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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화 도달(2)


경찰관이 들고 있던 플래시 라이트를 억지로 빼앗아 들고는 꼬맹이와 함께 앞장서 쇼핑몰 안쪽으로 천천히 나아가자, 옛날 같았으면 절로 헛구역질이 나올만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몸통부분이 어디로 갔는지 대장을 질질 흘리고 있는 하반신. 누가 먹다 흘린 듯 바닥을 나뒹구는 팔다리, 내장의 찌꺼기들과 함께 천장에 껌처럼 눌어붙어있는 누군가의 머리통.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런 괴랄 한 모습의 시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고 망가진 텐트와 여러 물자가 쌓여있던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우읍...이정도로 역한 건 처음 보는 것 같아요” “푸하하 그러게 이거 정말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괴물의 식량창고라도 되는 것처럼 수십 구의 시체들이 살가죽이 벗겨지거나 밖에서 보았던 탱탱볼처럼 둥글게 변한 채 구석에 잔뜩 쌓여있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사서가 헛구역질을 억지로 삼키며 밝게 말을 내뱉었지만, 경찰관은 이해한다는 듯 그녀의 등을 다정하게 두드려주었다. “수류탄 파편이랑 총격전의 흔적이 남아있어. 아마 여기가 최초의 방어선이었던 모양인데 형씨?” “다행인지 불행인지 괴물이 진 것 같지는 않네... 빌어먹을 위쪽에도 다 이 지랄이 나 있을 것 같은데 한 명이라도 살아있으려나 모르겠어”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적은 거 알고 있지? 식량창고까지 만들어 놓은 거 보면 여기는 완전히 괴물의 영역이 된 거야.” 경찰관이 바닥에 말라붙어있는 피를 손으로 만져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나는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수류탄 몇 개를 챙겨 주머니에 쑤셔 박은 뒤 계단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꼬맹이의 손을 맞잡고는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가, 같이 가요” “기다려 형씨” 뒤에서 다급하게 나를 따라오는 그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나는 꼬맹이를 내려다보며 작게 입을 열었다. “위쪽에 아까 같은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어?” “....응 미안 주인” “미안해할 건 없고 조금만 가까이 오면 눈치챌 수 있잖아?” 나는 장난스럽게 윙크를 해주며 꼬맹이의 머리를 매만졌다. 내가 자는 사이 어디에서 씻기라도 했는지 아침과는 달리 매끈한 머릿결이 손끌에서 춤을 추듯 아름답게 찰랑거렸다. “...” 꼬맹이는 내 손길을 가만히 받아들이더니 조용히 열의를 불태우듯 눈을 빨갛게 물들였고 그 모습에 이제 어느 정도 꼬맹이의 감정을 적당히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느꼈기에 절로 입고리가 올라갔다. “기대할게.” “...응!” ◆ 지금까지 올라온 층들을 전부 훑어봤지만, 괴물은커녕 좀비나 조종당하는 듯한 사람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역겨운 시체들만이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을 뿐. “잠깐 쉴..” “...앞에 누군가 있어” 슬슬 한번 쉬어갈까 생각하며 터덜터덜 4층으로 올라가려던 도중. 꼬맹이가 다급히 내 옷깃을 잡아당겨 멈춰 새웠다.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고요한 장소. ‘정말 이근처이 있는 걸까?’ 내 의문에 답이라도 하듯 꼬맹이가 에스컬레이터 옆쪽 벽 뒤를 가리키자 그제야 무척이나 작은 신음소리가 귓가에 확실하게 들려왔다. “끄...읍” 누가봐도 억지로 입이 막혀있는 작디작은 목소리. 나는 그 즉시 주머니에서 수류탄을 하나 꺼내 던졌고 쾅하는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사람 혹은 사람들이었던 고기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직 더 몰려오는 것 같은데 형씨!” 기습이 통하지 않는 것을 알아차린 녀석들은 그 즉시 감염된 인간들의 몸을 억지로 움직여 달려들기 시작했다. “쏘,쏘지...!” [타-앙!] 경찰관의 사격에 쏘지 말라며 울부짖던 여성의 몸이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잘 쏘네” “곧 죽어도 경찰이니까!” [탕!] 경찰관의 총성이 다시 한 번 울려퍼졌고 나 또한 탄약을 아끼려 쇠파이프를 휘둘러 입이 막혀있는 남성의 머리를 강타했다. “아아..아!!” “미안하게 생각한다!” 머리를 잘못 맞았는지 바닥에 쓰러져 부들부들 몸을 떠는 남성의 머리를 강하게 짓밟으며 앞을 향해 나아가자 꼬맹이와 사서 또한 내 뒤를 따라 몰려드는 녀석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수가 너무 많아 한번 뒤로 빠져야겠...참나 그럴 필요는 없겠네” 가볍게 손을 휘저어 머리를 뜯어내는 꼬맹이와 양손으로 쇠파이프를 휘둘러 사람의 머리를 수박 가르듯 손쉽게 터트리는 나. 자신에게 접근도 하지 못하게 적들을 빠른 속도로 제압해나가는 우리의 모습에 경찰관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시,싫어 싫어! 죽고 싶지 않아...!” “읏...!” 얼굴의 묻은 피를 거칠게 닦에내며 슬쩍 내 뒤를 따라온 사서를 바라보자, 사서는 예상했던 대로 도끼를 높게 치겨든 채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좀비와는 달리 아직 이성이 남아있어서 망설이는 걸까? 좀비와 이 녀석들이 다른 점이 뭐길래...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참으로 애처롭게 보이긴 도하고 멍청...귀엽게 보이기도 했지만, 이대로 계속 망설이기만 해서는 죽을 뿐이었다. [타-앙!] 사서에게 달라붙으려는 사람을 내가 대신 처리해주기 직전, 경찰관의 날카로운 탄환이 머리를 꿰뚫고 지나가 벽면에 박혔다. “사서양 그냥 외면해 이 녀석들도 좀비들이랑 다를 게 없어 괜히 동정해봐야 우리만 힘들어질 뿐이야. 물리 거나 상처가 나면 감염될지도 모르잖아” 경찰관의 나지막한 한마디에 정신을 되찾은 사서는 눈을 질끈 감더니 손에 쥔 도끼로 근처에 있던 다른 녀석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질퍽하게 뿜어져 나오는 거무튀튀한 피와 함께 그대로 고꾸라지는 사람. 더는 사서를 신경 쓸 필요는 없는 듯했다. “...주인..?” 멍하니 사서를 바라보던 나에게 은근슬쩍 다가오던 녀석을 대신 붙잡아 맨손으로 머리를 으깨버린 꼬맹이가 걱정스럽게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아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나는 손을뻗오던 다른 녀석의 팔을 쇠파이프로 부러뜨린 후 발로 걷어차 바닥에 눕혔다. “끄읍” 좀비와는다르게 통각이 살아있어 비명을 지르던 다른 녀석들과는 다르게 의연하게 고통을 감내하는 남성이 내 눈을 가만히 마주보다 입을 열었다. “여기서..빨리나가 그 괴물이 당신들한테도 똑같이 할 테니까” “살아있는 사람은?” “미안하지만 모른다.아마 전부 우리처럼 변했겠지.” “그러냐...미안하게됐어” 나는 한숨과 함께 쇠파이프로 머리를 내려쳤다. 정말 한 사람도 남김없이 그 괴물한테 잡아먹힌 걸까? 묘한 불안감아 조금씩 마음을 좀먹어 가는 것 같았다. ◆ “...이걸로 끝인 것 같은데 형씨? 참나 매복까지 하다니 미쳤군 미쳤어” “차,차라리 좀비들이 그...상대하기 좋을 것 같아요” “살아있는 시체에 무언가를 기생시키는 생물이라니 참나! 나중에는 아주 시체들이 총까지 쏘면서 다니겠어 빌어먹을...야 꼬맹이 이쪽으로 와 잠깐 좀 쉬자” “...응” 좀비와는 다른 도살장에서나 날법한 피비린내가 코끝을 맴돌자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나마 깨끗한 자리에 주저앉아 불을 꺼내 들이켰다. “나도 좀 줄래 형씨? 화약 때문인지 역한 피 냄새 때문인지 엄청나게 목이 마르거든” 허락도없이 손을 뻗어 내가 마셨던 생수를 들이켜던 경찰관이 내 옆에 주저앉자 사서 또한 약간 주저하는듯했지만 이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뭐, 어차피 누군가 올 것 같으면 꼬맹이가 알려줄 테니 쉴 수 있을 때 다 같이 쉬는 게 났겠지. “...이거라도 먹을 거면 먹지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건빵과 물을 더 꺼내 바닥에 내려놓자 사서와 경찰관 그리고 꼬맹이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건빵을 나눠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 인식표를 차고 있는 걸 보면 군인들이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당한건지?” 우적우적 무기질적으로 건빵을 씹던 경찰관이 시체에 걸려있던 것으로 보이는 인식표를 자연스럽게 꺼내 보였다. 언제 또 저런 걸 챙긴 것인지... 경찰관 주제에 은근히 손버릇이 나쁜 것 같았다. “너희 거점 근처에 있었다며 싸워 본 적은 없어?” “글쌔? 나랑 사서가 마주쳤을때는 사격을하거나 창으로 몇 번 찔러주면 금세 꽁지 빠지게 도망쳤거든... 이렇게 강했는데 우리한태는 왜그렇게 겁을 먹은 건지” “뭔진 몰라도 이유가 있겠지.” 가령 사서에게서 나는 내 냄새 같은걸 맡아서 도망쳤다거나...?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나를 보고 도망쳤었지 아마? 꼬맹이의 백신을 찾았을 때 마주쳤던 괴물의 모습을 떠올리던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원래부터 살아있는 군인 한 녀석만 찾으면 곧바로 도망쳐 나올 생각이었다. 굳이 꼬맹이와 내가 괴물과 목숨 걸고 싸울 필요는 없는 상황이니... 정말 나를 보고 쫄아서 도망쳐준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았다. “뭐야 형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냥 긍정적인 관점으로 생각 한 번 해봤어. 쯧, 뭐 당연히 그렇게 되지는않겠지만 말이야” “긍정적인 관점...? 이상황에 그런게 있는거야 형씨?” “아 됐어 여기서 밤을 보내고 싶지 않으면 슬슬 일어나는 게 어때?” 금새 비어버린 건빵 봉지를 시체 사이에 대충 던져버린 나는, 스트레칭으로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얼마 움직이지도 않은 것 같은데 역한 통증마저 느껴지는 괴랄한 몸뚱아리. 이렇게 직접 체감하니 정말 바이러스가 내 몸에 좋은 영향을 잔뜩 주고 있던 게 역력하게 느껴졌다. “...주인? 괜찮아?” “당연하지. 나도 아직 쓸만하다니까”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내뱉으며 나는 피가 묻어 굳어있는 꼬맹이의 얼굴을 정성스레 닦아낸 뒤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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