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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화 미쳐버린 딸쟁이와 사서의 대화


“...그러냐?”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 듯 눈을 반짝거리는 여성의 모습에 커다란 부담감을 느낀 나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묵묵히 과자를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기껏 목숨을 걸고 구해준 자신을 강간한 정신병자, 좀비가 된 자신의 여자친구를 데리고 다니는 사이코패스... 뭐가 좋아서 이런 사람을 따라오고 싶다고 하는건지 모르겠네 고독에 미쳐버린 건가)” 멀리 떨어져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나는 나를 절대로 따라가지 않았을 것 같아 여성이 더욱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차라리 이 좆같은 세상에 혼자 살았으면 살았지 이딴 쓰레기를 따라간다니... 차라리 자살하고 말지 “어, 엄청 잘 드시네요 에헤헤 한 봉지 더 드릴까요?!” 내가 생각에 잠겨 잠시 대화가 끊기자, 여성은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조금 더 이어가고 싶었는지 나의 이곳저곳을 힐끔거리다 다 먹어가는 과자봉지를 보고 빼액 소리를 질렀다. “아, 뭐 준다면 고맙게 먹을게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가 고팠거든 이럴 줄 알았으면 억지로라도 먹고 올 걸 그랬어 하하” “네,넵! 여기요 빨리 드세요!” 봉지에 남아있던 과자를 입안에 전부 털어 넣고서 여성이 건네준 새 과자봉지를 받아 들자 여성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헤실헤실 웃음을 터트렸다. “(같이 간다고 계속 확답을 돌려주니 긴장이 풀린 걸까? 아니면 이 밝은 모습이 원래 성격이었던 걸까?)” 머릿속에 떠오른 작은 의문에 정신이 팔리자 다시금 나를 강간하듯 뚫어져라 쳐다보는 여성의 시선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떠들고 싶은건가 보네. “하아, 그리고 궁금한 거 있으면 눈치 보지 말고 그냥 물어봐 대답해줄 테니까 대화하고 싶은 거잖아?” “저기... 그게 그러니까 바이러스가 터지기전에 뭐... 하는 분이셨나요?” 여성은 고민하다 이내 내 말에 용기를 얻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이세상이 개판이 되기전에 어떤 사람이였나라?...음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이었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어 단순한 정신병이 있는 백수, 히키코모리 인간쓰레기 사람 한 명 구하지 못하는 구제 불능 모든걸 남탓으로 돌리는...아 미안 흥분했어” 내가 머릿속으로 말을 고르기도 전에 입이 먼저 움직여버리고 말았고, 내 대답을 들은 여성은 웃던 얼굴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 “... 그냥 자기혐오가 심할 뿐이니까 신경 쓰지 마, 평소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거든 지금 같은 상황이면 평범한거야” 내가 다급히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이미 간신히 풀어졌던 분위기가 더욱더 딱딱해져 버린 후였기에 조금만 더 생각하고 말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마음을 무겁게 짓눌러왔다. “(이제 정말 대화가 끊어져 버리겠네... 쯧 뭐 됐나 대화에 맞춰주는게 귀찮기도 했으니까)” “그, 그런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전부 먹어 치운 과자봉지를 내려놓자 묵묵히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던 여성이 갑작스럽게 내 곁으로 거리를 좁혀 다가오더니 눈까지 질끈 감은 채로 강하게 의견을 표출했다. “푸흣, 푸하하하” 자신이 내뱉었던 말 때문에 나에게 혼날 것을 걱정하는 것인지 귀엽게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부들부들 몸을 떠는 여성의 모습이 어쩐지 처음 만났던 꼬맹이 같아 보여 나도 모르게 여성의 머리에 손을 얹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네! 이런 건 좋지 않지 역시 꼬맹이 너밖에 없어 아하하” 내가 웃음까지 터트리며 순순히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여성은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벌렸다. “미안, 솔직히 말해서 감염되기 전 내 연인이랑 겹쳐 보일 때가 있어서 거리감을 재기 힘들어 풀어진다고 해야 하나 그러네...강간 그러니까 너랑 섹스할때도 그랬어” 정신을 차린 내가 다급히 웃음을 짓던 입을 가리고서 당황해하며 여성의 머리에서 손을 떼자 여성은 잠시 내 손이 있던 자리에 자신의 손을 얹더니 멍한 표정으로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내가 꼬맹이와 여성을 겹쳐보였을 때처럼 “어쨌든 난 도서관 좀 둘러보면서 나갈 때 쓸만한 물건들 좀 찾아볼 테니까 넌 쉬고 있어 체력도 안 좋아 보이는데 내일 밖에 있는 애새끼들 떨쳐내려면 존나 많이 뛰어야 할 테니까” “... 가, 같이 갈게요” 정말 좆같았던 환영을 본 이후라 마음이 약해져서 여성에게 기대듯 살갑게 군 나 자신을 마음속으로 타이르고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여성이 따뜻한 손길로 내 손을 붙잡아왔다. “해가 저물어서 어두워질 텐데 빨리 둘러 보는 것이 좋잖아요...? 가, 같이 갈게요” “... 그러냐 도와준다면 고맙지만” “고, 고마우면 빨리 가요! 시간이 얼마 없어요” 내 손을 잡아끄는 여성은 어쩐지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기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여성이 이끄는 대로 따라나섰다. “여, 여기는 창고인데 그 막대기 같은 기다란 건 같이 살던 사람들이 무기로 써서 남은 건 없어요 민우... 그러니까 저희 리더였던 사람이 처음으로 사람을 모으고 통솔했던 고, 곳이라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이상하네요” “여기는 매, 매점이에요! 민우가 식량은 엄청 많이 있으니 반드시 구조될 수 있다고 말했던 게 아, 아직도 기억나요” “채, 책이라도 쓸만하지 않을까요? 미,민우가 그랬는데 책도 무기로 쓸 수 있다고 했었어요” 텅 비어있는 창고, 매점의 물품들이 남아있던 공간, 책들이 쌓여있는 방들 등, 여성은 즐거운 듯 하나하나 설명해주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도움이 되기는커녕 나의 기분을 안 좋게 만들 뿐이었다. 나를 통해 추억을 되새기듯 한, 엿 같은 기분. 그래도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도 그녀를 통해 꼬맹이를 보고 있었기에... 그냥 서로가 서로를 통해 원하는 인물을 투영할 뿐인 불쌍한 관계가 되어버린 느낌. “여, 여기에 여자친구분을 묶어뒀어요 들어가 보세요” 상념에 빠져있던 나를 끌고 여성이 간 곳은 꼬맹이가 묶여있는 장소였다. “그어어...” 마치 밖에 있는 동료들에게 무언가 말을 하는 듯 그르렁거리는 꼬맹이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나는 천천히 여성의 손을 놓고서 꼬맹이에게 다가가 끌어안았다. “미안 꼬맹아 한순간이라곤 해도 너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말았어 하하... 완전 미친 거지 용서하지 말고 나중에 한 대 후려갈겨도 이해할게” “저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여자친구분에 대한 말 좀 해주실래요?” 여성은 그런 나를 무척이나 슬픈 눈으로 바라보다 위로라도 하고 싶었는지 조심스럽게 나의 등을 살짝 두드려주었다. “하하 위로해주려는 거라면 됐어 남에게 말해줄 정도로 깨끗하게 만난 게 아니거든.” 나는 의존적으로 꼬맹이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건강했던 꼬맹이의 얼굴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어째선지... 꼬맹이의 얼굴이 희미해져가는 느낌에 소름이 돋아나며 마음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그, 그래도 말한다면 편해지실 거예요” 단순한 호기심으로 물어오는 걸까? 순간적으로 머리에 열이 올랐다. “내가 됐다고 하지않았어? 상담사라도 되는 듯이 말하네? 응?” “... 죄, 죄송합니다 너,너무 파고들어서 화내지 마세요...버,버리지 말아주세요” 나의 날이 선 한마디에 곧바로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해오는 여성. 나는 천천히 심호흡하며 답답하던 마음을 진정시켰다. “미안 짜증 내서... 그래 너의 말도 일리가 있어 누군가에게 말하면 편해질 수도 있겠지” “네, 네?” “푸후... 그렇게 놀라지마, 네가 꼬맹이랑 겹쳐 보이는 때가 있는데 그때면 난 엄청나게 물러지거든.” 나는 담배를 한 대 태우며 꼬맹이를 품안에서 놓아주었다. 솔직히 말해서 방금 꼬맹이와 여성이 겹쳐 보이지 않았다면 나는 답답하던 마음을 주최하지 못해 폭발했을지도 몰랐을 것 같았다. “어디부터 말할까... 그래 [음식을 주는 대신 그만큼 내 성욕을 처리해준다] 나랑 꼬맹이가 처음 만났을 때 우리가 맨 처음 나누었던 계약이야.” 나는 마치 오래전 일처럼 느껴지는 일들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 여성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집에 식량이 간당간당하던 때 나를 만난 꼬맹이는 고민하다 받아들였는데... 난 그걸 이용해서 내 추악한 성욕들을 풀어내고 말았거든 심각한 자위중독이었는데 한 번도 섹스하지 못하고 죽는 건 엄청 억울해서 미쳐있었지” “아하하...” 여성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어색한 웃음을 띄워 보였다. “그런데 말이야... 그런데 꼬맹이는 그런 한심한 나를 끌어안아주었어 내 과거를 듣고 공감도해주고 나를 지탱해주었어 진심으로 말이야. 하하” 떨리는 손에서 담배가 떨어졌다. 어째서 얼굴이 떠오르지 않지? 그 미소가 보이지 않는거지? “우리는 행복했어 비록 비뚤어진 관계에서부터 시작된 사랑이였지만 우리는 행복했어 꼬맹이는 나를 지탱하고 나는 나를 지탱해주는 꼬맹이를 지키고 보호하고 음식을 찾아내고...진짜 행복했어 그 엿같은 배신자 새끼들이 배신하기 전까지 말이야” 이제 설명이라기보다는 그저 나에게 하는 물음들이 입밖으로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 배신자 새끼들, 그새끼들만 아니였어도 나는 이런 세상이여도 행복했을거야 그렇지?” “지,진정하세요” “아...고맙다 또 흥분할뻔 했어... 요즘들어 감정컨트롤이 힘들어졌거든 화가나고 배신감을 느끼고 이것도 정신병이 심해진 영향이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바이러스의 영향이거나. 나는 애써 뒷말을 삼키며 여성의 부축을 받으며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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