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정신력
공포에 질려 움직이지 못하던 나는 범죄자가 할인점 안으로 사라지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꼴사납게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몸을 어떻게든 움직여 일어나려 해봤지만, 온몸이 옅게 떨려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기에, 아마 이 상태로 떨림이 멎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도대체 뭐냐고...”
몸을 가까스로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도록 드러누운 나는 얼굴 전체를 손으로 감싼 채 생각했다. 저년이 조금만 생각을 다르게 먹었어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눈에서 격렬하게 내비치던 살기, 나를 죽이기 위해 일말의 주저 없이 단호하게 행동하던 모습. 그것들 전부가 진심이었다.
저년이 이곳에 있는 한 더 이상 이 장소는 안전하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했다.
[불과 하루 전에 있었던 뇌와의 싸움도 이 정도로 압도적으로 흘러가지 않은 거 기억하지? 저년이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버릴 거야. 기억해 단 하루야 단 하루 만에 저년이 너를 따라잡았잖아 날이 갈수록 더 위험해]
“진정해 단지 환청일 뿐이야 생각하자…. 생각.... 앞으로 어떻게 해야 나랑 꼬맹이가 안전할 수 있을지”
쓰러진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머릿속에서만 울리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또다시 주저앉고 싶지 않다면 황급히 생각을 다른 쪽으로 돌려야만 한다. 나는 필사적으로 떨리는 손을 움직여 주머니에 들어있던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치익>
[이제 와서 노력해봤자 이미 너무 늦었어. 달라지는 건 없다고. 그 힘이 사라지면 너는 그저 시체로 뒤바뀌어 돌아다닐 뿐이잖아. 너자신이 잘알지 않아 넌 아무것도 아니야]
<틱, 치익>
라이터가 망가졌는지 좀처럼 불이 붙지 않았고 머릿속의 시끄러운 의문들과 환청들이 점점 피어올라 정상적인 사고를 방해했다.
[꼬맹이는커녕 이제는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잖아. 설령, 꼬맹이가 강해진다고 해도 끝까지 나를 지켜주려고 할까? 다시한번 잘 생각해봐 우리는 단지 계약, 성노예와 주인이라는 관계를 힘으로써 성립했을 뿐이잖아.]
“꼬맹이는 나를 버리지 않아 저번에도 확인했잖아. 성노예와 주인 관계는 끝났어 나를 사랑해 나만을 위해 살아가.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잖아”
화풀이라도 하는 것처럼 망가진 라이터와 입에물고있던 담배를 던져버린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조금씩 범죄자가 찔렀던 몸 곳곳이 쓰라렸고 머리는 어지러웠기에 정상적으로 생각할수 없었다.
[차라리 대머리가 했던 데로 감금하는 게 어때? 아파트로 가봤자 끽해야 몇 달이면 왕 노릇도 끝날 거야 그전에 준비해야지. 그래 대머리랑 같이 습격했던 중고차 판매장으로 가는 거야. 그 장소라면 숨기에도 안성맞춤이고 감금할 수 있는 장소도 갖추어져 있잖아. 오토바이로 조용히 움직이면 범죄자는커녕 다른사람도 눈치채지 못할거야]
지금 생각하는 것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인지 환청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지독하게 나를 옭아매는 말들이 쉴틈없이 쏟아졌고 난 그 생각들을 떨쳐내기 위해 계속해서 되뇌었다. 꼬맹이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힘이 없어도 내 곁에 있어 줄 것이다.
“우선 여기서 도망쳐야겠어”
...
“...으음”
생각을 정리하지 못해 혼란한 채로 그저 비틀비틀 방안으로 돌아온 나는 아직 잠에 취해 침대에 누워있던 꼬맹이를 꽉 끌어안았다.
“사랑해 난, 난 너만 있으면 돼 너도 그렇지?”
사랑한다는 달콤한 말만을 입에 담으며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속삭였다. 더 이상은 이 감정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내정신을 갉아 먹히고 싶지 않았다. 이 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 사이를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거야”
꼬맹이의 자비에 기대어 먹고사는 거지처럼 필사적으로 아직 잠에 취해있는 꼬맹이의 손을 억지로 붙잡아 일으켜 세워 마주 보자 눈을 뜬 꼬맹이가 작게 웃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감정을 제대로 들어낼수 있게 된걸까?
“당장 떠나야 해. 괜찮아?”
“....응”
아무런 의심 없이 눈을 비비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마주 잡아 주는 꼬맹이의 차가운 체온에 약간이나마 구원을 얻을수 있었다.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꼬맹이는 나를 위해 나는 꼬맹이를 위해 살아간다. 그저 그것만 있으면 된다. 꼬맹이는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진 힘이 없어지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가자”
꼬맹이의 손을 맞잡은 채 방을 나오자, 범죄자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사람 좋게 웃으며 가방 하나를 쥔 채 손을 흔들었다. 멎었던 떨림이 다시 시작되는 느낌에 저절로 표정이 굳어졌다.
“어쩐지 이른 시일 내에 떠날 것 같아서 어제 잠들기전에 미리 준비해 뒀거든 너도 좋지 꼬맹이? 길게는 며칠 아껴먹으면 한 달 정도는 충분할 거야 마지막 불꽃으로 우리 거점을 지켜줬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안 그래?”
“(그 유치한 도발부터 전부 생각하고 움직였던 건가? 한시라도 내가 여기서 나가기를 바라면서? 씨발 내 몸이 약해지고 있다는 건 언제부터 안거지?)”
감정을 억누른 채 나는 차갑게 거리를 좁혀오던 범죄자를 밀쳐낸 뒤 계단 쪽으로 걸어가려 했지만, 범죄자는 그런 나를 내버려 두지 않으려는 듯 내 어깨를 붙잡았다.
“됐으니까 받아 그러다 객사한다니까? 이제 그 치트같은 신체 능력도 별 의미 없어졌잖아? 앞으로는 음식 구하기도 힘들거야”
“...필요없으니 꺼져 우리끼리 충분해”
“흐음 나한테 패배한게 그렇게 충격이었어? 이렇게 꼬리 말고 도망칠 정도로?”
공포심과 두려움을 억누른 채 주먹을 크게 휘둘렀지만, 범죄자는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주먹을 피하더니 내지른 주먹에 가방끈을 걸어주었다.
“한방이라도 잘못 맞으면 나 같은 건 그냥 나가떨어지겠네. 뭐 맞춘다는 전제하의 이야기지아! 그래 생각났다 투우 같은 거네 투우 절대 맞지않는 투우라서 관격들도 시시해서 야유할 것 같지만 말이야”
“...씨발년 닥치고 꺼져 우린 떠날거다”
“그래? 그럼 잘 가 나중에 또 보자고 이건 빈말이 아니야~”
범죄자는 손을 휙휙 휘저으며 더 이상의 볼일은 없다는 듯 뒤를 돌아 우리와는 반대 방향으로 사라져 버렸고 나는 잠깐 손에 걸린 가방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며 등에 멨다. 더 이상 우리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은 움직임을 보자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귀찮은 관심을 가지던지, 아니면 철저하게 무시하는 건가. 죽음의 양자택일이네
“...역시 아직 힘이 있을 때 저년을 확실하게 죽여버렸어야했어”
“....안돼”
나도 모르게 나온 한마디에 손을 잡은 꼬맹이가 반응하더니 나를 잡아당겼다. 어제보다 더욱더 강해진 악력. 이 속도로 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보다 더 강해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럼 나는 어쩌면 좋을까?
“왜 안 되는 건데 저 씨발년이 나한테 한짓을...!!”
꼬맹이는 내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그저 멀뚱멀뚱 나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괜한 화풀이는 더 이상 꼬맹이에게 하지 않겠다고 했던 다짐을 떠올리며 억지로 말을 안으로 삼켰다.
“....그래 너만의 이유가 있겠지. 네가 내 곁에 있는 난 네가 원한다면 뭐든지 해줄 거야”
“....응”
살짝 미소 짓는 꼬맹이는 대답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끌고 가듯 앞장서며 쇼핑몰을 빠져나왔고 우리는 그렇게 아무런 인사도 없이 떠나게 되었다.
◆
“....미안하다 아침부터 이렇게 다짜고짜 끌고나와서”
아침 해가 떠올랐음에도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쓸쓸한 거리에 들어선 나는 손을 놓지 않아주는 꼬맹이에게 작게 사과를 건넸다.
“...으응?”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내 옆을 같이 걸어가던 꼬맹이가 생각지 못한 사과에 놀랐는지 나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널 똑바로 지켜주지 못했어. 정말로 너를 위한다면 진작에 억지로라도 떨어 뜨려뒀어야했는데”
“....”
“불안감에 삼켜진 거지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버림받을 것 같으니까. 한시라도 너랑 떨어지면 내 정신이 버티지 못하니까”
지금도 그렇다. 꼬맹이를 지켜준다고 말만 할 뿐,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었다. 그저 내 곁에서 떨어지지 못하게 붙들고만 있을 뿐. 그것이 위험한 행동임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으며 그게 맞다고 그게 올바르다고 나 자신에게 까지 거짓말을 해가는 내가 너무나도 추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네가 곁에 없으면 금세 무너져 버릴 거야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말아줘”
“....”
꼬맹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나를 바라보다 꽉 끌어안아 주었다. 땀과 피로 범벅진 내 모습에 아아랑곳하지 나와는 다르게 여전히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꼬맹이는 언제나 내 옆에 있어 주겠다는 의지가 마음 깊숙이 퍼져 들어왔다.
“고…. 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