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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평화주의자의 의도치 않은 손길


제3화. 평화주의자의 의도치 않은 손길 “망할 놈의 정파...” 객잔을 뛰쳐나온 천무진은 비틀거렸다.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셨지만, 아랫배에서 이글거리는 불덩이는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객잔에서 겪은 시각적 자극(밥 먹여주는 부부)으로 인해, 불길은 한층 더 예민하고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배고파... 덥고... 젠장.”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는 그토록 원했던 평화로운 국밥 한 그릇조차 먹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스승의 말대로 팡 하고 터져 죽거나, 그전에 굶어 죽을 판이었다. “일단... 자자.”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없었다. 천무진은 객잔 반대편의 허름한 헛간을 발견하고, 그곳에 쌓인 볏짚 더미에 몸을 묻었다. ‘평화... 평화가 필요해.’ 그는 억지로 청심공을 운기하며, 굶주림과 열기 속에서 간신히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와아아아-! 시끌벅적한 소리에 천무진은 눈을 떴다. “시끄러워.” 그의 첫마디는 불만이었다. 평화로운 아침잠을 방해받았다는 사실에 미간이 좁혀졌다. 그는 볏짚을 툭툭 털며 헛간 밖으로 나갔다. 아침 해가 밝았지만, 그의 속은 여전히 불타고 있었다. 양기 폭주는 자고 일어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밤새 응축된 열기가 아침이 되자 더 맹렬히 날뛰는 기분이었다. “일단 뭐라도 먹어야...” 배가 고팠다. 어제저녁부터 굶었으니, 뱃가죽이 등에 붙을 지경이었다. 그는 엽전 몇 닢이 든 주머니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마을 광장 쪽으로 향했다. 시끄러운 소리는 그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에이, 귀찮게.” 천무진은 인파를 극도로 싫어했다. 사람이 많다는 건, 복잡한 일이 생길 확률이 높다는 뜻이고, 그건 평화와 정반대되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광장을 지나지 않고는 마을의 유일한 만두 가게에 갈 수가 없었다. “만두... 만두 먹고, 시원한 우물물 마시고... 그러고 바로 뜨자.” 그는 최대한 인파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광장 가장자리로 고개를 숙인 채 종종걸음을 쳤다. “자자! 천하제일 정파! 청성파(靑城派)의 시연이 있겠습니다!” 우렁찬 목소리가 광장을 울렸다. 천무진은 어젯밤 객잔에서 들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아. 그 위선자 놈들.’ 스승이 그토록 피하라고 했던 정파 놈들이었다. “흥. 피곤한 놈들.” 그는 고개를 더욱 숙였다. 괜히 눈이라도 마주쳤다가, “어디 감히 대협들의 시연을 훔쳐보느냐” 따위의 피곤한 시비라도 걸리면 골치 아팠다. 광장 중앙에는 임시로 만든 연무대가 차려져 있었다. 푸른 도복을 맞춰 입은 청성파의 제자들이 검을 휘두르며 기합을 넣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와아, 저게 바로 명문 정파의 검법이구나!”라며 환호했다. 천무진은 그 모습을 곁눈질로 힐끗 보았다. ‘...폼은 오지게 잡네.’ 그의 눈에는 그저 복잡하고 비효율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춤사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가 막 인파를 빠져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연무대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 인영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 천무진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여자였다.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푸른 도복을 입고 있었지만, 태가 달랐다. 질끈 묶어 올린 머리, 자그마한 얼굴, 그리고... 도복 위로도 감춰지지 않는 평화롭지 못한 볼륨감. ‘소선(素仙).’ 어젯밤 객잔에서 들었던, 미모가 절색이라던 바로 그 여제자였다. ‘...예쁘네.’ 아니, 아니지. ‘평화! 평화!’ 천무진은 머리를 흔들었다. 저 여자는 정파 소속이다. 정파 = 위선자 = 복잡함 = 피곤함. 그의 머릿속은 단순했다. 저 여자는 피해야 할 대상 1호였다. 화르르륵-! 젠장. 또다시 아랫배가 뜨거워졌다. 어제 밥 먹여주는 부부를 보고 폭주했던 그 느낌. 저 소선이라는 여제자를 쳐다본 것만으로도, 몸이 멋대로 반응했다. 그의 천양신체는 어제보다 한층 더, 아주 지독하게 예민해져 있었다. “망할. 만두고 뭐고 그냥 튀어야겠다.” 그는 방향을 틀었다. 이 이상 정파 놈들과 엮였다간, 계곡 변태 사건 시즌 2를 찍을 게 뻔했다. 그가 막 몸을 돌려 광장을 빠져나가려던 그때. “앗! 내 돈!” 인파 속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동시에, 누군가 천무진의 옆구리를 거칠게 치고 지나갔다. “...어?” 천무진은 반사적으로 주머니를 확인했다. ‘...없다.’ 스승이 남긴 엽전이... 사라졌다. “저 놈 잡아라! 소매치기다!” 방금 그를 치고 지나간, 쥐새끼처럼 생긴 사내가 저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이런 젠장할!” 천무진의 얼굴이 구겨졌다. 돈. 돈이 없으면 밥을 못 먹는다. 밥을 못 먹으면 굶어 죽는다. 굶어 죽는 것은 평화로운 게 아니었다. “거기 서, 이 쥐새끼야!” 천무진은 본능적으로 땅을 박찼다. 그의 평화주의 신조와는 별개로, 스승에게 배운 경공(輕功)은 천하일절이었다. 그의 몸이 바람처럼 인파를 뚫고 나갔다. “비켜! 비켜요! 평화! 평화!” “어딜!” 소매치기는 하필이면 인파가 가장 많은 광장 중앙, 청성파의 시연이 한창인 연무대 쪽으로 내달렸다. “이런 멍청한 놈이!” 천무진도 그 뒤를 쫓아 연무대 근처로 뛰어들었다. 청성파 제자들이 검무를 추다가, 갑자기 난입한 두 사내에 놀라 멈칫했다. “웬 놈들이냐!” “감히 시연을 방해해!” 소매치기는 당황한 제자들 사이를 뱀처럼 빠져나갔다. 천무진도 그를 따라잡기 위해 속도를 높였다. 바로 그때였다. “...!” 천무진이 연무대에 막 발을 디디려는 순간, 대기하고 있던 소선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천무진을 소매치기의 공범으로 오해하고, 정의감에 불타는 얼굴로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어딜! 꼼짝 마라!” “아, 비켜요! 평화!” 천무진은 급정거를 할 수 없었다. 그는 소선의 몸을 피하려 했지만, 그녀 역시 천무진을 막기 위해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의 동선이 완벽하게 꼬였다. 쿠당탕-! “...!” “꺄악!” 두 사람이 정면으로 부딪혔다. 천무진은 넘어지지 않으려 허리를 꺾었고, 소선은 중심을 잃고 그의 품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어?’ 천무진의 손이, 무언가를 움켜쥐었다. 부드럽고, 탄력 있으며, 믿을 수 없을 만큼... 따뜻한 것이었다. 그의 손은 정확히, 소선의 오른쪽 가슴을 완벽하게 움켜쥐고 있었다. 정적. 광장의 모든 소리가 멈췄다. 마을 사람들도, 청성파 제자들도, 심지어 저 멀리 달아나던 소매치기마저 걸음을 멈추고 이쪽을 쳐다봤다. ‘...망했다.’ 천무진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건 계곡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땐 목격자가 처녀 하나였지만, 지금은 목격자가 수백 명이었다. 소선의 얼굴이 천천히 붉어졌다. 수치심에서 분노로 바뀌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 이... 변태 새끼가아아아아!” 짜아아악-!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소선의 손바닥이 천무진의 뺨을 후려쳤다. 고개가 돌아갈 정도의 강력한 일격이었다. “...아니, 이건 오해... 평...” 천무진이 변명을 하려던 순간. 그의 평화주의 신념을 완벽하게 박살 내는, 최악의 사태가 터졌다. 화르르르르르르륵-! 계곡과도, 객잔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야말로 활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양기 폭주가 시작되었다. ‘...아.’ 이유는 간단했다. 쳐다만 봐도 폭주하던 몸이다. 그런데 지금, 정파의, 미녀의, 가슴을, 맨손으로 움켜쥐었다. 그것도 아주 꽉. 쿠콰콰콰콰콰-! 아랫배의 불덩이가 뇌까지 치고 올라왔다. 천무진의 눈이 계곡에서처럼 새빨갛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더... 덥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소선을 움켜쥔 손에 힘을 더 주었다. 그녀의 음기가 손바닥을 통해 조금이라도 전해져 오길 바라는 본능적인 발악이었다. “꺄아아악! 이, 이놈이...! 안 놔?!” 소선은 기겁하며 그를 밀쳤다. 하지만 천무진은 이미 반쯤 이성이 날아간 상태였다. 청성파의 다른 제자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칼을 뽑아 들었다. “사매(師妹)에게서 떨어져라, 이 변태 놈!” “감히 청성파의 시연장에서...!” 그들의 눈에 비친 천무진은 완벽한 색마(色魔)였다. 수백 명이 보는 앞에서 정파 여제자의 가슴을 움켜쥐고, 심지어 눈이 뒤집혀서 열기를 뿜어내는 변태. “저, 저놈...! 눈이...!” “몸에서 김이 나는 것 같지 않나?” “세상에... 대낮부터 발정이라니!” 최악이었다. 이건 오해로 풀릴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 봐도 현행범이었다. “아니... 아니라고... 젠장! 평화! 평화가 필요해!” 천무진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는 소선을 놔주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저 파렴치한 놈을 잡아라!” “정파의 이름으로 저 색마를 처단한다!” 청성파 제자들의 검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피곤한 상황이, 그것도 최악의 형태로 그를 덮쳤다. “젠장! 망할 놈의 정파!” 천무진은 계곡에서와 똑같은 욕을 내뱉었다. 이번에는 수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 이건 정파 탓이야! 너희가 여기서 시끄럽게 시연하지만 않았어도! 저 여자가 내 앞을 막지만 않았어도!’ 그는 완벽하게 남 탓을 시전하며, 다시 한번 경공을 끌어올렸다. 그의 유일한 목표는, 저 복잡하고 피곤한 정파 놈들에게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거기 서라, 변태야!” “사부님! 이게 다 사부님 탓입니다! 정파 놈들은 피곤하다고만 했지, 이렇게 가슴부터 들이밀 줄은 몰랐잖아요!” 그의 억울한 외침과 함께, 천양신체의 폭주하는 열기가 광장을 휩쓸었다. 그의 평화로운 만두 계획은, 그렇게 또다시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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