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도달(1)
“형씨... 이제 슬슬 일어나”
“...어?”
“참나 잘도 그렇게 덜컹거리는 차안에서 잠이 들었네, 그렇게 피곤했어? 차라리 이 근처에서 하루더 쉬는게 어때?”
“...미안하지만 그럴 시간은 없어 하루라도 빨리 해야할게 있거든”
잠이덜깨 입에서 흘러내린 침을 손으로 대충 닦아내자, 경찰관이 얼굴을 구기며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언제 잠이 들었던 거지? 분명 트럭이 좀비들을 밀고 나갔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하아...형씨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가긴 가는데 바리케이드랑 시체로 도로가 아주 꽉 막혔어. 여기부터는 어쩔수없이 걸어가야 될 것 같은데 어쩔래?”
“...도로가 막혔다는 건 못 들었던 것 같은데?”
“나도 마찬가지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형씨. 분명 그 여자한테 들었을 때는 도로 전체가 깨끗하게 치워져 있다고 했다고... 몇 일만에 이걸 전부 설치한 건가?”
이상하다는 듯 바리케이드와 머리가 없는 시체들로 꽉 막혀있는 도로를 한참을 바라보던 경찰관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정도로 마구잡이로 쌓아놓은걸 보면 오토바이로 뚫고가는것도 힘들 것 같은데...
“일단 내리자고 여기서 가만히 있어봤자 죽도 밥도 안 되잖아...손수건은 형씨 가져도 돼”
“...거참 고맙네”
경찰관이 건넸던 손수건을 대충 주머니에 쑤셔 박으며 트럭에서 내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탱탱 볼 같은 이상한 감촉의 무언가가 발에 밟혀 균형을 잃고 말았다.
“읏..!”
“...주인 괜찮아?”
또다시 꼴사납게 넘어질 뻔 했지만, 이번에는 먼저 하차해있던 꼬맹이가 나를 붙잡아 주어 간신히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고맙다 꼬맹아”
내가 감사인사를 건네자 아무 말도 없이 눈을 마주 보며 싱긋 웃어 보이는 꼬맹이. 내가 조는 사이 트럭에 올라타려는 변종이나 좀비들을 막아줬는지 얼굴에는 거무튀튀한 피가 한가득 묻어있어 더욱더 마음이 편치않았다.
“내가 쉬는 동안 고생 많았어”
“...응!”
“형씨 아주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리셨구만 그래 갓 태어난 망아지야 망아지 으하하”
“뭔가 이상한 걸 밟아서 그런 거니까 그만 웃지?”
꼬맹이와 키스를 하기 직전 이었는데 분위기 파악 못 하는 경찰관의 농담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꼬맹이에게서 떨어져 발에 밟힌 이상한 무언가를 신경질적으로 걷어찼다. 질척거리는 소리와 함께 퉁하고 마치 탱탱 볼처럼 굴러가는 고깃덩어리...그것을 바라보던 경찰관이 순식간에 웃음을 멈추었다.
“...빌어먹을 그 새끼가 여기까지 세력을 넓혔나 본데?”
“뭐야 갑자기 왜 그래?”
“....그거 형씨한테 죽여달라고 했던 녀석이 뱉어내는 거야 사람을 보면 얼굴에 달린 3개의 입에서 침처럼 질질 흘러나온다고... 아! 그래서 군인 양반들이 바리케이드를 친 건가 그 새끼 접근하지 말라고?”
“그 말이 사실이면 진짜 귀찮게 된 것 같은데? 길을 막고있는 바리케이트에 언제 올지 모르는 변종. 군인들도 보자마자 경고 사격했다며 야 차라리 너희 둘은 그냥 돌아가는...”
“저기 잠깐만 이쪽으로 와주실래요 뭔가 찾을 것 같아요!”
멀리서 들려는 사서의 목소리에 말을 끊고 황급히 달려가자 군인들이 설치한 걸로 보이는 큼지막한 표지판이 놓여있었다.
[군사 작전지역 접근 금지]
<무단 접근 시 경고 없이 실탄 사격>
“저희같은 생존자랑은 접촉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은데요”
“형씨 이제 어쩔래? 저거 뚫고 군인들을 만나도 바로 사격할 것 같은데”
“전달해야 할 것도 있고 알아내야 할 것도 있으니까. 난 갈 수밖에 없어. 너희 두 사람은 무서우면 돌아가 여기서부터는 나랑 꼬맹이만 있어도 충분하니까”
“...맞아 방해야 돌아가”
꼬맹이 또한 내 등 뒤로 다가와 옷깃을 꽉 붙잡으며 내 말을 귀엽게 거들었다. 꼬맹이도 나처럼 두 사람이 불편 듯싶었다. 아니면 방금 키스를 못해서 짜증이 났거나...
“...지도도 못 보는 형씨를 두고 어떻게 가겠어. 그렇지 서서양?”
“네,넵! 끝까지 같이 가요”
내마음과는 다르게 아무래도 두 사람은 끝까지 따라올 생각인 듯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라 그래 마음대로 해. 대신 죽어도 모른다?”
“말했잖아 내가 오지랖이 좀 넓다고. 사서양도 언제까지고 형씨 뒤를 따라갈거야 그렇지?”
“네 맞아요 헤헤”
“...칫”
어깨를 으쓱인 경찰관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고 사서 또한 떨리는 손으로 도끼를 집어들었기에 나는 작게 신음을 토해내다 오토바이에서 짐을 챙겨들었다.
“...혹시 모르니까 근처에 누가 다가올 것 같으면 말 좀 해줄래?”
“...나만 믿어 주인”
군인들이 정말 우리를 보자마자 사격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꼬맹이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를 속삭이자. 꼬맹이는 자신만 믿으라는 듯 가슴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
주춤 주춤 내 뒤를 따라오는 경찰관과 사서를 무시한 채 바리케이드와 함정들로 가득 들어찬 도로를 한참을 나아가자 근처의 건물들과 달리 비교적 깨끗해 보이는 쇼핑몰이 보이기 시작했다.
“혹시 잘못 온 거 아니야? 군인은커녕 사람 그림자도 안보이잖아”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군인들이 진을 치고 있다고 했던 것과 달리 한산하기 그지없는 도로의 풍경에 내가 중얼거리자, 경찰관은 묵묵히 건물 꼭대기에 달린 건물의 간판을 가리켰다.
“여기가 확실해. 지도에서 봤던 위치랑, 설명에서 들었던 외관 그대로야....그리고 이런 촌스러운 이름의 마트가 세상에 또 있을 것 같아 형씨?”
“...그건 그러네 꼬맹아 근처에 누가 있는 것 같아?”
“....잘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으응 잘 모르겠어”
꼬맹이가 무언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와 동시에 어쩐지 무척이나 불길한 예감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기에 나는 가져온 쇠파이프와 권총을 움켜잡았다.
“일단 쇼핑몰 안으로 들어가서 상황파악부터 하는게 좋을 것 같은데...조심해 나나 꼬맹이도 몸은 하나니까 언제 총알이 날아들어서 죽을지 몰라 굳이 목숨걸고 따라올 필요는 절대 없으니까 지금이라도 돌아가.”
“내가 앞장설까? 형씨?”
“...내가 서지”
조심스럽게 멀쩡해 보이는 쇼핑몰의 현관을 지나자 끈적한 피가 사방에 흩뿌려진 어두컴컴한 복도가 우리를 반겼다.
“이거 전조가 안 좋은데...불도 안 들어오고 뭐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겠어”
딸깍하고 언제 가져왔는지 모를 후레쉬의 빛을 복도에 비춘 경찰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차라리 총알이라도 한발 쏴서..?!”
[쨍그랑..!]
“죄,죄송해요!”
“끄아아악!”
가벼운 농담을 하려던 경찰관의 말에 사서가 긴장했는지 가져온 도끼를 바닥에 떨어뜨리자 쇼핑몰 안에서 사람의 비명과도 같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뭔가 오고 있어”
“끄으윽 살...려줘”
꼬맹이가 가리킨 방향으로 권총의 총구를 겨누자, 내가 밟았던 탱탱 볼 같은 고깃덩어리가 온몸을 뒤덮은 남성이 반응할 틈도없이 좀비처럼 양손을 휘저으며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저리가”
옆에 있던 꼬맹이가 남성이 나를 덮치기 직전 그대로 배를 걷어차 무릎을 꿇린 후 주먹을 높이 치켜들었기에 나는 그 즉시 꼬맹이의 손을 붙잡았다.
“기다려 아직 말을 할 수 있는 것 같아”
“사,살려줘 끄으윽”
꼬맹이의 손에서 벗어나 바닥에 엎어진 그는 우리에게 달려들었던 것이 자신의 의지가 아닌 라는 듯 제발 살려달라며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진정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괴물, 괴물이 나타나서 우리를 전부 집어삼켰,크아악!”
[뿌드득]
“끄아아악!!”
완벽하게 반대로 꺾여버린 관절로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비틀 우리에게 다가오는 남성은 고통스러운지 입에서는 쉼 없이 비명을 내뱉었다.
“저,저기 아직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
“니마음도 이해하는데 절대 못 도와줄 것 같네”
사서의 발언에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권총을 들어 올려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기의 커다란 소음이 쇼핑몰 내부를 뒤흔들 듯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아무리 봐도 이미 늦었어 뭐라고 할 생각은 하지 마”
“...알고있어 형씨”
경찰관은 잠시 남성의 시체에서 뇌 조각과 함께 거무튀튀한 고깃덩어리가 뒤섞여나오는 것을 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 괴물이 너희한테도 이런 짓을 한 거냐? 머리에 알을 낳고 조종하는”
“우리한텐 이런 적 없었어...적어도 내가 알기엔 그래”
“저,저도 처음 봐요”
경찰관과 사서에게 이게 무슨 짓 아는지 묻자 두 사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빌어먹을 차라리 걸어 다니는 시체를 상대하는 게 훨씬 편할 것 같네... 미안한데 꼬맹아 방금처럼 뭐가 올 것 같으면 미리 말 좀 해줄래?”
“...응”
움찔거리는 남성의 시체를 쿡쿡 찔러보던 꼬맹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주어 주의를 돌리자 꼬맹이는 크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