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033. 요리(3)
마나가 늘어난 것에 관해 재잘거리는 두 여자.
그 대화를 가만 듣다가 끼어들었다.
"…그거 제 능력이에요."
"네?!"
"응?!"
두 사람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긴, 저런 반응을 보일 만도 했다.
나야 성관계만 하면 늘어나서 몰랐는데, 마나라는 게 참 귀한 거더라.
특히, 마나를 올려주는 영약은 최하품이라 해도 평민 가족 몇 년 생활비보다 비싸다고 하니, 내 능력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능력인지 알 수 있었다.
'대현자도 이 능력을 처음 봤을 때, 내가 탄 말에 마나가 남았다고 엄청 놀라 했었지.'
그때 대현자는 내 능력이 말에만 적용되는 줄 알아서, 그냥 작은 헤프닝으로 끝났었다.
게다가 그 당시엔 늘어나는 마나의 양도 쥐꼬리만 했고.
그러나 지금은 능력이 발전했는지 몰라도, 탑승 중에 생성되는 마나의 양이 부쩍 늘었다.
이세계 상식을 알면 알수록, 말이 안 되는 능력.
내 [탑승물 강화] 능력이었다.
처음 이런 사실들을 깨달았을 때, 능력을 숨길까 고민했었다.
혹시 어디 감옥 같은 곳에 끌려가서 마나를 늘려주는 종마 취급을 받게 될까 봐.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차피 이 능력은 내가 조절할 수 있었다.
'상대방에게 마나를 안 넘기면 끝이지.'
능력 발현이 안 된다고 우기면 어쩔 텐가.
확인할 방법도 없을 텐데.
이러한 고민들 끝에 내가 정한 결론은, '성관계 맺은 사람들에게만 알려주자.'였다.
나는 살짝 헛기침을 한 뒤, 목소리를 낮추었다.
"자세히 설명하기는 좀 힘든데…. 저랑 성관계를 맺으면 마나가 늘어나는 게 맞아요. 그렇다고 다른 사람한텐 말하진 말고요."
"진짜요…? 어떻게요?"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 주제가 위험하다는 걸 깨달았는지 작게 속삭이는 최유나.
심지어 이예지조차 숨소리를 죽이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둘에게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자자,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저도 직업 능력이라 자세히는 모르니까 다른 얘기나 하죠."
차마 이 능력이 [탑승물 강화]고, 성관계 때 여자를 탈것 취급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차피 중요한 건 다 말했으니, 다른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러고 보니 유나씨. 제가 한 볶음밥은 어땠어요?"
최유나는 갑작스레 바꾼 주제에도 잘 호응해주었다.
"엄청 맛있게 먹었어요! 고마워요, 정우씨."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네. 너무 맛있어서, 저희끼리만 먹기 미안할 정도네요. 채린이나 하은이도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오랜만에 듣는 이름에 잠깐 멈칫했다.
'맞다. 둘도 있었지.'
뭐, 박채린은 점심을 안 먹으니 어차피 불러도 안 왔을 거고, 하은은….
'걔가 있었으면 부족했을 거 같은데?'
양을 꽤 많이 했는데도 벌써 싹 비워진 그릇이 보인다.
이예지는 맛만 보고, 나와 최유나 둘이서만 먹었는데도 저렇다.
하은의 먹성을 떠올리면, 우린 맛도 얼마 못 보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떠오른 걸 솔직하게 말하면 뒷담 하는 거 같으니, 그냥 웃으며 빈말을 던졌다.
"뭐, 나중에 다 같이 먹으면 되죠."
그러나 내 빈말을 듣고 좋다는 듯, 손뼉을 치는 최유나.
"아! 그러면 정우씨, 내일이나 해서 다 같이 저녁 먹을래요?"
내일 저녁?
잠깐 날짜를 계산해본다.
오늘이 4주 차 5일째.
그리고 이틀 뒤면 예정됐던 4주의 교육이 전부 끝난다.
교육 끝나는 날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확실히 시간을 낸다면 내일뿐인 거 같다.
'그러고 보니 다 같이 밥 먹은 적이 한 번도 없네.'
앞으로 다 같이 지낼 사이인데, 친목을 다질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은 생각 같았다.
그녀에게 알겠다고 말하려 할 때, 이예지가 끼어들었다.
"와! 내일 저녁에 그럼 다 같이 저녁 먹는 거야?"
흔쾌히 승낙을 하려 했는데, 저런 반응을 보니 괜히 장난기가 올라온다.
"아니. 예지 너만 빼고 먹을 거야."
"왜?!"
"넌 밥 싫다며. 방에서 혼자 빵이나 먹어."
"치사하게…."
이예지의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 모습에 최유나와 나는 웃음을 터트려버렸다.
"장난이야, 장난. 그러면 내일 저녁에 다 같이 먹을까요? 시녀장님한테 부엌 좀 써도 되냐고 물어봐야겠네요."
"응? 정우씨가 직접 하시게요?"
"네. 시간이 될지 잘 모르겠지만…. 음, 이따 성녀님한테 말해서 내일 좀 일찍 끝날 수 있냐고 여쭤봐야겠네요. 아, 시녀장님한테는 지금 물어봐야겠네요. 아직 계시려나?"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최유나가 내게 물었다.
"그러면 제가 채린이랑 하은이한테 물어볼까요?"
"네, 그러면 유나씨가 둘한테 말 좀 해주세요."
우리 대화를 듣던 이예지가 밝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럼 난? 난 뭐할까?"
그런 그녀를 보고 다시금 장난기가 올라온다.
"넌 빼고 우리끼리 먹을 거라니까."
결국, 진짜로 삐진 이예지를 달래주느라, 그날 오후 교육 시간은 좀 늦어버렸다.
***
오후에 성녀에게 물어보니, 그녀는 인자하게 웃으며 허락해줬다.
아니, 허락을 넘어서 한술 더 떠버렸다.
"마침 알려드릴 것도 다 끝났으니, 저희 교육은 오늘까지만 하겠습니다. 내일이랑 모레는 여기 안 오셔도 됩니다."
덕분에 교육이 끝나기 하루 전날.
나는 하루 종일 요리를 하게 되었다.
오전엔 메르헬에게 이세계 재료에 대해 배웠고, 오후에는 나와 같이 비번이 된 최유나가 요리를 도와줬다.
"정우씨, 겉절이 다 됐어요. 이걸로 김치찌개 끓일까요?"
"아… 겉절이로도 할 수 있어요…?"
"네. 조금 아쉽긴 한데, 그래도 먹을 만해요. 한번 볶은 다음 식초 넣어주면…."
아니, 사실 최유나가 대부분하고 있었다.
'뭐야, 요리 잘하잖아?'
내가 요리가 취미라 했지만, 사실 내가 하던 요리는 기성품들을 사용한 방식이었다.
즉 김치가 있으면 김치찌개나 김치찜은 기가 막히게 끓일 자신 있는데, 막상 김장은커녕 겉절이도 할 줄 모른다.
반면에 최유나는 살림을 오래 했는지, 겉절이부터 각종 나물들까지 그럴싸한 한식 반찬을 잔뜩 만들어냈다.
덕분에 어제 내 뒤를 쫓던 메르헬은, 어느샌가 최유나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오, 고추 가루랑 소금으로 이런 맛이…! 살짝 맵긴 하지만 중독성 있는 맛이군요."
최유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눈을 빛내는 메르헬을 보자니 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어제 내가 한 계란 볶음밥은 별로라고 했으면서….'
이러다간 메인 셰프의 자리가 위험했다.
어쩔 수 없이 봉인했던 요리 실력을 풀어내도록 한다.
"그럼 유나씨, 저는 스테이크랑 파스타 할까요."
"네? 스테이크랑 파스타요…?"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최유나.
"그러면 돈까스라도…?"
"돈까스도 저기서 하고 계시는데요?"
사실 알면서도 한 말이었다.
'서럽다….'
솔직히 요리에 취미라는 자취생 남자가 할만한 음식이 뭐가 있겠는가.
스테이크, 파스타, 돈까스.
지구에서라면 친구들을 초대해서 감탄 받을만한 메뉴였다.
하지만 이곳은 이세계.
양식은 이미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 넘쳤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요리 가짓수는 확 줄어버렸다.
"그러면 제육 볶음이라도 할까요…?"
"아, 그러면 그거라도 부탁드릴게요."
그래도 오늘 마늘과 비슷한 맛을 내는 향신료를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간장이 없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덕분에 제육 볶음 비슷한 음식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어느새 최유나는 혼자 김치찌개, 겉절이, 각종 나물들에 더불어 예쁜 계란말이까지 만들었다.
내가 한 거라곤 냄비 밥과 제육 볶음 뿐.
'쳇, 졌다.'
그래도 어느샌가 근사한 한식 상이 완성되어간다.
마지막 화룡정점을 장식해줄 보쌈은 지금 끓이고 있다.
할 일은 전부 다 끝났지만, 최유나가 워낙 능숙하게 요리한 탓에 저녁 시간까지 아직 한참 남았다.
시간이 남은 우리는 한쪽 구석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유나씨. 요리 잘하시네요?"
"저야 뭐,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한때 결혼하면 집밥 차려주겠다고, 요리 연습 많이 했었죠."
결혼?
아, 바람피운 전 남친.
'7년 사귀었다고 했던가?'
진짜 이해가 안 가는 놈이었다.
이런 여자를 두고 바람을 피우다니….
이쪽으로 대화 흐름이 가니, 궁금했던 게 문득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왜 안 오셨어요?"
원래 저녁을 먹고 나면 항상 최유나가 찾아왔다.
그리고 소피아가 밤시중을 들러 오기 전까지 오붓한 시간을 즐겼는데….
'어젠 예지가 와서 얼마나 놀랐는지.'
이틀 전에는 이예지에게 양보했다 쳐도, 어제는 최유나가 올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찾아와서 당황했었다.
물론 그렇다고 뒤로 빼거나 하지 않고, 뜨거운 시간을 가졌지만.
"어제요? 아…!"
내가 뭘 말하는지 뒤늦게 깨달은 듯, 그녀는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더니 한숨을 푹 내쉰다.
"예지가 정우씨랑 또 하고 싶다고 해서…."
"그래서 양보한 거예요?"
"전 정우씨랑 벌써 몇 번 했잖아요. 예지는 이틀 전이 처음이었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쉽다는 표정이 가득이다.
"유나씨, 그러면 오늘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오늘도 예지가…."
자기도 하고 싶은데, 한참 어린 이예지 앞에서 차마 말하진 못했나 보다.
'그러게 왜 나랑 예지를 이어줘서….'
지금쯤 최유나도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힐끔 시계를 쳐다보자, 아직 저녁 시간까지 두 시간 정도 남았다.
'이 정도면… 되겠는데?'
보쌈이야 물 좀 더 넣고 그냥 푹 삶아도 상관없을 거고.
"유나씨."
"네?"
"잠깐 저랑 어디 좀 가요."
나는 어리둥절 해하는 최유나의 손목을 이끌고, 으슥한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