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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화 엿같은 세상


생각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온몸에 들러 붙어있는 벌레들이 방해라도 하는 것처럼 격렬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꾸물렁 꾸물렁 마치 살점이 부풀어 오르듯 이리저리 뒤틀리고 부풀어오르는 내 왼팔이 있는 그대로 눈에 들어왔고 심한 정신적 충격에 잠시 팔을 내려다보며 얼어 붙어있던 나는 이윽고 눈을 질끈 감은 채 허벅지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흐읏...” 허리를 타고르는 고통이 극심한 쾌감과 함께 뒤섞이며 수면 아래로 깊숙하게 잠겨가던 정신은 금새 안정감을 되찾았다. 기억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곳에 잡혀 왔는지.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모든 것 들을 떠올려야 한다고 누군가가 계속 속삭이는것 같았다. 다행히도 내 의지에 호응하듯 꿈틀거리던 살점...아니 벌레들은 점차 원래 모습을 되찾아 다시금 평범한 피부처럼 되돌아왔으나,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여성은 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하긴 나 같아도 이딴 엿같은 몸을 직접 본다면 헛구역질을 하는것도 모자라 토를 거하게 쏟아내면서 그자리에서 도망쳤겠지. 여자치고는 꽤 강단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단검을 허벅지에 박아넣은 상태 그대로 벽에 기대어 앉았다. “생각해라...생각” 홀로 중얼거리며 기억을 되돌아봤으나 여전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이 흐릿하다. 어째서 내가 이곳에 왔었는지. 얼핏얼핏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인지. 왜 괴물과 좀비 변종들에게 친근감을 느꼈는지. 내가 어째서 여성의 말을 곧이 곳대로 믿고 따랐는지...왜지 왜? 나는 이딴 쓰레기같은 벙커안에 있었던 거지? “...괜찮은..건가?” 한참을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앉아있자, 여성은 천천히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이여자는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씹어먹은 내가 무섭지도 않은걸까? “잠깐, 잠깐만 다가오지 말아줘. 냄새가...냄새가 너무 심해” 여성이 다가올수록 침이 질질 흘러나오며 기껏 되찾은 이성이 날아가 버릴듯한 식욕과 성욕이 심하게 요동쳤기에 나는 다시금 단검을 뽑아들어 몇 번이고 허벅지에 내려찍어 머리가 빙글빙글 빙글빙글 돌 정도의 강렬한 쾌감을 이용해 여성을 어서 덮치자며 이성을 빼앗아 몸의 주도권을 가져가려던 벌레들을 그대로 밀어내 버렸다. “냄새라고..?” “아... 그래 이거였네. 그 년이 말하던 냄새가 뭔지 이제야 알겠어. 아이러니하네 그냥 약간 맛있는 냄새라고 생각했는데 벌레들이 엄청나게 날뛰다니.” 약하긴 했으나 여성에게서 풍기는 달짝지근한 냄새. 내 이성을 억지로 억눌러 벌레의 통제를 느슨하게 하는 그 냄새가 너무나도 감미로워 또다시 정신을 놓을뻔했다.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겠군. 처음에는 나를 먹고 싶다던가 범하고 싶어서 미치겠다더니 지금은 또 밀어내려 하다니...이중인격이라도 있는건가? 사람과 괴물. 지킬 앤 하이드처럼?” 여성은 내가 아무말도 하지 않고 허벅지를 계속 찌르고 있자 한숨을 내쉬면서 나에게서 멀어졌고 그제야 나 또한 벌레들이 잠잠해지는 것을 느끼며 자해를 멈출 수 있었다. “지금도 충동은 여전하니까 입 다물어.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고 있는 건 사람을 먹고 싶다는 식욕이랑 범하고 싶다는 본능밖에 느껴지지가 않으니까” 먹고싶다는 말을 하자 또다시 느껴지는 강렬한 식욕에 나는 마지막으로 단검을 허벅지에 깊게 박아넣은 뒤 한껏 비틀었다. 뼈까지 파고들어 간 단검의 칼날이 근육이 찢으며 뒤틀었고 살점이 난도질당한 고깃덩어리처럼 너덜너덜해지고 나서야 간신히 이성의 끈을 되찾을 수 있기에 깊게 심호흡을 내쉬었다. “나도 정신없는 건 마찬가지야. 기억에 공백이 너무나도 많아서 미쳐버릴것 같아” “공백이라고?” “그래 공백.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어떤 범죄자 밑에서 생존하고 있었다는 거야.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 녀석이 내 약점을 잡고 있었던 것 같은데....그 약점이 뭐였는지 떠오르지가 않아” “흐음...세뇌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더있나?” 여성의 혼잣말을 무시한채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몸을 일으켰다. 일단 여기서 나가야 한다. 괴물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이성을 잃게 만드는 암컷 냄새를 풀풀 풍기는 여성과 한방에 있는것 이라면 더더욱 빨리 나가야만 했다. “잠깐 기다려 그 문은 단단히 잠겨서 열리지가...” 내가 잠겨있던 문짝을 간단히 뜯어내 옆으로 던져버리자 쾅 하는 소음과 함께 먼지를 흩날리며 나뒹구는 문짝과 나를 번갈아 보던 여성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젓더니 자신의 옷가지를 주워입었다. “온몸이 벌레인데도 힘이 장난이 아니군...” “원래부터 정상은 아니긴 했어. 이렇게 되기 전에도 손에서 칼이 나오거나 총알이 날아와서 머리를 꿰뚫었는데 살아났었거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정말 인간이 맞기는 했던건가?” “아마도?” 여성의 말에 대충 대꾸하며 먼저 나가 밖을 살펴보자 여전히 깜빡거리는 전구가 어두운 복도를 옅게나마 밝혀주고 있었다. “2번째인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이 풍경을 보니 이제서야 뭔가 떠올랐다. 그래 나는 이곳에 갇혀서 열린 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어떻게든 한쪽 팔로 악착같이 사다리를 타고 밖으로.. 한팔로? 내가 한쪽 팔이었던가? 언제부터? 기억이 완전히 얽히고설켜 꼬여버렸다는것을 깨달은 나는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거렸다. “안 나갈 건가?” “...따라 올 생각이야?” “자네였다면 여기에 가만히 갇혀서 잡아먹히길 기다릴것 같은가? 자네가 직접 납치한 사람인데 참으로 매정하군” “...빌어먹을” 나는 복도에 널브러져 있는 내 옷가지들을 입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래 빌어먹게도 내가 여성을 끌고 왔으니 책임을 지는 게 맞겠지.... 그게 맞겠지만 언제 괴물과 그 주인이 돌아올지도 모르는 이 극박한 상황에서 여성까지 들고 가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했다. “다행히 고민정도는 하는군.” “...” “정신까지 완전히 괴물이 아니라는 증거니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만약 머리까지 완전히 벌레였다면 고민조차 하지 않고 버리고 가거나 나를 잡아먹었을태니까. 쯧, 놓고가도 좋으니 단검만은 나에게 돌려주게 나는 혼자서 어떻게든 알아서 빠져 나갈태니” 아무런 원망도 없이 말을 내뱉는 여성의 모습이 어쩐지 무척이나 서글퍼 보였다. 빨리 나가야 한다. 나가야 하지만.... 여성의 잘린 손가락이 눈에 들어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여성 혼자서 과연 여기서 빠져나갈수 있을까? 좀비로 의태한 벌레 무리 2마리를 뚫고, 여성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앞장설 테니까 너무 붙지 만 마 언제 정신이 확 돌아서 잡아먹으려 하거나 범하려고 할지 모르니까.” ...그래 빚진것은 반드시 갚아야만 한다. “허.유념하도록하지” 여성은 자신을 대리고 갈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잠시 눈을 깜빡거리다 빙그레 웃어보였다. 단단하면서도 믿음직스러운 미소. 그 미소가 참으로 아름다워보였다. “적어도 10걸음 뒤에서 따라와 길은 내가 알려줄 테니까 여기서 나가면 바로 해어지는 걸로 하자고 그러니까... 손가락을 하나 먹어치운 것도 그걸로 용서해주라” “내 손가락이 참으로 싸구려 같지만 지금 상황에서 별수 없으니 받아드리지.” 장난스럽게 내말에 대꾸한 여성을뒤로하고 나는 긴장감 때문에 땀으로 범벅이 된 주먹을 쥐고 복도를 나아가기 시작했다. “....” “....” 여성 또한 내 말대로 10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내 뒤를 따랐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어두컴컴한 복도와 그 벽을따라 길게 이어진 핏자국 먹다 남은 고깃덩어리들과 장기의 일부들. 역겹기 그지없는 이런 곳에서 아무런 의심도 없이 몇일을 살았던 자신이 너무나도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아아” “썩을... 아직 남아있는 녀석이 있었나?” 깜빡거리는 전등 너머로 보이는 좀비 한마리. 나는 즉시 달려나가 으르렁거리면서 여성을 향해 달려들려던 녀석의 머리통을 붙잡아 그대로 으깨버렸다. 썩어버린 뇌수가 바닥으로 떨어졌으나, 나는 신경조차 쓰지않고 계속해서 앞을 향해 나아갔다. 아직 건물 안에는 우리를 따라오지 않은 벌레무리가 2마리나 있는데....이녀석들까지 상대하면서 탈출할 수 있을까? 차라리 지금이라도 여성을 버리는게 올바른 선택이 아닐까? “숨쉬기조차 힘들군... 내가 자네의 등에 업힌다면 훨씬 빠르게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이성이 얼마나 버틸 것 같지?” “1초도 못 버티고 바로 이빨을 드이밀껄? 죽기 싫으면 그러지 마” 너무 빨리 뛰었는지 숨을 헐떡거리면서 작게 속삭이는 여성의 말소리에 상념을 털어버렸다. 이 삭막한 장소에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내가 저런 시체와는 다르다는 것을 확실하게 여성이 알려주고 있었다. 내가 손가락을 자르고 자신의 동료들조차 이용해 범하려던 나를, 믿고 따라와주는 여성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 “거의 다 왔으니까 조금만 더 힘내 저기가 식량창고...” 내가 괴물의 주인에게 밥을 먹었던...사냥감이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사냥.. 벌레 괴물과 그 주인. 조금이나마 기억이 돌아오자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나도 여기에 끌려왔었던 건 확실한 것 같네” “뭐라고 했지?” “혼잣말이니까 무시해 억지로 이성을 붙잡으려고 그러는 거니까” 여성은 내 말에 불만스러운 듯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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