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괴물(3)
“하긴... 이 정도로 해치울 수 있었다면 모여있던 군인 새끼들이 어떻게든 처리했겠지”
건물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수류탄을 있는 대로 퍼부었음에도 괴물의 몸은 단지 작은 흠집만이 남아 뿐 멀쩡하기 그지없는 반면, 내 몸은 수류탄과 건물의 파편 등에 휩쓸려 상처투성이가 되어있었다.
욕설을 내뱉지 않고는 버티지 못 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 나는 뒤에 있는 꼬맹이를 떠올리며 주머니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수류탄을 끄집어내 손에 꽉 쥐었다.
이걸 던진 다음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무작정 뒤로 돌아서 뛰어볼까? 괴물을 향해 무릎이라도 꿇고 자비를 구걸해야 할까?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꼬맹이는...꼬맹이는 저 괴물을 상대로 도망칠 수 있을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잡생각들과 망설임에 의해 일순간 손이 멈추자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괴물이 체액을 뿜어내 수류탄을 쥐고 있던 손을 강타했다.
“끄읍..!”
마치 총알과도 같은 속도로 날아온 괴물의 체액에 의해 너덜거리던 왼손에서 수류탄과 손가락 몇 개가 떨어져 나가 바닥에 떨어졌고 괴물은 지금까지 당한 것에 화가 단단히 났는지 육중한 몸을 빠르게 움직여 금세 코앞까지 다가왔다.
[콰직]
“끄아아아악!!”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내가 어떻게든 반응해 몸을 움직였음에도 괴물의 날카로운 이빨이 왼쪽 팔을 정확하게 물어뜯었다.
거대한 송곳들이 살을 파고들어가 뼈 마디마디를 박박 긁어대는 것만 같은 통증에 오른손이 저절로 움직여 왼팔이 있던 부분 더듬었지만 이미 뜯겨나간 팔은 괴물의 심연과도 같은 거대한 아가리 속으로 사라져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하... 빌어먹을 일어나, 일어나라고 빌어먹을 몸뚱이”
사라진 팔이 여전히 자신이 몸에 붙어 있다고 주장이라도 하는 것인지 계속해서 뇌로 미칠듯한 통증을 전달해 몸을 제대로 가눌 수조차 없어 벌레처럼 바닥을 뒹굴었고 눈에서는 통제할 수 없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곧 죽을 거라는 공포 때문인지, 아니면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인지 나조차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
그 눈물을 본 괴물은 즐겁기라도 한지 자신의 입속으로 들어간 팔을 잘근잘근 씹다가 추하게 바닥을 뒹굴던 내 앞에 씹던 껌처럼 뱉어냈다.
한때는 내 팔이었던 그 작은 고깃덩어리는 괴물의 체액에 의해 점점 녹아내리다 이내 더는 형체조차 유지하지 못한 채로 퀴퀴한 냄새를 흩뿌리는 작은 물웅덩이가 되어 사라졌다.
“키에에엑”
나도 곧 저렇게 만들 것이다.
괴물의 역한 울음소리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 같았고 결국 괴물의 냄새나는 3개의 아가리가 나를 찢어발기기 위해 눈앞에서 크게 벌어졌다
[말했잖아 돼지...너는 결국 먹힐 뿐인 약자야]
이녀석에게 먹힌 희생자들의 것으로 보이는 고기조각들이 뾰족한 이빨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역겨운 모습에 머릿속에 있던 걸레가 오랜만에 말을 걸어왔다. 정신이 한계에 몰렸다는 의미였지만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나는 그 말을 묵묵히 흘려들었다.
[돼지에게는 딱 어울리는 최후네]
팔도 뜯겨나갔고 칼도 더는 꺼낼 수 없었다. 그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게 전부.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씨발 이럴 줄 알았으면 담배라도 한 대다 피우면서 신 나게 자위라도 할걸 그랬네 푸하하”
“그만둬!”
죽음을 직감한 내가 괴물의 입안을 들여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리자 돌연 포식자의 거대한 울음소리 와도 같은 처절한 외침이 건물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렇게나 시끄럽게 들리던 좀비들의 울음소리도. 내 코앞에서 입을 크게 벌린 괴물도. 심지어는 좀비들과 처절하게 사투를 하면서도 내가 당하는 모습을 곁눈질하던 경찰관과 사서까지도 그 단 한 마디에 주변 시간이 전부 멈춘 듯이 얼어붙어 버렸고 나만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볼 수 있었다.
할인몰에서 보았던 뇌와도 같은. 아니 그보다 더욱더 압도적이면서도 기괴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혈액처럼 붉은빛으로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눈동자의 꼬맹이를.
“....”
꼬맹이는 한쪽 팔이 뜯긴 채 바닥을 뒹굴던 나를 향해 주변의 상황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한걸음. 한걸음 고요히 발걸음을 내딛을수록 꼬맹이가 괴물과 좀비에게 입었던 상처가 회복되어서 내 옆까지 도달했을 때는 다리를 옭아매고 있던 괴물의 체액마저도 물처럼 흘러내려 사라져있었다.
“너...괜찮은거야?”
팔이 하나 뜯겨나간 고통마저도 잊게 만들 정도로 꼬맹이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가히 충격적일 정도로 매서웠으며 평소에 느껴지는 차가운 온기는 뜨겁기 그지없었다. 분노. 혐오. 적의.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저 눈을 마주 보고 있는 나에게 까지 공유되어 자의식이 불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소름 돋는 느낌이 들었다.
“...”
내 걱정스러운 물음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던 꼬맹이가 갑작스럽게 멈춰있던 괴물의 배를 향해 돌연 주먹을 날렸다.
깔끔하게 들어간 공격에 괴물이 발랑 뒤로 엎어지자 그 위에 올라탄 꼬맹이는 마구잡이로 주먹을 꽂아넣었고 사람이 거미의 몸통을 짖니기듯 괴물의 내장이 입과 똥구멍에서 흘러나옴과 동시에 멈춰있던 좀비들이 움직였다.
“무,뭐야”
“꺄아악!”
좀비들은 자신들의 앞에 있던 사서와 경찰관을 무시한 채 자신의 대장이라고도 볼 수 있는 괴물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키에엑!”
마치 잘 훈련된 사냥개에게 명령이라도 한 것처럼 좀비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몇몇은 바닥에 흘러나온 내장을 집어 먹었고, 나머지는 일말의 자비 없이 전 보스를 둘러싸 단단한 살점을 뜯어 먹기 위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죽어...죽어버려”
멍하니 중얼거리는 꼬맹이의 목소리에 호응하듯 좀비들의 눈동자가 점차 꼬맹이와 똑같이 붉은빛으로 일렁거리더니 더욱더 사납게 변질하였다.
으르렁거리는 좀비들의 울음소리는 사냥하는 야생동물과도 같았으며 괴물은 이에 저항하듯 손을 휘저었지만 나를 죽일 듯이 공격했던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공격을 당하는 초식동물처럼 보일 뿐.
[징그럽네...마치 개미떼에 붙잡힌 살아있는 매미처럼 보여]
심지어 내머릿속의 걸레마저도 그 광경에 말을 잃은 듯 했다.
“...이거 괜찮은 건가? 물려서 그런지 몰라도 나도 저기에 합류해서 뜯어먹고 싶어지는 것 같은데?”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자 안색이 창백해진 경찰관과 구토를 억지로 삼키고 있는 사서가 조심스럽게 내 곁으로 다가와 벌레처럼 바닥에 누워있던 나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팔 한 개 떨어져 나간 것보다는 좋지 않냐? 엄살 떨지마 나가자마자 백신을 줄태니까”
“그것도 그런가 푸하..하 일단 벨트로 지혈은 해줄게. 나도 아직은 버틸만하니까 일단 내려가서 보자고 형씨”
“그거...참 고맙네 씨발”
“우...에엑”
사서또한 무언가 나에게 말하고 싶은 듯했으나 입을 열자마자 구토를 바닥에 흩뿌렸다.
하긴 머릿속의 걸레가 말했던 대로 개미떼에 붙들린 매미처럼 서서히 온몸이 분해되어 씹어 먹히고 있는 괴물의 모습은 나조차도 비위가 상하게 하기에는 충분하니 어쩔 수 없나.
◆
“끼..에엑”
한참을 분풀이를 하듯 주먹을 휘두르는 꼬맹이에 맞추어 이빨을 들이미는 좀비들의 사냥은 조금이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끝이 났다. 구슬픈 울음소리를 마지막으로 괴물은 더는 움직이지 않았고 꼬맹이는 잠시 그 모습을 보다 뒤를 돌아 내 곁으로 달려오더니 나를 꽉 끌어안았다.
더 이상 일어설 힘조차 없어 부축을 받던 나는 그대로 넘어졌지만, 만면에 미소를 띄운 채로 남은 한 손으로 꼬맹이를 안아주었다.
“괜찮은 거야?”
이제는 말조차 버벅대지 않고 말을 내뱉는 꼬맹이의 질문에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한쪽 팔이 없어졌고 빈혈로 언제 정신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 좋지는 않았지만 노력한 꼬맹이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괜찮으니까 좀 떨어져 기껏 살아 남은 사람을 도로 죽일 생각이냐 꼬맹아”
“응..미안 주인”
꼬맹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기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꼬맹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대단하네. 어떻게 한 거야 저거”
“...모르겠어 머리아파 피곤해...”
남은 내장들을 집어삼키고 있던 좀비들을 가리키자 내 품에 머리를 비비고 있는 꼬맹이가 작게 대답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것들을 조종하는 건가?
“으아...저리가”
머리가 아픈지 인상을 찡그리던 꼬맹이의 손짓한 번에 막무가내로 괴물을 먹어치워 가던 좀비들이 한순간에 멈춰 서더니 집단 자살이라도 하는 것처럼 재빠르게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사람이었던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살벌한 소리와 아직 작동하는 자동차에서 나는 경보음이 비가 내리는것처럼 한참을 시끄럽게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좀비 한 마리 까지 전부 사라지자 꼬맹이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눈을감더니. 순식간에 잠에빠진 듯 고른 소리로 숨을 내뱉었다.
한동안은 일어날 수 없을것같아 조심스럽게 한팔로 꼬맹이를 들어올리자 옆에있던 경찰관과 사서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굉장하네요 좀비들을 조종하다니”
“좀비들을 마음대로 부려서 자살까지 시키다니 굉장하다는 말로는 부족해 어이 형씨 이능력만 제대로 사용하면 세상도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게...나따위랑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꼬맹이가 굉장해졌네 능력만 더 강화된다면 세상을 되돌릴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아니....너...도 굉..장해 굉...장히...맛있는 냄새나”
시끄러운 소리로 떠들고 있던 우리들의 대화 사이로 소름이 끼치는 목소리 하나가 끼어들었다.
“뭐,뭔가요 또 뭐가 있는 건가요...!”
사서의 겁먹은 목소리에 호응하듯 투욱하고 멀리서 무언가가 날아와 우리 앞에 떨어졌다. 우리를 버리고 먼저 아래로 내려갔던 민간인 남성의 머리통....기괴하게 고통에 일그진 표정을 짓고있는 그 머리통이 우리의 참담한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