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065. 알리아나(4)
밀림 사이로 몸을 드러내는 수십 마리의 마수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바로 이거였다.
'…이거 좆된 거 같은데?'
한 마리만 해도 싸울 엄두가 안났는데, 그 숫자가 수십이라니.
심지어 녀석들의 속도는 내가 운전하는 마차보다도 빠르다.
알리아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걸 어찌 해야 하느냐…."
나라고 마땅한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여기서 나까지 겁먹은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우선 아까처럼 정령들로 엄호를 해주시지요. 제가 그동안 녀석들을 최대한 뿌리쳐보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녀석들이 대부분 고양이과 마수들이라는 점.
고양이과는 동물들은 순간 속도는 빨라도 지구력이 안 좋다는 건 상식이지 않던가.
'…그게 마수에게도 통용되는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만히 죽어줄 순 없으니, 최선을 다해 발악해 보기로 한다.
단전에 있는 마나를 아낌없이 마차에 쏟아 붙는다.
"알리아나님!"
"카사! 실프"
그래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닌지, 내 고함 소리에 알리아나는 곧바로 정령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와 동시에 불꽃으로 이루어진 새가 마차 앞쪽으로 튀어나온다.
카사라고 불리던 정령은 본래 참새 만한 크기였다.
허나 옆에 있는 투명한 정령 실프와 합쳐지며 순식간에 덩치를 키운다.
화르르륵-!
마치 불사조가 강림한 것 같은 압도적인 존재감.
그 모습에 마수들조차 주춤주춤 뒷걸음질 친다.
"저 정도면 그냥 정면에서도 이길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나는 살짝 기대심을 담은 채 알리아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허나 돌아오는 대답은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그냥 겉보기만 저럴 뿐이다! 실제 위력이라곤 형편 없으니 얼른 도망쳐야 한다!"
실로 안타까운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당장에 길목을 막고 있던 마수들이 물러났으니까.
마차를 움직여 불사조의 뒤를 바짝 쫓는다.
불사조에 겁먹은 마수들을 사이를 지나친다.
'조금만 더 겁먹고 있어라…!'
아쉽게도 마수들은 금방 정신을 차렸다.
불사조가 멀어진 걸 확인하고 곧바로 마차를 쫓기 시작한다.
허나 그렇다고 불사조를 다시금 뒤쪽으로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앞에서 계속해서 마수들이 나타나는 탓이었다.
"다른 정령은 없습니까?!"
"운디네…!"
알리아나의 고함 소리와 동시에, 마차 뒤쪽 주먹만한 물방울이 생겨난다.
그 물방울은 순식간에 거대한 벽이 되었고,
크아앙-
뒤따라오던 마수들의 추격을 훌륭하게 막아내었다.
순식간에 마수들과 거리가 멀어진다.
"알리아나님, 저건 무슨 능력입니까?"
"…그냥 물일 뿐이다."
"네…? 그런데 저놈들이 어째서?"
알리아나도 이유는 모르겠는 모양이다.
그때, 나는 뒤늦게 또 한가지 상식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고양이과 동물들은 물을 싫어한 댔나.'
얼떨결에 이루어진 상황이었지만, 덕분에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마수는 고양이과 동물만 있는 게 아니었다.
크르르-
밀림의 나무 틈에서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마수의 모습.
그건 악어처럼 보였는데….
'미친, 뭐 저리 커?!'
그 크기가 지구에서 날 쳤던 트럭만한 크기였다.
심지어 앞서 나가는 불사조조차 무섭지 않은지 거대한 주둥이를 쩍- 하고 벌린다.
그리곤,
콰아악-
단숨에 불사조를 물어 뜯는다.
물론 정령이기에 기껏해야 역소환이었지만, 문제는 바로 우리였다.
"저 자식이 내 카사랑 실프를…!"
알리아나가 화가 난 듯 고함을 질렀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불사조의 뒤를 최대한 바짝 따라가고 있던 탓에, 이러다 우리가 죽게 생겼다.
마나를 끌어올려 [운전] 능력과 [탑승물 강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본다.
마차를 이용해 소위 드리프트라고 할 수 있는 급커브를 시도해본다.
내 마나를 듬뿍 받은 말들은 순간적인 방향 전환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마차와 말 사이에 이어진 줄도 어지간히 튼튼하게 만들었는지, 그 무게를 거뜬히 버텼다.
그런데,
덜커덩-
아래쪽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린다.
그와 동시에, 나는 [운전]이라는 능력으로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젠장, 바퀴가…!'
며칠 전부터 계속 수리하려고 마음 먹었던 바퀴가 헐거워졌다.
바퀴 축이 살짝 틀어진 정도라, 앞으로 반년은 괜찮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마차로 드리프트는 역시 무리였나…!'
허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지 않았으면 저 거대한 악어의 목구멍으로 골인할 뻔했으니.
다만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나는 헐거워진 바퀴를 어떻게든 마나로 붙잡아보았다.
하지만 나쁜 일은 언제나 몰아서 닥치는 법이었다.
카아아악-
갑자기 옆쪽에서 튀어나온 또 다른 마수.
아나콘다의 몇 배 크기나 되는 뱀이 마차에 부딪힌다.
'크윽…!'
그 충격에 마나가 숭덩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동시에 붙잡고 있던 바퀴 쪽에서 콰직-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쿠당탕탕-
예고도 없이 바퀴가 튀어나간다.
덕분에 마차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진다.
이때 만큼은 내 [운전] 능력도 소용없었다.
균형을 잃은 마차는 비틀거렸고, 바로 앞에 보이는 거대한 바위를 피할 수가 없었다.
끼이이익- 쿵!
그 충격에, 운전석에 앉아었던 나의 몸은 앞으로 튕겨 나갔다.
관성에 의해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을 날게 된다.
세상이 느려지는 듯한 느낌.
언젠가 트럭에 치였을 때 느껴본 적 있는 기분이었다.
'죽는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온몸을 비틀어본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히이이잉-!
내 몸이 마차를 끌던 말 한 마리의 위에 안착했다.
그것도 승마하는 듯한 자세로.
-탈것에 탑승하셨습니다.
-직업 [기사]의 능력이 발휘됩니다.
대체 어떻게 했는지 스스로도 모를 지경.
죽을 위기에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다고 하더니 딱 그런 느낌이었다.
심지어 부딪힌 충격으로 굴레와 고삐도 모두 끊어진 건지, 마차와의 거리도 족히 20여 미터는 되어 보였다.
허나 신기해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상황은 여전히 긴박했고, 마수들은 여전히 우릴 노리고 있었다.
이대로 말을 타고 달린다면 살 확률이 높아지겠지만….
'젠장, 알리아나는?!'
나는 마차로 다시금 돌아가야만 했다.
무려 엘프 왕국의 공주님을 버리고 갈 순 없지 않겠는가.
'살아는 있으려나…?'
거대한 바위에 부딪혔던 마차는 박살이 나 있었다.
나는 운 좋게 바위 위쪽으로 날아서 살았다지만, 마차 내부에 있던 알리아나는 생명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콰앙-
마차 천장 쪽이 부숴지며 거대한 늑대가 뛰쳐나온다.
그 투명한 늑대 위에는 알리아나가 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보면 모릅니까?! 교통사고 난 거지!"
나는 대답과 동시에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한시라도 빨리 도망가기 위함이었다.
'알리아나는 알아서 따라오겠지.'
저 실피드라는 정령은 무려 상급정령이었다.
내가 탄 말보다 빠르면 빨랐지, 느릴 일은 없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알리아나는 순식간에 내 뒤를 쫓았다.
"혼자 어디 가는 거야!"
"어디 가긴요. 이곳에서 벗어나려 열심히 노력 중이죠!"
내 노력이 빛을 바랬는지 점차 마수들이 안보이기 시작한다.
설령 보이더라도, 내 마나를 직접 받는 말과 상급정령 실피드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 하고 금방 포기해버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찍 마차를 버릴 걸 그랬네.'
마차를 탈 때보다 족히 두 배는 빠르다.
짐을 잃게된 건 아쉬웠지만, 목적지까지 어차피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
는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알리아나님…?"
"왜!"
그녀는 내가 먼저 등을 돌린 게 불만이었는지, 심술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허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희 어디로 가야 합니까?"
"…뭐?!"
순간 경악하는 알리아나.
이윽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본다.
"너가 길을 알고 있던 게 아니었어?"
"알고야 있었죠! 마수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정확히 말하자면 한 마리한테 쫓길 때만 해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허나 수십 마리가 동시에 나타난 이후로는, 나도 살기 위해 그저 불사조 뒤만 졸졸 쫓았을 뿐이었다.
"으으…."
알리아나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녀도 길을 모르는 모양이다.
이거 아무래도 큰일난 거 같은데….
'지도도 없는데….'
루도제국 지도라면 항상 품 안에 들고 다니지만, 이곳 엘프 왕국의 지도는 마차 안에 따로 있었다.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식량이나 다른 짐들도 전부 마차에 있고.'
지금 내가 지닌 거라곤 작은 지도와 검 한 자루.
타고 있는 말이 전부였다.
지금와서 다시 마차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곳은 나무가 빼곡한 밀림이라는 거였다.
메르헬에게 배운 것들이 있으니, 어떻게든 배는 채울 수 있을 터였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이 말도 있고.'
여태 고생한 말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였지만, 어쨌든 동물보단 사람이 먼저이지 않겠는가.
말고기라도 먹으면 족히 일주일은 버틸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내가 고려하지 못한 게 있었으니,
히이이잉-!
내가 타고 있는 말은, 내 생각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자기를 잡아먹으려 한다는 걸 깨달은 녀석은 갑자기 미친 듯이 발악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낙마라는 걸 해버렸다.
쿠당탕-
다행히 크게 다치친 않았지만, 심적 충격이 컸다.
허나, 녀석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듯 푸릉푸릉-하면서 날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몸을 휙 돌려 나와 반대 방향으로 달려간다.
"무슨 일이야?"
그걸 옆에서 전부 지켜본 알리아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어찌 설명하겠는가.
"…그 정령 혹시 2인승 가능 합니까?"
염치 없지만, 당분간 신세 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