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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화 30. 백구 퀘스트 (4)


방독면의 착용을 마치고 다시 헬멧을 쓰고는 조심스럽게 언덕을 내려갔다. 암컷 라그놀들이 동굴 안으로 모두 들어가는 바람에 다행히 동굴 앞은 한산하다. 동굴 앞에 펼쳐진 작은 공터의 넓이는 차원 문이 있는 베이스 켐프의 넓이와 거의 비슷해 보였다. 야산의 중턱에 도착해서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했다. 은신 버프는 여전히 적용 중이다. ‘시연씨 고유스킬이 은신과 정찰이라서 정말 다행이야.’ 동굴과 이십 여 미터 정도 떨어진 바위 뒤에 자리를 잡은 강호가 차분히 숨을 고르고는 동굴 쪽을 살폈다. 하지만 어두운 그림자로 뒤덮여 있어 동굴 안의 모습을 살피기는 힘들었다. 그제야 강호는 동굴이 얼마나 깊은지, 동굴이 어떤 형태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꽤 깊거나 혹은 몇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져 있다면 조금은 곤란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돌아가서 원래의 계획대로 움직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왕 내친 걸음인 만큼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서 확인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몰라 백구는 그 자리에 대기하도록 했다. 후각이 발달된 만큼 가스 냄새를 맡아서 좋을 게 없다. 백구를 뒤로 물리고 조심스럽게 공터의 좌측 외곽을 빙 돌 듯이 움직이며 조용히 접근해 들어갔다. [두근! 두근! 두근!] 동굴의 입구를 향해 다가갈수록 심장이 거칠게 뛰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최대한 깊게 숨을 마시며 진정 시켜 보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빛에 노출되어 적응된 눈 때문에 어둠으로 뒤덮인 동굴 안의 모습을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강호에게는 야시경이 있다. 야시경을 내리자 동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화면에 적응하며 내부를 살피던 강호의 입에서 안도의 한 숨이 새어 나왔다. 동굴의 깊이는 대략 30여 미터 정도 되었지만 그게 끝이었다. 조금 깊기는 했지만 걱정한 것과는 달리 복잡한 구조의 동굴도 아니었고 입구를 지나면 곧바로 넓은 공동으로 이어지는 형태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동굴 안쪽의 공동에 암컷 라그놀들이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것이 보이는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니 잠이 든 모양이었다. ‘아침부터 그렇게 돌림빵을 당했으니 피곤할 만도 하지. 하늘이 돕는 구나.’ 게다가 암컷들이 잠들어 있는 형태도 더 없이 이상적이다. 동굴 안쪽의 벽에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다닥다닥 붙은 형태로 잠들어 있는 것이다. 손에 들고 있던 활에 준비해 두었던 화살을 걸고는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이 화살을 쏘고 나면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상황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도 알 수가 없고, 어쩌면 후추액의 위력이 통하지 않아 자칫 화만 잔뜩 부추긴 라그놀을 상대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 갈 수도 없다. 이런 식으로 전투를 치러 본 적이 없기에 어떤 계획을 세워도 강호의 입장에서는 불안의 요소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후추액의 위력을 믿는 것이 최선이다. ‘밀폐된 동굴이야. 후추액이 제대로 터져주면 충분히 가능성 있어.’ 화생방을 겪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밀폐된 공간에서의 가스는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선사한다. 놈들에게도 후각이라는 것이 있는 이상은 틀림없이 통할 것이라는 게 강호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후우우우!’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강철묵궁의 시위를 당겼다. 혹시나 몰라 유리병이 잘 깨어질 수 있도록 놈들이 잠들어 있는 벽 쪽으로 향하게 했다. 시위가 당겨지며 활대가 휘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찌나 크게 들려오는지 혹시나 라그놀들이 잠에서 깨지는 않을까 싶은 생각에 당겼던 시위를 곧바로 놓았다. 핑!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간 화살이 바닥에서 잠들어 있는 암컷 무리의 바로 뒤쪽 벽에 박혀드는 것과 함께 유리병이 박살난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혹시나 싶어 후추액을 매단 화살 하나를 더 꺼내어 시위에 거는데, 잠들어 있던 라그늘들이 켁! 켁! 하는 소리와 함께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놈들은 잠에서 깨기 무섭게 콧속을 파고드는 지독한 냄새에 비명을 내지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키이익! 키엑! 케엑!] [키악! 깨애앵! 크앙!] 목을 움켜쥐며 사방으로 날뛰는 놈들을 보며 강호가 회심을 미소를 지었다. 혹시나 몰라 준비해 두었던 후추액 화살을 한 발 더 날리고는 재빠르게 매고 있던 화살통에서 묵시를 뽑아 들었다. 겨우 30여 미터에 불과한 거리다. 야시경으로 인해 조준하는 것이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다. 날아간 화살이 땅에 머리를 박은 채로 괴로워하는 암컷 하나의 머리를 정확하게 관통했다. [케엑!] 짧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괴로워하던 암컷이 축 늘어지는 모습을 보며 다른 화살을 채었다. 우두머리를 먼저 노리고 싶었지만, 날뛰고 있는 암컷들로 인해 조준하는 것이 쉽지 않아 빠르게 목표를 바꾸었다. 또 다시 날아간 화살이 목을 움켜쥐고서 바닥을 뒹구는 놈의 몸통에 틀어박혔다. 머리를 노렸는데 너무 심하게 몸부림치는 바람에 복부에 틀어박힌 것이다. [깨갱! 키애앵!] 복부에 화살이 박힌 놈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명소리를 토해내었다. 그러자 다른 놈들도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것인지 괴로워하는 와중에도 동굴의 입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남아 있던 암컷들과 강호의 시선이 30여 미터의 거리를 좁히며 허공에서 얽혀 들었다. 들켰다. 이제는 속전속결이다. 빠르게 세 번째 화살을 채어 시위에 걸기 무섭게 속사로 당기자 연이어 날아간 두 발의 화살이 또 다른 암컷의 배와 어깨에 틀어박히는 것이 보였다. 우두머리를 포함한 세 마리의 라그놀이 움직인 것은 그 순간이었다. [케에에에엑!] 우두머리의 외침 소리와 함께 괴로운 비명을 내지르던 라그놀들이 빠르게 동굴의 입구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키아아악!] 그 모습을 보며 강호가 재빨리 화살을 시위에 걸어 선두에서 달려오는 암컷을 향해 날렸다. 하지만 개구리처럼 바닥을 껑충 뛰듯이 내달리는 라그놀의 행동으로 인해 가슴팍을 꿰뚫어 버릴 것만 같던 화살은 속절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젠장!’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온다. 과거 개돼지를 상대할 때도 느꼈지만 이 숲의 짐승이나 몬스터에게 있어 30여 미터 정도의 거리는 앗 하는 사이에 좁혀지는 거리에 불과할 따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했다. 빠르게 화살 하나를 다시 채어 시위를 당겼다. 급하게 날린 화살이 다행히도 정면으로 달려들던 라그놀의 이마 한 가운데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두 마리. 상대할 수 있어.’ 라그놀 무리와 상대할 때 항상 머릿속에 시뮬레이션 했던 상황이다. 옆으로 활을 집어 던진 강호가 한 손으로 야시경이 달린 헬멧마저 거칠게 벗어 던지고는, 허리춤에 매고 있던 미스릴 장검을 뽑아 들었다. 양손으로 검을 쥐고서 빠르게 뒤로 물러난 강호가 악다구니를 치듯이 소리쳤다. “와라! 이 개새끼들아!”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짓쳐 드는 라그놀의 모습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순식간에 두 마리의 암컷이 코앞으로 짓쳐들었다. 하지만 괴성을 내지르며 당장이라도 덮쳐 들것처럼 굴던 모양새와는 달리, 두 마리의 암컷은 동굴을 빠져 나오기 무섭게 바닥에 엎어지더니 코를 쳐 박고는 눈물을 질질 짜며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화생방 훈련 때의 모습이 떠올라 잠시 측은한 마음이 일어났으나 이내 검을 고쳐 쥐었다. 어차피 죽여야 하는 적이다. 무엇보다 불쌍하다고 살려 줄 수도 없는 것이 이건 퀘스트였다. 놈들의 모습이 안쓰럽다고 포기해도 될 만 한 퀘스트가 아니라, 백구를 반려동물로 받아들이기 위해 반드시 완수해야만 하는 퀘스트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런 생각으로 바로 앞에서 눈물 콧물을 쥐어짜내고 있는 암컷에게로 다가가 점을 치켜 들었다. 하지만 마음먹은 것과는 달리 선뜻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을 제외하면 인간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한 까닭에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망설임이 생긴 것이다. 그때였다. 저만치 떨어져서 상황을 살피고 있던 백구가 순식간에 달려 들어서는 강호의 앞에서 헛구역질을 하며 침을 흘리고 있던 암컷의 목을 그대로 물어뜯었다. [케애앵! 크앵!] 백구의 이빨에 목이 뜯겨져 나가며 비명을 내지르는 라그놀의 모습에 강호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발!’ 목이 한 움큼이나 뜯겨 나간 놈이 백구를 향해 입을 벌리며 달려들려는 모습에 강호가 눈을 질끈 감고는 검을 휘둘렀다. [서걱!] 무언가 검에 썰려 나가는 감각이 손끝을 타고 전해온다. 백구를 향해 달려들던 암컷의 몸이 멈칫하더니 이내 목이 툭 하고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 뒤를 이어 핏줄기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갔다. 바닥에 떨어져 내린 머리의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라그놀의 눈과 강호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몸뚱이를 잃고서 차갑게 식어가는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마치 자신의 몸뚱이 역시 차갑게 식어 내리는 듯한 착각에 빠져 들었다. 죽음이라는 심연의 바닥으로 같이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 이러할까. 라그놀과의 전투를 앞두고 충분히 각오했다고 생각했다. 그저 짐승일 뿐이라며, 그동안 사냥했던 짐승이나 몬스터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며 죽일 수 있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런데 막상 잘려나간 얼굴에 자리 잡은 눈을 보자 사고회로가 고장이라도 나 버린 것처럼 멈추어 버리고 말았다. 라그놀의 머리는 몸뚱이에서 떨어져 나오고서도 눈을 껌벅이며 눈동자를 굴렸다. 라그놀의 눈동자에 자리 잡은 감정은 고통이나 두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의문이 가득 담긴 눈동자. 한 순간에 생기가 빠져나가며 식어가는 눈동자는 짐승이나 몬스터의 눈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인간의 눈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그러한 인식이 가져다 준 충격은 각오한 것만으로는 쉽게 떨쳐낼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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