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희생
“냄새...냄새나”
머리통이 날아온 어둠속에서 뚝뚝 끊기는 소름 돋는 목소리가 다시금 들리더니 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탄탄한 근육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것인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을 그대로 드러낸 푸른 머리에 장신의 여성.
“하...하하”
여성은 우리를 마주 보자 해맑게 웃었다. 팔 한짝이 잘린 채로 피를 질질 흘리며 서 있는 나와 좀비에게 물려 안색이 창백한 경찰관. 그리고 피로에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사서.... 도대체 이 모습이 뭐가 그렇게 재밌어서 저렇게 웃을 수 있는 것일까?
갑작스럽게 등장한 여성에게 적의를 품었지만 내 몸은 무의식적으로 남은 한 손으로 기절하듯 잠이 든 꼬맹이를 꽉 끌어 안채 뒷걸음질치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멈춰. 그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런 나와는 다르게 경찰관은 오히려 앞으로 나서며 권총을 겨눠 여성을 제지하려 했지만, 여성은 총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로 천천히 우리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피가 덕지덕지 묻은 그녀의 거대한 젖가슴이 위아래로 크게 한번 출렁거렸고, 경찰관이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간지...러워”
“이놈이나 저놈이나 도대체 총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형씨 저년도..!”
여성이 시시덕거리며 자신의 어깨에 붙은 뭉개진 탄환을 뽑아내 바닥으로 내던지는 순간, 모습이 순식간에 흐릿해지며 말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뭐, 뭐가 어떻게...!”
“역시..너.맛..있는 냄새나”
시속 백 킬로는 가뿐히 뛰어넘어 날아왔던 뼛조각을 정확하게 보고 쳐낸 나의 시력으로도 쫓을 수 없는 빠른 속도에 경악하며 소리를 지르자, 등 뒤에서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며 킁킁거리는 차가운 숨결이 목덜미를 훑었다.
꼬맹이가 쫓아냈던 죽음의 그림자가 다시금 나를 집어삼키는 듯한 엿 같은 감각. 온몸이 굳어버릴 것만 같았음에도 나는 품 안에서 작게 숨을 내쉬는 꼬맹이의 감촉을 느끼며 황급히 뒤를 돌아 거리를 벌렸다.
“굉...장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던 여성이 내가 움직인 게 의외였는지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은 채로 나와 마주 보았고 그제야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나는 꼬맹이와 똑같은 붉은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괴물이 시체새끼들을 어떻게 통제했나 했더니 너였던 거냐 빌어먹을...”
머리통만 남은 남성의 말을 듣고 애써 무시하던 불길한 상상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졌기에 나도 모르게 생각이 입 밖으로 꺼내졌다. 할인 몰에서 보았던 무시무시한 위압감의 뇌. 그 뇌가 하필 지금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으응?”
내 절망감 어린 혼잣말에 여유롭게 말을 늘어뜨리는 여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좀비와 변종을 부리거나 그 엄청난 속도로 나를 공격할 기세도 보이지 않는, 할인점에서 보았던 뇌와 달리 머리에 한 줌의 이성이 남아있는 듯한 여성의 태도.
그 태도에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체력도 쓸만한 무기도 전부 떨어져 버렸다.
그럼에도 억지로 싸우기로 한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내 눈으로도 쫓을 수 없는 여성이 일말의 여지없이 우리가 반응하기도 전에 머리를 전부 뜯어버리겠지.
나는 잠시 공포를 밀어내기 위해 숨을 고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릴...우릴 그냥 놓아줄 수는 없나? 그렇게 해주면 더이상 너를 귀찮게 하지 않고 곧장 떠나지”
“안...돼”
“....왜지? 뭔가 바라는 게 있나?”
여성이 내 물음에 대답하며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기 전 냄새라 맡는 것처럼 나에게 더욱더 달라붙어 왔다.
“....맛있는 냄새 너...너를...원해”
“나?”
여성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대답에 내가 얼이 빠져 되묻자 여성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냥감 먹어서 강하게... 더 강하게”
“너...나만 먹으면 만족하는 거냐? 다른 사람들은 상관없고?”
“으...응”
내 앞에 있던 여성이 힐끔 뒤에 있던 일행들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길가에 돌멩이나 쓰레기를 보듯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 정말로 나 이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듯했다.
꼬맹이를 안고 있는 팔에 힘이 들어갔다.
살아서 그 개새끼들에게 복수하고 싶다. 꼬맹이와 사서와 함께 침대 위에서 제대로 된 섹스도 오랜만에 동영상을 보며 화끈하게 기구를 쓴 자위도 경찰관과 게이...그리고 대머리의 부하였던 남성과 술잔을 기울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럼 싸우지그래? 도축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그대로 죽을 거야? 시도라도 해봐야하지 않겠어?]
점점 사심이 넘쳐나는 생각들에 머릿속의 걸레가 일침을 날렸다.
맞는말이다. 맞는 말이었지만, 내 품 안에서 고이 잠이 든 꼬맹이까지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싸울수는 없었다.
그 작은 몸으로 방금까지 나를 구해주었기에 이번엔 내 차례여야만 한다.
“내가 이대로 얌전히 너에게 먹히면 나머지는 보내주면 안 되냐?”
“그...래”
거절한다면 결사항쟁이라도 벌여 여성의 발을 묶으려던 생각이 무색하게도 여성은 어째선지 내 부탁을 선뜻 들어주었다. 정말 이성이 남아있어서 부탁을 들어준 거라면 차라리 나까지 풀어주는 게...
“죽...으면 맛없어...강해...질수 없어”
“염병 죽으면 맛이없어져서 그런 거냐...아아 됐다 됐어. 산채로 삶아 먹든 구워먹든 알아서 해 대신 저놈들은 풀어줘 그럼 얌전히 네년의 배로 들어가 주지”
괜히 힘을 썼다가 내가 죽어버리면 맛이 없어진다는 건가? 참 안 좋은 이유 긴한데...염병 좋은 게 좋은 거겠지.
나는 여전히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 괘씸한 꼬맹이의 이마에 딱밤을 먹여주려다...다정하게 이마에 입을 맞춰주고는 사서에게 조용히 건넸다.
“꼬맹이가 깨어나면 전해주라 어떻게든 목숨줄 잡고 기다릴 테니까 빨리 좀 구해달라고.”
“아,안돼요!”
“형씨!”
“야 꼬맹이가 잠이 든 순간 저런 거랑 마주친 순간 전부 좆된 거야. 이 새끼가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성이 남아있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진작에 저 머리통처럼 굴러다니고 있었을걸...? 군인도 잘 챙겨 돌아가면 그 새끼들 기지를 완전히 박살 낼 거니까 꼬맹이만 있으면 어떻게든 될 거야”
나는 손을 휘저어 당당히 그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여성 쪽으로 걸어갔다.
여성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어 맛을 보듯 내 볼을 핥았다. 거대한 뱀이 얼굴 위로 기어가는 듯한 오슬오슬한 감촉에 토악질이 절로 올라왔지만, 간신히 삼켜냈다.
“....꼭 다시올게 형씨”
“저,저기 안돼요 이거 놓으세요!!”
경찰관은 사서의 손목을 억지로 잡더니 배낭과 군인을 챙겨 밑으로 내려가 사라졌고 여성의 입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갔다.
“....이제 어쩔거냐 서로 이름이라도 알아볼까?”
나의 빈정거리는 목소리에 여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꼬맹이와는 비교조차 할수없을는 한치의 체온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손길이 가슴팍을 지나 배를 쓰다듬었고 이윽고 내 남은 한쪽 팔을 붙잡았다.
“야 잠깐, 잠깐 기다려 이대로 먹어버리면 얼마 못 가 죽을 걸 맛없어진다...끄으..!!”
“알...아 그래...서 지금은...이걸로 참을 거야”
내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성이 내 손목을 붙잡아 손가락을 힘으로 뜯어냈다. 절로 비명이 토해지려 했지만 나는 입술을 꽉 깨물어 삼켰다.
아직은 안된다. 적어도 그들이 여기서 빠져나가 꼬맹이를 안전한 장소까지 움기기전까지는...
[또다시 꼬맹이를 버리고 간다면?]
“맛...있어 아아아”
“닥...쳐”
머릿속의 걸레의 속삭임과 내 손가락을 질겅 질겅 씹으며 황활한 듯 양손으로 얼굴을 부여잡은 여성을 향해 쏘아붙였다.
“조금...더 먹을래”
“하...마음대로해라”
나는 눈을 질끔 감고서 고통을 감내했고 손가락이 또다시 잘려나가 여성의 입으로 들어가 세상에서 사라졌다.
“하 완전히...병신이 돼버렸군”
완전히 흐려진 시야에 남은 세 손가락을 보며 나는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차라리 지금 죽어버린다면 편해지지 않을까? 연다른 고통으로 방금까지 굳건했던 정신이 꺽일것만 같았다.
방금떠난 꼬맹이의 얼굴이 너무나도 보고싶었다.
◆
“콜록...콜록”
기침을 토해내며 정신을 차린 내가 사라진 한쪽 팔을 사용해 몸을 일으키려다 미끄러져 바닥에 다시금 엎어졌다.
“염병...”
아직까지 손이 남아있던 부분에서 자신의 존재함을 알리는 격통이 쉴 새 없이 느껴졌지만, 그 자리에는 허공만이 있을 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차라리 전부 꿈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은데...뭐 군인이 남아있다는 걸 알았다면 이 꼴이 나더라도 갔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지...
나는 홀로 멍하니 중얼거리며 남은 한쪽 팔로 겨우겨우 몸을 지탱해 몸을 일으키고는 주머니에 있던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빌어먹을 팔, 빌어먹을 좀비, 빌어먹을 세상”
남은 손가락이 3개뿐이라 담뱃불도 힘들게 붙이긴 했지만 어찌어찌 담배를 태우며 피폐해진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직 주저앉을 수는 없다. 꼬맹이가 올 때까지 어떻게든 견뎌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