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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방송인인 내가 19금 게임에 빙의하게 된 건.


웹소설 17년차 텍붕이는 수많은 소설을 읽었고, 그중에는 수많은 빙의물 소설이 있었다. 어떤 소설은 5700자의 항의 쪽지를 보낸 참독자가 빙의되고. 다른 소설에서는 완결 직전에 휴재를 낸 작가가 빙의당하기도 했다. 침대에 누워서 감자칩을 먹던 당시의 나는 생각했다. 게임 방송의 큰손 후원자님께서 나를 빙의시키는 것쯤은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다. ...라고 다짐했는데. "시발 이게 뭐시여?" 실제로 겪어보니 알겠다. 주인공의 마음을. 상황은 그만큼이나 황당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을 뿐. 그런데 어느새 익숙했던 방은 사라지고, 강당으로 보이는 커다란 공간이 나타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앞에도 옆에도 청소년이 바글바글. 심지어 강당의 가장 높은 곳에는 실험복을 입은 여인이 나른한 얼굴로 마이크를 매만지고 있다. "뭐지. 혹시 몰래 카메란가?" 처음 별룡TV의 7년차 인터넷 방송인은 그렇게 의심했다. 문제는, 하꼬 방송인에게 하는 몰래카메라라기엔 규모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눈뽕에 걸린 나를 3초만에 납치해서 가건물과 배우까지 세워 놓았다고? 차라리 내 인생이 트루먼 쇼라는 쪽이 확률이 높겠군 그래. "아아- 마이크 테스트." 강당 위에 선 여인이 입을 열었다. 여인이 입을 땐 순간. 와글거리던 강당 안이 숨소리 하나 없이 고요해졌다. 합죽이가 된 학생들을 훑어보던 여인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흐음- 모두. 에로몬스터의 세계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제 이름은 성하라. 몬스터 육성부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과분하게도 이번 강의를 맡게 된 사람입니다." 눈빛이 초롱초롱해진 학생들을 보며 성박사는 손을 휘저었다. 손목에 걸린 문양이 아름답게 빛나고. 그로부터 튀어나온 것은 야하게 생긴 여자아이. 내 옆에 앉아 있던 몇몇 학생들이 감탄의 함성을 내질렀다. "어때요. 신기한가요? 에로 몬스터 무스메. 줄여서 에로몬이라고 부르는 이 생물은 언제나 우리의 곁에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여자아이가 커트시 자세로 고개를 숙이자. 학생들의 환호성은 더욱 커졌다. 물론, 나만 빼고. 도대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대사와 초현실적인 판타지의 만남.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미치겠네..." 정신을 차리고도 입을 멍청하게 벌린 채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 있던 나는, 미아가 된 아이의 기분을 느끼며 플라스틱 의자에 쓰러지듯 몸을 기댔다. 그렇게 동태눈이 되어 몸을 늘어트린 나의 앞에, 문득 펄럭이는 현수막이 보였다. [제 14회 왕초보 에로몬 트레이너 특별 강연] [주최 : (주)레이트, 성하라 박사] [시기 : 223년 6월 24일 오후 19시] [장소 : 태산 아카데미 학생회관 2층 컨벤션 홀] 왕초보 에로몬 트레이너? 태산 아카데미? 223년? 하나같이 본 적이 없는 지명이요, 단체요, 시대였다. 안 그래도 쑤셔오던 머리가 더욱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이게 무슨..." "쉿- 조용히 해! 지금 박사님께서 강의 중이시라고." 뾰족한 말투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의에 집중하고 있던 옆자리 학생이 도끼눈을 뜬 채 나를 노려보는 중이다. 미안하다는 얼굴로 살짝 고개를 숙이자 웃으며 받아주는 그녀. 머릿속이 뒤엉킨 실타레처럼 혼란스럽다. 일단은, 계속 상황을 살펴보자.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짓기도 하죠. 이러쿵 저러쿵 말은 많지만, 결국 에로몬은 우리 사회에서 때어놓을 수 없는 생명체입니다." 그렇게 성박사의 프레젠테이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뭔가, 뭔가.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기시감이 들었다. 머리 한구석이 간질간질. 마치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 기분. 내가 이걸 어디서 들었더라. 머리를 부여잡고 한참을 끙끙거렸지만, 기억이라는 녀석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에로몬간의 상성표입니다." 성박사가 버튼을 누르자, 프레젠테이션이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알록달록 색칠해진 속성 증감표를 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보가트 몬스터!" 에로 몬스터 무스메. 줄여서 에로몬. 내가 정신을 잃기 직전에 하려고 했던 게임이기도 하다. 교수가 보여주는 속성 데미지 증감표는 보가트몬의 속성 데미지 증감표와 완전히 똑같았고. 나의 명석한 두뇌는 비현실적이지만 합리적인 추론을 이끌어냈다. "빙의라고. 게임 빙의라고?" 아니. 다 좋다. 근데 왜 하필 나란 말인가. 하도 황당해서 목이 턱 하고 막혔다. 게임을 즐겼으면 즐겼지 딱히 불평을 한 적도 없고. 분노의 5700자 비평글을 쓰지도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이세계로 날려 보낼 이유가 없다. 혹시 월드 BGT 소울들리컵 우승자를 배제시키려는 모종의 음모가 아닐까? 심지어는 그런 피해망상마저 들 정도였다. "...생." "아닐 거야. 그건 아닐 거야." "거기, 학생!" 그때.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 패닉에 빠져 있던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 나를 반기는 것은 따가운 시선들. 자석을 보고 끌린 철가루처럼, 수십 수백 학생들의 대가리가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어디 아프신가요? 지금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습니다만." "아, 괜찮습니다." 지금 나의 손이 떨리는 이유는 공포인가 희열인가. 그것은 아무도 모를 일. 비록 원작은 아니지만 평생을 꿈꾸던 세상이다. 솔직히 말해서,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졸았나 봐요." "흐음, 그렇단 말이죠? 맨입으로는 안 되고. 만약 제가 낸 문제를 맞히신다면 학생의 사과를 받아들이죠." "...좋습니다." "호오- 자신이 대단하시네요? 그럼 문제입니다." 문제를 내기에 앞서, 성박사가 프레젠테이션을 앞으로 한 칸 돌렸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굳이 할 필요가 없는 행동이다. 아마도 속성표를 숨기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속성에 관한 문제가 나오겠지. 나는 머릿속에 보가트몬 속성표를 펼쳐 놓으며 성박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나의 예상대로 성박사의 질문은 속성과 관련된 문제였다. "만약 학생이 제 강의를 들었다면 알 수 있겠죠. 대지 / 요정 속성의 에로몬을 상대로 가장 좋은 속성은 무엇일까요?" 말을 마친 성박사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강의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며 내 행실을 꼬집겠어. 뭐 대충 그런 의미의 웃음이다. 하지만 나. 기별룡. BGT 소울들리컵 23회 우승자. 이 정도의 문제는 누워서 떡 먹기다. "요정 속성에는 강철이나 어둠이 효과적이고, 대지 속성에는 물이나 바람이 효과적입니다." "오~ 정답입..." "하지만 서브 웨폰을 구비해 놓는 상급자 단계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말을 계속 이어나가자. 성박사의 눈빛이 조금 진지해졌다. "...계속하세요." "생각이 있는 트레이너라면 약점인 부분을 역으로 찌를 수 있도록 메이저한 전기 혹은 화염 속성의 기술을 하나쯤 장착시킬 터." "훌륭합니다." "대지 / 요정 / 전기 / 화염 이 네 가지 모두에게 유리한 타입은..." "...타입은?" "완벽하게는 없습니다. 당장 생각나는 조합은 강철 / 대지 복합 타입이려나요. 아, 만약 속도가 높다면 조건부로 요정 속성을 찌를 수 있는 악마 속성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성박사가 입을 꾸욱 다물더니 나를 빤히 응시했다. 숨 막히는 정적.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시선이 내게 쏘아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나를 타박하던 옆자리 학생이 굉장하다는 눈빛을 보내오는 중. 사방에서 쏟아지는 눈초리가 부담스러운 나는 모두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거기, 학생. 이름이 뭐죠?" "그게, 기별룡이라고 합니다." "좋아요. 기별룡 학생." 다시 강의를 시작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성박사. 리모컨을 누르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아까보다 뻣뻣했다. 겉으로는 무덤덤한 척을 하지만. 사실은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당신, 끝나고 남으세요." *** 얼핏 보면 총처럼 생겼다. 몸통부에는 신분증을 꽂아 넣는 구멍이 있고. 후면부에는 작은 네비게이션 크기의 액정 화면이 보인다. 길거리의 사람들에게 이게 뭐냐고 물어본다면, 백이면 백 어린이용 캠코더라고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이 물건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아냐면 ― 초반부에 만난 박사가 트레이너에게 줄 만한 물건은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이건 뭐죠?" "판치라 스캐너라고 합니다." 그래. 역시 도가... "뭐라고요? 무슨 스캐너?" 나는 멍청하게 눈을 껌벅이며 다시 한번 되물었다. 혹시 내 귀가 잘못됐나. 주변에 아무도 없었더라면 깽깽이발로 귀를 털어냈을지도 모르겠다. "학생이 들은 것이 맞습니다. 판치라 스캐너라고 부르는 물건이죠." 고개를 끄덕이는 성박사의 눈빛은 장난기 한 점 없이 진지한 상태. 적어도... 농담은 아닌 것 같았다. "자, 한번 직접 사용해 보시죠." "어떻게 사용하는데요?" 그렇게 묻자. 성박사가 기다렸다는 듯 판치라 스캐너의 화면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어째선지 내 호주머니에 들어 있던 ID카드를 판치라 스캐너에 장착시키고. 액정 화면에서 이런저런 버튼을 누르기 시작. 삐릭- 전자음과 함께 화면이 반짝거리며 판치라 스캐너의 작동을 알렸다. "디폴트 설정은 이렇게 하시고..." 그 외에도 이런저런 조작을 이어 나가는 성박사. 그녀는 액정 화면의 어플을 일일이 클릭하며 세세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녹화 기능부터 통신 기능까지. 웬만한 스마트폰은 저리 가라 하는 성능. 물론 가장 중요한 기능은 에로몬 스캔 기능이었다. "에로몬 스캔 기능은... 실제로 사용을 해보면 되겠군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성박사. 그녀가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나는 제자리에 앉은 상태로. 성박사는 두 팔을 벌린 상태로. 우리는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봤다. "자. 어서 쏴 보세요." "어, 교수님한테요?" "네." 비상시 둔기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묵직한 무게와 금속 특유의 차가운 촉감. 하필이면 권총을 닮은 생김새라서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 그렇지만 뭐.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어. 어차피 이세계 불법 체류자 핫산에게 선택권은 없다. 조준― "발사!" 피슝- 채찍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는 듯.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들렸다. 돌개바람은 바닥을 기는 뱀처럼 날아가, 성박사의 치마를 훅- 하고 들춰냈다! 동시에 들려오는 카메라 소리. 무심코 울려퍼진 소리에 총을 확인한 나는 깜짝 놀랐다. 판치라 스캐너의 액정 화면에는, 성박사의 팬티 사진이 찍혀 있었다. [에로몬 육성학부 성하라 박사 : Lv.26] "이래서 판치라 스캐너구나." 나는 미묘한 얼굴로 쓰잘데기 없이 정밀한 이세계의 오버 테크놀로지에 감탄했다. "어떤가요. 저의 자신작이." "어... 정말 굉장하네요!" 성박사는 굉장히 자랑스럽다는 얼굴이어서, 차마 도촬용 야짤 기계가 아니냐는 질문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부탁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내심 그녀의 부탁이 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묘하게 원작의 스토리와 비슷한 세계. 에로몬도 있고 박사님도 있고 판치라 스캐너도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스토리도 존재하겠지. 만약 내가 아는 각본대로 이야기가 흘러간다면. 이다음에 나올 말은 바로... "그러니까. 전 세계 에로몬들의 팬티를 수집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랍니다. 혹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예상대로군. 아니. 정확히는 판치라 스캐너라서 예상과 조금 다르지만. 아무튼 예상대로라고 치자. "훌륭한 눈빛. 제가 하려던 말을 짐작하신 모양이죠?" "솔직히 말하자면, 네. 그러네요." "좋아요. 똑똑한 사람." 성박사가 싱긋 웃으며 내게 열쇠를 건네줬다. "11-2f. 저희 실험실에 준비된 손님용 방입니다. 만약 계약이 체결된다면 월마다 용돈도 드리고, 제 나름대로의 '호의'도 드리죠. 어때요. 계약을 하시겠어요?" "흐음... 조금만 고민을 해 보―" "아, 참고로 월마다 드리는 용돈은 이 정도." 성박사가 내민 계산기의 숫자를 확인. 태생이 소시민인 나는 눈을 똥그랗게 뜨며, 그녀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연봉인가요?" "아니요. 월급입니다." 오. 세상에나. 만약 그녀가 강아지 흉내를 내며 네 발로 실험실을 기어다니라고 한다면, 나는 기쁘게 무릎을 꿇고 그녀의 구두를 핥으리라. 성박사가 제시한 금액은, 이세계 차원표류자 핫산이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금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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