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27. 이상동몽(異床同夢) (4)
보통의 남자라면 자지에 근육통이 왔다고 해도 할 말이 없고, 아예 껍데기가 다 벗겨져 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최소한 눈에 다크 써클이라도 생겨 골골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헤어질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말짱한 얼굴이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약을 먹지 않은 이상 짐승도 이렇게 까지는 못한다.
정말로 변강쇠가 ‘아이고, 형님!’하고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당신 정말 사람이 맞아요?”
“제가 사람이 아니면 뭡니까, 그럼.”
“이거 괜히 억울하네. 괜히 진 거 같은 기분이잖아. 쳇!”
괜히 억울하다느니 진 거 같다느니 말은 했지만 표정은 전혀 아니다.
말과는 달리 표정에는 흐뭇한 미소가 사라질 줄을 몰랐다.
마치 ‘이 남자가 내 남자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다.
“그럼 이번 주는 훈련이 없다는 거네요. 쩝!”
뭔가 아쉬운 얼굴을 하는 강호의 모습에 강시연이 생긋이 웃었다.
“이봐 이러니 내가 의심하는 거지? 그렇게 하고서 또 하고 싶은 거예요?”
“커험! 그... 그게 아니라 그냥 시연씨를 보지 못해서 그런 거죠.”
“호호호! 제가 보고 싶기는 했어요?”
“저도 남잡니다.”
“대신 보통 남자가 아니잖아요. 호호호!”
“커험!”
강호가 괜히 눈을 피하며 헛기침을 하자 강시연이 귀여워 죽겠다는 눈을 했다.
“대신 이번 주는 쇼핑이나 해요?”
“쇼핑요?”
“네. 야구 용품도 좀 사야 하고, 집에서 타격 훈련도 좀 하려면 그물망 같은 것도 설치해야 할 것 같아서요.”
“집에서도 하게요? 진심으로 할 모양이네요?”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싶었던 강호였기에 살짝 놀란 얼굴을 했다.
“돈 받고 하는 일이잖아요. 돈을 받은 이상 프로라면 최선을 다 해야죠. 그게 도리잖아요.”
강시연의 말에 강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돈을 받은 이상 프로라면 최선을 다한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강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강시연이 새삼 다르게 보인다.
그녀에 대한 소문, 그녀에 대한 첫 인상과 지난 밤의 경험. 그리고 도화살의 주인이라거나 은둔의 변태 마스터라는 칭호까지 겹치며 그녀에 대해 일종의 선입견이 자리 잡았던 강호다.
그런데 조금 전 한 마디로 인해 그녀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
개인적인 성향과는 상관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 있는 사람.
그러자 강시연이 다시 보이려고 한다.
이어진 강시연의 한 마디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리고 집에서 훈련하면 마음 내킬 때 언제라도 할 수 있잖아요. 안 그래요?”
그러면서 눈을 찡긋하는 모습에 강호는 그저 허허 하고 웃을 뿐이었다.
훈련에 대한 이야기를 대충 마친 후 시시콜콜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대부분 강호에 강시연의 질문이 주를 이루었는데, 정말로 시시콜콜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대화가 언젠가 부터 이상하게 변질되기 시작한다.
처음엔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미 같은 게 무엇이냐는 정상적인 질문으로 시작한 대화가, 여자는 몇 명이나 사귀어 보았느냐, 몇 명이랑 자 봤느냐, 속궁합은 어땠느냐, 그때도 이렇게 짐승처럼 정력이 강했느냐, 하는 식의 질문을 해 오는 것이다.
강호도 한 때 여자와 사귀면서 연인들 사이에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질문 같은 것을 인터넷으로 찾아 본 적이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과거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전 애인의 이름이나 추억의 장소 같은 곳은 금기어나 마찬가지였고, 과거의 연인과 속궁합이 어땠느냐고 묻는 것은 그냥 싸우자는 말이나 진배 없다.
그것은 서로가 다 알면서도 모른 척, 무심한 척, 시크한 척 넘어가야 하는 불문율이다. 그런데 거리낌 없이 물어오는 모습에서 강호는 그녀의 성향이 변태 마스터라는 것을 떠올렸다.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야.’
지금의 강시연은 변태 마스터를 떠나서 그냥 연애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때문에 연인들 간에 하지 말아야 할 금기에 대해 전혀 모르는 눈치다.
물론, 거기엔 변태 마스터라는 성향이 영향을 미치기는 했겠지만, 연애 경험이 없다는 것 만은 분명했다.
‘그런 성향이라면 평범한 연애는 힘들었을 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그녀가 측은하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평범한 연애라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떠올려 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세상의 모든 연인들은 자신들 만의 특별한 연애를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세상 모든 연인은 그 자체로 특별한 사랑을 하고, 모두가 특별한 연애를 한다.
그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강시연만이 딱히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강호도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지만 그런 생각을 하자 그녀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도 편해졌다.
[그래서 헤어진 지 이제 1년 정도 밖에 안 되었다고요?]
[그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갑자기 강해졌단 말이죠?]
[그 여자 말이 맞아요. 당신 같은 물건은 타고나야 해요. 삼처사첩이 뭐야. 삼천궁녀도 가능할 걸요?]
주변의 손님을 의식해서 소곤소곤 말하기는 했지만, 눈빛 만큼은 무척 뜨겁고 강렬했다. 마치 모든 것을 속속들이 파헤치겠다는 듯한 눈빛에 강호가 움찔 할 정도였다.
그렇게 시시콜콜하지 않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창밖으로 해가 저물어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가요.”
그러면서 일어나는 강시연을 따라 강호도 일어났다.
누나에게 백구 좀 봐 달라고 맡기고 나온 강호가 그녀의 차에 올랐다.
“고기 써는 거 좋아해요?”
그녀의 말에 강호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양만 많으면 됩니다.”
딱히 웃기려고 한 말도 아닌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깔깔 거리며 웃던 강시연이 오늘은 양보다 질이 좋을 것 같다면서 차를 몰았다.
강시연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강남 역삼역 근처에 위치한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단골인 모양인지 들어서기 무섭게 직원이 아는 체를 해 오더니 곧바로 사장이 직접 마중을 나와 인사를 해 온다.
그런데 그 얼굴이 강호에게도 낯이 익다. TV 방송에도 자주 얼굴을 비추는 유명한 셰프 중의 한 사람이었다.
‘장일호라고 했던가?’
과거 JCBC에서 방영했던 ‘냉장고를 열어봐’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일약 유명세를 얻은 사람으로, TV에서 본 모습 그대로다.
약간은 후덕한 인상에 사람 좋은 얼굴.
잠시 인사를 하고 안부를 나누던 그는 강시연이 데려온 강호를 보고는 꽤나 놀란 얼굴을 했다.
마치 강시연이 남자를 데려온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 역력한 표정이었는데, 그 모습에 강호는 얼떨떨하면서도 괜히 으쓱해졌다.
단골집의 사장인 그가 저런 표정을 한다는 것은 지금의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의미였고,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조차 없다는 의미인 것이다.
사장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방에 들어서면서도 강호는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레스토랑에 들어서서 방에 도착할 때까지 사방이 온통 ‘여기 졸라게 비싼 곳이야’ 하는 분위기가 팍팍 풍겨온 까닭이다.
살면서 이런 곳은 처음인지라 당연히 강호의 모습은 서울 구경 처음 하는 시공 총각이라는 옛말을 떠올리기에 딱 좋은 모습이기도 했다.
“뭘 그렇게 두리번거려요.”
“이런 곳은 처음이라서요.”
만약 평범한 사람 같았으면 조금은 주눅이 들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여자 앞에서 괜히 주눅 든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억지로 아무렇지도 않을 척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강호 역시 시스템을 얻기 전이었다면 그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호는 그저 이런 곳이 처음이다 보니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는 모습일 뿐이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지네 괴물 같은 엄청난 놈을 보고 온 마당인데, 이런 것으로 주눅이 들기에는 강호가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이 크게 확장되어 버린 영향이다.
“그런데 이런 곳은 예약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예약을 해도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하던데.”
“보통은 그렇죠. 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에요. 저 같은 유명인이 오면 이렇게 빈 방을 내주기도 해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사람이라는 것이 계획대로만 움직일 수는 없을 테고 갑자기 중요한 손님이 올 때를 대비해서 방을 비워두기도 할 것이다.
이 정도의 레스토랑이라면 당장의 돈 보다는 높은 위치에 있거나 유명한 사람을 유치하는 것이 가게의 명성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강호는 강시연에게 주문도 알아서 해 달라고 맡겨 버렸다.
괜히 남자 체면이 어떻고 하면서 메뉴판을 뒤적여 봐야 오히려 창피만 당할 뿐이다.
잠시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음식이 나오기 시작한다.
에피타이저를 시작으로 사이드 메뉴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메인 요리가 식탁에 올라 왔다. 하지만 메인 요리를 보는 강호의 표정은 시무룩했다.
메인이라면서 나온 고기가 겨우 손바닥 만 한 크기였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강시연이 또 다시 깔깔 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강호에게는 고기가 아무리 맛있고 좋아도 그저 많이 먹는 게 장땡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에 밴 습관이기도 했고, 액션 스쿨에서 박봉으로 몸 관리를 해야 하다 보니 굳어져 버린 습관이기도 했다.
게다가 시스템으로 인해 신체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면서 식성이 서너 배로 는 것도 한 몫을 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고기를 해치우고는 후식을 먹으며 대화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