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미쳐버린 딸쟁이와 도망(3)
“큰형님말씀 들었지 새끼들아?! 후딱 끝내고 술이나 한잔하자고”
“예엡!!”
명령을 받자마자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좀비에게 물려버린 동료들의 머리를 베어나가기 시작한 남성들의 눈동자는 동료를 죽여야한다는 고뇌로 인해 떨리기는커녕 오히려 즐거움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당하는 사람들조차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는 건가 하하...”
심지어는 동료에게 공격당해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조차 반항하기는커녕 평온한 얼굴로 무릎을 꿇고 앉아 담담하게 자신들의 상황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내가 미안하다고, 구해주셔서 고맙다고 말을 건네기도 전에 모든것이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졌다. 마치 축제처럼 좀비의 죽은 피와는 다른 새빨갛고 예쁜 혈액들이 사방으로 튀며 한 사람, 한사람 차례대로 자신들이 해치운 좀비들과 함께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목이 잘려 죽는 그 모습은, 마치 쓸모없어진 가축들이 도축되는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당연하게 진행되었기에 나도 모르게 구역질이 올라왔다.
“(...저 사람의 통제하에 있기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건가?)”
어떠한 종류의 믿음에서 비롯된 광기, 아니면 죽음보다 더한 공포가 있기에 성립되는 괴기한 인간 도축 장면에 할 말을 잃은채 멍한 표정으로 과자를 씹고 있던 대장 격의 남성을 바라보자 어째선지 남성은 나에게 더욱더 커다란 흥미가 생겼다는 듯 내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내 코앞까지 바짝 다가왔다.
“크하하하 이야 혹시나 했는데 벌써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잖아?! 터프한 성격과 잘 맞는 존나게 쩔어주는 몸이네”
가까이 다가온 남성은 내 몸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만지작 거리더니 상처부위에 멋대로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단순한 철과상 정도로 그친 상처이긴 했어도 변종의 뼛조각이 얕게 박혀있었던 곳이었기에 따끔한 통증이 머리끝까지 올라와 몸이 저절로 떨려왔다.
“...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대로 내 몸을 손대게 내버려 둔다면 상처 안으로까지 손가락을 집어넣을 기세인 남성에게서 조심스럽게 떨어진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건넸다. 도와준 건 고맙지만, 대머리보다 더 독해보이는 남성과는 더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다. 적으로서나 동료로서나 엮이면 더욱 머리가 아파올 것이 뻔했으니까
“감사 인사는 됐어! 너가 마음에 들어서 도와줬을 뿐이야... 아~ 그리고 죽은 애새끼들은 신경쓰지마 약하면 죽는 건 당연한 이치잖아? 그상태로 데리고 다녔어봤자 금방 죽었을걸? 크하하하”
남성은 별일 아니라는 듯 내 어깨를 두드리더니 바로 옆에서 목이 베어 죽은 동료였던 시체를 발로 걷어찼다.
“내가 미리미리 단련해놓으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고작 이 정도밖에 없는 좀비들 상대로 몇 명이나 물려서 뒤진 거야 어이가 없어서 짜증까지 나버리네~ 이런 새끼들을 동생이라고 끌고다녔으니 나도참 멍청했어”
“...”
“뭐 우중충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그래서 어때?”
“네?”
“우리랑 같이 가는 거 생각해봤어? 네가 자기 몫만 잘해준다면 진짜 내 옆에 항상 끼고 다녀줄 수도 있다고?”
남성의 행동에 내가 살짝 질린 표정을 지어 보이자 눈치챈 남성이 황급히 말을 돌리더니 나에게 악수를 청해왔다. 절대 거절할 리 없다는 듯한 거만한 표정이 정말 대머리와 판박이라 없던 혐오감마저 차오를 정도였다.
“제안은 정말 감사합니다만 사양하겠습니다.”
“흐음~ 솔직히 말해서 거절한다고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야 왜 그런지 물어봐도 되냐?”
남성은 잠깐잠깐 동안 웃던 얼굴 그대로 굳어져 버렸지만, 이내 나의 당당한 태도에 어깨를 으쓱이며 질문을 던졌다. 단순한 호기심에 물어봤을 뿐 다행히 마음이 상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존나 좆같은 곳이긴 해도 이미 속한 그룹이 있거든요”
“쩝 그러냐 이거 무지하게 아쉽게 됐네 엄청나게 좋은 동생 하나 얻을 기회였는데 말이야 이형을 먼저 만났어야 했는데 크하하하”
뜻밖에도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덕여주는 남성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보였기에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졌다.
“이렇게까지 도와주셨는데 거절해서 죄송합니다만 기다리고 있는 일행이 있기에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그래그래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찾아와라 숭원 고등학교라고 하는 곳인데 장소는...”
숭원고등학교…? 잠깐, 잠깐만 분명 배신자들이 살고 있었던 학교의 이름도 숭원고등학교였지않았나?
“잠깐만요 혹시 상대원 쪽에 있는 고등학교 말하는건가요?”
“오오 알고있는거냐? 거기 주변에 숭원고등학교는 거기밖에 없으니까 네가 말하는 장소가 맞을 거다 크하하하 이거 의외로 주변에 살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웃이잖아 이웃 친하게 지내자고”
대머리가 전에 말하길 배신자들이 살고 있던 학교는 자신이 속해있던 약탈 단이 점거했다고 했었다.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이 사람이... 대머리를 쫓아낸 약탈자들의 수장이라는 말인가?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대머리와 비슷한 사람이 그렇게 흔하지도 않을거고 처음봤을때부터 좆같은 감각있었으니...
“뭐야 표정이 갑자기 안 좋아졌는데? 아 혹시 우리가 이웃이라서 너희 그룹에 해코지할까 봐서 그러는 거냐? 크하하하 걱정하지 마 널 봐서 그렇게 급하지 않으면 내버려 둘 테니까”
발전기는 물론 조리시설부터 시작해 높은 담장이 둘러쳐져 있어 방어하기 수월한 지영,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거나 소통할 수 있는 무전기,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토지까지 모든것이 갖춰져 있는 완벽한 거점, 탐욕스럽기 그지없는 그 대머리라면 반드시 그곳을 점령하고 싶어 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무리에서 쫓겨났다는 개인적인 원한을 가지고 있으니 아마 100퍼센트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야야 걱정하지 말라니까? 뭐 계약서라도 써줄까? 한두번은 넘어가 주겠다고 크하하하”
“... 아니요. 잠시 피곤해서 멍때린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아아 하긴 확실히 피곤할만 하겠네 그 괴상한 고깃덩어리가 던지는 뼛조각을 피하면서 수십 마리의 좀비들에게 맨손으로 쫓겨 다녔으니 나라도 쉽지는 않았을꺼야...쯧 에라이 기분이다 이거라도 가지고 돌아가”
남성은 잠시 내 얼굴을 살펴보다 주머니에서 삼단봉을 하나 꺼내 나에게 던져 건네주었다.
“아무리 급해도 예비무기는 꼭 필요한 법이니까 말이야 휴대도 간편하고 내구성도 있는편이니까 그거라도 챙겨 다녀, 만난 기념으로 선물로 주도록 하마 우리 거점에는 그런 거 차고 넘치거까 크하하하”
“...그럼 염치 불과하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려~”
솔직히 말해서 남성과 엮이고 싶지도 않았고 무기도 경찰이 쓸 것 같은 단순한 삼단봉이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수천 배는 좋았기에 순순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럼 가봐 동생 꼭 다시보길 바래~”
“(내가 언제 당신 동생이 된건지는 모르겠는데 동생이라니...쯧 토악질이 올라올 것 같아)”
내가 무기를 손에 움켜쥐자 돌발행동이라도 할 것 같았는지 주변에 모여있던 남성들의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조금이라도 허튼 움직임을 보인다면 그대로 갈기갈기 찢길듯한 살기 어린 눈빛들 차라리 좀비들을 상대하게는 훨씬 더 안전할 것 같았다.
“야야 내 말 못 들었어? 됐으니까 그렇게 노려보지 말고 그냥 보내줘라! 동생들아 응~? 오랜만에 존나 마음에 드는 새끼라니까?! 눈깔부터 썩은 동태눈이잖아 나중에 너희 동생으로 들어올꺼야”
“죄송합니다. 큰형님!”
마음대로 지껄이면서 남성이 중재하려고 했지만 시선은 하나같이 적의가 심하게 느껴졌기에 언제라도 반격할수 있도록 채비를 한 후 천천히 남성들의 사이를 지나쳐 도서관으로 향했다.
“(저 사람과 만난걸 대머리한테는 말하지 않는 게 좋겠네)”
벌써부터 그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띄워 보이며 꼬치꼬치 캐물어오는 대머리의 모습이 그려졌기에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
다행히 남성들이 따라오지는 않는 것 같았고 좀비도 만나지 않았기에 무사히 도서관 앞까지 도착한 나는 삼단봉을 접으 뒷주머니에 쑤셔넣고 오토바이쪽으로 걸어갔다.
“...뭐야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냐?”
오토바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도서관 여성과 나를 보고 여전히 으르렁거리는 꼬맹이, 좀비들이 다시 올수도있는데 위험하게 뭐하는짓인가 싶어 손을 뻗어 여성과 꼬맹이의 머리를 차분하게 쓰다듬어주었다.
“오, 오시지 않을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나의 손길에 고개를 번쩍 들어올린 여성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인해 엉망 진창으로 망가져있었다.
“내가 말헀잖아 혼자라면 몇일이고 도망다닐 수 있다고”
“거짓말...온몸이 상처투성이잖아요”
“별거 아니..읍!”
여성의 갑작스럽게 몸을날려 몸통박치기를하며 나를 끌어안았고 힘이빠진 나는 그대로 너머져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었다.
“...컨디션이 이상했을뿐이야 원래라면 더강했다고”
분명 그랬다. 조금더 빨리 움직일수있었던 내몸이 느려지고 힘도 어쩐지 약해진듯한... 생각해보면 이여성과 만난후부터 이렇게 된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