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89화
89.
“지섭씨 식사하세요~”
제수씨의 깨우는 소리에 난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어제 일이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그게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는지, 아니면 꿈속에서 있었던 일이었는지 기억이 몽롱했다.
차라리 꿈속에서 있었던 일이었으면 좋겠건만,
내 팬티에 젖은 것이 없는 것으로 보아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음이 분명했다.
난 이러한 어색한 감정 속에서 방에서 나왔다.
“어이~ 잘 잤어?”
철우가... 아무것도 모르는 철우가 나에게 아주 반갑게 인사를 했다.
“어어... 나 화장실 좀...”
난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어서 바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화장실에서 난 얼굴을 씻으며 이 분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고민했다.
하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저... 그냥.... 이렇게 넘어가는 수밖에는 없어 보였다.
난 얼굴을 대충 씻고 입을 헹구고 나서 화장실을 나와 식탁에 앉았다.
“지섭씨는 잘못잤나 봐요. 얼굴이 엉망이네요.”
제수씨는 내 마음도 모른 채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밝은 모습으로 나에게 말했다.
어떻게 저렇게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지 대단했다.
아니면... 혹시...
어제 술 김에 한 행동이라 필름이 완전히 끊겨서 기억이 안 나는 것인가?
아... 그럼 정말 다행이다.
술 김에 그런 거라면 나도 이해할 수 있다.
뭐... 그런 거지 않나?
철우는 다른 여자를 아예 대놓고 사귀기도 하는데,
제수씨가 그 정도 실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난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안 하게 하고,
친구 얼굴을 자연스럽게 보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제 나오기 전에 꽤 마셔서 그런 거 같은데?”
“응. 그런 거 같다.”
“어제 이야기 한 거....”
“응?”
“내 마누라가 너 따라가는 거 말이야.”
“아! 응. 말해”
“잘 부탁한다고...”
“음...”
“너랑 가면 왠지 마누라가 좋은 결과를 가져올 거 같아서 말이야.”
“휴... 내 의견 따위는 없는 거냐?”
“응.”
“알았다. 설득하는 거 포기했다. 제수씨도 알아서 하세요.”
난 제수씨 얼굴을 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 오늘 준비해야 되지 않아요?”
“그래야 될 것 같아요. 완전히 제로 상태에서 준비해야 해서 준비할 것이 꽤 많을 것 같아요. 당일치기면 별로 없는데... 아무래도 꽤 오래 갈 생각이라... 아!”
“왜요?”
“제수씨, 그럼. 저랑 내일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건 어때요?”
“예? 당일치기요?”
“예. 준비할 것도 적고, 그리고 고생도 좀 덜하구요. 하지만 하루 종일 걸을 수 있는 곳을 알아볼게요. 아니면 새벽에 출발해서 밤늦게까지 걸어서 오는 곳도 좋구요.”
“지섭씨는 그걸로 돼요?”
“아... 전 뭐 부족하면 다시 또 가면 되죠.”
“아니요. 전 부족하다구요. 예를 들어 순례자의 길이 당일치기로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사람들에게 그렇게 유명해졌을까요? 오랫동안, 며칠 동안 걸어가면서 느끼는 그러한 감동이 있으니 그렇게 유명한 거 아닐까요?”
“아...”
“저랑 그렇게 가기 싫으시면 더 조르지 않을게요. 저만 따로 갈게요.”
“아! 아닙니다. 같이 가시죠. 저는 좋죠. 그런데 너무 고생할까 봐요.”
“고생하러 가는 겁니다. 정말로요. 나중에 몸이 지쳐 머릿속이 하얗게 될 때까지 걸었으면 좋겠어요.”
“아... 그 정도 생각이라면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절대 그 이야기는 두 번 다시 꺼내지 않을게요. 무조건 간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철우 너도 이제부터는 절대 반대하지 마.”
“어? 난 어제부터 반대 안 했는데?”
“어. 그래~”
“풉...”
“풉...”
부부가 쌍으로 날 놀리는데 재미가 들었다.
웃긴 부부들이다.
저렇게 손발이 잘 맞는 부부도 문제가 생기는 것에 대해서 허탈해졌다.
부부라는 것. 같이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럼 지금부터 어떻게 할 거냐?”
“일단 오늘 오전에는 좀 쉬어야 할 것 같아.”
“어디서? 쉴 때 없으면 우리 집에서 쉬어.”
“아니 사우나 좀 가려고...”
아... 여기서 제수씨와 같이 있는 곳에서 쉬고 싶지 않았다.
“아... 너 사우나 좋아하지? 알았다. 그럼 내가 가는 길에 내가 다니는 사우나에 내려줄게.”
“어? 그래도 되나?”
“응. 오늘 늦게 간다고 연락해 놨다. 그리고 마누라가 거기로 시간 정해서 나중에 데리러 가면 되지 않겠냐?”
“그거 좋은 생각이네. 지섭씨 제가 거기로 데리러 갈게요.”
“그래요. 그럼...”
“오후 1시 정도 데리러 갈게요. 점심 먹고 쇼핑하러 가면 되죠.”
“예. 시간 맞춰서 나올게요.”
난 그의 차를 타고 사우나로 출발했다.
“나 솔직히... 너랑 내 마누라가 그렇게 된다고 해도... 난 괜찮다.”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아니... 혹시나 그런 상황이 혹시나 왔는데, 나 때문에 못 하지는 말라고.”
“휴... 너 좀 맞자.”
“야! 나 운전 중이야.”
솔직히 이렇게 농담으로 넘겼지만,
그의 말은 난 복잡한 머릿속의 문제에 대한 해답, 아니 위안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녀와 섹스를 하더라도 남편이 괜찮다고 하는 거...
참. 미국식 같은 발상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괜찮다는 말에 이상하게 마음의 부담감이 덜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가 데려다준 곳은 찜질방과 같이 하는 사우나였다.
꽤 고급스러워 보였고, 가격도 매우 고급스러웠다.
평상시 같으면 절대 오지 않을 그러한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집을 나오는 것이 제일 급선무였기 때문에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난 결재를 하고 사우나를 들어갔다.
몸을 씻고 찜질방 옷으로 갈아입은 뒤 찜질방으로 갔다.
자리를 잡고 나서 난 휴대폰으로 내가 가려고 했던 산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제일 긴 코스가 거의 60여 킬로 정도 되었다.
시간당 3km 정도 잡으면 딱 맞을 것 같았다.
제수씨에게는 좀 무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정 안 되면 2일차에 마을로 빠져나오면 될 것 같아 그 코스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첫째 날이 제일 문제였다.
숙소가 어중간 했다.
정말 비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산은 생각보다 빨리 어두워진다.
1일차 코스가 끝나는 지점이 산 정상 쪽이라 내려오지도 못한다.
무조건 대피소까지 걸어야 하는데...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일단 준비만 잘해 간다면 죽을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그녀는 고생하러 가는 것이기에 설령 비박을 한다고 해도 별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산 짐승이야. 뭐... 없겠지...’
그렇게 믿었다.
그래도 계획대로 간다면 대피소까지 갈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보통의 여자들과는 확실히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갈 수 있을 것이다.
난 계획 수립을 마치고 잠을 잤다.
오늘은 어쩌면 내일 보다 더 힘든 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자와 쇼핑이라...
힘든 날이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난 정신을 잃어갔다.
* * *
핸드폰 알람 소리에 눈이 떠졌다.
이제 내일을 위해서 준비해야 할 시간이며,
음... 여자와 쇼핑을 해야 하는 엄청난 시간이 도래되고 있었다.
휴...
아무튼 제수씨는 그렇게 힘든 쇼핑의 시간을 만들지 않을 거라 기대하며 난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여기예요~”
차 옆에서 손을 흔드는 제수씨를 보았다.
청바지의 티처럼 정말 평범하게 입고 있었어도 그녀의 몸매는 정말 늘씬했다.
건강하게 늘씬한 스타일...
결코 허벅지가 얇지도 않고, 체격이 아기자기 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 고유의 건강한 섹시미가 흘러넘치는 건 그냥 보고만 있어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 철우 같이 눈이 높은 놈도 한눈에 반해서 쫓아 다녔지 않겠는가?
그런데...
저 여자가 어제 내 자지를 빨아 준 것이다.
내 자지를 입안 깊이 넣은 것도 모자라 목구멍까지 집어넣은 것이다.
윽... 어제 생각에 또 물건이 슬슬 힘을 받기 시작했다.
아... 여기서는 그러면 안 된다.
난 더 이상의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서 고개를 흔들어 어제의 생각을 떨쳐 냈다.
“오래 기다렸어요?”
“아, 아니요. 어떻게 와서 주차하자마자 지섭씨가 나오더라구요.”
“아... 다행이네요. 안기다리게 만들어서요. 출발할까요?”
“예!”
난 그녀의 차에 탔다.
그녀의 차는 그녀의 스타일을 반영하듯 고급 수입 SUV였다.
뭔가 강하고 웅장하게 생긴 차였다.
만약 내 차가 옆에 있었다면, 부모와 자식 같은 모습이 될 것 같은 정도의 크기 차이를 보였다.
“음... 캠핑 용품 전문점이나 등산 용품 전문점으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예! 좋아요. 그런데 어디 아시는데 있으세요?”
“설마요. 일단 인터넷으로 주변 검색 한번 해 보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제가 해볼게요. 제가 이래 보여도 검색의 여왕이거든요. 호호홋.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예. 알겠습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가 검색하는 시간을 멍하니 보냈다.
생각이라는 것을 시작하자 별의 별생각이 다 떠오르기 시작했지만,
이런 것들 중 복잡하고 심각한 생각은 내일부터 하는 것으로 미뤄두고,
오늘은 단순한 생각만 하기로 했다.
일단 밑집 여자에게는 어떻게, 뭐라고 말하지?
뭐... 굳이 여자와 같이 간다는 말까지는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긁어서 부스럼을 굳이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냥 한 3일 정도 산으로 간다고만 하면 될 것 같은 생각이다.
“여기 어때요?”
그녀는 나에게 자신이 찾은 것을 보여 주었다.
거긴 아울렛 매장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오오. 좋은데요? 이런 곳에 가면 한 번에 모든 것을 살 수 있으니 좋은 것 같네요. 대충 봐도 등산 매장도 있고, 캠핑 매장도 있네요.”
“예. 저도 그래서 말한 거예요. 괜찮죠?”
“괜찮은 정도라가 아니라 지금에서는 최고의 선택인 거 같은데요?”
“그럼 출발할게요.”
“옙!”
그녀가 차를 몰았다.
그 차자는 겉으로는 엄청난 크기의 짐승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내부는 상당히 부드러운 애완동물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늑하고 편안 했다.
차에서 나는 소리도 안나는 것은 당연하였고,
심지어는 밖에서 나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왜 돈 있는 사람이 크고 비싼 차를 타는지 또 하나의 이유를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차에 대해서 감탄을 연발하고, 또한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목적지까지 갔다.
그녀는 어제 일은 물론이고, 남편과 관련된 무거운 이야기도 전혀 하지 않고, 잔잔한 잡담만 하였다.
난 그녀의 배려가 좋았다.
안 그래도 내일부터 이 여자와 같이 다녀야 하는데 불편해지는 것은 너무 싫었고,
그런 불편을 겪어야 한다는 생각만 하였는데,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분명히 그녀에게도 못을 박았는데, 난 여행 중에 이 여자를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벌써 무슨 상담 하듯이 무거운 이야기를 꺼낸다면 내가 어떻겠는가?
다행히 그녀 역시 이러한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 이러한 모습만으로도 이번 여행이 적어도 불편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 되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을 잊어서는 않되는 것이다.
이 여자와 놀러 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 여자는 자기 처지에 대해서 고민하러 가는 것이고,
난...
난... 어떻게 나쁜 짓을 할까 고민하러 가는 것이다.
난 쓰레기다.
쓰레기...
장모와 섹스하고, 그녀의 집안에 해코지하려고 하며, 이웃집 여자의 자매와 섹스하고, 제일 친한 친구 부인에게 오럴을 받는 쓰레기다.
그냥 미친 쓰레기다...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차는 아울렛에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