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미끼 역할
1.
다음날, D마트 대피소의 월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창밖을 본 사람들이 소란을 피웠다.
"어, 어어? 뭐야 저게?"
"무슨 막 같은 게 생겼는데……?"
"빨리 가서 도하 씨 불러와 봐! 큰일 난 거 아니야!?"
D마트를 둥글게 감싼 돔 형태의 막이 생겨났다. 마트 위로 유리로 된 그릇을 덮어 씌운 듯한 모양새였다.
더 신기한 것은 막 안쪽의 풍경이다.
햇빛이 막을 투과하면서 보다 강렬한 황금빛으로 변해 내리쬐고 있었고, 그 결과 막 안쪽의 땅은 축복받은 것처럼 빛이 났다.
"와아아아……."
"뭔가…… 안 좋은 건 아닌 것 같은데……?"
모두가 잠든 새벽 중에 발동한 [희망의 땅]의 효과였다.
2.
아침이 되고도 30분쯤 지나자 이제 D마트의 생존자들 중에는 이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1층 정문 근처에 구름처럼 모여서 저마다 의견을 내놓고 있었다.
"저 막 통과할 수는 있는 거야?"
"통과 못하면? 여기에 갇힌 건가?"
"다 같이 한번 지나가보자."
"나갔다가 좀비가 덤벼오면 어떡하려고."
"일단 근처에 가서 뭐라도 던져봐."
"아니 그것보단……."
시끌벅적한 것이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다. 사람들의 분위기는 대체로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이었다.
내가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쏟아졌다.
"어, 도하 씨 왔다!"
"도하 군! 혹시 저게 뭔지 알아?"
나는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크게 소리쳤다.
"여러부운—! 진정하세요—!"
"……."
다들 조용해졌다. 나는 이곳 D마트의 대표이자 토벌대장으로서 발언권을 존중받는 편이었다.
"지금부터 1시간 후, 9시 정각에 생존자 대표 회의를 열겠습니다. 의견이 있으신 분은 거기에서 말씀해 주세요."
나는 말을 마치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봤다. 다들 불만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트 안으로 삼삼오오 흩어져 갔다.
그중에 눈에 띄는 사람이 2명 있었다.
첫 번째로, 서유나.
서유나는 지금까지 토벌대원으로서 토벌대 일정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해왔지만, 그 외에는 그 어떤 종류의 모임이나 교류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자발적인 아싸.
그 누구와도 같이 있는 걸 본 적이 없으며, 표정조차 희미해서 언제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을 고수했다.
그랬던 그녀가, 지금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나……?'
나는 나중에 서유나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눈에 띄는 사람 두 번째, 백지훈.
백지훈은 지금 자신의 누나인 백선아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면 백선아는 무얼 하고 있나?
마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백지훈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화들짝 놀라서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로 자리를 빠져나갔다.
'……너무 어색해.'
차라리 '나는 뭔가를 알고 있습니다!' 하고 소리를 지르지 그러냐, 선아야…….
백선아를 지긋이 쳐다보던 백지훈이 이번에는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쪽을 향해 걸어와서 물었다.
"형님. 저 막이랑 우리 누나 사이에 뭔가 관계가 있는 거죠?"
"……나도 몰라."
나는 슬쩍 주위를 둘러봤다. 지금 우리 대화를 듣고 있는 사람은 없다.
백지훈은 이미 다 눈치챘다는 것처럼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시치미 떼셔도 소용없어요. 누나 행동이 저렇게 어색한데 동생인 제가 어떻게 모르겠어요?"
"……."
분명 어제 얘기할 때에는 우리 세 명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한다고 말했었는데…….
단 하루 만에 실패해버렸다.
3.
세레나와 백선아를 몰래 불러내서 내 방으로 집합했다.
나와 백지훈까지 총 4명이 모인 긴급회의. 나는 그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백선아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각성했다. C-급 특수계 능력인 [희망의 땅]. 하지만 그녀의 안전을 위해서 능력자가 누구인지는 비밀로 할 필요가 있다.
백지훈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모든 이야기를 듣고는 말했다.
"제 능력인 걸로 하죠."
"……뭐?"
나는 백지훈의 두 눈을 바라봤다. 그의 맑은 두 눈은 한점의 흔들림도 없이 깨끗했다.
백선아가 자기 동생을 보더니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백지훈.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희망의 땅을 설치한 능력자가 누군지 모르게 해야 한다니까? 안 그러면 혹시 모를 적들한테 표적이……!"
거기까지 말하고, 백선아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너, 설마……."
무언가를 눈치챈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흐리는 백선아.
그러나 백지훈은 자신의 누나 쪽은 떠들든 말든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아까부터 올곧이 내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형님. 누나의 연기는 너무 어색해요. 이대로 계속 지낸다면 숨기려고 해도 눈치채는 사람이 나올 거예요."
"야, 안돼!"
백선아는 안색이 창백해져서 소리쳤다.
그러나 백지훈은 여전히 누나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첫 번째로 눈치챈 사람은 저죠.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하고 진실을 알기까지 5분도 안 걸렸어요. 두 번째 사람은 얼마나 걸릴까요? 하루? 이틀?"
"……."
"조금씩 새어나가면 그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에요. 공공연한 사실이죠."
……백지훈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대충 이런 원리였다.
우리 중에 누군가 능력자가 있다. 그런데 그게 누군지는 모른다. 이런 논리라면 구성원들 모두가 서로를 눈여겨보게 된다. 능력자가 누군지 궁금하니까.
하지만 대타가 나타나서 자신의 능력이라고 사칭한다면?
사람들은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는 이상 대타를 진짜 능력자라고 믿게 된다. 딱히 의심할 이유가 없으니까.
즉, 비밀을 지키기가 훨씬 쉬워진다.
그러나 이 방식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진짜 능력자 대신 대타의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점이었다. [희망의 땅]을 공격하려는 자들이 대타를 노리게 될 테니까.
대타의 목숨을 미끼로 삼는다.
[희망의 땅] 능력자의 목숨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
숨 막히는 침묵 가운데, 백선아가 입을 열었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였다.
"……내가, 내가 연기를 더 잘 하면 되잖아."
백지훈은 그제야 자신의 누나를 쳐다봤다. 맑고도 냉정한 눈빛이었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걸 잘 알잖아. 대타는 필요해. 그게 D마트 사람들 모두의 생존 가능성을 더 올리는 길이야."
"……."
나는 고민했다.
'내가 대타로 나설까?'
백지훈의 말이 맞다. 대타는 있는 편이 좋았다. 그러나 그게 꼭 백지훈일 필요는 없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백지훈이 대타를 하는 것보다는 표적이 되어도 생존 가능성이 높은 내가 대타를 하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걸…… 백지훈이라고 모를 리 없다.'
그는 굳이 자신이 대타가 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뭘까? 그건 아마…… 무력감일 것이다. 자신이 아무런 역할도 해내지 못한다는 무력감.
세상이 망하기 전에 백지훈은 세계를 제패한 천재 프로게이머였다. 온 세상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했다. 그러나 바뀐 세상에서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장 먼저 일어나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이유.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대타 역할을 자청하는 이유. 모든 것이 하나의 답으로 귀결되었다.
나는 백지훈의 눈을 쳐다봤다.
그는 소리 없이 말하고 있었다.
'이제야 겨우 생긴 나의 역할을 빼앗지 말라' 고…….
"……."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형님."
백지훈이 웃으며 감사를 표했고.
"도하 오빠……!"
백선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이게 옳은 결정일까……?'
나는 알 수 없었다.
4.
"미리 말씀드리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사실 제 능력입니다. 특수계 능력, 희망의 땅."
"뭐, 뭐라고……?"
"희망의 땅……?"
D마트 대피소의 생존자 대표 회의. 그곳에서 백지훈이 자신의 능력임을 밝히면서 아침의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그 뒤 곧바로 1층 중앙으로 향한 백지훈이 "솟아나라!" 하고 외치자마자 바닥에서 물이 샘솟는 것을 본 모두는 의심의 여지 없이 백지훈이 능력의 주인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자원 공급계 능력자의 탄생. 이제 더이상 수도가 끊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모두가 서로를 얼싸안고 환호하는 가운데, 뒤쪽에 서서 어두운 표정으로 가만히 지켜보는 백선아가 있었다.
"……."
나는 말없이 그녀를 안아주었다.
이것 또한 내가 내린 결정이니,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었다.
5.
내가 방 안 침대에 누워서 상념에 빠져있을 때였다.
"주인님."
세레나가 나를 불렀다.
"괜찮으세요?"
고개를 들자 차분한 초록색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마냥 해맑은 평소의 세레나가 아니다. 나를 걱정해 줄 때에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모습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팔을 벌렸다.
"이리 와, 세레나."
세레나는 조용히 침대 위로 올라와 내 품에 안겼다. 나는 내 위로 올라온 그녀의 몸을 가볍게 껴안고 쓰다듬었다.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빠져나가는 금발의 감촉, 내 가슴 위에 짓눌린 그녀의 젖가슴 너머로 들려오는 심장의 고동, 쇄골 사이로 파고 들어오는 따듯한 콧숨, 가라앉은 마음을 달래주는 그녀의 포근한 체취.
세레나는 지금 온몸으로 나를 위로해 주고 있었다.
"……주인님."
"응?"
턱 아래에서 나지막이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자서 괴로워하지 마세요. 아무리 무거운 짐이라도 제가 함께 들어드릴게요."
"……."
"어떤 가시밭길을 걷는다 하실지라도 주인님의 곁에는 제가 있을 거예요. 언제나 웃는 얼굴로요. 제겐 주인님의 곁이라면 언제나 꽃길인걸요."
"……고마워, 세레나."
내 대답에 세레나는 흐드러지게 웃었다. 그녀의 진심이 느껴지는 속삭임에, 내 가슴에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따듯한 감정이 가득 차올랐다.
동시에, 내 성기에는 피가 가득 차올랐다.
"……주인님."
"……내 의지가 아니야. 세레나가 너무 꼴려……."
"헤헤.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건 너무 좋지만요."
그녀는 내 고간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말을 이었다.
"어제 너무 무리하셨어요. 저도 주인님과 섹스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오늘은 쉬셔야 해요."
"응, 알았어……."
"옳지, 옳지♡"
세레나는 잘 참았다는 듯 자애로운 손길로 성기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상냥함에 성기가 더욱 빵빵해진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안돼요."
"……나도 알아."
이제 잘 시간이다. 세레나가 일어나서 불을 끄고 다시 내 품으로 쏙 들어왔다. 서로를 껴안고 쓰다듬으며 잠들기를 기다리던 도중, 세레나가 문득 말을 꺼냈다.
"주인님."
"응?"
"선아 언니랑 지훈이는 사이가 엄청 좋잖아요."
"그렇지."
"……제게도 자매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
자매라…….
세레나는 리얼돌이었다가 내 능력에 의해서 사람이 되었다. 자매라 함은 다른 리얼돌을 찾아서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는 거겠지.
"안 그래도 조만간 찾으러 갈 생각이었어."
"정말요?"
"응. 곧 떠날 거야. 파주에 있는 리얼돌 기업 창고로. 아마 거기에선 네 자매를 찾을 수 있겠지……."
"주인님…… 최고♡"
새로운 자매가 기대되는 듯, 내 목을 껴안은 세레나에게서 "후흐흣."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