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정체 2
꼬맹이가 기다린다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자, 순식간에 시야가 어두워지며 온 세상이 회전목마처럼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몸이 괴물처럼 변했다고 해도 정도라는 게 있을거 아니야? 무리는 하지 말라고 형씨, 부축해줄 테니까 기대”
“아니 괜찮으니까 신경쓰지마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이럴 때 필요한게 경찰관인거다 잔말말고 기대 형씨 이러다 밥시간이 다되도 여기서 밍기적 거리고 있겠어”
내가 또다시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는지 경찰관이 다급히 내곁으로 다가와 겨드랑이 사이에 몸을 욱여넣고는 강제로 나를 부축해 방 밖으로 빠져나왔다.
“후...이제야 살겠네”
때마침 지나가는 시원한 밤바람이 식은땀까지 흘리던 내 몸을 차갑게 식혀주며 정신을 찾게 도와주었다. 분명 건물 안인데 이런 찬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 걸까? 문뜩 의문이 들었지만 복도를 조금 나아가자 곧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방치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인지 폐허처럼 벽 곳곳에 금이 가거나 깨져있어 바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복도의 풍경...이거 지금보다 바람이 조금만 더 강하게 불어버리면 완전히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건물인데 잘도 이런 곳으로 들어올 생각을 다했네...
“푸핫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에 훤히 들어나네 형씨”
“...아무생각도 안 했다만?”
내가 묵묵히 복도를 걸어나가자 돌연 경찰관이 웃음을 터트렸다.
“말해두겠는데 꼬맹이가 이쪽으로 안내한 거다? 뭐랬더라? ‘...따라와’ 였던가? 나랑 사서 양이 뭐라고 반응 할 틈도 없이 앞장서서 걷는데 어찌나 당차 보이던지 그 대머리랑 싸우기 전에 형씨를 보는 것 같았어.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는데 눈에서 아주 불꽃이 튀었잖아 기억나지?”
“...그러냐?”
“이런세상이 아니였으면 당신은 나한태 붙잡혀서 취조실에 있었을거야”
경찰관은 장난스럽게 윙크를 했고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전에 봤을떄 보다 엄청나게 풀어져있네...그렇게 학교에서의 생활이 편했던 걸까?
“뭐, 그 이후에는 형씨가 깨어날 때까지 옆에서 계속 앉아있다가 가끔 주변을 경계하러 나가고 있어. 꼬맹이가 돌아오면 내가 나가고 나오면 내가 들어오고 뭐, 그런 식이었지 몇 시간동안 엄청나게 고생했으니까 알아둬”
“내 부탁을 착실하게 들어준 모양이네...”
“또 꼬맹이만 치하해주는거냐?”
“두사람다 고맙다고 나중에 보답하지”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게이한테서 꼬맹이가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던 초콜릿을 좀 얻어서 두사람에게 건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
도란도란 경찰관과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며 복도를 걷던 와중 무언가 작게 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달짝지근한 냄새가 풍겨왔다.
“사서양. 형씨가 일어...! ”
“아아...다행히다 깨어나지 않으실까봐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어, 나야 뭐...괜찮지 너는 좀 어때?”
“그건 제가 걱정해야 할 것 같은데...일단 이것 좀 드실래요 스프를 좀 만들어 봤어요”
우리가 들어간 방 한편에서 모닥불 앞에 앉아 냄비를 휘적이고 있던 사서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황급히 뒤를 돌아 우리를 바라보았고...순식간에 내 곁으로 달려와 입안에 음식을 욱여넣었다.
“이봐 반가운 건 알겠는데...!”
사서가 입안에 집어넣은 뜨거운 수프의 맛을 채 느끼기도 전에 뒤이어 등 뒤에서 느껴지는 커다란 충격에 그대로 바닥을 뒹굴고 말았다.
“...주인 괜찮아?”
“너도 괜찮은 모양이네 내가 자는동안 고생많았어”
“...응”
헤헤 하며 얼굴에 만면의 미소를 지은 채 나의 품 안쪽으로 들어오는 꼬맹이를 끌어안아 주자, 그 모습을 부러운 듯 물끄러미 보고 있던 사서가 수프를 바닥에 내팽개친 채 나에게 안겨들려 했다. 뭐라고 할까 엄청나게 필사적인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사서가 버려진 고양이처럼 보여 나도 모르게 한쪽 팔을 벌렸고 사서는 기쁨을 숨기지 못한 채 내 품 안으로 들어왔다.
“저기...숨막히거든 슬슬 두 사람 다 떨어져”
빈약하고 차가운 꼬맹이와는 달리, 방금까지 요리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뜨겁게까지 느껴지는 사서의 체온과 풍만한 가슴의 감촉이 내 몸에 깊숙이 얽혀들었고, 그에 대항하듯 꼬맹이 또한 나를 꽉 끌어안았다.
“하아...두사람다 기쁜 건 알겠는데 일단 진정하고 떨어지는 게 어때? 형씨가 힘들어하잖아”
여성특유의 달콤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면서 점점 숨이 막혀 괴로운 표정을 짓자 과열되어가는 우리들의 상황을 흥미로운 듯 지켜보던 경찰관이 한숨을 쉬며 두 사람을 말려주었고 그제야 두 사람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내 곁에서 떨어졌다.
“....방해야”
약간이지만 눈이 붉게 타오르는 꼬맹이의 눈동자에 놀란 나는 숨을 가다듬는 것조차 잊은 채 다급히 꼬맹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가 말리지 않으면 단숨에 사서의 모가지를 어린아이의 손목처럼 손쉽게 비틀어 죽일 것만 같았다.
“.....죄송해요”
“괜찮아 조금 숨이 막혔을 뿐이니까. 그렇지 꼬맹아?”
“...주인이 괜찮다면”
꼬맹이는 내가 머리를 쓰다듬는 감촉을 즐기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는 내 다리를 꽉 붙잡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또다시 울상이 된 사서... 그걸 즐기는 꼬맹이의 표정 분위기가 점점더 이상해질 것 같았다.
[꼬르륵]
“이런...미안하게 됐네 뭔가를 먹은 지 한참 지났거든”
경찰관이 배를 두드리더니 떨어진 그릇에 살짝 남아있는 수프를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고는 입맛을 다시며 냄비에 다가갔다.
[꾸르륵]
경찰관에 대응하듯 내 배에서 울리는 힘찬 뱃고동소리에 사서와 꼬맹이가 웃음을 지었다. 이거 또 빛이 생긴 것 같네...
“....일단 밥부터 먹을까?”
“...응”
“금방 준비할게요!”
사서가 모닥불 옆으로 달려가 경찰관 옆에 섰고 갖갖이 음식들이 줄지어 바닥에 놓여졌다. 아까 맛을 보지 못했던 수프에 뒤이어 어디서 났는지 모를 고기와 김치 심지어 쌀밥도 있었다.
“이게...뭐야?!”
놀랄수 밖에없었다. 고기? 쌀밥? 김치..? 이게 도대체 얼마 만에 먹는 제대로 된 음식일까? 입맛이 없던 나조차 절로 침이 고여 들어갔다.
“형씨가 떠난 뒤에 우리도 놀고만 있지 않았어 돼지랑 토끼를 찾아서 기르기 시작했고 쌀은 택배 트럭에서 한가득 쌓여있던 걸 발견했거든...뭐 김치는 팩으로 된 김치지만 먹을만해”
“대단하네...”
“대단해야지 가축들 찾는다고 생지랄을 했거든 채소로 대충 때운다고 해도 고기는 못 참잖아? 고기는.... 4명 정도 좀비한테 물려 죽고 3명은 변종한테 찢겨 죽었어 아까운 사람들이였는데”
경찰관은 어느새 자리를 잡고 앉아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빨리 가지 않으면 금세 전부 먹어치울 것 같은 속도...나는 꼬맹이를 잠시 내려다보았고 서로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맛보는 고기와 쌀밥의 맛에 절로 몸이 떨려왔다.
“아...맞아 이거 받아 형씨”
경찰관이 막무가내로 고기를 구워 입안으로 집어넣던 나에게 무언가를 던져주었다.
“...캔 맥주?”
“우리가 가져온 물자는 이걸로 끝이야 요리도구에 고기 쌀밥 김치 술... 나머지는 형씨 걸 얻어먹어야 해 일종의 뇌물이지”
“뇌물이 엄청나게 쌔네...그래서 어디까지 따라올 생각인 건데? 그 무지막지한 트럭까지 끌고 엄청난 속도로 우리 뒤를 쫓아왔잖아 그것 때문에 서로가 위험할뻔했어”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이쪽도 사서 양이 만족할 때까진 돌아갈 생각은 없어”
한치의 물러섬도없이 단호하게 말을 내뱉는 경찰관...경찰관의 박력이 여기서 들어났다.
“....끝까지 따라오겠다는 소리네 빌어먹을 이거먹고 바로 자리를 떠야겠어”
“그럼 하루종일 불침번을 서야겠구만 그래”
나는 맥주 캔의 뚜껑을 열어 고기와 함께 들이켰다. 시원하진 않았지만 맥주 특유의 감칠맛이 혀끝에 맴돌며 크아 하는 소리가 입에서 절로 토해졌다.
“도대체 왜 따라오려고 하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어. 거기에서 살면 편한게 잔뜩이잖아? 시간 때울 책도, 음식도 인력도 넘쳐나. 경찰관 당신도 거기서 중책인 것 같던데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는거야?”
“그런 건 하나도 필요 없어요”
그릇에 수프를 가득 담아 가져온 사서가 경찰관이 무언가 말을하기도 전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당신이 도서관에 와서 저는....다 죽어가던 저는 구원받았어요 저를 이끌어주셨어요. 저를 필요로 해주셨어요”
사서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다양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선망, 애정, 존경, 의존...
“....주인”
눈동자에 빨려 들어갈 것 같자 마찬가지로 옆에 있던 꼬맹이가 내 옷깃을 잡아당겨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저런 감정들은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저런 시선을 어떻게 견뎌냈더라?)”
“에이 형씨 오늘은 그냥 마시자고 서서양 당신도 받아”
“앗...감사합니다”
다운되었던 분위기에 경찰관이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었다. 고기와 술밥 거기에 더해진 진한 감자 맛이 나는 수프...오늘밤은 잔뜩 먹고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이녀석들을 어떻게 때어낼지 생각하는건 나중으로 미룰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