었다.
피처폰의 화면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아날로그 느낌의 화면으로 날짜, 시간을 표시해준다.
[2002년 6월 14일 금요일 am07:02]
이틀간 있던 게 정말 꿈이 아니었다. 자신은 정말로 22년 전으로 회귀한 거다.
그것도 악몽같던 군전역이 막 끝난 22살 그 나이로.
창현은 긴장감이 풀린 나머지 한숨을 와락 내쉬며 혼잣말을 중얼댄다.
"하아, 하.... 꿈이 아니었네..."
이틀이 지나도 여전히 02년의 여름이라니, 자신은 정말로 회귀란 걸 했나보다.
대체 어떻게 회귀한 걸까? 그것에 대해서 이틀 내내 수많은 고민을 해봤지만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정말로 02년, 22살의 안창현으로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생겼다면... 자신은 돈이든 연애든 뭐든 후회없이 살고 싶었다.
때마침 배에서는 배꼽소리가 울렸다.
"꼬르륵."
나이가 20대가 돼서 건강해지니 벌써 배가 고프네.
편의점 가서 라면이라도 사먹어야겠다.
창현은 곧장 세면을 마치고 잠바를 주섬 입은 채 원룸을 나선다.
"편의점부터 가보자."
이윽고 외출하고선 걷는 길거리.
창현은 뭔가 낯익으면서 그리운 풍경에 저절로 미소가 그려지고 만다.
"... 여기 마을 풍경을 다시 볼 수 있으니까 신기하네."
그곳은 20대의 창현이 본래 살았던 한빛시의 한 동네이다.
근처에 이화여대급 명문대인 한빛여대가 있어서 나름 상가와 원룸 등이 즐비했던 게 특징이었다. 간혹 편의점 알바하면서 물건을 사러온 한빛여대 다니는 미모의 여대생들 감상하는 것도 큰 재미였지. 암.
창현은 괜스레 얼굴을 붉히고선 낯익은 편의점으로 입장하려고 한다.
지금과는 조금 다른 상표명을 한 편의점으로.
"엘쥐25라... 그 하늘색 로고인 CS25로 바뀌기 이전인가보네. 이것도 추억이지 뭐."
엘쥐25 편의점, 추억하는 사람은 기억하겠지만 2005년에 기업 분리로 그 지금도 유명한 CS25로 개편된다. 지금은 엘쥐25 상호 그대로인 게 정말로 그 00년대, 02년에 온 게 맞는 모양이다.
창현이 편의점에 입장하자 또래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의 조금 피곤한듯한 인사소리가 들려온다.
"어서 오세요. 엘쥐편의점입니다."
창현의 시선에서는 이윽고 형형색색의 그시절 추억의 편의점 풍경이 들어온다.
참고로 그시절을 모르는 잼민이라면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 편의점도 나름 컵라면, 삼각김밥 등 있긴 있었다.
창현은 곧장 찐라면 컵라면 하나를 짚고선 계산하러 간다.
편의점 알바생은 곧장 계산을 도와준다.
"500원입니다. 여기 나무젓가락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4년 지금은 최소 1500원은 줘야하는 컵라면이 500원이라... 물가, 시세가 차이가 나네. 가격만 보면 참 착한데 말이다.
창현은 곧장 편의점 의자 한구석에서 젓가락으로 찐라면을 입소리가 크게 들리지는 않게 후루룩 먹는다.
"맛있네...."
그시절 라면도 진짜 꿀맛이다. 포만감도 잘 차고선 말이다.
그런데 먹으면서 어제부터 고민했던 게 생각난다.
만약에 자신이 02년으로 회귀한 게 맞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웹소설, 드라마같은 걸 보면은 회귀하고선 외워간 로또번호 1등 번호로 벼락부자가 되던데, 솔직하게 어느 평범한 사람이 언제 회귀할줄 알고 로또번호 1등 번호를 기억할까? 게다가 로또는 02년 겨울부터 창설해서 여름인 지금은 아직 나오지도 않은 걸로 안다.
그래도 분명 회귀한 만큼 미래의 정보는 특별한 가치가 있을텐데....
이처럼 창현이 라면을 먹고선 고민할 무렵, 편의점에서는 아저씨 손님이 들어온다.
탈모가 오셨는지 머리가 살짝 벗겨진 아저씨의 인상 착의는 악마가 그려진 붉은색 바탕의 티셔츠와 청바지인 게 참 친숙한 복장이다.
"어서오세요. 편의점입니다."
"어 알바야. 스포츠또또 한 장 줘라. 오늘 월드컵 축구 있잖아!"
"예, 손님."
그 시절 낭만 아니라면 낭만 아니랄까봐 반말로 찍찍하며 월드컵 축구날이라며 스포츠또또를 주문하는 아저씨 손님이었다.
어라, 월드컵 축구... 그러고 보니 2002년 6월 14월인 오늘은 분명...?
창현은 곧장 두눈에 광채가 깃든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