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밝아온 아침
“콜록,콜록 이봐 형씨....형씨 빨리 일어나봐 지금 자고 있을 때가 아니라니까?”
걸걸한 목소리의 누군가가 내 어깨를 두드리는 감각에 천근같이 느껴지는 눈을 억지로 뜨자 어째선지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게 느껴지는 경찰관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괜찮은 거야? 두 사람한태 완전히 쥐어짜인 모양인데?”
“...몸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긴 하지만 어찌어찌 괜찮아. 왜 그러는데?”
“허, 도대체 얼마나 해댔길래 복도가 이 모양 이꼴이 된거야?”
“몰라...스무번 이후로는 안 샜는데”
비몽사몽한 나의 대답에 경찰관은 질린듯한 얼굴로 주변을 가리켰고 그곳에는 애액과 정액이 마르지 않은 채 벽이나 바닥에 그대로 눌러 붙어있었다.
“아니 무슨 사람이 20번 넘게 사정을 했는데....아아 됐다 됐어. 하여튼 간에 여기서 당장 나가자고 형씨. 밤꽃냄새 하며 시큼한 오줌냄새까지 여봐란듯이 사방으로 풀풀 풍기고 있잖아 조금만 더 시간이 지체 되면 좀비들이 사방에서 달려들겠어”
“....그래야겠네”
사실 오늘 아침 사서와 경찰관을 힘으로 때어내 도망칠 생각이었지만, 정력을 하도 쥐어짜 여서 그런지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 대충 고개를 끄덕이자 경찰관은 먼저 가서 준비를 하겠다며 계단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슬슬 너희도 일어나지그래?”
경찰관이 사라진 후 나는 양쪽 어깨에 자리를 잡고 잠들어있던 여성들을 각각 조심스럽게 흔들어 깨웠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에 정액을 덕지덕지 처바른 그녀들은 조금 전의 나처럼 억지로 눈을 뜨더니 마치 짠 것처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를 꽉 끌어안아 왔다.
“...정액 때문에 엄청나게 끈적거리니까 좀 떨어져,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주인 한번 더할까?”
“저,저도 한 번 더 하고 싶은데”
“내가 기어코 너희한테 짜여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하! 잘됐네 그 시간이면 좀비들이 몰려들어서 우리를 씹어먹을 테니 나 혼자는 안 죽겠어”
일어나마자마 또다시 나를 희생해 쾌락을 탐하려는 두 사람을 밀쳐내며 어젯밤 끝끝내 입지 못했던 옷을 입기 시작하자, 여성들 또한 아쉬운 표정으로 나에게서 겨우 떨어져 나가 밤에 흘렸던 애액과 정액으로 흠뻑 젖은 옷들을 억지로 입어나갔다.
◆
“에휴...이거 강가에라도 먼저 들려야 하는 거 아닌지 몰라. 군인들이 보면 속으로 엄청 욕하겠어”
초최한 몰골로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가자 트럭 앞에서 무기를 손에 쥔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경찰관이 헛웃음을 띄워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미안하게 됐어”
“사과는 됐으니까 일단 빨리 올라타 누구누구 씨들 덕분에 벌써 저쪽에는 이미 좀비들이 잔뜩 몰려들었다고 30분정도면 여기까지 몰려들거야”
“예입...”
경찰관의 재촉과 오늘따라 유독 따가운 햇볕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며 무거운 몸으로 트럭 짐칸에 올라타려던 도중 순간적으로 발을 헛디뎌 바닥에 성대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내가 뒤통수를 그대로 바닥에 찌여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내자,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이 웃음을 터트렸다.
“경찰관은 모르겠는데 너희들은 웃지 마라? 너희들 때문에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서 그런 거잖아”
“크흠. 안 되겠다 사서랑 꼬맹이는 뒤에 좀 타 너희 서방님은 좀 쉬어야겠어. 몰골이 말이 아니잖아”
“...응”
“죄,죄송해요”
한참을 킥킥거리던 경찰관이 손을 뻗어 나를 일으켜 새워주었고 한바탕 크게 거사를 치러 마음이 진정된 것인지, 아니면 그저 경찰관 앞이라 내숭을 부리는 것인지 얌전해진 꼬맹이와 사서는 아무런 반론도 하지 못한 채 내가 오르려던 트럭 짐칸으로 가볍게 몸을 실었다.
“그럼 가자고 형씨”
“....어제부터 내가 무슨 여자가 된 것 같네 빌어먹을”
경찰관의 도움으로 조수석에 오르자, 경찰관은 또다시 킥킥거리며 운전석에 올라 트럭을 몰기 시작했다. 오토바이와는 다른 묵직한 트럭의 배기음...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멋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고 있는 거야?”
“형씨, 처음 군인들을 발견했던 분들한테서 하루종일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걱정 마 이름이 아울라트였나? 엄청나게 촌스러운 이름이네 여기서 한 시간 정도면 금방 도착할걸?”
“그렇게 멀어? 지도로 봤을 때는 오토바이로 이동해도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도로 봤을 때는 꽤 가깝다고 생각한 거리였기에 놀라 되묻자 경찰관이 차를 출발 시키며 코웃음을 쳤다.
“지도는 볼 줄 알고 있는 거지? 실제 거리랑 지도로 보는 거랑은 완전히 달라, 옛날에는 내비게이션도 없어서...”
“그래,그래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만해”
“이것도 자동차가 있으니까 그런 거지 도보로 이동하면 좀비들이랑 약탈자들 변종들 때문에 며칠은 우습게 걸릴걸?”
다부진 근육을 뽐내듯 꿈틀거리며 내가 듣던지 말든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 가는 경찰관의 말들을 흘려들은 나는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려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랜만에 두통이 없이 일어났는데... 쉼없이 쏟아져오는 말들에 또다시 머리가 지끈거릴 것 같아 표정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봐 형씨 듣고 있는거야? 조수석에 앉았으면 대화라도 주고받아줘야지?”
“...아아 미안 뭐라고 했어?”
“형씨 몸.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 거냐고 ”
“....무슨말인지 모르겠는데?”
“썩어도 경찰관이었던 몸이니까 괜히 거짓말은 치지 말아주라? 어지간히 눈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형씨가 이상하다는 건 금방 눈치챈다고? 뭐,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좋지만”
경찰관은 농담이라도 건네는 것처럼 가볍게 말을 건넸음에도 나는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너나 범죄자나 어떻게 다들 그렇게 쉽게 눈치채는 거냐?”
“말했잖아 딱 봐도 눈치챈다고 수백 마리 좀비들 사이를 가볍게 왔다갔다하던 초인이. 어제는 좀비 열 마리도 제대로 상대를 못 했잖아? 게다가 나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상대해봤으니 대강 때려 맞출 수 있는 거지.”
“....그러냐?”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눈치채고 싶지 않은 건지 다행히 사서 양은 아직 눈치 못 챈 것 같긴 한데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할 거야.”
나는 잠시 경찰관의 대화를 잠시 중지한 뒤 담배를 입에 물고서 불을 붙여 크게 들이마셨다. 답답했던 마음이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잠깐의 위안을 주기에는 충분했고 창문을 열어 담배 연기를 내뱉자 시원한 공기가 손을 스쳐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왜? 내가 힘이 약해졌으니까 너도 그년처럼 나한테 복수하고 싶어? 너희랑 깡패들 억지로 싸움 붙였던 것 때문에? 아니면 대머리를 내손으로 죽여버려서? 꿈 깨 나도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
범죄자와 싸웠을 때보다 시간이 훨씬 지나 꼬맹이는 지금의 나, 아니 골골대던 예전의 나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다. 꼬맹이 뒤에 숨는다는 무척이나 꼴사나운 방법이었지만 더는 범죄자에게서 느꼈던 그 엿 같은 굴욕감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 만난 건지는 모르겠는데 범죄자 그년이 뭔가 했나 보네, 이야 그래도 그렇지 이거 은근히 상처받네? 미안한데 내가 그 대걸레 같은 범죄자랑 비슷해 보이는거야 형씨?”
“....그럼 뭔데”
“단순히 걱정돼서 따라온 거야, 처음엔 긴가민가했어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어제는 트럭에서 싸우는거 보니까 알겠더라 약하디약해진 기새하며 헉헉거리는 체력...힘은 아직 쓸만하겠다마는 그것만 가지고는 이 척박한 세상에서 얼마 못살지”
“...사서가 신경 쓰여서 따라온 건 아니고? 그럼 미안하네 나한태 개처럼 따먹어달라고 엉겨붙는 년인데 너한테는 관심도 없어서”
“아아? 형씨 진짜 사람보는눈 없네. 나도 사람이야 사람 당신을 그렇게나 보고 싶어서 상사병에 걸린 여자잖아 나도 그런 여자는 관심 없어 안 그래도 학교에 성비가 불균형해서 여자들을 골라잡을 수 있는데 왜 그런 짓을 해?”
“....”
쏘아 붙인게 무색하게도 경찰관은 그저 어깨를 한번 으쓱일뿐 아무런 반응도 하지않아 오히려 내가 할말이 없이지고 말았다.
“게다가 복도가 그렇게 엉망진창이 될 정도로 사랑을 나눈 걸 직접 목격한 시점에서 만약 사서 양에게 관심이 있었으면 당장 형씨한테 달려들었을걸? 사서 양도 형씨도 단순히 걱정돼서 따라온 거니까 오해하지 마 내가 워낙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여야지 으하하”
경찰관은 정면에 시성을 고정한 채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투박한 그렇지만 어딘지 모르게 신뢰감을 주는 미소. 나는 손에서 홀로 타들어 가고 있던 담배꽁초를 밖으로 던졌다.
“...그러냐? 그런데 그거 알아? 사기꾼들만 자기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거”
“그것도 그러네 그럼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조심해 형씨”
“....염병”
“아아 맞아 노래라도 들으면서 갈까? CD가 있던데”
경찰관은 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채 CD 재생기를 재생시켰다. 이름도 모를 영어가사로 시작되는 처음 들어보는 생소하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 조수석 잠깐이라도 잘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