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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화 백작가에는 괴물이 산다.


크로커 백작가의 저택은 언제나 침묵에 잠겨 있었다. 높이 솟은 첨탑과 무너질 기미조차 없는 성벽은 외부 세계를 차단하듯 굳게 서 있었다. 저택의 긴 복도를 따라 고풍스러운 샹들리에가 낮게 빛나고, 벽난로는 오직 장식품처럼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정적을 깨는 건 오직 창가에 서 있는 남자의 한숨뿐. 로웬 크로커. 이 저택의 주인이자, 크로커 백작가를 대대로 이어온 남자. 그는 천천히 잔을 기울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정원, 잘 다듬어진 나무들, 그리고 그 사이를 뛰노는 한 소녀. 순백의 드레스 자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햇살이 닿을 때마다 그녀의 금발은 가늘고 부드러운 빛을 흩뿌렸다. 로웬의 시선이 그곳에 고정된다. "애프리..." 숨결처럼 작은 목소리가 흩어진다. 하늘을 나는 나비를 쫓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동화 속 요정 같았다. 푸른 바다를 닮은 눈동자가 맑게 빛났고, 입가에는 늘 환한 미소가 걸려 있다. 천진난만하고, 순수하며, 세상의 때에 물들지 않은 소녀.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녀를 다르게 불렀다. 백치. 크로커 백작의 딸. 하지만 누구도 그녀를 백작가의 후계자로 여기지 않았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언제나 똑같았다. '저 아이는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하다.' '귀족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아이.'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어디론가 보내졌을 텐데.' 하지만 로웬의 눈에는 달랐다. 그녀는 너무나도 완벽했다. 그의 심장이 조여왔다. 애프리의 웃음소리는 마치 성벽 안에 갇힌 그의 내면을 건드리는 듯했다. 금기된 사랑. 그는 백작이었다. 저택의 주인이었으며, 애프리의 아버지였다. 이 감정이 틀렸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녀를 품지 않았다. 대신—— 그는 하녀들을 불렀다. 특히 금발의, 애프리와 비슷한 나이대의 젊은 하녀들을. 저택의 밤은 길었다. 크로커 백작이 부르면 누구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들은 조용히 그의 침실로 향했고, 아침이면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사라졌다. 저택의 벽은 두꺼웠고, 하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로웬은 알고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에 깃든 공포를. 그들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면서도 외면했다. 창가에서 한 걸음 물러나며, 로웬은 손에 쥔 와인 잔을 가볍게 흔들었다. 붉은 액체가 잔을 따라 흘러내리며, 달빛을 받아 짙게 빛났다. 마치 피처럼. 그때, 복도 끝에서 부드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로웬이 시선을 돌렸다. 한 명의 하녀가 지나가고 있었다. 금발. 애프리와 비슷한 나이대. 로웬의 시선이 그녀를 따라갔다. 눈빛이 변했다. 야수가 먹잇감을 노릴 때처럼. "나의 애프리..." 그가 중얼거렸다. 손에 들린 와인 잔이 바닥을 스치며, 투명한 파편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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