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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화 30. 백구 퀘스트 (5)


[윙! 윙! 윙!] 귓가로 백색소음만이 가득하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고 손이 덜덜 떨려오려고 한다. 옆에서 우두머리가 달려드는 것을 보면서도 강호는 움직일 줄을 몰랐다. 등에서 강한 충격이 전해오고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그 와중에도 귓가를 파고드는 백색 소음은 더욱 커져 가며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들었다. [컹! 컹!] 백구가 짖는 소리와 함께 옆구리에서 불에 데인 듯한 뜨거운 감각이 전해오자 한순간에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흐릿하던 초점이 잡히며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 온 것은 몸 위에 올라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우두머리의 얼굴이었다. [크앙! 크아앙!] 놈의 공격에 뒤집어쓰고 있던 방독면에 대번에 벗겨져 나가자 강호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목을 움켜쥐었다. [크항! 깨앵!] 놈이 울부짖을 때마다 침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것과 함께 지독한 악취가 풍겨온다. 그런데 웃기게도 그 역한 냄새와 더러운 침의 질척한 느낌에 비로소 정신이 온전하게 돌아왔다. ‘등신 새끼!’ 속으로 욕설을 내뱉고는 놈의 목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키앵! 깨갱! 끼이잉!] 손에 힘이 들어갈수록 당장이라도 얼굴을 뜯어 먹을 것처럼 벌어졌던 놈의 입이 닫히며 고통에 가득 찬 신음을 토해내었다. 하지만 놈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강호의 가슴 위에 올라탄 채로 손톱을 세운 팔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팔뚝이 쩍쩍 갈라지며 피를 뿜어내었다. 팔뚝을 타고 흘러내린 핏물이 가슴팍과 얼굴 위로 떨어져 내리며 적셔 들었다. 피 특유의 쇠 맛을 느낀 강호의 눈에서 한 순간 불똥이 튀었다. 고통도 잊은 채로 다른 손까지 뻗어 우두머리의 목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며 조였다. [뿌드득!] 살가죽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단숨에 숨통이 틀어 막히자 우두머리가 공격하던 것을 멈추고는 강호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강호의 팔뚝과 상박의 근육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과 함께 얼굴 역시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그런데 우두머리 라그놀의 힘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강했다. 놈이 힘을 주기 무섭게 손아귀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뼈가 바스라지는 듯한 고통에 저도 모르게 목을 쥔 손을 놓아 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숨을 크게 들이마신 우두머리가 입을 쩍 벌리더니 강호의 얼굴을 단숨에 물어 뜯을 것처럼 달려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커어엉!] 지금껏 옆에서 공격할 최적의 타이밍을 엿보고 있던 백구가 크게 울부짖으며 우두머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백색의 섬광을 연상케 하듯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백구가 땅을 박차고 날아든다 싶은 순간, 쩍 벌린 입이 우두머리의 옆구리에 틀어박히는 것이 보였다. [캐애앵!] 강호의 얼굴을 물어 뜯으려던 우두머리의 입이 쩍 벌어지며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토해내었다. 강호의 손에 키워지기는 했지만 백구도 엄연히 게란트 출신이다. 대를 이어 물려받은 야생의 DNA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백구의 공격은 우두머리 라그놀이라 해도 쉽게 여길만한 것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옆구리의 살을 찢으며 깊이 파고들자 비명을 내지르던 우두머리가 팔을 크게 휘둘러 백구를 쳐내려 했다. 하지만 영리한 백구는 재빨리 옆구리에서 떨어져 나와 오히려 놈의 힘을 이용해서 멀찍이 떨어지며 거리를 벌렸다. 강호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백구를 공격하기 위해 상체를 세우는 순간 놈의 가슴팍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릎을 들어 놈의 가슴을 밀치며 공간을 확보하고는 왼쪽 어깨춤에 부착한 단검을 빼 들었다. 시야로 놈의 옆구리가 비어 있는 것이 보이자 강호는 망설임 없이 단검을 쑤셔 박았다. [깨개개갱! 캐앵!] 고통으로 가득 찬 비명을 내지르며 물러나는 놈의 배를 향해 강호의 군화발이 박혀 들었다. 당장 내가 죽을 판이다 보니 뱃속에 새끼를 배고 있다는 생각 따위를 할 겨를도 없었다. 발길질에 힘없이 바닥을 나뒹군 놈이 거친 숨과 함께 기침을 토해내더니 배를 움켜쥐고는 분노의 괴성을 내질렀다. 옆구리에 박힌 단검을 단숨에 뽑아낸 우두머리가 강호를 향해 피맺힌 절규를 토해내었다. 아마도 본능적으로 뱃속의 새끼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다. 하지만 분노에 가득 찬 것과는 달리 쉽게 덤벼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는 것이 본능적으로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도망칠 기회를 엿보고 있는 듯 했다. 강호의 옆에로 어느새 백구가 다가와 우두머리 라그놀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어진 대치 상황. 강호가 살짝 시선을 내려 옆구리를 살폈다. ‘젠장.’ 재수 없게도 입고 있던 방검복 아래쪽으로 상처가 나있다. 놈과 뒤엉킨 상황에서 마구잡이로 휘두른 손이 하필이면 방검복 안쪽으로 파고든 모양이었다. 게다가 손톱이 깊게 박혀 든 것인지 상처도 꽤 깊어 보인다. 자칫 했으면 허리춤의 살이 뜯겨 나가 치명상을 입을 뻔 했다는 생각에 강호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젠장! 너무 자만했어.’ 한 순간의 방심이 이런 결과를 불러 왔다고 생각하자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강호의 눈에 독기가 어리기 시작한다. 겨우 죽어가는 라그놀의 눈과 마주친 것 만으로 충격을 받아 정신줄을 놓아 버릴 정도라면 게란트에 발을 디딜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앞으로 시커먼 박쥐 머리의 괴물도 상대해야 하고 그 보다 더 무서운 괴물들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수인족이나 야랑족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언젠가 인간을 닮은 이종족과 싸워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발목을 잡힐 수는 없어!’ 그런 생각을 하며 아직도 떨리고 있는 몸을 잠식하고 있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떨쳐내기 위해 악을 쓰듯이 소리를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악!” 동시에 눈앞으로 함성 스킬의 레벨이 2가 되었다는 알림창이 뜬다. “크크크큭! 그래. 이런 거야. 시발!” 이런 시스템을 얻었는데 고작 라그놀 따위 하나 죽였다고 정신줄을 놓아 버린 자신이 실로 가소롭게만 느껴졌다. “내가 바로 시스템이 선택한 남자 서강호다 이 개새끼야!” 누가 들으면 너무 유치해서 닭살이 돋을 법한 멘트를 내뱉은 강호가 주먹을 쥐고는 라그놀을 향해 달려 들었다. 강호의 기세가 갑자기 돌변하여 달려들자 우두머리 라그놀이 저도 모르게 겁을 집어 먹고는 후다닥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강호가 한 발 빨았다. 땅을 박차고 뛰어 오른 강호가 단 숨에 5, 6미터의 거리를 좁히더니 라그놀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퍼억!] [캐앵!] 군화발이 라그놀의 뒤통수에 틀어박히는 것과 동시에 어느새 같이 달려 온 백구가 놈의 다리를 물어 뜯었다.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라그놀이 어떻게든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지만 백구는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듯 온 힘을 다해 끌어당겼다. 백구의 의해 잠시 다리가 묶인 놈의 옆구리를 강하게 걷어찼다. [퍼억!] [키앵! 끼애앵!] 놈이 발악하며 휘두른 팔에 강호의 바지가 찢어지며 상처가 생겨났지만 아랑곳 하지 않았다. 걷어차고 또 걷어차자 조금씩 놈의 발악이 잦아들기 시작한다. 이미 뱃속의 새끼도 사산이 된 것인지 가랑이 사이로 시뻘건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그 모습에 강호는 조금 전의 다짐도 잊고는 잠시 인상을 찡그렸다. 문명인으로서 교육을 받고 자라온 강호다. 아무리 세상이 다르고 생사를 건 싸움이라고 할지라도 그 상대가 새끼를 밴 암컷이라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가치관이자 양심이기에 지금의 강호로서는 무작정 외면하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기색을 읽었음인가. 힘없이 늘어져 있던 라그놀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듯 사력을 다해 강호를 향해 달려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백구가 빨랐다. 강호와 달리 백구에게 있어서 라그놀은 부모를 죽인 원수에 불과할 뿐이었다. 무엇보다 백구 역시 이 세상의 기준에서는 한 마리의 짐승이자 몬스터의 범주에 속했다. 지성과 양심을 가진 인간과 달리 서로가 서로를 죽인다고 해서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 따위를 느낄 일이 없다는 이야기다. 강호를 향해 달려드는 라그놀의 목을 백구가 물어 뜯었다. [까드득!] 두 마리의 짐승이 바닥에 뒤엉키는 순간 백구가 턱에 힘을 주어 목에 이빨을 박아 넣고는 마치 악어가 먹이를 사냥하듯 온 몸을 강하게 회전 시켰다. [푸하악!] 백구에게서 떨어져 나온 라그놀이 목을 움켜쥐고는 비틀거리며 물러난다. 손으로 감싸고 있는 목은 살이 한 움큼이나 떨어져 나가 있고, 틀어 막은 손 틈으로 쉴 새 없이 붉은 피가 흘러내리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비틀거리던 라그놀이 강호를 노려보며 무어라 말하듯 입을 딸싹거렸지만 이미 숨통이 뜯겨져 나간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강호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단검을 집어 들고는 놈의 가슴팍에 찔러 넣었다. [푸욱!] 손끝으로 섬뜩한 감각이 전해오는 것과 함께 검붉은 피가 솟구쳐 올랐다. 뜨거운 피가 얼굴로 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강호는 단검을 더욱 깊이 박아 넣었다. 바로 앞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던 우두머리 라그놀의 눈에서 급격하게 생기가 빠져나가더니 이내 힘없이 바닥으로 털썩 무너져 내렸다. “허억! 허억!” 덜덜 떨리는 손을 바라보며 거친 숨을 토해내었다. “아우! 아우우우!” 우두머리 라그놀의 시체 앞에서 목을 치켜 든 채로 하울링을 하고 있는 백구를 보면서 전투가 끝났다는 것을 깨달은 강호의 신형이 힘없이 바닥으로 허물어져 내렸다. “허억! 허억!” 사람이 결심을 하고 각오를 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고 극복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반년이 넘는 시간을 게란트에서 보내는 동안 강호는 살육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고, 라그놀도 그저 한 마리의 짐승일 뿐이라며 각오를 다지고 싸움에 임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오판이었고 착각이었다. 평생을 지구에서 살아온 강호가 단 몇 개월의 경험으로 문명인으로서 평생 동안 교육 받아 온 가치관이나 인식이 바뀐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몇 년 동안 훈련을 한 군인들 조차도 막상 실전에 나가 살인을 하고 나면 그 충격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각종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하는데, 아무런 훈련조차 받지 않은 강호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우두머리 라그놀을 죽이며 상황이 일단락되었지만 몸의 떨림은 더욱 커져만 갔다. 핏물로 가득한 손을 내려다보며 진정하자고 수없이 중얼거리고 주먹을 쥐락펴락 해 보지만 마치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몸의 떨림은 쉽게 진정 되지 않았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우두머리 라그놀을 바라보았다. 옆구리의 상처가 쩍 하고 벌어진 채로 내장과 피가 삐져나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바닥에 쓰러진 놈을 마구잡이로 걷어찰 때 옆구리의 상처가 쩍 벌어진 모양이다. 그런데 삐져나온 내장 사이로 작은 아기의 손과도 같은 형체를 발견하기 무섭게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우욱! 우웨에엑!” 전투를 앞두고 속을 든든하게 채웠던 강호였다. 그것을 모조리 게워내고 나자 속이 조금 편해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몸의 떨림도 조금씩 잦아든다. 그러자 이번에는 죽어가든 우두머리 라그놀의 눈빛이 떠올랐다. 급격하게 생기를 잃어가던 눈에는 자신을 향한 원망과 분노가 가득했다. 아마 새끼를 잃은 것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감정일 것이라 생각하니, 마치 자신이 살인을 한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난다. ‘아니야. 이건 퀘스트야. 난 그냥 퀘스트를 하고 있는 것뿐이야.’ 살인을 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것은 그냥 퀘스트일 뿐이다. 백구를 반려동물로 받아들이기 위한 퀘스트일 뿐이다. 그리고 아직 퀘스트는 완료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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