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034. 요리(4)
최유나와 오붓한 시간을 보낸 탓에, 저녁 시간이 약간 늦어버렸다.
황급히, 미리 해둔 음식을 한번 데워서 카트에 옮겨 담는다.
그리고 카트를 끌고 식당으로 나가니, 이미 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왜케 늦었어. 나 배고파~."
"미안, 예지야. 하다 보니 좀 늦었네."
무얼 했는지는 비밀이다.
대충 요리하다 늦었겠구나 하겠지.
그때 박채린이 내게 물었다,
"너 혼자야? 유나 언니는?"
나름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인사도 하기 전에 최유나만 찾다니.
매정하긴….
"금방 나올 거야. 카트 하나로 부족해서 따로 나왔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쪽에서 최유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채린아, 나 찾았어?"
박채린에게 인사하는 최유나의 얼굴이 살짝 불그스름했다.
방금 전 열기가 아직 덜 식었나 보다.
'하긴. 지금 팬티 안쪽에는 내 정액이 남아있을 텐데.'
시간이 부족했던 탓에, 어떻게든 끝까지 하긴 했지만 뒷정리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런 최유나를 보고 박채린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언니? 얼굴이 빨간데, 열나는 거 아니야?"
열이 그 열은 아니지만, 상당히 정확했다.
"으, 응? 아, 늦어서 빠르게 움직이다 보니 좀 더워서 그래. 안쪽도 불이 있어서 좀 덥고."
최유나는 살짝 당황한 듯 보였다.
사정을 다 아는 나로선 꽤 재밌는 광경이었지만, 그래도 이대로 구경만 할 순 없었다.
나는 둘의 사이로 카트를 끌고 들어가, 박채린의 시선을 빼앗았다.
"박채린, 옆으로 좀 비켜봐."
"아, 미안."
커다란 식탁 위로 음식을 하나씩 하나씩 올려놓는다.
내가 음식을 세팅하고 있자, 최유나가 다가와 도와줬다.
지금 먼저 올리는 음식은, 여기 요리사들이 만든 양식 요리였다.
한식으로만 가득 채우기에는 가짓수도 부족했고, 양식을 더 좋아한다는 이예지를 위한 것도 있었다.
한창 음식을 차리는 와중, 불편한 게 보인다.
"어… 유나씨? 그거 거기 두면 안 되는데…."
"네?"
고개를 갸웃거리는 최유나.
그러나 저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아, 예절 교육 때문에….'
이세계에는 음식 놓는 방식이 따로 있다.
그러나 그것도 이세계인끼리나 적용되는 거지, 다른 파티원들은 어차피 다 한국인이다.
막말로 어떻게 두면 어떤가.
잘 먹기만 하면 됐지.
그런데….
'뭔가, 뭔가 불편해!'
사실상 별거 아닌 거 아는데도 그렇다.
매일 같이 시녀장에게 교육받았던 탓일까, 무척이나 눈에 거슬린다.
결국, 나는 혼자 하기로 마음먹었다.
"유나씨, 방금까지 고생하셨는데, 앉아서 쉬세요. 제가 세팅할게요."
고생이라는 게 요리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요리야 두 시간 전에 이미 끝났었으니.
"아…!"
최유나는 찰떡같이 알아듣곤, 얼굴을 붉혔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음식만 쳐다보고 있었다.
"앉아 계세요. 힘드신 거 같은데."
재차 권유하자, 최유나가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힘들긴 했는지, 그녀는 결국 의자에 앉았다.
그 틈을 타, 최유나가 올려둔 음식의 배치를 슬쩍 바꾼다.
다른 이들이 의아한 눈빛을 보냈지만, 뻔뻔하게 음식을 계속 세팅한다.
양식이 다 올라가고, 다음으로 최유나와 같이 만든 한식을 올리자 박채린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뭐야, 둘이서 이걸 다 한 거야?"
"그렇지?"
대답하면서도 살짝 찔린다.
사실 막상 내가 만든 건 얼마 없고, 거의 다 최유나가 했다.
마지막 공기 밥을 모두 앞에 놓아준 뒤, 나도 의자를 꺼내 앉았다.
내 자리는 최유나와 이예지의 사이였다.
'유나씨가 날 신경 써 준 건가?'
그녀가 당연히 이예지의 옆자리에 앉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박채린의 옆에 자리 잡았다.
덕분에 내 맡은 편에는 박채린과 하은이 보였다.
본격적인 식사시간.
박채린의 입맛은 은근 까다로웠다.
"나물 맛있네. 누가 한 거야?"
"맛 괜찮아?"
웃으며 대답하는 최유나.
그녀가 참 착한 게, 자기가 다 했다고 말을 안 한다.
나였다면 내가 했다며 우쭐거렸을 텐데.
"응. 맛있네. 반면에… 제육은 좀 싱거운데?"
이 많은 것 중, 내가 한 음식을 콕 찍는 박채린.
자존심에 살짝 스크래치가 갔다.
"여기에 간장이랑 고추장이 없어서 그래."
내 투덜거림에 박채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간장은 그렇다 치고, 제육 볶음에 고추장이 들어가?"
"내가 만드는 거엔 들어가."
얻어먹는 주제 맛 평가는.
쟤는 얼굴이 조금만 덜 이뻤어도, 밉상으로 등극할 뻔했다.
'…뭐, 예쁘니까 봐준다.'
다른 셋도 무척 예쁘지만, 쟨 진짜 다른 세상 사람 같다.
지금도 그냥 식사를 하고 있을 뿐인데, 무슨 연예인이 광고 찍는 것처럼 보인다.
나도 모르게 멍하니 쳐다보다가, 박채린과 눈이 마주쳤다.
"왜?"
"아니, 그냥 다른 건 맛이 어떤가 해서."
내 핑계가 괜찮았는지, 박채린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나머진 다 맛있는데? 아, 밥이 좀 질은 것 같아서 아쉽네."
또 내가 한 것만 콕 찍어 말한다.
이쯤 되면 알고 하는 말이 아닌가 합리적 의심이 든다.
'입맛만 까다로워서….'
옆에 묵묵히 음식을 먹는 하은과 비교된다.
그건 그렇고 하은, 쟨 진짜 잘 먹는다.
우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먹기만 하는데, 벌써 밥 한 공기를 비웠다.
'난 아직 맛도 못 봤는데….'
박채린이 먹는 모습을 구경하다 보니, 아직 수저도 못 들었다.
안 되겠다.
이러다 진짜 몇 가지 음식은 맛도 못 보게 생겼다.
막상 본격적으로 식사를 하려니, 젓가락이 없는 게 아쉽다.
포크로 겉절이를 먹으려니까 기분이 안 산다.
'나중에 만들어야겠다.'
대충 나무 두 개 길이 맞춰서 자르면 될 터였다.
어떻게든 보쌈과 겉절이를 한 포크에 담아 입안에 넣고 있는데, 옆에서 이예지가 날 두드렸다.
"오빠, 오빠. 난 이거 맛있어."
그녀가 가리킨 음식은 내가 만든 제육 볶음이었다.
'뭐지? 날 신경 써주는 건가?'
그럴 애가 아닌데?
그렇다고 저 맛있다는 말을 솔직하게 믿기는 힘들었다.
내가 먹어봐도 싱거웠거든.
"…그래?"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하자, 이예지가 웃으며 말했다.
"응! 병원에서 먹던 음식 같아!"
'아, 병원 밥…?'
그래.
거기 음식이 싱겁긴 하지.
그냥 이예지에게 익숙한 맛이라 좋았나 보다.
우리의 대화를 듣던 박채린이 끼어들었다.
"병원? 웬 병원?"
"응? 아, 채린 언니는 모르는구나? 내가 어릴 때부터 병원에 입원했거든."
그렇게 시작된 이예지의 과거 이야기.
살짝 침울할 수 있는 주제였지만, 이예지가 워낙 밝게 이야기 한 탓에 크게 우울한 분위기는 없었다.
나나 최유나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기도 하고.
"… 이렇게 내 이야기는 끝! 다른 사람들도 한 명씩 말해보자!"
그러면서 날 빤히 쳐다보는 이예지.
전에 들었으면서도 이런다.
'나야 뭐 할 말도 별로 없는데.'
어깨를 으쓱하고 내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난 그냥 걸어가다가, 트럭에 치였어. 졸음운전이었는지 음주운전이었는지 몰라도 인도에서 치여서 죽었지?"
배경부터 설명한 이예지와 다르게, 나는 이게 다였다.
이예지 다음으로 옆에 있던 내가 말하니, 자연스럽게 다음 순서는 최유나였다.
"음… 난 어린이집에서 일했는데, 거기서 불이 난 거야. 휴가 하루 전날이었는데 하필…. 어쨌든 난 선생이라서 아이들을 열심히 구하다가 그만…."
그녀 역시 과거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하긴, 여기서 전남친 운운하는 것도 웃기지.'
비슷한 시기의 사건이긴 했지만, 별개의 사건이었다.
나도 한 번에 전부 들었을 때 고개를 갸웃했었지.
다음은 박채린의 차례였다.
그녀는 들고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도 유나 언니랑 비슷하긴 한데… 가족끼리 계곡에 놀러 갔거든. 그런데 계곡물에 한 아이가 빠져있길래 구하러 갔다가…."
"갔다가?"
이예지가 되묻자, 박채린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하필 그때 쥐가 나서…."
어… 정말 멋진 행동이긴 한데, 결과가 참….
그녀도 부끄러운 듯 살짝 딴청을 피운다.
그러나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이예지는 거기서 한 번 더 캐물었다.
"그러면 물에 빠진 아이는? 걘 어떻게 됐어?"
"…물에 빠진 게 아니었더라. 튜브끼고 놀고 있던데…."
점점 작아지는 박채린의 목소리.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푸흡, 푸하하학!"
내가 박장대소를 하자 박채린이 무섭게 째려본다.
하지만 한번 터진 웃음은 계속 새어 나왔다.
박채린과 같이 훈련받으면서 나름 그녀를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 보니 더 웃겼다.
내가 알던 그녀의 모습은 완벽주의였다.
항상 성실하고 열심히 하며, 실수따윈 전혀 없던 게 내 머릿속의 박채린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구하러 들어갔다가, 쥐가 나서 죽었다? 근데 그것조차 혼자 착각하고 들어간 거였다?'
솔직히 웃기지 않은가.
"야, 강정우! 그만 좀 웃어!"
얼굴이 새빨간 홍시처럼 변한 박채린은, 결국 내게 버럭 했다.
"큼큼, 미안."
이러다 맞을라.
싸우면 지니까 이 정도만 하기로 한다.
박채린까지 이야기가 끝나니, 이제 남은 건 하은 뿐이었다.
'근데 쟤가 이야기하려나…?'
모두의 시선이 하은에게 모인다.
그러자 묵묵히 음식을 먹던 그녀는, 의자를 드르륵 끌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어."
그러곤 자리를 떠버리는 하은.
'뭐, 예상은 했지만….'
솔직히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한 게 의외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완 별개로,
'당장 이틀 뒤면 같이 다녀야 하는데 괜찮으려나…?'
살짝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