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정체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사서 때문에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어지저찌 오토바이를 트럭 짐칸에 무사히 실은 뒤 숨을 고르고 있자 뒤편에서 간간히 접근해 오던 한두마리의 좀비들이 갑작스럽게 수십. 수백 마리의 무리가 되어 하나의 물결처럼 일정하게 꿀렁거리며 순식간에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징그러워 죽겠군...경관 다 실었으니까 빨리 출발해! 갑자기 수십마리가 한꺼번에 몰려왔어 근처에 변종이나 뇌가 있을거야”
“빌어먹을 또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겐...이봐 형씨 엄청나게 흔들릴 테니까 꼬맹이랑 사서 양이 날아가지 않도록 꽉 붙잡아줘”
마음이 급해진 나는 다급히 트럭의 창문을 두드리며 운전석에 앉아있던 경찰관을 불렀고 경찰관또한 빽미러로 이광견을 봤는지 트럭은 그 즉시 좁은 길목을 빠르게 돌파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아아...”
길목에 가득 들어찬 시체나 쓰레기들 때문에 트럭이 미친 듯이 덜컹거려 엉덩이가 무척이나 아려왔지만, 지금은 그런걸 신경 쓸 틈이 없다는 듯 좀비 몇마리가 순식간에 튀어 올라 짐칸으로 난입하더니 굳어버린 피로 까맣게 번지다 못해 번들거리기까지 하는 이빨을 사납게 들이밀었다.
“저리 꺼져!”
[타-앙!]
나는 그 즉시 주머니에 들어있든 권총을 끄집어내 접근하던 녀석들을 향해 마구잡이로 사격을 가했고, 몸 이곳저곳에 구멍이 뚫려 썩어버린 피를 질질 내뿜던 녀석들의 몸은 이내 덜컹거리는 트럭의 충격에 못 이겨 밖으로 튕겨져나가 따라오던 녀석들에게 짓밟혀 곤죽이 되어버렸다.
“이봐!! 속도좀 더 올려봐 이대로 가다간 저 녀석들이 아주 배 터지게 포식하게 생겼어!”
“형씨 나도 그러고 싶은데 도로 상태가 엉망진창이걸 넘어서 완전히 쓰레기장 수준이라고! 이게 최대속도니까 조금만 더 버텨봐!”
이를꽉 깨문 나는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는 내 품에 안겨있던 여성들을 때어낸 뒤 쇠파이프를 들어 올려 짐칸으로 뛰어오르려던 한 녀석의 몸통을 후려갈겼다. 이대로 초장부터 탄약을 계속 소모하기만 해서는 그 씹어죽일 년놈들은 커녕 군인들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쓸 수 있는 패가 하나 줄어들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후우...씨발 별 고생을 다 한다 내가!!”
그 긴 거리를 달려왔음에도 지치지도 않는 것인지 또다시 짐칸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다른 좀비들의 머리를 시원하게 때려 부수자, 얼굴에 역한 피가 사방으로 튀어 시야를 새빨갛게 물들였다.
“보고 있냐 꼬맹이? 나도 아직 안 죽었다 이거야!”
“....멋져 주인”
“아아 정말 멋지세요!”
얼굴에 묻은 피만 대충 닦아내며 뒤에서 나를 지켜보던 여성들에게 웃어 보이자, 사서와 꼬맹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을 반짝거리며 나를 치켜세웠다. 나도 아직 쓸만하다. 이 하나의 사실이 내 마음에 불을 집혔다. 아직 할 수 있다. 아직...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위험해 주인!”
다시금 힘을 쥐어짜네 쇠파이프를 휘두르려던 순간, 뒤에 있던 꼬맹이가 뛰어와 나를 바닥에 눕혔고 뒤이어 기다란 팔 하나가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박혀 들어갔다. 만약 그대로 서있었다면 내 머리통 따위는 그대로 날아가 버릴듯한 충격에 나는 순간적으로 말을 잃고 말았다.
“이봐 괜찮은거야 형씨?!”
“키에에엑!”
아쉽다는 듯 울음소리를 내던 변종은 짐칸에 박힌 팔을 이용해 여유롭게 안으로 침입하더니 넘어져 당황하고있는 우리를 한번에 죽이려는듯 그 긴 팔을 하늘을 향해 쭉 들어 올렸다.
“이런 빌어먹을! 꽉잡아 형씨!!”
[투웅!]
“크아아아악!”
생각할 틈은 없었다. 나는 내 위에 있던 꼬맹이를 감싸듯 돌아누웠고 그와 동시에 어깨에 변종의 날카로운 팔이 어깨에 박혀 들어갔다. 때마침 경관이 트럭을 거칠게 몰아준 덕분에 다행히도 급소에는 빗나간 듯했지만 어깨 안쪽을 칼로 갉아 내는듯한 통증에 내 입에서는 저절로 비명이 새어나왔다.
“주인!”
“괘,괜찮으세요!”
“크윽 거기서 움직이지 마 너도 꼬맹이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나에게 보호받은 꼬맹이가 눈이 빨갛게 물들며 소리쳤고, 사서 또한 절망적인 눈빛으로 다급히 내 곁으로 달려오려 했지만, 나는 그녀들을 제지한채 몸을 억지로 일으켜 새워 어깨에 박힌 팔을 뽑아냈다.
“키에..?!”
어깨에 박혀있던 자랑하는 자신의 팔이 평범한 인간의 힘에 뽑혀 나온 게 의아한 듯 변종이 나에게 잡힌 팔에 힘을 더욱더 주워 움직이려 했지만, 이 정도의 힘 싸움으로 내가 질 리가 없었기에 변종의 추하게 썩어버린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왜? 이제 와서 그 썩어버린 뇌가 후회라도 하는 거냐 시체새끼야!”
“키에에에!”
나는 양손으로 팔을 붙잡아 전력을 다해 녀석을 트럭 밖으로 날려보냈다. 야구배트와는 비교조차 하지못할 묵직한 타격감과 함께 벽에 부딪힌 변종은 충격이 꽤 큰 듯 바닥을 몇바퀴 구르다 그대로 좀비들에게 굴러갔다.
“그아아!!”
볼링공에 맞은 볼링핀처럼 우르르 무너지는 수십마리의 좀비들을 바라보며 나는 가운데손가락을 올려주었다.
“홈런이라고! 꼴좋다 개새끼들아!! 주제를 알아야지 어디서...나랑... 꼬맹이를”
“...주인!”
내가 다리에 힘이 풀려 트럭에서 튕겨져나갈 위기에 처하자 꼬맹이가 다급히 내 곁으로 다가와 나를 붙잡아 주었다. 피가 많이 빠져나가서 그런지 차가워야만 할 꼬맹이의 체온이 무척이나 따뜻하게 느껴져 웃을 상황이 아님에도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때 꼬맹아 많이 멋있었지 않냐?”
“...응 역시 주인이 최고야”
꼬맹이 또한 내 얼굴을 보고는 미소 지었고 뒤이어 비틀거리면서도 어떻게든 내곁으로 다가온 사서만이 다급히 오토바이에서 의약품을 꺼내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 내 팔을 지혈하려 해주었다.
“피가...피가 안 멈춰요! 아저씨 이거 어떻게...”
“아아 괜찮으니까 내버려둬 내몸은 이런 거 침만 바르면 저절로 나아버리니까”
나는 기어가듯 트럭의 벽면에 기대어 메마른 기침을 토해냈다.
“야 꼬맹아 내가 오랜만에 너무 많이 움직여서 그런지 눈이 자꾸 감긴다”
“...주인”
“한숨 자고 일어날 테니까 나대신 주변좀 잘 지켜줘”
“자,잠들면 안 돼요! 수혈 수혈을...!”
“....응 지켜줄게. 주인”
시끄러운 주변의 소음을 자장가 삼아 나는 서서히 눈을 감았고 꼬맹이는 끝까지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내 의식이 끊기기 전까지 손을 꽉 붙잡아주었다.
“(어쩐지 좋은 꿈을 꿀 것 같네)”
◆
“콜록,콜록”
“어이 형씨 정신이 좀 들어?”
간신히 눈을 뜨자 머리에서 시끄러운 이명이 들리는 것을 넘어 심각한 두통이 찾아왔다. 뇌가 그대로 몸에서 뜯겨져 나와 송곳으로 후벼지고 있는듯한 역같은 통증, 나는 그 통증을 견디다 못해 머리를 바닥에 마구잡이로 들이박기 시작했다. 이런 고통을 느끼게 하는 뇌를 밖으로 끄집어 내고 싶었다. 불탄다 눈이 빙글 빙글 돈다. 죽고싶다.
“형씨! 형씨 정신 차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머리에서 피까지 줄줄 흘러내리자 기겁한 경찰관이 다급히 뛰어와 나를 말렸고 잠시 시간이 흘러 통증이 잦아들고 나서야 식은땀까지 줄줄 흘리던 나는 발버둥을 멈춘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아아 이제 괜찮으니까 놔줘”
“...또 상처가 늘었군 잠깐 기다려 붕대 감아줄 테니까”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애써 입을 열자 경관은 그제서야 나를 놓아주었고 잠시 내얼굴을 바라보다 고개를 가로젓고는 등 뒤에 있던 가방에서 붕대를 하나 꺼내 내 머리에 친절히 감아주었다.
“벌써 밤이야 형씨 지금 보초는 꼬맹이가 서고 있고 사서는 밥하고 있어”
“밤...이라고?”
“그래 그 뒤로 몇 시간이나 죽은 듯이 정신을 잃고 있었다니까? 차라리 우리 거점으로 되돌아갈까도 생각했는데. 꼬맹이가 결사 반대하더라 힘으로라도 여기에 남겠다던데?...자됐어 이제 움직여도 괜찮아”
“...고마워”
“푸핫 별말씀을 형씨가 우리 목숨을 구해준 게 몇 번인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몇번이랄 것도 없어 전부 대머리가 시켜서 한 거니까”
“그럼 죽은 대머리한테 술이라도 한병 가져다 줘야겠군 그 장소에 시체가 남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내가 멍하니 경찰관을 바라보자 경찰관은 다시금 웃음을 터트리더니 내가 다쳤던 어깨를 두드렸다.
“여전히 강한 재생력이긴한데, 상처가 완전히 나은 건 아닌 것 같더라 뼈도좀 상한 것 같고 평상시 대로 움직이는 건 좀 더 시간이 있어야 할 거야”
“...그거 말인데”
“엉?”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을 멈추었다. 내가 약해졌다고 이미 눈치채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의 나를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거지? 이 녀석도 다른 녀석들처럼 복수하지는 않을까?
“....아니야 아무것도”
“...싱겁기는 뭐,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것보다 슬슬 일어나 꼬맹이가 형씨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