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던전 도시 팔레움
“사악한 마왕은 용사들에게 패배했습니다.”
벌써 천 년 전의 이야기였다. 마왕은 팔레움의 고성 깊은 곳에 봉인되었고, 그 몸뚱이에서 흘러나오는 사악한 마력은 정화되어 던전의 매개체가 되었다.
용사 중 하나였던 한 하이엘프가 세계수의 씨앗을 심어 봉인을 강화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이후 팔레움은 던전 도시로 재건되어 천 년간 유례없는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마왕이 봉인되기 전 남긴 저주는 지금까지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지요.”
마왕은 인간에 대한 증오 하나만으로 자신의 모든 여력을 끌어모아 전 세계에 저주를 하나 퍼트렸다.
‘너희는 이제 너희의 것을 계승할 후계를 가지지 못하리라.’
그 어떤 강대한 문명이라 할지라도, 그 어떤 위대한 지식이라 할지라도, 결국 이어나갈 후계자가 없다면 한때의 영광에 불과한 것. 마지막 순간 마왕은 세상을 멸망으로 이끌 저주를 창안해 버렸다.
여자는 아이를 품을 수 없게 되고 남자는 욕구조차 잊어버리는, 어찌 보면 황당하면서도 치명적인 효과에 세계는 순식간에 위기에 봉착했다.
축제 분위기였던 제국은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 것에 당황해하며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신까지 먹어 치우고 그 신성을 흡수한 마왕의 저주는 다른 신조차도 해주하지 못할 정도로 지독했다.
“그래서 사랑과 다산의 여신 헤루아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헤루아 여신은 기꺼이 세상 사람들의 삼신할매가 되어주었다. 결혼한 새댁이 기도하면 여신은 아이를 점지해주었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훗날 다시 헤루아에게 기도해 아이를 가졌다.
다만 결혼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인지 혼인하지 않은 여성에게는 아이를 점지해주지 않았다.
여신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그렇게 세상은 위기를 타파하고 지금껏 그러했던 것처럼 변함없이 흘러갔다.
단 한 가지를 제외하면 말이다.
진은 해묵은 전설을 써 내려가던 깃펜을 내려놓고 커튼을 젖혀 창밖을 바라보았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도시의 거리를 거니는 수많은 여성들이 보였다.
살색의 향연이었다.
속옷 차림으로 광장의 분수대에서 휴식을 취하는 여인. 엉덩잇살이 드러나는 짧은 치마만 입은 채 풍만한 가슴을 출렁이며 대로를 가로지르는 엘프. 그리고 실오라고 하나 걸치지 않은 새하얀 나신을 드러낸 채 과일 가게 주인과 가격을 흥정하는 고양이 수인까지.
그 누구도 그녀들에게 남사스럽다고 성을 내거나, 옷 좀 입고 다니라고 타이르지 않았다. 심지어는 곁눈질로 힐끔거리지도 않았다.
그저 그것이 익숙하다는 듯 제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성(性)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해지고, 수치심마저 망각해 버렸다. 의복은 필수품에서 그저 몸을 치장하는 장식으로 전락했다.
이젠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모두가 그 사실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것을 이질적으로 느끼는 이는 진 자신뿐이었다.
진은 다시 깃펜을 손에 쥐었다.
“엘븐가든에 틀어박혀 사는 늙지 않는 하이엘프들은 우리들이 천박하다고 말합니다. 학자들은 그것이 그들이 가진 특유의 차별주의적인 시선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그들은 지난 천여 년간 바뀌어버린 속세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요컨대 시간이 흐르면 세상이 변한다는 의미다.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도움이 되었나요?”
진은 깃펜을 잉크통에 꽂아 넣고 화려한 필기체로 빼곡히 들어찬 종이를 건넸다. 가만히 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녹안의 소녀는 반색하며 그 종이를 받아 읽었다. 그리고 감탄했다.
“대단해요! 독특한 관점에서 바라보니 더욱 흥미로워요. 이런 지식을 도대체 어디서 얻으셨나요? 마법사시니까 마탑에서? 마탑에서도 역사를 가르치나요?”
‘컴퓨터 앞에서요. 발랄한 일본어와 함께 [게임 시작]을 누르면, 양산형 RPG처럼 천년이나 지난 역사를 주구장창 설명해주더군요. 게임 진행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면서.’
라고 말해봤자 알아듣지도 못할 것이다. 진은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준비해두었던 거짓말을 꺼냈다.
“고향에서 신학 공부를 하던 사제 친구한테 배웠죠. 마탑으로 가기 전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는데, 지금은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래서 그랬군요!”
“예. 아무래도 이런 옛날이야기는 신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까요. 아마 사원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을 겁니다.”
“알죠. 그래서 찾아가 봤어요. 팔레움에 있는 모든 사원은 있는 대로 방문해봤을걸요? 그런데 일반인에게는 풀 수 없는 정보라면서 거절당했어요. 전부 다요!”
“아마 마왕 때문에 그럴 겁니다. 끝없이 쏟아지는 마왕의 마력이 던전을 이루는 매개체니까요. 세계수 덕에 지금까지 문제없었으니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이를 왜곡해서 해석하려는 사람이 없을까요? 그런 이들이 많아질수록 팔레움은 큰 손해를 입을 겁니다.”
“아!”
미샤는 그제야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걸로 논문을 써도 되려나요……. 잘 모르겠네요.”
“논문이요?”
“네. 이 이야기로 논문을 써서 졸업장을 따려고 했죠. 잘 될지는 모르겠네요.”
왜 이런 옛날이야기를 돈 주고 듣겠다는지 의아해했는데, 이제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진은 이 순진한 학생의 미래를 걱정하며 조언했다.
“추천하기 힘들겠군요. 이 주제로 논문을 쓰면 사원의 성직자들뿐만 아니라 팔레움의 권력자들에게도 눈총을 받을 겁니다. 그냥 개인적인 학문적 성취라 생각하고 묻어두는 게 낫다고 봅니다.”
“그런가요? 그럼 괜히 시간만 쏟은 꼴이네요…….”
미샤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속옷 한 장 걸치지 않은 채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은,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마치 유혹하며 도와달라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얀 둔덕 한가운데에 돋아난 복숭앗빛 과육이 천사와도 같은 순수함으로 악마처럼 자신을 유혹했다. 진은 남근이 딱딱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네? 정말요?”
“던전의 역사가 아니라, 마왕을 봉인했던 용사들의 이야기라면 논문으로 써도 괜찮을 겁니다. 예를 들자면 그들의 후일담 같은 것 말입니다. 워낙 오래된 이야기라 그런 소소한 이야기도 사장되어 버렸거든요.”
“그럼 돈은…….”
학생이라고 하니 그녀에게도 여윳돈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또 돈을 요구할 생각은 없었다.
대신 몸은 요구하겠지만.
“푸짐한 저녁 식사와 편안한 잠자리면 충분할 것 같군요. 어떤가요?”
“그걸로 괜찮으시겠어요?”
“물론이죠.”
진은 자신의 옆으로 의자를 끌고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헤픈 웃음을 지은 미샤는 그의 옆에 앉았다.
“첫 번째 이야기는 누가 좋을까…….”
새 종이를 꺼내 용사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던 진은 슬쩍 손을 내려 미샤의 가슴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한 손에 들어오는 도담한 가슴은 마치 어린아이의 젖살처럼 보드라웠다.
“제 가슴은 왜……?”
“아, 몸매가 좋으셔서 저도 모르게.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실례였을까요?”
“아뇨. 제가 이래도 몸매는 좋다고 자부하거든요!”
칭찬에 우쭐해진 미샤는 몸을 희롱하는 걸 허락했다. 거칠 것이 없어진 진은 미샤의 온몸을 더듬으며 글을 썼다. 한참을 애무하니 미샤가 뺨을 붉히고 옅은 신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뭐, 대충 이야기도 마무리한 것 같고, 슬슬 저녁 시간이네요.”
벌써 노을이 짙은 단풍색 빛무리를 내뿜으며 산 너머로 저물고 있었다. 미샤는 낯뜨거운 열락을 담은 숨을 내뱉다가 진이 놓아주자 그제야 도망치듯 거실로 향했다.
진은 탁자를 정리하고 느긋하게 미샤를 기다렸다. 욕망은 당장이라도 그녀를 덮치라고 부추겼지만, 급할 건 하나도 없었다.
* * *
짹짹짹짹…….
참새 무리가 창밖을 날아다니며 아침이 밝아왔음을 알렸다.
“후우…….”
진은 얼굴에 맺힌 땀을 훔치고 미샤의 품에서 떨어졌다. 그녀의 음부를 틀어막고 있던 어린아이 팔뚝만 한 남근이 뽑혀 나오자 그곳에서 정액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미샤는 머리라도 얻어맞은 것처럼 희미한 의식만 유지한 채 쾌락에 젖어 파르르 떨고 있었다.
저속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은 힘없이 풀려 있었고, 가슴에 난 빨간 이빨 자국은 붉게 도드라졌다. 사타구니에는 백탁액이 난잡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그만해 달라는 애원을 무시하고 계속 겁탈했으니 기절하지 않은 게 놀라운 상태였다. 그러나 진은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 정력 스텟을 너무 과하게 올려놓은 부작용이었다.
더 할까?
진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 욕실로 향했다. 미샤는 한계에 달한 지 오래였고, 벌써 아침이었다. 이제 모험가 길드로 가 모험가로 등록을 하고 던전으로 향할 차례였다.
욕실에서 샤워를 마친 진은 옷을 갖춰 입고 나오며 마법으로 피로를 날려버렸다. 그러고는 뒤늦은 단잠에 빠져있는 미샤의 엉덩이를 매만지고 밖으로 나섰다.
팔레움은 상당히 발전한 도시였다. 거리는 흙바닥이 아닌 석재로 포장된 도로로 되어 있었고, 하프팀버 양식의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중세 도시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모험가 길드는 중앙 광장에 존재한다. 팔레움의 어디에서든 찾아갈 수 있도록 드높게 지어진 그 건물은 중앙 광장의 상징이었다.
그렇기에 팔레움에 처음으로 방문하는 이방인도 쉽게 모험가 길드를 찾아갈 수 있었다.
진은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거리에서 저 멀리 유일하게 지붕 위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모험가 길드를 향해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