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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화 미끼 (5)


​ 감염시킬 수 있는 대상만 보면 무차별적으로 달려들던 괴물들이 사자왕과 천익장의 뒤를 가만히 따라왔다. ​ 아우우우-----! ​ 늑대의 긴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굉음과 함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복도가 흔들렸다. ​ 항상 섬세하게 관리하는 갈기에 떨어지는 먼지들을 보던 사자왕 갤리어드는 혀를 차며 마나를 가볍게 둘러 먼지들을 막아냈다. ​ 그때 감염된 사람들이 일제히 멈춰서더니 지하 복도에 하나 둘 씩 쓰러졌다. ​ 파스스- ​ 머리에 붙어있던 살점들이 먼지가 되어 흩날리는 것을 보던 갤리어드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위를 올려다봤다. ​ “감히 사자가 있는 곳에서 늑대가 하울링을 하다니. 건방진...” ​ 당장이라도 뛰어 올라가 물어 죽이고픈 마음이 치밀어 올랐으나 이제 시간이 없었다. ​ “갤리어드.” ​ “아, 그래.” ​ 천익장이 걸음을 멈추자 갤리어드는 손톱을 뽑아내 자기 손바닥을 그었다. ​ 갈라진 피부 사이로 송골송골 맻히는 검붉은 피. ​ 그것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뭉쳐 살점이 되어 꿈틀거렸다. ​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있나요.” ​ 뒷짐을 지고 눈을 감은 천사의 물음에 갤리어드는 사납게 웃으며 코를 씰룩였다. ​ “아아- 늙은 엘프가 썩어가는 냄새가 나는군.” ​ 곧 손바닥 위에 뭉쳐있던 살점이 스르륵 움직여 다시 상처 안으로 파고들었다. ​ 자취를 감춘 살점과 상처를 가만히 바라보던 갤리어드는 곧 한쪽 벽으로 다가서더니 그곳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 쾅-! ​ 자욱하게 번지는 먼지가 가라앉은 벽 안쪽의 공간에 누군가가 잔뜩 웅크린 채 덜덜 떨고 있었다. ​ “하하! 전쟁 영웅께서 쥐새끼처럼 이런 곳에 숨어있다니! 이거 다른 이들이 보면 무척 놀랄 일이구만!” ​ 저항하지 못하는 사냥감을 발견한 포식자처럼 선명한 가학심을 띄운 눈으로 세리안 렐리트를 보던 갤리어드가 다시 손톱을 뽑아내자 유레이가 막아섰다. ​ “데리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 “...그분이?” ​ “세리안 렐리트가 아주 소량이지만 흡혈귀의 피를 구한 것 같더군요.” ​ “뭐라!?” ​ 갤리어드는 뽑아 들었던 손톱을 전부 감추고 쓰러져 있는 세리안 렐리트를 이리저리 살폈다. ​ “하, 하하하!! 그래서 이리 폭주한 거였나? 하긴 제까짓 것이 어찌 그 피를 감당할까!” ​ 갤리어드의 광소가 이어질 때 세리안 렐리트는 흐리게 뜬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두 정화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 *** ​ 그것이 흡혈귀라는 사실을 알아챈 후에는 더더욱 화가 났다. ​ ‘그분’께서 이르기를. 마지막 한 방울의 피만 있다면 내가 보았던 그것을 온전히 완성할 수 있다고 하셨다. ​ 아아- 그것이 완성되었던 것이 아니었다니. ​ 그 강대하고 아름답던 백룡이 자신의 목숨마저 버려가며 공멸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존재가 미완성의 작품이라니. ​ 도저히 상상도 가지 않는 그 힘에 전율했고 욕심이 났다. ​ 하지만 알 수 없는 놈들의 방해로 눈앞에서 흡혈귀를 놓치고 말았다. ​ 마지막 한 방울일지도 모르는데. 초월의 계단이 바로 눈앞에 있었는데. ​ 끓어오르는 분노로 지하 주차장을 때려 부수며 악에 받친 고함을 지르다 찾아낸 핏자국. ​ 그것에서 피어오르는 향기로운 냄새에 벌이 꽃에 이끌리듯 다가갔다. ​ 찾았어! 찾았다!! ​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 걸신들린 듯 시멘트 바닥을 핥아가며 핏방울을 먼지와 함께 목구멍으로 넘겼을 때부터. ​ 머릿속에 메아리치듯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끊임없이 속삭이는 목소리는 어린아이의 것처럼 순진무구한 것도 같았고 오랜 세월을 살아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는 엘프 노인처럼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묵직하기도 했다. ​ 어쩐지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고 팔의 상처도 낫지 않았다. ​ 썩은 내가 나는 것 같았다. ​ 내 몸에서. 아니, 살아있는 모든 것에게서? ​ 이것은 갈증인가? ​ 완전히 거듭나기 위한 시련인가? ​ 마지막 한 방울의 피를 얻어 완벽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어째서 무언가 부족하다는 듯 갈증을 느끼는 거야? ​ 알 수 없는 혼돈 속에서 무언가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 “아아---” ​ 밝게 빛나는 아름다운 형상을 보았다. ​ 그것을 보고 나서야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 ‘그분’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마지막 피 한 방울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 “흠- 완전히 맛이 가버렸군. 혈액을 뽑아내고 나면 쓸모가 없겠어.” ​ “갤리어드.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갑작스러운 혼란으로 핵의 소재를 파악하기 어려우니 그분의 당부대로 저 멍청한 엘프의 몸만 챙기지요.” ​ “크큭. 이봐, 세리안. 드디어 나이에 맞게 쭈글쭈글한 얼굴이 됐군. 아- 전쟁영웅의 비참한 말로라. 심히 안타까워.” ​ 아아--- 아름다운 영혼이여- ​ 작은 몸에 갇혀 자유를 잃어버린 불쌍한 영혼이여- ​ 저거야. 저게 필요했던 거였어. 신의 의지에 반하고 신이라는 존재를 죽여 그 자리를 찬탈하려는 이들도 결국 신의 손에서 태어난 존재들이다. ​ 그렇기에 저것이 필요한 것이다. ​ 신의 의지가 개입하지 않고 태어난 순수한 영혼. 섭리의 흐름에서 비켜 간 얽매이지 않은 영혼이. ​ 신의 눈에서 벗어난 영혼이 바로 눈앞에 있었는데--- ​ 섭리에서 벗어난 마지막 조각이 눈앞에 있는 데에-- ​ 아아--- ​ 흡혈귀를 놓쳤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절망감이 몸을 감싸고 돌았다. ​ 아마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 너무 가지고 싶어서 방해되는 것들을 전부 죽였을 때부터어-? ​ 썩은 내가 나는 것들이 감히 그것에 손을 뻗었을 때부터-? ​ “뭐라고 중얼거리는 건지 모르겠군.” ​ “실패자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 너희들은 모르겠지. 아마 그분도 모르실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너희들의 발버둥이 정말로 우습구나. ​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후회하지 않아. 결국 나는 그것을 봤다. 두 눈으로 똑똑히 아름답게 타오르는 순수하고 황홀한 영혼을--- ​ 꽈득- ​ “죽여도 된다고 진작 말하지, 그랬나.” ​ “죽이든 살리든 차이가 없으니까요. 흠... 귀는 잘라가도록 하죠.” ​ “뭣? 아직도 그런 악취미를 계속하고 있었나?” ​ “소소한 여흥일 뿐이죠.” ​ 고귀한 혈통을 타고나 세계수의 수호자이던 엘프는 흙먼지와 오물을 뒤집어쓴 채 바닥을 굴렀다. ​ 툭- 퍽- ​ 갤리어드가 걷어찬 세리안 렐리트의 머리통이 벽에 부딪혀 몸뚱이가 구른 쪽의 반대 방향으로 굴러갔다. ​ 귀가 잘리고 혀가 길게 빠져나와 기괴했으나 죽어버린 눈동자는 살아생전 봤던 가장 아름다운 것을 계속 떠올리는 듯했다. ​ 쯧- ​ 가볍게 혀를 찬 갤리어드는 세리안 렐리트의 몸통을 집어 들며 뒤돌았다. ​ “가자고. 그분이 기다리신다. 핵이 뿌려놓은 미끼를 물었으니 앞으로는 이곳을 중심으로 수색을 하면 되겠어.” ​ “대업을 이룰 날이 코앞이군요.” ​ 유레이는 작은 주머니에 전리품을 챙기고 앞서가는 갤리어드를 따라가다 뒤를 돌았다. ​ “그 와중에도 살겠다고 여기까지 도망쳐오다니. 역겹네요. 그래도 귀는 제대로 전시해드리겠어요.” ​ 머리통만 남은 엘프는 대답이 없었다. ​ *** ​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와 확성기에서 터져 나오는 고함이 뒤섞인 돔 스타디움의 정문 앞은 그야말로 난민촌과도 같았다. ​ 저 멀리 스타디움의 안쪽으로 보이는 무대 위 아직도 거대한 살점의 잔해가 남아 질척이며 흘러내리고 있었고 끄트머리부터 천천히 먼지가 되고 있었다. ​ “하아- 하아- 저... 잘 했습니까? 제가 물리쳤습니다.” ​ “제발 조용히 해. 말하지 마.” ​ 다친 사람도 많고 죽은 사람도 있었다. ​ 길드의 과잉 진압으로 목이 잘려 나가거나 팔다리를 잃어버린 사람도 많았다. ​ 비명과 울음. 비릿한 피 냄새가 주는 피로감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다잡고 청란을 눕혔다. ​ 짤랑-! ​ “자, 빨리 마셔.” ​ 내 입에서 나오는 것 같지 않은 고저 없는 목소리에 청란은 힘없이 눈을 뜨고 살포시 웃었다. ​ “화나셨습니까?” ​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오묘한 색으로 빛나는 포션의 병뚜껑을 따려고 비틀었다. ​ “젠장... 왜, 왜 안 되는 거야.” ​ 손끝에 감각이 없었다. 정확히는 그런 것 같았다. ​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유리된 것처럼 정신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지독한 불쾌함만이 선명했다. ​ 트득- ​ 마침내 병뚜껑이 열리고 다급히 무릎걸음으로 청란에게 다가가 그녀의 목뒤를 받쳤다. ​ “입, 입 열어봐.” ​ “하아- 윽- 하아. 시우 님... 저 잘했지 않습니까? 제가 다른 사람들을 구했...” ​ “닥치고 입 좀 열어!” ​ 아, 이제서야 감각이 차츰 돌아오기 시작했다. ​ 예민한 엘프 귀에 파고드는 울음소리와 애타게 누군가를 찾고 부르는 목소리들. ​ 썩어가는 살냄새와 그 사이를 헤엄치는 비릿한 피 냄새. ​ 부서진 잔해에서 피어오르는 먼지 냄새와 눈앞의 여자. ​ “빠, 빨리 입 열어. 너 진짜 이러다...!” ​ 원래도 붉었던 입술이 피를 머금어 더욱 붉어져 있었다. ​ 창백해진 얼굴로 뭘 잘했다고 웃는 건지 모르겠다. ​ 죽으면. 죽으면 절대 용서 안 할 거야. ​ “쿨럭-!” ​ “아, 아으...” ​ 그녀의 입에서 기침과 함께 튄 핏방울이 이마와 볼에 달라붙어 천천히 흘러내렸다. ​ 처참하게 망가진 오른팔에서 끝없이 피가 흘러내리고 상처투성이의 얼굴로 예쁘게 웃는 청란이 울상을 지으며 웃었다. ​ 모순적인 감정이 그녀의 얼굴에 비치는 순간 나는 멈췄던 숨을 터트렸다. ​ “청란!” ​ 다급하게 포션을 입에 들이부어 그녀에게 입 맞췄다. ​ 진작 이렇게 할걸. ​ 진작 입을 맞출걸. ​ 맞닿은 입술이 지독하게 차가웠다. 핏물이 닦여나간 그녀의 입술이 너무나도 파랗게 변해있었다. ​ 꿀꺽- ​ 그녀의 피인지 포션인지 모를 것이 내 목구멍으로, 또 그녀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 차갑게 식어가는 그녀의 몸과는 반대로 내 몸은 급격하게 뜨거워지며 열이 올랐다. ​ “푸하- 헉! 헉! 피피! 레베카! 어딨어!” ​ 정신없이 소리치며 신비상인 상점을 열어 병에 담긴 물약의 모습이 보이면 확인도 하지 않고 마구 주문했다. ​ 짤랑-! 짤랑-! ​ 투명한 물방울에 감싸진 물약이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하나둘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 “비키세요!” ​ 그때 피로 물든 가운의 끝자락을 휘날리며 피피와 레베카가 임시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 내 어깨를 부드럽게 밀어내는 손을 느끼며 뒤로 털썩 주저앉아 피피가 청란의 몸 곳곳에 물약을 뿌리고 레베카가 신성력을 뿜어내는 것을 지켜봤다. ​ 몸의 감각은 이렇게 선명한데 아직도 유리된 것처럼 고요하고 차분한 정신이 어색했다. ​ 모든 상황이 몰래카메라인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 “...죽여버릴 거야.” ​ 죽으면, 죽여버릴거야. ​ 뒤로 밀려난 그 상태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 이마와 볼에서 청란의 피가 아래로 흘러내렸다. ​ 마치. ​ 마치 하늘을 보며 울던 그년의 얼굴처럼. ​ 왜 그 검붉은 얼굴이 하늘을 보고 울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가슴 깊은 곳에서 항상 고개를 숙이고 있던 무언가가 나를 따라서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 본능적으로 그것과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고 느끼면서도 강렬한 이끌림을 느끼며 그것을 마주 보려던 찰나. ​ “쿨럭-! 쿨럭-!” ​ “하아... 괜찮으세요? 진짜 조금만 늦었으면... 어휴!” ​ “헤엑- 헤엑- 저는! 치유 담당이 아니라구요-!” ​ “저는, 쿨럭-! 하아! 하! 살아...있습니까?” ​ 화들짝 놀라 천막 안쪽을 들여다보니 식은땀을 닦아내는 피피와 레베카의 사이로 창백하지만, 생기가 도는 얼굴로 청란이 눈을 뜨고 있었다. ​ “이, 이...” ​ “아, 시우님... 저... 잘 했습니까?” ​ 살랑살랑 흔들리는 그녀의 꼬리가 무척, 무척이나 거슬렸다. ​ “이 똥개년아아아!! 죽을래-!?” ​ 가슴 속 그것이 혀를 차며 다시 고개를 숙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전보다 더욱 아래로 가라앉아 어둠 속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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