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SM BAR _ 6화
SM BAR _ 6화
시간이 지나고 가게 안은 점점 사람들로 하나둘 채워지기 시작했다.
어제 봤던 사람들 중 일부도 보이는 것 같았고, 새로운 사람들도 보이면서 점차 어제와 같은 활기를 띠게 되었다.
어제처럼 특별한 이벤트가 열린다거나 사건이 생기지는 않았고, 그저 평범한 바처럼 여기저기 사람이 섞여 술이나 홀짝거리는 게 전부였다.
마치 폭풍이 오기 전처럼…
밖이 전부 깜깜해진 시간이 되자 문지기를 하는 직원이 사장님께 무언가 말하고는 아래로 내려갔고, 사장님은 물 묻은 손을 툭툭 털며 내게 말했다.
“그 인간 온다고 하니까 내가 문 앞에 가서 좀 서 있을게”
“네…!”
“오늘 기껏 술 만드는 방법 좀 가르치려고 했더니만…”
사장님은 끝까지 투덜거리며 문지기가 서 있던 위치에 가서 섰고, 잠시 후 직원들만 아는 신호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은 얼굴에 한가득 영업용 미소를 띤 채 문을 활짝 열었고, 문을 통해 들어온 사람은 딱 내가 예상했던 이미지였다.
셔츠를 어떻게 입은 건지도 모를 정도로 배가 튀어나온 아저씨가 머리까지 휑하게 벗겨지고, 표정만 봐도 한 성깔 할 것 같아 보였다.
그 사람은 들어오면서부터 사장님의 인사를 받아주기는커녕 매장 안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는 것 같았고, 그 사람이 방문할 거라는 걸 몰랐던 사람들은 짐을 챙기며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나는 그 의원과 눈이 마주쳐 버렸고, 직원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며 고개를 숙여 인사해 보였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도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고, 나는 애써 그를 무시한 채 다시 바쁘게 일하는 척하기 시작했다.
“자리는 늘 앉으시던 자리로 준비했습니다.”
“그래. 이런 일 처리 하나는 마음에 드는구만”
“하하하…”
그 의원이 자리에 앉자 마치 소파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사장님은 내게 손짓하며 술을 가져다 달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나는 전혀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바구니에 준비된 값비싼 술을 들고 그에게 향했고, 걸어가는 내내 그의 시선은 내 아래쪽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이미 그런 사람 앞에서 이런 복장을 하고 있는 거나 자꾸만 시선 강간당한다는 사실이 수치스럽고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혹시라도 내가 실수한다면 이 가게의 존속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애써 미소 지으며 그가 앉은 테이블 위에 술이 든 바구니를 올려뒀고, 살짝 웃음 지어 보인 다음 곧바로 뒤로 돌아 바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내 손목을 잡아채며 물었다.
“못 보던 애네?”
그러자 사장님이 끼어들며 대신 대답했다.
“오늘부터 일하게 된 친구입니다.”
“흐음… 자네는 참 이런 친구들을 어디서 잘 찾아온단 말이야?”
“아…하하하…”
“보아하니 오늘 손님도 많이 없어 보이는데 이 직원은 내가 데리고 있도록 하지”
그러자 사장님은 그나마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나와 그 남자 사이를 가로막으며 섰고, 내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아직 모르는 게 많아서 실수를 할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교육할 겸 그냥 지켜보게 해도 괜찮을까요?”
그러자 그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쥐고 있는 내 손목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윽…”
나는 두 명의 남자가 동시에 손목을 강하게 쥐고 있는 바람에 통증을 호소했지만 보이지 않는 기 싸움에 휘말려 들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그 남자의 손길이 닿는 팔에 느껴지는 촉감이 이미 더럽다는 생각부터 들어 왔지만 아까 잠깐 상상했던 장면이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며 아래가 찌릿거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는 사장님의 등을 톡톡 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제가 의원님 모실게요”
그는 예상치 못한 내 반응에 놀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나는 혹시나 얼굴에 흥분한 티가 날까 봐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한 채 바닥만 바라봤다.
“그… 그래?”
그러자 그 남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 팔을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고, 나는 종이 인형처럼 질질 딸려가 그의 다리 위에 앉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하하하! 이 직원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드는구만!”
“그… 저…”
사장님은 어떻게 해서든 그 상황에서 나를 구해내려는 것 같았지만 이미 스스로가 마음을 굳게 먹은 탓에 그를 향해 고개를 좌우로 저어 보였다.
그는 울상 같은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꾸벅하고 바로 돌아갔고, 주변 사람들이 나를 보며 웅성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들은 천천히 눈치를 보며 이 장소를 빠져나가려 하는 듯했고, 나를 무릎에 앉혀둔 남자는 그 낌새를 눈치챈 건지 곧장 큰 소리로 말했다.
“다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놀으라고? 내가 왔다고 갑자기 집에 간다거나 그러지는 않아 줬으면 하네!”
분명 그는 자기가 나이에 비해 굉장히 센스있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뿌듯해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 말 때문에 더욱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조금 상황이 진정되고 다들 언제 그랬냐는 듯 이쪽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저마다 대화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체중을 싣지 않으며 버티고 있느라 다리를 부들부들 떨어대고 있었고, 그는 주변을 몇 번 둘러보더니 내게 말했다.
“불편한가?”
“아…아니에요! 전혀요!”
그러자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내 다리를 팔로 감싸올려 자기 다리 위로 내 몸을 완전히 올려두며 말했다.
“편안히 힘을 빼. 이렇게 다 올라와 있어도 가볍구만”
“아…하하…네…!”
그는 자기의 두툼한 허벅지 위에 나를 올려두고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술을 따라 마시려 하는 것 같았고, 그 덕에 그의 푸짐한 뱃살이 내 온몸에 닿으며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당장이라도 그 불쾌한 감촉에서 벗어나고자 나는 그의 위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고, 순식간에 다리에서 내려와서는 술병을 낚아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최대한 가식적인 웃음을 지어 보이며 그에게 말했다.
“제가 한 잔 따라드릴게요. 의원님!”
“오… 그래? 좋지”
그는 샴페인 잔처럼 생긴 걸 한 손으로 들어 치켜올렸고, 나는 병뚜껑을 잡아 힘껏 비틀었다.
하지만 새것을 열 때처럼 따닥하는 소리가 나지 않고, 누가 먹던 술인 것처럼 스르륵 열려버렸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바에 있는 사장님을 바라봤지만, 그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나는 대충 상황을 눈치채고는 새것을 뜯은 것처럼 그의 주의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이야… 이런 비싼 술은 뚜껑을 여는 느낌부터도 다르네요…”
그는 눈치가 없는 건지 내가 자기를 띄워주려는 것처럼 받아들이고는 멍청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역시 이런 건 아무나 먹는 게 아니지! 나같이 품격 있고 어울리는 사람이 먹어야 하는 거야”
“그럼요! 자 그럼 제가 한잔 올리겠습니다!”
“그래!”
나는 술병을 기울여 그의 잔을 채워줬고, 그는 단숨에 들이키고는 말을 이었다.
“크… 역시 비싼 술은 맛이 다르다니까?”
“대단하세요!”
“허허허 아가씨도 한잔 마셔볼래?”
“저…는 일하는 중이라서 괜찮습니다!”
“오늘은 퇴근할 때까지 나랑 같이 있을 건데 무슨 상관이야!”
“제가 술을 잘 못해서… 한 잔만 마셔도 토를 해버릴지도 모른답니다…”
“비싼 술을 먹고 토하면 아깝지!”
“헤헤…”
그러더니 그는 손뼉을 치며 바에 있는 사장님을 부른 다음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이! 여기 아가씨가 마실 수 있게 도수도 낮고 달달한 술로다가 한잔 가져다줘!”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애써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칵테일 한잔을 만들어 내게 가져왔고, 그 남자는 그 술잔을 뺏어 들더니 자기 입으로 먼저 가지고 갔다.
한참이나 꿀꺽거리며 들이키고는 절반 정도는 그대로 다시 잔에 뱉어버리며 인상을 쓰고 말했다.
“윽… 이게 무슨 맛이야? 난 도저히 못 먹겠구만”
그는 내게 술잔을 건네며 말을 이었다.
“난 또 도수 없는 거 가져다준 줄 알고!”
나는 그에게서 술잔을 받아 들고 멍하니 바라보게 되었다.
분명 예쁜 칵테일이었지만 그가 커다란 입으로 절반이나 입에 머금었었고, 그걸 제대로 삼키지도 않은 채 그대로 다시 잔에 뱉어 내게 준 것이었다.
“설마 내가 먹다가 줬다고 더럽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 놀란 나는 허둥지둥대며 대답했다.
“그… 그럴 리가요! 그럴 리가 없죠!”
그는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 그럼 같이 건배하고 한잔할까?”
“ㄴ…네!”
나는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그와 잔을 부딪쳤고, 천천히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우욱… 씨발… 이딴 걸 먹어야 한다니…’
나는 그의 눈치를 살살 보며 눈을 질끈 감고는 잔을 기울여 술을 한 모금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