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방송인인 내가 19금 게임에 빙의하게 된 건.
두둥- 두둥-
익숙한 레트로풍의 BGM이 고막을 울린다.
새까만 눈동자에 비치는 새하얀 모니터의 조명등.
깜박깜박. 눈꺼풀을 여닫으며 엔딩 크레딧을 감상하던 나는 방송용 카메라를 보며 신나게 소리쳤다.
"자아~ 이렇게 보가트 몬스터 켠김에 왕까지 스타 사파이어 스피드런을 8시간 21분 23초 만에 커어어어어엇!!! 했습니다!"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잘난 척을 시작.
어그로를 끌기 위해 최대한 건방진 얼굴을 드러냈다.
손가락을 들어서 카메라 앞에 흔들자, 떡밥을 문 시청자들이 리액션을 남발하기 시작했다.
renaDOiris : ㅊㅋㅊㅋㅊㅋ
초코초코치 : 와 이걸 진짜 하네;;;
[미션 성공!]
[총 273000원을 받았습니다.]
크라이시스9.9 : ㅁㅊ 몬스터 상태는 또 왜 이럼? 도대체 챌린지를 몇 개나 건거야.
"아유~ 방금 막 오셨나 보네요. 챌린지? 아무것도 아니죠. 제가 누굽니까. 바로 월드 BGT 소울들리컵 23회 우승자 아닙니까."
사랑와용기의마법전사 : 님얼굴왤캐띠꺼워님얼굴왤캐띠꺼워
이세계전이하고 싶어요 : ㄹㅇ 잘하긴 했는데 뭔가 꿀밤마려운 표정이네 ㅋㅋㅋ
[군필여초생쟝님이 30000원을 기부하셨습니다.]
[= 아저씨, 세계기록 경신축하해요.]
"아유~ 고맙습니다 군필꼬마님. 이게 다 실력이죠. 보세요, 이게 특성이랑 스킬만 맞춘다고 우승을 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전부 실력이에요 실력."
콩밥먹고싶다냐 : 아 이건 ㅇㅈ이지 ㅋㅋ
채팅창을 바라보던 나는 졸음을 몰아내듯 크게 하품했다.
컨 김에 왕까지. 배틀 중 기절하면 바로 놓아주기. 같은 보가트몬은 하나 이상 잡지 않기. 등등의 수많은 제약이 걸려 있던 이번 도전.
제아무리 보가트 몬스터를 좋아하는 나라도 이번에는 조금 피곤했다.
rhdkfk9912 : 그래서 다음 방송 컨텐츠는 뭐임?
"아, 다음 컨텐츠요? 아직 안 정했는데..."
나는 시청자의 물음에 머리를 긁적이며 말꼬리를 늘였다.
훌륭한 방송인은 시청자들의 참여를 유도하며, 동시에 그들의 등골을 빨아먹는 법.
내심 정해 놓은 컨텐츠는 있었지만 아이디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시청자들의 여론을 살펴보며 컨텐츠를 조절하려는 생각이었다.
ㅇㅇ(11772) : 레네이지 리메이크 버전 새로 나왔다던데 해 보실?
에어리올 : 오랜만에 투신하지 투신.
[뀨뀨르뿅뿅님이 5000원을 기부하셨습니다.]
[= 킹 킹 킹 톤파!]
이것 봐. 살짝 건드니까 아이디어가 마구마구 튀어나오잖아?
시청자들이 각자 자신이 원하는 방송 컨텐츠를 추천하기 시작. 저 하나하나가 전부 방송 컨텐츠라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시청자들의 의견을 전두엽에 쑤셔 넣으며 채팅창을 매의 눈으로 하나하나 훑던 중.
내 눈에 이질적인 내용의 채팅 하나가 들어왔다.
God_Master : 이번에 제가 새로 만든 보가트 몬스터 모딩이 있는데, 혹시 그거 한번 해 보실래요?
"오~ 갓마님이 직접 모딩을 만드셨다고요???"
갓마. 내가 진행하는 방송 '별룡TV'의 큰 손 중 하나다.
혹시 손가락이 없는 것은 아닐까 시청자들이 진지하게 고민을 할 정도로 평소에는 아무런 말도 없던 시청자였다.
점 하나 찍고 후원만 줄창 보내던 양반이 무슨 바람이 불었나 손수 채팅을 적었다.
이건 조금 궁금하다. 도대체 모딩에 얼마나 자신이 있길래 묵언 수행을 그만두고 입을 열었을까?
나는 눈을 반짝이며 갓마님의 다음 채팅을 기다렸다.
시청자들의 의견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 입을 연 물주님의 채팅에 무척 놀란 상태.
세기말의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채팅창을 점령한다.
아침메일사과한통 : 뭐야; 저 양반 봇 아니었음???
Sonovfinch : ㄹㅇ ㅋㅋ 나도 AI 관리잔 줄 았았는데 ㅋㅋㅋㅋㅋ
"아이고 여러분, 갓마님 너무 놀리지 마시고요. "
두부두부귀여워 : 기별룡 曰 : 어어딜 흙수저 주제에 갓물주님께 깝치느냐;;;
빍런은살고시프타 : 아 넘모 무섭다;;;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gosplaypater : 언냐. 아니긴 뭐가 아니야!!!
"에휴- 아무튼 맞다고 합시다."
그렇게 시청자들과 농담 따먹기를 마친 나는 갓마님을 향해 되물었다.
"그나저나 갓마님. 직접 만든 모딩이 있으시다고요?"
God_Master : 네, 거의 연금술사 육체 재구성 급으로 잘 만들었어요.
"흠, 갓마님께서 그렇게까지 말하시면 한번 해 볼까. 그럼 내일 방송 컨텐츠는 이걸로?"
God_Master : 아니 방송은 하면 안 돼요.
"아유~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이 뭐야. 내가 저작권료는 톡톡히 쳐 줄게. 지금까지 갓마님이 주신 후원금이 얼마나 되는데요. 그걸로 드리면 되죠?"
아파스타조아 : 본격 카드 돌려 막기식 특허 뺏어오기 ㄷㄷㄷ
Ariestar : ㄷㄷㄷㄷ
카드대출은대충대충 : 본격꺼꾸로가는보일러식후원금되받아치기;;;
살구색크래용 : 시청자들 '이게 맞나 싶다.'
andtaro :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프로지갑 :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God_Master : 아니 그게 아니라...
"어, 그런 이유가 아니라고요? 그럼 그게 아니라 뭐죠?"
God_Master : 19금이라서...
노벨스피아스페셜포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9금?
그 귀염뽀짝한 몬스터들을 성인향 컨텐츠로 다시 제작했다고?
여체화 몬스터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음습한 표정이 지어졌다.
그 모습을 본 시청자들이 자지러지며 활발하게 채팅창을 치기 시작했다.
앗족발이고작3천 원 : 19금 컨텐츠 가자앗!!!
fishnova : 가즈앗!!!!!!!!!!!!!!!!!!!
7777qweqwert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voingsong : ㅋㅋㅋㅋㅋ
"아... 19금. 이건 어쩔 수 없지."
시청자들의 호응이 격렬하다.
내 눈으로는 채팅창이 올라가는 속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19금 컨텐츠에 엄격한 나라. 섣부르게 불법 컨텐츠를 진행했다간 바로 정지를 먹는다.
그렇다고 시청자의 요구를 외면 할 수는 없는 노릇.
주변을 둘러보는 척 하며 눈치를 보던 나는, 카메라에 입가를 가져간 후 조용히 읊조렸다.
"그럼 아쉽지만 방송은 끄고 저 혼자만 하는 것으로..."
한큐에맛세이해주님 : ????????
패chocola도 : 아니 그게 무슨 똥 같은 소리죠?
잠술고기고기 : 엄마왜나만야한 거못봐엄마왜나만야한 거못봐엄마왜나만야한 거못봐엄마왜나만야한 거못봐
예상대로 시청자들은 난리가 났다.
세기말의 아포칼립스같은 채팅창은 새까만 활자들로 더럽혀진 상태.
그들의 열렬한 반응을 구경하던 나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요. 모두 햄볶한 꿀잠 자세요~"
덴디라이호우 : 오빠지금그런말해놓고꿀잠소리가나와???
수상할정도로돈이많은고양 : 갈! 도망치는 것이냐!!!
"아, 아무튼 종료. 모두 바이!"
시청자들의 원성을 들으며 방송을 종료.
방송용의 가면을 벗어던지자 옅은 탈력감이 몸을 휩쓸었다.
집중을 너무 했기 때문일까. 머리가 불타는 것 같다.
후우- 한숨을 토해내며 침침해진 눈을 주물주물.
적당히 피로가 가셨다 싶을 즈음. 슬쩍 손가락을 벌려서 그것의 틈새로 모니터를 확인했다.
검은 모니터에 비치는 나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짝 웃고 있었다.
"그럼, 쪽지를 보내볼까!"
최애겜의 19금 모딩?
아~ 이건 못 참지.
나는 속사포같이 손가락을 휘둘러 갓마님에게 쪽지를 날렸다.
- ㅂㄹㅂㄹ~ 안녕하세요 갓마님. 혹시 게임에서 말한 보가트 게임 19금 모드가 실재로 존재합니까? 정말이라면 돈을 주고 구매할 의향도 있습니다 ヽ(°〇°)ノ.
보가트 몬스터.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게임이자 나의 인생 게임이기도 하다.
그런 게임의 19금 모딩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지금의 나는 그 언제보다 불타오르고 있다고!
= ㅂㄹㅂㄹ~ 쪽지는 처음이네요 별룡님!
- 사실 대화 자체가 처음이시죠. 그동안은 후원금 보낼 때도 점만 딸랑 하나 찍었잖아요. ㅋㅅㅋ
= 그건 그렇죠 ~ㅎㅅㅎ~
- 갓마님. 혹시 앞으로는 채팅방에서 말도 하고 막 그러실건가요?
= 아뇨, 오늘만 특별히니까요.
계속되는 큰손님의 침묵 유지 선언.
이거 미션을 걸어 줄 일은 앞으로도 없겠구만.
나는 아쉬움에 입만 쩝쩝 다셨다.
- 그래요? 그건 조금 섭섭하네용 ㅜㅠ. 그것보다, 19금 mod의 이야기입니다만.
= 바로 본론이시라니. 별룡씨는 생각보다 많이 밝히시네요. ㅋㅋ.
"아니. '생각보다' 밝힌다고?"
갓마님의 쪽지를 읽던 나는 그동안 진행했던 방송 콘텐츠를 쭉 떠올렸다.
게임 반 수다 반으로 이루어진 별룡TV는 남자 시청자 위주의 컨텐츠를 지향했다.
그래서 나온 컨텐츠가 애니 여캐 이상형 월드컵. 투신 카메라 시선 내려서 아래쪽 보기. 서큐버스 아머 파괴하기 등등인데.
흠, 이 정도면 대놓고 밝히지 않았나?
내 방송을 너무 많이 본 나머지 그만 에로한 컨텐츠에 내성에 생긴 것인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채팅을 계속 이어나갔다.
- 제가 생각보다 조금 밝히죠 (#^.^#).
= 정말로 해보고 싶은가요?
- 정말로요.
= 정말?
- 정말정말.
19금 모딩이 정말로 있기는 한 거야?
혹시나 거짓말은 아닐까. 하염없이 애만 태우는 갓마님의 채팅.
슬슬 마음이 급해진다.
내 속이 담배 꽁다리처럼 타들어간다.
- 끼잉끼잉-
= 흐음.
- 얼마면 되냐. 얼마면 되냐고!
= 알았어요. 그냥 공짜로 드릴게요.
= 파일 첨부 : 19금_mod_에로몬스터.zip
한참 동안 애를 태우고서야 갓마님은 내게 파일을 보내줬다.
연이은 애태움과 밀당에 쌓인 불만은 첨부된 게임 파일 하나에 싹 날아갔다.
이걸 공짜로 주다니. 역시 물주님이 최고야.
"오, 사랑합니다 고객님."
의미 없는 혼잣말을 지껄이며 다운로드 버튼을 클릭.
혹시 바이러스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 그럴 리는 없겠지.
그동안 갓마님이 주신 후원금을 합치면 능히 피시방 한 줄만큼의 컴퓨터를 살 수 있다.
나와 갓마님의 유대감은 총 후원금의 액수만큼이나 공구하다.
"그럼 어디 한번 해 볼까~"
나는 게임 아이콘을 클릭하고 화면이 켜지기를 기다렸다.
두둥- 두둥-
잠시 후. 익숙한 레트로풍의 BGM이 스피커를 타고 내 고막을 울렸다.
화면이 서서히 밝아지고 낯익은 모양의 구름이 보인다.
[19금 mod 에로몬스터!]
[새로 시작하기]
[설정]
"오~ 도트 괜찮은데."
게임의 메인 화면에는 보가트 몬스터의 여체화 일러스트가 교대로 나오는 중.
누가 야겜 아니랄까 봐 하나같이 예쁘장하게 생겼다.
특히 케르베로스는, 진짜로 얼굴 같은 것이 세 개나 달려 있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조금만 해봐야지."
퀭한 눈으로 의미 없는 다짐을 중얼거리며 엔터를 누른 순간.
R255 G255 B255의 강렬한 리얼 화이트 눈뽕이 나의 눈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