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33.엉덩이 체벌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온몸으로 버티려고 했지만 그의 힘이 훨씬 강했다. 결국 몸이 바닥에 질질 끌리며 그에게 끌려나갔다. 결국 현관의 신발들을 몸으로 밀면서 아파트 밖 복도에 알몸으로 내던져 졌다.
“반성하면 그때 들어와.”
어린 애를 다루는 듯한 그의 말. 어릴 적에 말로만 들었지 이렇게 진짜 밖에 알몸으로 내쫓긴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문을 닫으려는 진서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이미 정신을 차려보니 문이 닫혔다. 나는 황급히 문손잡이를 잡고 열어보려고 했으나 진서는 이미 도어락뿐만 아니라 자물쇠를 걸어버렸다.
[철컹,철컹,철컹]
안 열릴 줄 알면서도 손잡이를 잡고 몇 번이나 흔들었다.
“진서야, 진서야. 이건 아니잖아. 진서야!.”
다급한 목소리가 내 입에서 나왔다. 아까까지 독기 서린 목소리와는 쭈굴해진 목소리, 계속 문 틈새에 대고 진서를 부르기도하고, 벨도 몇 번이나 눌러봤지만, 진서는 반응이 없었다. 누가 내 모습을 볼까 싶어 팔로 몸을 가리고 재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까지 복도는 조용했지만 언제 사람이 나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어떻게든 중요부위를 가려보았다. 당장 날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복도에 있는 문들이 열린다면 그대로 내 알몸을 보인다는 생각에 척추를 관통하는 듯한 서늘한 긴장감이 몸을 타고 흘렀다..
문이 안 열려도 혹여라도 아까의 소동을 들은 맞은 편 집에서 인터폰으로 문 앞을 확인한다면 내가 알몸으로 있는 모습이 훤히 보일 것이었다. 그래서 큰 소리를 낼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복도 바깥으로 나온다면 어떻게 되지? 그렇게 된다면…..
나는 벨을 누르는 것도 그만두었다. 벨은 충분히 옆집에도 들릴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다. 계속 반복해 누른다면 확인차 나올 수도 있었다. 내 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문틈에 입을 가져다 대고 제발 진서가 앞에서 있기를 바라면서 그에게 자비를 구하는 게 전부였다.
“진서야, 내가 잘못했어. 진서야. 진서야, 김진서! 거기 있지? 제발, 김진서 이 씨발놈아! 빨리 열라고! 진짜 나 죽어버린다. 나 진짜 따른 사람한테 이 꼴 보이면 죽어. 제발”
몇번이고 틈에대고 말을 걸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결국, 내 애원은 점점 거칠어 져 욕까지 섞였다가 다시 그의 자비를 구하기를 반복했다. 강아지 마냥 문을 박박 긁으며 한참을 목이 아플 때까지 그 짓을 반복했지만, 진서는 아무 대꾸가 없었다.
정말 이 꼴로 나를 내쫓을 생각인 건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어디서 옷을 구할까? 밖의 박스라도 몸에 걸쳐야 하나? 아니 그 전에 아무한테도 보이지 않고 밖에 나갈 수나 있을까? 전화기도, 지갑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등의 별 이상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키스방에서 일할 때 그곳에서 몸을 타인에게 보인 적은 있었지만 그건 나에게서 일이란 개념이었고, 일상과 구분된 공간이었다. 일을 그만두면 다신 안 볼 사람들이란 생각에 현실에서의 나와는 격벽이 쳐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 마주쳤던 사람들이 내 몸을 본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며, 내 존재가 유린당하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문틈으로 말을 걸어도 답이 없자 어쩔 수 없이 벨에 손이 갔다. 이웃에서 자꾸 벨이 눌리는 것을 이상해할까 봐 겁이 났지만, 뭐라도 해야 했다. 벨을 누른지는 꽤 됐을 것이라 자위를 하고는 눈을 찔끔 감고 벨을 눌렀다.
“왜?”
이번에는 의외로 진서가 인터폰을 받았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최대한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말을 했다. 그러다 보니 비굴할 정도의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진서야, 제발, 안으로 들여보내 줘. 앞으로 말 잘 들을게. 고집 안 부릴 게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너가 잘못한 거 알긴 알아?”
진서의 매몰차지 않은 반응에 나는 한 가닥 희망을 느꼈다. 대답을 들은 것만으로도 이 상황을 벗어 날 수 있다는 생각에 인터폰을 받아준 그가 고마워 보이기 까지 했다. 나는 그제서야 문 앞에서 발발 떨면서 흘린 눈물과 콧물을 팔로 훑으며 대답했다.
“응, 진짜로 내가 잘못했어. 정말로 진심이야.”
“그럼 들어와서 매 맞을 거지?”
“.....그, 그건.”
[뚝]
인터폰이 끊겼다. 다시 다급히 벨을 눌러보았지만 이번에는 받지 않았다. 나는 다시 문 틈에 대고 진서에게 들리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큰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속삭이듯, 안에서 짜내듯, 그러면서도 다급하게 애원했다..
“진서야,진서야….. 나 니말 들을게 진짜 니말 대로 다 할테니까 문 좀 열어줘.”
다시 고요한 복도에서 홀로 독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 번만, 다시한번만 진서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제발…..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얼굴은 눈물과 콧물이 잔뜩 묻어있었다.
"흐윽….. 진서야, 진짜 나 너한테 건방지게 안 할게. 감히 너한테 자존심 세우고 그런 거 잘못했어. 말 잘 들을게 진짜 한 번만….."
그때 문이 살짝 열렸다. 위에 안전고리만을 건채 열린 문틈으로 차갑게 날 쏘아보는 진서의 얼굴이 슬쩍 보였다.
“말 잘 들을 거지?”
완전히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듯한 말이었지만 드디어 가까워진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에 나는 울음을 삼키며 대답했다.
"흐극…. 흐읍….. 응."
"그럼 들어와서 엉덩이 맞는 거다?"
“으…..으,응 맞을게 그니깐 빨리…..”
“그러면은 여기서 말해 ‘나 서연우는 김진서에게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채벌할 권리를 주겠습니다.’ 라고, 할꺼야?”
정말 너무했다. 마지막 자존심까지 짓밟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꼴을 남들에게 보이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서연우는….."
나는 더듬거리면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려다가 얼핏 보인 그의 행동에 하던 것을 멈췄다.
"뭐, 뭐하는거야?”
“증거는 남겨놔야지 나중에 딴소리할지도 모르잖아.”
그는 문 틈새로 폰으로 날 찍고 있었다. 카메라의 렌즈는 날 관통하는 듯 섬뜩하게 날 노려보는 듯했다. 나는 몸을 문 뒤로 빼서 가슴과 가랑이를 가렸다. 욕을 하고 카메라를 뺏고 싶었지만 차마, 그가 다시 매몰차게 문을 닫을까 봐 그럴 수는 없었다.
'할 수밖에 없어, 할 수밖에 없는데…..'
"흐긋…… 흐윽, 흑…..흐윽…..안 찍으면 안 돼? 몇번이고….. 흐극, 흐극…. 며,몇번이고 말 할 게 그니깐 찍지 말아 줘."
도저히 입이 안 떨어졌다. 저 렌즈에는 눈물, 콧물 다 흘린 체 질질 짜고 있는 내 모습이 담기고 있을 것이었다. 저 렌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문을 닫으면 됐지만 지금 문이 닫히면 다시는 저 문이 안 열릴 것 같았다.
진서는 내 애원에도 폰을 내리지 않았다. 내 말이 아예 들리지 않는 듯 구는 그의 태도에 내 선택지는 하나 밖에 없었다. 나는 두 손을 모아 꽉 쥐고는 시선은 발끝을 향한 채로 진서가 시킨 대로 말을 하려고 했다.
“나…. 나….흐윽…. 나 서연우…. 흑, 흐윽..”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말을 하려고 하면 울음이 먼저 터져나왔다. 한참을 앞부분에서만 옹알이하듯 반복을 하자 진서는 실망스러운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문을 닫으려고 했다. 나는 다급히 문 사이로 내 손을 집어넣었다. 가슴을 감쌌던 팔이 때지며 틈새로 몸을 들이미는 꼴이었기에 카메라에는 고스란히 내 젖꼭지가 담겼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지금 이 문이 닫히는 거에 비하면 사소한 일이었다.
“뭐해 빨리 손 빼.”
“흐읍…. 아,안에…..안에 들어가서 말 할게. 나도 말하려고…. 흐흡….. 하는데….. 정말 하려고 하는데, 도저히 입이…… 입이 안 떨어져서 그래."
나는 입가까지 흘러내린 콧물을 팔로 훑고는 울음을 참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흐느끼며 대답했다.
“다른 말은 잘하네. 그냥 말하기 싫은 거 아니야?”
그때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 아마도 이층에 도착하려는 것 같았다.
“아니야, 진짜 말 할 게 진짜 할 테니깐,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와. 진짜로, 너도 들리잖아. 제발 진서야, 일단 들여보내 줘. 제발.”
“그 말할 때 나 같으면 빨리 말하고 들어오겠다.”
진서는 다급한 나와는 다르게 누가 오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태도였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로 여기 층이었다. 옆 집인가? 옆집이라면 그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한번 꺾어서 조금만 걸으면 내가 알몸으로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었다. 심장이 터질 듯 옥죄어졌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이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았고 눈앞이 햐얘지며 입에서는 단내가 나는 듯했다.
오래된 친구에게 알몸으로 혼나는 상황, 그것도 동영상이 찍히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흥분상태의 뇌는 주변의 인지를 옅게 만들었다. 극도의 긴장이 주는 도파민과 아드레날린, 그것은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하지 못할 행동을 가능하게 했다.
“나…. 서…..연우는 김진서가 앞으로 나를 어떠한 상황에도 체,체,체벌….. 하,하도록 권리를 주겠습니다.”
더듬거리면서도 빠른 목소리로 기억나는 대로 진서가 말한 문장을 읊었다. 카메라 밖에 드러난 젖가슴을 가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최대한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기에. 내가 문장을 읊자마자 문이 쾅 닫히더니 안전고리를 풀고는 문이 열렸다. 나는 황급히 문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문 앞에 서 있던 진서를 밀치며 품 안에 안기는 꼴이 되었다.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혹시나 내 모습을 본 사람이 없을까 하는 걱정만이 내 머릿속에 가득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복도에서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마자 뛰어나온 옆집에 사는 5살도 안 되는 꼬마가 서 있었다.
“엄마, 엉덩이.”
그 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친 뒤따라오는 부모에게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잠시 뒤에 저 복도에서 부모가 걸어 나올 게 뻔했다. 다행히 문이 닫히는 속도는 아이의 부모가 복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속도보다 빨랐다.
“으허어엉.….흐긋, 흐긋, 나쁜새끼야아아!”
나는 현관에 쪼그려 앉아 진서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는 한참을 울었다. 진서의 티는 내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되었고 몇 번이나 주먹으로 진서의 가슴팍을 때렸다. 여전히 심장은 미칠 듯이 뛰었고 내 몸을 가릴 수 있는 문과 벽이 주는 안도감은 전율로 바뀌어 몸에 퍼지는 듯했다.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긴장했던 몸은 긴장이 풀리자 진이 빠지는 듯했고 몸에는 힘이 안 들어갔다. 마치 마라톤이라도 한 듯 다리가 후들거려 도저히 설 수가 없었다.
진서가 미웠다. 그렇게 날 알몸으로 쫒아낸 진서가 정말 증오할 만큼 싫었다. 그러면서도 그에게 더 못된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가 혹시나 다시 쫓아낼까 싶어 두려웠고, 그래서 그의 가슴팍에 안겨있는 것은 오히려 안전하다는 생각을 들게했다. 그래서 그가 우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는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한 뒤 보듬어 안겨진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그에게 안겨 한참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