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승천 (1)
#139화
살아있는 것의 목을 끊어내고 그 피에 흠뻑 젖은 주둥이를 거칠게 닦아낼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크르르! 움직여라!”
거대한 돌을 짊어지고 가는 미노타우로스 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그들의 족장이 흘리는 피가 채 한 걸음도 흐르지 못하고 땅에 스며드는 것을 보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우----!”
멀리서 울부짖는 소리에 본능대로 길게 울부짖으며 답하자 곧 노예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혀를 빼물고 죽어있는 미노타우로스의 머리통을 걷어차자 뻥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다.
‘시발… 이거 뭐야…’
몸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수많은 이종족들과 그들의 중간중간 서 있는 거대한 늑대 수인.
아니, 저건 수인이라고 부르기엔 두 발로 서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도저히 ‘사람’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흉포하게 생긴 늑대들이 두 발로 서있었다.
그리고 피 웅덩이에 비친 내 모습이 힐끗 스치는 것에 나도 그런 모습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라이칸?’
놀라운 건 모든 이종족들이 발에 쇠사슬을 차고 힘겹게 노동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힘이 장사라 수인 중에서도 강한 축에 드는 미노타우로스가 어린애처럼 얻어맞다가 갈기갈기 찢겨 죽는 것을 보며 등골을 타고 소름이 돋았다.
“크르르! 탑을 쌓아라! 더 높게! 더! 더!”
나와 시야를 공유하고 있는 라이칸이 길을 지나갈 때마다 모든 이들이 비켜섰다.
은색의 털을 휘날리며 걷는 내 앞에선 심지어 같은 라이칸들 조차도 꼬리를 내리며 물러섰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타고 오르길 한참.
가장 꼭대기에 오른 몸뚱이가 거대한 두개골을 깎아 만든 의자에 앉자 시야에 아래쪽의 모든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허…’
아아악-!
당겨!
죽어버린 놈들은 한쪽으로 치워둬라! 우리의 식량에 입을 대는 놈이 있으면 찢어 죽여주마.
지옥이 있다면 이런 곳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폐한 벌판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 너머에서부터 이종족들이 거대한 바위를 들고 옮기거나 각종 자재를 나르고 있었다.
흙먼지가 날리는 모든 곳에서.
그리고 한쪽 시야를 전부 막아서고 있는 거대한 탑.
“크흐흐! 곧이다. 곧 하늘에 닿을 수 있다.”
내가 아닌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희열에 차 목 울림을 내고 태양을 가리며 솟아있는 높디높은 탑에 시선을 고정했다.
신에게 닿기 위해 쌓아 올린 건물 사이 사이에는 자재로 쓰인 알 수 없는 종족들의 뼈가 희끗희끗 비쳤다.
‘시발… 이러니까 신이…’
태양이 저물고 달이 떠올라도. 노예들이 죽어 나가고 또 쓰러져도 멈추지 않았다.
라이칸들은 죽은 노예들을 잡아먹고 잡아 죽이며 신에게 닿을 그때를 위해 광기를 가다듬기만 할 뿐이었다.
주변의 땅들은 수많은 이들의 피를 머금어 붉게 변했고 곳곳에 뜯어먹힌 사체들이 즐비했다.
마침내 하늘이 열리는 날.
태양을 잡아먹어 가는 달에 라이칸들이 광기에 찬 포효를 터트리며 쓸모가 없어진 노예들을 마구잡이로 잡아 죽였다.
비명과 절규가 쏟아지고 자욱한 피 안개가 몰아치기 시작할 때 드디어 위대한 달이 태양을 잡아먹어 버리고 아주 찰나의 틈에 하늘이 열렸다.
“아우우----!!”
“우우우----!!!”
붉은색으로 번들거리는 손톱과 주둥이를 치켜세운 라이칸들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탑으로 모여들었다.
내 몸뚱이는 그들의 선두에 서서 누구보다도 광기에 물들어 달렸다.
‘으윽… 나까지…’
몸뚱이의 광기가 유리된 정신을 넘어오며 검게 물들이는 감각에 섬찟한 감각이 들 때 어둡게 물들어버린 태양이 다시 떠올랐다.
“감히.”
새롭게 떠오른 태양이 나직하게 읊조리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 몸뚱이도 아니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털이 바짝 곤두섰다는 느낌이었지만.
빛이 없는 곳에서 홀로 새하얀 광채를 흩뿌리는 거대한 용이 태양처럼 빛나는 눈동자로 모든 것을 굽어보고 있었다.
“하늘의 대리자로서 네 놈들을 심판하겠다.”
황폐해진 대지에서 피어오르는 피 안개가 모조리 타들어 가며 부패하고 썩어가는 것들을 정화했다.
라이칸들이 탑을 기어오르며 새로운 태양을 향해 손을 뻗어가면 그 끝에서부터 재가 되어 흩어졌다.
공들어 세운 탑의 일부가 무너지고 하늘을 향해 나아갈 길이 사라져가자 내 입에서는 울분에 찬 고함이 터져 나왔다.
“위선자가! 잡아먹어 버리겠다---!! 기필코 찢어 죽여주마!!”
“…타락해버렸구나.”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신이 먼저 나를 배신했다! 약한 놈이 잡아먹히는 것은 자연의 순리란 말이다! 어째서 심판을 받아야 한단 말이냐!”
“…신께서 결정을 내리셨다. 너희 종족은 영원히 지워지리라. 다시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 하리라. 그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절멸하리라.”
“죽여라! 저년을 죽여 잡아먹고 하늘마저 잡아먹는 거다!”
라이칸의 수장으로 보이는 내 몸뚱이의 주인이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탑을 타고 기어올랐다.
수많은 라이칸들이 새하얀 비늘을 가진 용을 향해 뛰어올랐다.
용은 무감정한 눈으로 눈부신 불꽃을 일으키며 모든 것을 태워 지워버리며 하늘로 가는 길을 막아섰다.
‘아샤…’
내 짐작대로 라이칸들이 절멸하게 된 이유는 그녀였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과거의 일이라는 것도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것도 전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신에게 도전하는 늑대를 막아선 용은 강대한 힘으로 늑대들을 태워죽였다.
라이칸들이 하나둘 탑에서 떨어져 내리고 탑이 기울어갔다.
“네 년의 힘도 내가 가지겠다! 네년의 뼈로 탑을 쌓아 올려주마. 네년의 살점 하나까지 씹어 삼키겠다!”
내 입에서 온 세상을 떨리게 하는 포효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탑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고고한 용은 피하지도 않은 채 가까워지는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결코 신의 품에 안기지 못 하리라.”
아샤의 입에서 뿜어진 거대한 화염이 라이칸의 손톱에 맺힌 새하얀 빛과 맞부딫히는 순간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
끔뻑-
식은땀이 느리게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확실히 더욱 생생하고 움직일 수 있는 몸에 잠시 부르르 떨며 숨을 골랐다.
‘…진짜 괴물들이 따로 있었어.’
아샤야 전쟁 영웅에다가 용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힘이었지만 라이칸은…
아샤의 날개가 찢어졌을 때는 나마저도 식겁했을 정도였다.
‘…전부 과거에 있던 일이겠지. 꿈이 아니었어.’
직감에 가깝고 증거 하나 없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봤던 건 전부 있었던 일이라고.
눈을 여러 차례 끔벅이며 몽롱한 정신을 일깨우고 있자 곧 시야에 무언가 들어왔다.
“어디서 많이 본 천장인데…”
[신비상인 조합이라는 곳 아닐까요?]
“맞아. 신이라는 사람이 인테리어 진짜 못해…”
[…후- 한 번만 봐 드리죠. 이 한번만이 벌써 몆번째인지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응, 뭐 그러던가… 어라.”
나… 누구랑 대화하는 거지.
잠이 확 달아나는 기분에 나른하게 감기던 눈이 번쩍 떠졌다.
“빼애애- 우붑-!”
입안에 파고드는 달콤한 사탕이 내 비명을 막아 세우자 그제야 이곳에 있을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힐다…?”
반쯤 몸을 일으켜 고개를 돌리자 검은색 라이더 슈트를 입은 힐다가 손을 들어 흔들었다.
[오랜만이네요?]
사이버펑크스러운 헬멧의 새까만 바이저가 빛을 받아 광택이 돌았다.
입안에 들어온 사탕은 달고 맛있었지만, 이 상황에서 나를 온전히 진정시키기에는 부족했다.
“힐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라이칸의 혈청이란 게 어째서 신비상인 상점에서 판매되고 있었는지도 의문이고 그 후의 일들도 전부 알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설명에 신에게 분노를 사 멸종했다고 쓰여 있긴 했지만 그런 존재들이었다면 아마… 찜찜해서라도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음… 제 비늘을 삼켰으니 그것에 남겨둔 기억을 읽으신 모양이네요.]
“기억…? 아니, 잠깐만. 방금 뭐라고…”
힐다는 쪼그려 앉은 채로 내게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갸웃했다.
[제대로 말했는데요? 제 비늘이요.]
“어, 저기. 선생님. 그러니까 네가, 아니. 선생님께서…”
[후훗.]
기억 속에서 제삼자의 시선으로 봤던 그 엄청난 존재가 이제껏 내가 막 대하던… 그러니까 모유를 뿜어대게 만드는 약을 건네주고 어떻게 해보려던 존재라고…?
[어머? 제가 여신님이라고 생각하시고 주신 거 아니었나요? 겨우 용 따위가 두려우세요? 이제 와서?]
“그… 선생님?”
[평소처럼 힐다라고 부르세요. 거리감을 느끼는 건 이해하지만… 엄청 섭섭하네요.]
“…”
믿을 수가 없어서 그저 가만히 힐다의 바이저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아샤의 인간 형태일 때의 모습은 이미 알고 있다.
인터넷에 그때 당시 찍혔던 사진들이 떠돌기도 했고 워낙 유명해서 지금도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곤 하니까.
[…왜 이제 와서 제 정체를 말하는지 궁금하시겠죠.]
“…그거 말고도 전부.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여신님이 말해주지 못하시는 걸 제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다만.]
힐다는 천천히 헬멧의 아랫부분에 손을 가져가며 말을 이었다.
[시우 님께 얽혀든 수많은 카르마가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해주고 있다고만 아시면 되겠네요.]
찰칵-
헬멧의 아래쪽에 채워진 벨트가 풀려나 달랑거리고 수많은 마법진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보다가 천천히 손을 뻗어 헬멧의 아랫부분을 잡았다.
“제 얼굴… 궁금하세요?”
이젠 기계 변조음이 아닌 원래의 목소리.
기억 속에서 들었던 목소리는 매우 짙은 분노와 안타까움이 가득했고 용의 형태라 그런지 온 세상이 다 울릴 정도로 큰 소리였다.
하지만 지금 헬멧 안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귀를 녹여버릴 정도로 나긋하고 부드러워서 침이 꿀꺽 넘어갔다.
아직도 달려있는 꼬리가 정도를 모르고 풍차처럼 돌아가자 힐다가 꺄르르 웃었다.
“…버, 벗길게?”
“다른 것도 벗기셔도 되는데.”
…내가 알기로 죽을 때까지 남자가 없었던 아샤, 그러니까 힐다가 길드장보다 더한 욕망을 담아 속삭여왔다.
“…그, 혹시.”
“벗기라고.”
박력 있는 노처녀의 기세가 무척 살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