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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화 묘판


꼬맹이를 향한 걱정을 뒤로한 채 걸신들리듯 음식을 계속 뱃속으로 밀어 넣자 당연하게도 하나뿐이었던 전투식량은 금세 바닥을 들어내고 말았다. “...뭐야 벌써 다 먹어 버린 거야?” [꼬르륵] 나의 위장은 여전히 자신이 비어있다고 호소하며 우렁찬 뱃고동소리를 냈고 마치 식욕이 무한하게 샘솟는 것처럼 입안에서는 계속해서 침이 고여왔다. 분명 밥을 먹었음에도 며칠은 굶은 사람인 것처럼 참을 수 없는 강렬한 배의 공복감. 한참을 앉아 고민하던 나는 결국 나는 그 미칠듯한 공복감에 못 이겨 자리를 털고 일어서고 말았다. “이봐 음식을 좀 더 가져다줬으면...” [철컥] 나를 잡아먹으려는 괴물들에게 밥을 더 요구해야 한다는 굴욕감과 패배감이 조금 느껴졌으나 공복감이 훨씬더 강하게 감정을 짓눌렀기에 조심스럽게 철문을 두드리자, 여성은 내가 도망치리라 전혀 생각지 못했는지 끼익 하는 작은 소음과 함께 문이 간단히 열려버렸다. 입구를 지키던 괴물 녀석도 여성을 따라 어딘가로 사라진 것인지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는 복도. 나는 다급히 입을 양손으로 막아 나도 모르게 나오려던 환호성을 억제했다. 어디서 소리를 듣고 그 새끼들이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여기서 도망쳐 꼬맹이에게 돌아간 뒤에 게이에게 부탁해 인원을 보충하고 돌아와 그 개년과 괴물의 멱을 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몸 상태도 충분히 좋아진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꼬르르륵] 지금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몸은 어서 먹을 것을 달라며 아우성쳤기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입 바깥으로 흘러나와 질질 흘러내리던 침을 황급히 닦아내며 식욕을 몰아낸 뒤 어두컴컴한 복도를 규칙적으로 깜박거리는 전구를 등불 삼아 조용히 나아갔다. [우엑...정말 역겹기 그지없네] 어제 괴물에게 붙잡혀 이동할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핏자국이나 뼛조각들이 유달리 선명하게 보이는 복도는 마치 그 엿 같은 괴물의 입안을 보는 것 같아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 “그...어어” 쉴틈없이 발을 옮겨 출구를 찾던 도중, 작지만 선명하게 들려오는 좀비의 울음소리에 어제 남성을 포식하던 벌레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춰 새운 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째서 멈춰 선 거야? 에이 설마 아무것도 없이 길게 이어진 복도에서 숨을 곳이라도 찾을 생각이야?] 머릿속에서 또다시 울리는 걸레의 목소리. 떠올리기도 싫은 목소리였으나 지금은 이년의 말이 맞았다. 숨을 곳은커녕 들어갈 장소도없었고 이대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여성과 괴물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이상 시간을 지체한다면 나의 탈출 가능성도 점점 내려갈 뿐 아무런 이득도 없었다. “(...할 수 있다...할 수 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다음 최면을 걸 듯 할 수 있다고 마음속으로 꼬맹이를 생각하면서 멈춰 서있던 발을 움직였다. “키에엑” 아까보다 더욱더 선명하게 들리는 신음과도 같은 울음소리와 함께 깜박거리는 전구 사이로 희미하게 뼈가 울퉁불퉁 꺾여있는 사람의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일단 움직임이 느리고 공격만 하지 않는다면 도망칠 수 있다. 일단 몸을 밀친 다음 녀석이 쓰러진 틈에 이동하면 된다.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다. 조금더 가까이 다가가자 저 녀석도 이쪽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얼굴을 돌렸고 전구의 불빛이 다시 한 번 깜빡거리며 이번에는 얼굴이 보였다.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던 좀비를 모방한 벌레 두마리중 남성형체의 기괴한 얼굴. “그아아...” 사냥감을 발견했다는 듯 왜인지 기쁘게 들리는 울음소리를 내면서 점점 더 빠르게 이쪽으로 걸어오는 그 녀석. 나 또한 조금 속도를 높여 녀석을 향해 나아갔다.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로지 전진만이 살길일뿐. [퍼억!] 녀석과 마주한 나는 코앞까지 들이민 역한 얼굴을 향해 강하게 주먹을 날렸다. 펑! 마치 공기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대포 소리처럼 커다란 굉음과 함께 주먹이 벌레무리의 얼굴에 처박히다 못해 뚫고 지나가 버렸고 뇌 조각인지 아니면 벌레조각인지 모를 보라빛의 질척거리는 액체가 손을 가득 뒤덮었다. “뭐야...이거” 생각지도 못했던 주먹의 위력에 놀라 내가 잠시 멍하니 서 있자, 벌레 무리가 대답이라도 해주려는 것처럼 조각나 사방으로 흩어졌던 파편들이 금세 모여들어 원래 형태로 되돌아가더니 순식간에 내 손을 먹어치울 듯이 감싸 안았다. “그르..륵” 머리통 부분에 손이 들어갔음에도 입을 움직여 좀비를 모방하는 벌레의 울음소리가 끈적하게 귓속을 파고들어 왔다. 뒤이어 느껴지는 몇 달은 실외에 내버려둬 파리가 들끓는 썩은 고기 사이로 손을 집어넣은 것처럼 축축한 감촉 뒤로 수많은 바퀴벌레가 손위를 기어가는 감각. 나는 황급히 벌레 얼굴에 처박힌 손을 끄집어냈으나. 몇 군대 먹혔을 것 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내 손은 멀쩡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단순히 멀쩡한 것을 넘어 분명 괴물에게 먹혀 사라졌던 손가락이 새로 자라나 그 자리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 나는 그 즉시 힘 조절을 해 벌레를 걷어찬 뒤 손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정말 내손가락이라도 되는 것처럼 일체 위화감 없는 모습과 내 신체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손가락들. “그..어어” 쓰러진 좀비로 의태한 벌레무리가 어째선지 나를 비웃는 것처럼 보여 얼굴을 구겼다. “...그래 사람한테 들러붙어 의태까지 한다 이거냐? 재밌네” 나는 주먹을 움켜잡고 벽을 향해 거세게 손을 내려쳐 내 손으로 의태한 벌레를 뜯어내려 했으나 단단한 콘크리트벽에 전력으로 부딪혀 조각조각 부러지는 다른 손가락들과 똑같이 아릿한 통증과 함께 살점과 혈액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벽돌 조각들과 함께 흩어지는 나의 살점들, 어느 게 벌레고 어느 것이 내 살점인지 알 수조차 없는 완벽한 의태.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빌어먹을 새끼들이” 내손가락으로 의태한 벌레를 입안에 죽어도 넣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기에 입안에 그것을 집어넣어 그대로 씹어버렸다. [콰직] 정말 원래부터 내 것이었다는 것처럼 뇌를 울리는 통증이 뼈를 타고 올라왔고 입안에서는 뼈와 살점 그리고 근육의 촉감이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역한 피비린내가 가득 들어차 금방이라도 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퉤” 눈을 질끈 감은 채 손가락 하나를 물어뜯어 뱉어내자, 마침내 본체를 들어내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벌레. 그리고 그에 호응하듯 떨려오는 아직 내 몸에 붙어있는 다른 벌레들. “빌어먹을...역겨워 죽겠군” 방금까지 내 신체를 모방하려던 벌레의 모습이 역겹기 그지없었기에 나는 벌레를 내리눌러 밟아 터트렸다, 방금까지 뼈가 있던 손가락이라고는 생각도 못 할 정도로 물렁거리는 벌레의 신체였으나 벌레는 돌연 바퀴벌레처럼 날개를 활짝 펼쳐 내 곁으로, 정확하게는 자신이 떨어졌던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 나의 손을 향해 날아들더니 그대로 다시 달라붙어 버렸다. “떨어져 떨어지라고!!” 퍽퍽 벽을 아무리 두들겨도 그것을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금 신경이 연결된 나의 신체 일부분인 것처럼. 아무리 발버둥쳐도 아무리 짓이겨도 그것은 그 즉시 다시금 새로운 손가락으로 변해 나에게 날아들었다. 벌레무리는 그런 나를 여전히 비웃듯이 바라만 보고는 휘청휘청 나를 지나 내가 왔던 복도를 지나갔다. 더는 볼일은 없다는 것처럼, 아니 어쩌면 새로운 벌레무리가 될 묘판을 환영하는 상큼한 웃음이었을지도 몰랐다. “....씨발...씨발” 나는 욕설을 내뱉으며 내 손가락으로 의태한 벌레를 잠깐 노려보다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급해도 지금은 멈춰있을 수 없었다. 밖으로 나가 태워버리거나 물속에라도 처박아 어떻게든 때어내면 어떻게든 될 거고 어쨌든 저 벌레가 나를 놓쳐줬으니 어쨌든 아까 생각했던 대로 나아가면 그만이었다. “후...” 이제는 익숙하게 한 손으로 담배에 불을 붙여 깊게 들이마신 나는 벌레가 들러붙은 손을 벽면에 고정한 채 전력으로 내달렸다. 아마 이만큼의 소음이 났음에도 여성이 오지 않는 걸 보면 아마 밖으로 나간 거겠지. 내움직임에따라 살점이 고스란히 뜯겨나가는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으나, 벌레 또한 고통을 느낄 것이 틀림없었기에 상관하지 않고 전력으로 내달린 끝에 마침내 내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문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안정적으로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보이는 단말기. 절대 열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단단한 강철로 되어있는 문. 아마 키카드나 열쇠가 없으면 열지 못할 것처럼 보였으나 문 위쪽에 커다랗게 쓰인 표지판이 급한 내 마음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출입구] “...될려나 모르겠네!” 나는 어깨를 한번 풀고는 문의 작은 틈새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강제로 문을 열기 시작했다. 벌레의 머리와 복도의 한쪽 벽면을 박살 냈을 때 느껴졌던 어처구니 없게 강화되어버린 힘. 꼬맹이의 백신을 발라주며 나눈 정사로 인해 분명하게 사라져가던, 아니 완전히 사라졌던 이 힘이 어째서 돌아왔을까? “그년이 뭔가 한 건가?” 정말 내가 기절할 때까지 했던 성행위가 정답인가? 아니면 내가 놓친 다른 무언가가 있는건가? 가령 기절했을때 벌레의 먹이로 줬다가 묘판이 가능성을 봤다거나... [뿌드드득] 아무리 여기서 생각해도 답은 없었기에 의식을 되돌려 강제로 열린 작은 문틈으로 다리를 집어넣어 밀어붙였고 기어코 문이 열렸다. 사다리 위로 보이는 따스한 햇볕이 몸을 위로했다. [잘됐네 결국 여기서 나가게 됐으니까 그 시체랑 떡이라도 치려고...!]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역한 말을 쏟아내는 걸레를 무시한 채 나는 한쪽 팔로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턱 턱 한쪽 팔로 몸을 고정했다고는 생각지도 못할 빠른 속도. 아마 누군가 이 모습을 봤다면 거미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억지로 밝은 생각을 해내며 끝끝내 사다리 꼭대기에 다다라 밖으로 나온 나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대자로 뻗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탈출했다. 드디어 그 개 같은 괴물과 여성에게서 도망쳤다. 이제 여기가 어딘지 확인한 다음 꼬맹이와 합류한다면... “오...어..떻게...나온거야?” “키에엑” 뚝뚝 끊어지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야 할 목소리가 어째선지 무척이나 서늘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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