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87화
87.
“스와핑이요?”
“예... 스와핑이요.”
“글쎄요... 거기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음... 그럼 이렇게 물어볼게요. 우리 나이 이상 되는 경우에 아직도 뜨겁고 정열적인 사랑을 하는 부부가 있나요?”
“......”
“뭐. 물론 찾으면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대부분 그렇지는 못하죠. 그게 우리 나이가 그러한 사랑을 못 한다가 아니라. 부부가 그렇다는 거죠. 부부라는 것은 단순히 남녀 관계 이상이니까요.”
“남녀 관계 이상?”
“그렇죠. 서로 섹스하는 거 말고도 중요한 것이 훨씬 많죠. 지혜 씨만 해도 그렇죠. 철우 회사 얼마나 고생해서 같이 일궜죠. 그리고 애도 키웠죠...”
“그렇죠.”
“그사이 얼마나 다투기도하고, 의견 대립도 있었고... 그러다가 여기까지 온 거죠. 맞죠?”
“그렇죠.”
“그러니까요. 부부는 섹스라는 거로 설명할 수 없는 관계라는 거죠.”
“......”
“물론 육체적인 관계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 제가 처음에 스와핑에 대해서 물었을 때 바로 육체적인 관계가 중요하냐 의미로 물었던 거예요. 스와핑이라는 것이 부부가 육체적인 새로움을 얻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요.”
“그냥 단순히 다른 사람과 섹스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닐까요?”
“물론 그렇죠. 그게 제일 크겠죠. 그걸 부정할 수는 없겠죠.”
“그런데 무슨 부부끼리의 새로움이요?”
“그게 새로움이죠... 스와핑을 나쁘게 즐기는 사람도 많겠지만, 서로의 부부 관계를 더 친밀하게 하려는 의도로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더라구요.”
“......”
“전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해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자극받기 위해서 하는 거. 두 번째가 결국 하다 보면 이놈저놈, 또는 이년저년 다 똑같다는 거.”
“풉... 말 되네요.”
“그러니깐 새로움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예전 것이 소중하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아닐까 하구요. 물론 제가 좀 억지스럽게 말한 부분도 있기는 하고, 술 때문에 횡설수설한 것도 있지만, 아무튼 말하고 싶은 것은요.”
“스와핑을 하라~”
“아놔. 아니죠. 지혜 씨도 술 많이 먹더니 취했나 보네...”
“풉... 저도 아재 같은 농담 해봤어요.”
“큭큭큭... 아무튼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육체적인 관계는 부부 사이의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그러니 그 육체적인 부분만 따로 떼서 생각하면 좋겠다 예요.”
“따로 생각하라?”
“지혜 씨가 지금 철우랑 문제 있는 것이 혹시 육체적인 거 말고 또 있나요?”
“없죠... 솔직히 여기까지 오기가 힘들었던 거지. 이제는 정말 편안한 거죠. 그러다가 그이가 이상한 소리를 해서 이 사달이 난 거고...”
“그러니까요. 결국 육체적인 것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면 좋겠다는 말이에요. 그러니 그 부분만 두고 부부끼리 어느 정도 합의점을 맞추면 어떨까 하는 생각인 거죠.”
“합의점...”
“뭐 선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스와핑을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또 서로의 애인을 따로 만들 수도 있겠죠. 또 그런 거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하면 그냥 관계를 안 하고 살 수도 있는 거죠. 다만, 그걸로 인하여 서로 모든 것을 매도하고, 공격해서 서로 상처 주는 행위를 안 하고, 가정이 파탄나지는 않았으면 한다는 것죠.”
“음... 지섭씨가 어떤 의미로 하는 말인지는 이해는 돼요. 하지만...”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지는 감이 왔다.
“신뢰 문제를 말하려는 거죠?”
“예. 그렇죠.”
“그 부분이 제일 중요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이걸 들먹이면 싸움 밖에는 답이 없어 보여요.”
“휴... 그렇죠....”
“정말 중요한 거지만,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죄송하네요. 이렇게밖에 말을 못해서...”
“아니에요. 솔직히 지섭씨가 말해 주니 머릿속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확실하게 와닿네요.”
“아무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 부분은 덮어야 한다는 게, 그리고 섹스 부분만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제 논리예요.”
“풉... 말도 안 되는 논리.”
“이제 한잔할까요? 아름다운 제수씨?”
“풉... 오늘 무슨 그이 사주받고 온 거예요?”
“아... 들킨 건가?”
“풉... 진짜 아재같아.”
“아...”
분위기가 확실하게 누그러졌다.
난 화장실을 핑계로 철우에게 문자를 했다.
-와라. 이제 니가 등장해야 한다.
-알았다. 금방 갈게. 근처다.
철우는 내 문자를 기다린 사람처럼 바로 답장이 왔다.
“우와. 오줌보 터지는 줄~”
“풉... 진짜 오늘 너무 무리해가면서 저 웃기려고 노력하는 거 같아요.”
분위기는 많이 좋아졌고, 우리는 쓸데없는 아재 개그 및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안주와 술을 먹었다.
어느덧 음식은 달라진 것이 없지만, 명칭이 식사에서 안주로 변했을 만큼 이제는 술에 초점이 맞춰졌다.
-삑삑삑삑 뚜루루~
“아. 왔나 보네.”
내가 정말 반가운 마음에 말이 먼저 나왔다.
“어이~ 내가 너무 늦었지. 미안~”
“늦은 거는 알고 있냐?”
“아이~ 미안 미안~”
철우는 꽤 편안 복장으로 출퇴근을 하는지라,
옷을 갈아입지 않고, 바로 우리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무슨 이야기 중이었어?”
“스와핑!”
“어... 어?”
철우가 물어보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바로 대답했고, 철우는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니가 그렇게 쳐다봐도 어쩔 수 없다. 사실이다.”
“풉~ 지섭씨 때문에 화도 못내겠잖아요.”
“다행이네요. 지금 두 분이 싸우면 전 갈 때가 없어요. 집도 못 가요.”
“응? 왜요?”
“아~ 철우가 이야기 안했구나? 제 집 화장실 공사 중입니다.”
“엥? 화장실 공사하는데 왜 못 갈 정도야?”
“그게 화장실을 크게 공사하다 보니 거실부터 주방까지 완전 초토화야.”
“아아.. 그렇구나. 그럼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고 가면 되겠네.”
“싫은데? 이런 분위기 싫다.”
“어머. 지섭씨 가고 나면 그럼 우리는 완전 폭발할지도 모르는데, 가실거예요?”
“아... 보통은 손님이 오면 부인쪽이 더 싫어하지 않나요?”
“다른 손님이면 그렇죠. 그런데 지섭씨면 뭐... 하루 아니 몇 달? 아니 계속 사셔도 돼요.”
“우리 마누라는 지섭이는 그냥 패스인 거 같아.”
“예전부터 봐 왔는데 당연하죠. 당신 같지 않잖아요?”
아... 말에 가시가 가득 들어 있다.
“어... 어... 지섭아 그럼 넌 화장실 공사간에 어디 있냐?”
“나? 글쎄다.”
“우리 사무실에 있어. 어때?”
“내가 거길 왜 가?”
“그래요. 지섭씨가 거길 왜 가요? 참 당신도 이상한 사람이네.”
“어... 그런가?”
“씻기도 힘들고 밥도 못 먹으면 여기 계속 있어요. 그래도 돼요. 정말 예의상 하는 말 아니에요.”
“음... 두 분은 절 좋아하시지만, 전 두 분이 싫습니다. 왜 제 의견은 안 물어보시는 거죠?”
“풉~”
“아놔~”
두 명이 웃었다.
일단 가시 돋친 말들이 없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불편해서 싫어. 나도 편하게 있고 싶어.”
“하긴 넌 그런 놈이지. 그런데 아까 스와핑 이야기는 뭐야?”
“아~ 그게 문제 많은 너를 대변해 주다가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릴 한 거야.”
“우리 부부 스와핑 하라고 한 거야?”
“미친~ 저리니 욕을 벌지.”
“그러니까요. 꼭 욕을 먹으려고 노력하는 사람 같아요.”
“와... 나만 바보되네...”
“그럼. 너만 바보 돼야지.”
“알았다. 알았어. 좋아. 오늘은 완전 바보되어 준다.”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어차피 셋 다 아는 이야기니 그냥 이야기할게. 너 제수씨와 관계가 없다고 한 거를 분리해서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부탁드린 거야. 제수씨한테...”
“그게 뭔데?”
“그러니깐 다른 건 다 완벽한 남편이자 아버지니... 둘의 관계에서 섹스만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서로 의논하라고 한 거지.”
“아... 중간에 뭔가 많이 생략된 거 같기는 하지만 이해는 했다.”
“아무튼 난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해서도 안 될 것 같으니 여기까지만 한다.”
“알았다. 고맙고...”
“그런데 지섭씨는 공사기간에는 정말 어디 있을 거예요?”
“아... 그게...”
“뭔가 계획한 건 있나 보다?”
“응. 그 기간 동안 여행을 좀 갈까 해.”
“여행요?”
“예. 내가 최근에 생각할 게 많아서... 집에 혼자 있어도 생각이 된다기보다는 머릿속만 더 복잡해지기만 해서요. 그래서 산티아고의 순례자의 길처럼 걸으면서 다녀볼려구요.”
“와... 그거 좋은데요?”
“음... 나도 좋은 생각 같다. 생각의 정리도 되고... 구체적으로 어딜 갈건지 생각은 했어?”
“종주를 할까해.”
“종주?”
“응. 산을 2박 3일 정도 타는 거지.”
“오오 좋은데?”
“그런데 아직 구체적인 건 없어. 그냥 모레 출발하려고 한다는 거? 이것밖에 없어.”
“그럼 내일 계획하고?”
“그렇지... 뭐. 어차피 날씨도 좋아서 방 없으면 여차하면 노숙도 각오하고 있어.”
“진짜 순례자처럼 다닐 생각이구나.”
“응. 정말로 그렇게 다닐려고... 내일은 수도승복 구하러 다닐려고...”
“야! 지금 농담이 나오냐?”
“큭큭큭. 아무튼 내일 장비 좀 사고. 모레나 출발하려고 한다. 어차피 노숙도 하겠다고 생각하니 별로 할 것도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지섭씨 나도 갈래요.”
가만히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혜 씨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예에? 안 돼요. 일단 저 혼자 가는 거예요. 둘이같이 간다면 모를까 제수씨 혼자는 좀...”
“왜 안 돼요? 어차피 걷기만 할 거라면서요.”
“아니 아까 말했잖아요. 여차하면 좋게 말하면 비박, 나쁘게 말하면 노숙도 할 거라니까요?”
“들었어요. 상관없어요. 저도 노숙하면 되는 거잖아요.”
“아... 안 되죠. 그건.”
“왜 안 되요? 저 대학때 산에서 혼자 자고 했는데요.”
“아니 기본적인 것이 생각을 정리하러 가는 거라구요. 제가...”
“그러니까요. 저도 생각을 좀 정리해야겠다구요.”
“......”
“......”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종주를 따라오겠다고 할 만큼 그녀도 생각이 많은 것을 우리 둘 다 다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다녀와.”
“당신 허락은 필요 없어요. 지섭씨 허락이 필요한 거죠.”
“읍...”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긴 아까 나에겐 그녀의 삶을 살게 해주겠다고 했으면서...
지금은 허락해준다고 한다... 철우의 태도가 웃기긴 했다.
“아니... 그래도...”
난 난처해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똑같은 거죠. 전 저대로 걷기만 하고, 지섭씨는 지섭씨 대로 걷기만 하고... 다만, 서로 보호만 하자는 거죠. 서로 다칠 수도 있고 하니. 저도 그런 시간이 필요했는데. 방금 지섭씨가 종주 이야기하자 마자. 머리에서 망치를 맞은 듯이 꽝 했어요. 이건 무조건 가야 한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요.”
“휴...”
“지섭씨가 안 된다고 하면 전 그냥 다른 곳으로 갈 거예요. 일단 간다구요. 무조건...”
“무조건 갈 거면... 휴... 같이 가요. 만약 안 된다고 했다가 딴 곳에 갔다가 사고라도 나면 제가 견디기 힘들 것 같네요.”
“아 참. 내일 쇼핑하러 갈 거죠? 저 장비 하나도 없거든요. 다 버렸거든요.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저도 없어요. 심지어 등산화도 없어요. 내일 다 사야 해요.”
“그럼 준비부터 같이하면 되겠네요.”
“음.. 당신 회사는?”
“당신이 알아서 처리해 줘.”
“응 알았어. 잘 다녀와.”
“야! 넌 잘 다녀와가 뭐야? 니가 같이 가야지.”
“아니죠. 그이가 간다고 하면 제가 따른 곳으로 가겠죠. 혼자서라도.”
“아... 그렇게 되는 건가요?”
“그렇죠.”
나와 지혜 씨의 여행은 이렇게 갑자기 결정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