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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38화 - 멍 (1)


온몸에 힘이 쫙 빠져나간 건지, 손끝조차 움직여지지 않는다. ​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게 맞긴 한 걸까. ​ 그리고 아까부터 왜 이렇게 입 안이 욱신거리는 거지? ​ 너무 아픈데 입속의 혀가 도저히 움직여지지 않아…. ​ 이상할 정도로 몸이 너무 무기력해. ​ 내가 뭘 하고 있었지…. ​ ​ “수연아~” ​ ​ 아…. 이지아의 목소리네…. ​ 맞아…. 난 분명 지아한테…. ​ ​ “수연아? 정신 좀 차려 봐. 응? 빨리 안 일어나면 나 또 화날지도 몰라?” ​ ​ 지아를 화나게 하면 안 되는데…. ​ 모르겠어…. ​ 이젠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 ​ “흐응…? 반대쪽 어금니도 뽑아야 정신을 좀 차리려나?” ​ ​ 싫어…. ​ 하지 마…. ​ ​ “시, 시러어….” “어머~ 일어났구나~?” “콜록…! 우으으….” ​ ​ 금방이라도 끊어져 버릴 것 같은 정신. ​ 반쯤 풀린 시야에 들어온 건, 그녀의 품에 안겨져 있는 내 모습이었다. ​ ​ “엄청 얌전해졌네? 이뻐라~♡” “콜록…!! 우윽…. 웨에엑….” ​ ​ 입 밖으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덩어리가 진 피. ​ 입안을 가득 채운 소독약 냄새와 섞인 비릿한 피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 ​ ​ “아우 정말…! 그렇게 막 뱉으면 침대가 더러워 지잖아. 수연아. 다시 아 해. 거즈 새로 갈아줄게.” “우으….” ​ ​ 비명을 지를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몸. ​ 잇몸이 통째로 뜯겨나간 것처럼 어금니가 뽑힌 곳이 너무 아팠고, 고통에 겨운 신음을 내는 것조차 큰 고통으로 느껴졌다. ​ ​ “자, 다시 아 해.” ​ ​ 그녀의 입 모양을 따라 입을 벌리자, 입 속으로 하얀 천 쪼가리가 들어왔다. ​ 상처 부위에 닿는 그것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이 느껴져 몸이 움찔거렸다. ​ ​ “아흐으으…. 흐으으으….” “으응~ 많이 아프지? 그래도 좀만 참아.” ​ ​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고통. ​ 나는 그녀에게 안겨 작은 신음만 흘릴 뿐,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 “다 됐다. 또 막 뱉으면 안 돼. 알았지?” “흐끄으으…. 흐으윽….” ​ ​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과 더불어, 다물어지지 않는 입에선 침인지 핏물인지 모를 것이 흘러내렸다. ​ ​ “아웅~ 이제야 고분고분해졌네. 아까는 엄청 대들더니~” “제… 제성해여…. 다시느 아 그러게요….” “우응…! 귀여워!!” ​ ​ 인형. ​ 나는 그녀가 갖고 노는 인형이었다. ​ 어린아이들이 인형을 갖고 놀듯이, 그녀는 내 몸 이곳저곳에 입을 맞추며 끌어안았고, 그녀는 내 팔과 손가락의 관절도 계속 접었다 피면서 날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았다. ​ 그런 나는 마치 인형처럼 그녀의 행동을 가만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 그것이 내가 고통받지 않을 유일한 길이었으니까. ​ ​ “짠 이거 봐라? ” ​ ​ 그녀의 손바닥에 들린 치아. ​ 피로 얼룩지고 살점이 붙어있는 그것은 누가 봐도 내 입속에서 빼낸 어금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 “우리 수연이 또 나한테 대들면 이렇게 혼나~ 알았지?” “흐끄읏…. 흐으으으…." “이건 목걸이로 만들어서 내가 갖고 다녀야지~♡” ​ ​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옷을 벗겨낸 그녀는 내 몸을 이리저리 농락하며 나에게 원치 않는 관계를 강요했고, 내가 도망치지 못하게 자신의 손목과 내 손목에 수갑을 걸었다. ​ 결국 그녀에게 몇 시간이 넘도록 시달린 나는 기절하듯이 쓰러졌고, 귀에서 들려오는 샤워기 소리에 다시 눈을 떴을 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절망감을 느끼고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 멋대로 움직이는 발이 화장실에서 들리는 샤워기 소리를 지나쳐 주방으로 향한다. ​ ​ ‘너무 괴롭다….’ ​ ‘시후는 언제쯤 나를 보러 올까….’ ​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빌어야 하는데…. 왜 오지 않는 거야….’ ​ ‘이제 정말 내가 싫어진 거야…?’ ​ ‘그래…. 내가 아프면 그땐 날 보러 오겠지…?’ ​ ‘응. 그렇게 하자….’ ​ ​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오른손이 주방 서랍을 열어 소름이 끼치는 물건을 꺼내 들었다. ​ ​ [벌컥-] ​ ​ 문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며 화장실 밖으로 나오는 이지아가 보인다. ​ ​ “우웅? 우리 애기! 왜 벌써 깼어~?” “…….” ​ ​ 차가운 쇳덩이의 감촉이 왼쪽 손목에 닿음과 동시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그녀의 얼굴이 굳어지는 게 보였다. ​ ​ “수연아…? 뭐해…?” ​ ​ 당황한 그녀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 ​ “수연아, 그거 얼른 내려놔. 그러다 다쳐…!!” ​ ​ 순간 움찔한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왔다. ​ ​ “헤…. 괜찮아, 이렇게 해야 시후가 날 보러 올 거야….” “자, 잠깐…!!” ​ ​ 오른손에 힘을 주어, 손에 쥔 것을 아래로 쓸어내렸다. ​ 왼쪽 손목을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따끔한 통증과 함께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피. ​ 그것은 사방으로 튀어 내 얼굴, 싱크대 서랍, 바닥 등 온갖 구석에 붉은 피를 묻혔다. ​ ​ [쨍그랑…!!] ​ ​ 오른손에 들려있던 것을 떨어뜨림과 동시에,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쓰러졌다. ​ ​ “힛…. 아프다아….” “수연아!!” “이제…. 이제 시후가 나 보러 오는 거지…? 응…?” “안돼, 안돼, 안돼, 안돼…!!!” ​ ​ 창백한 표정으로 내 왼쪽 손목을 꽉 쥐는 이지아. ​ 그녀도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걸 느꼈다. ​ ​ “…!!” ​ ​ 무슨 말을 하는 걸까. ​ 그녀가 내게 뭐라 말하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았다. ​ 게다가 조금 전까지 보이던 당황한 그녀의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갑자기 새까만 어둠만이 눈에 비친다. ​ 마음이 너무나 평온하다. ​ 꿈인 걸까…. ​ 꿈이 아니라면 진작 이렇게 해야 했는데…. ​ 왜 나는 바보처럼 악착같이 버티고 있던 걸까. ​ 날 바라보는 그의 미소 하나만을 생각하며 힘든 일도 버텨왔는데, 모든 게 다 의미가 없는 것 같다. ​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야 했는데, 나는 왜 그런 바보 같은 선택을 했지…. ​ 그래도 다행이다. ​ 이제야…. 이제야 드디어 모든 것이 끝난 것만 같은 기분이야…. ​ 제발 이 꿈에서 영원히 깨지 않기를…. ​ ​ *** ​ ​ 잔잔한 호수처럼 너무나 평온했던 마음에 파동이 친다. ​ ​ [삐…. 삐….] ​ ​ 분명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감각에 거슬리는 기계음이 들려온다. ​ 숨을 쉬는 입과 코에서 불편함이 느껴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시야에 빛이 조금씩 새어 들어왔다. ​ 반쯤 떠진 시야에 들어오는 처음 보는 풍경. ​ 평소보다 몇 배는 무거운 손으로 입과 코를 가린 물체를 벗겨내자, 불쾌한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 ​ “콜록…!! 아윽….” ​ ​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하자, 수많은 손이 내 몸을 붙잡아 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 [촤르륵!] ​ ​ 그때 걷히는 하얀색 커튼. ​ 간호사로 보이는 한 여자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 ​ “환자분…! 억지로 일어서시면 안 돼요!” ​ ​ 그녀가 침대 아래에 손을 대자, 침대에 일자로 눕혀져 상체가 들어 올려지기 시작했다. ​ ​ “그래도 일어나셔서 다행이에요. 침대 올려드릴 테니까, 다시 내리고 싶으시면 이쪽에 버튼 누르셔서 저 불러주시면 돼요.” ​ ​ 주변을 가린 커튼을 모두 걷어낸 그녀는 잠시 병실 밖으로 나갔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은 어느 한 병원의 1인용 병실인 것 같았다. ​ 기계음 사이로 들리는 무언가가 쏟아지는 소리에 창밖을 보자, 엄청난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 ​ “……." ​ ​ 욱신거리는 왼쪽 손목과 입속에서 느껴지는 이물감. ​ 손목에 생긴 큰 흉터가 봉합되어 있었고, 입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이물감이 느껴지는 곳을 확인하자, 비어있는 어금니 자리에 솜 같은 것이 덮여 있었다. ​ 잇몸을 덮은 솜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 넣어보니 빳빳한 실 같은 것이 있었고, 손목의 흉터를 꿰맨 것과 같은 것이 뜯겨나간 잇몸을 꿰매고 있는 것 같았다. ​ ​ “… 그니까 철벽 엄청 치더라니까!” ​ ​ 익숙한 여자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병실로 들어오는 이지아. ​ ​ “아…! 수연아!!” ​ ​ 놀란 표정을 지은 그녀가 다짜고짜 뛰어와 날 껴안았고, 그로 인해 온몸이 욱신거렸다. ​ ​ “아… 파….” “정말…!! 걱정했잖아!!” “일어났냐?” ​ ​ 귀를 의심했다. ​ 그토록 원했던 목소리가 들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가장 보고 싶었던 그가 서 있었다. ​ ​ “아…. 아아….” ​ ​ 터져버린 울음 때문인 건지, 입속의 이물질 때문인 건지 말이 똑바로 나오지 않았다. ​ ​ “흐끄으으…. 시, 시후야….” “차수연.” “으으응…. 흐끄읏…!” ​ ​ 싸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박시후. ​ 주머니에 있던 그의 손이 빠져나와 내 뺨을 날리려는 제스쳐를 취했다. ​ ​ “씨발, 감히 자해를 해?” “아웃…!” ​ ​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리자, 날 껴안고 있던 그녀가 박시후를 막아섰다. ​ ​ “하지 마! 애 아픈데 왜 또 때리려고 해!” “야, 안 비켜? 저 씨발년은 맞아도 싸.” “너 때문에 그러잖아! 고작 알바한 거 가지고 애를 이렇게 몰아세우니까 그렇지!” “아, 빨리 안 꺼져? 딴 새끼랑 시시덕거리는 걸 봤는데 뭘 잘했다고 지금 자해질이야?” “아 몰라! 하지 마!! 간호사 부를 거야!” ​ ​ 나를 사이에 두고 옥신각신 싸우는 두 사람. ​ 나는 터진 울음을 억지로 참아내며 그에게 빌었다. ​ ​ “흐끄으…. 잘못했어…! 흐끅…!! 다, 다시는 안 그럴게에…. 흐으으으….” ​ ​ 내가 울면서 그에게 빌자, 그제야 싸움을 멈추는 두 사람. ​ 그가 아무 말 없이 내가 있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 ​ “하아…. 이지아 너 잠깐 나가 있어.” “어…? 아, 응….” ​ ​ 그의 말대로 이지아가 밖으로 나가 병실 문을 닫았고, 그제야 박시후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 “미, 미안해에…. 흐끕…! 제발 나 버리지 마아….” “차수연.” “으으응…? 훌쩍…!” “내가 좋냐?” “으응…! 좋아…. 그리고 사랑해…. 그러니까아….” ​ ​ 다짜고짜 내 왼손에 깍지를 끼우는 박시후. ​ 따뜻한 그의 체온이 손에 전해진다. ​ ​ “시, 시후야…?” “그래…. 사랑한다 이 거지…. 근데 있잖아.” ​ ​ 약지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에 그곳을 쳐다보자, 그의 다른 쪽 손이 내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붙잡고 있었다. ​ ​ “난, 너 못 믿겠어.” “뭐…?”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이제 그만 하자.” ​ ​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빼내면서 하는 그의 말. ​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 “아아…?! 그, 그러지 마아…!! 싫어!!” ​ ​ 손을 빼내려 해도 그에게 끼워진 깍지로 인해 움직이지 못했고, 그는 너무도 매정하게 내 손에 끼워진 반지를 빼내었다. ​ ​ “거, 거짓말이잖아…! 나, 나 좋아한다며!! 그, 근데 갑자기 이러는 게 어딨어…!!!” “좋아했지. 진심으로. 근데 이젠 아닌 것 같다.” “아아…!! 시, 싫어…! 싫어!!! 너, 너 없으면 나 어떻게 하라고…!!” “병원비는 수납했으니까, 다 나으면 알아서 퇴원해.” ​ ​ 그와 나를 연결시켜주던 고리가 빠져나간다. ​ 내 손에 끼워진 반지를 빼낸 그는 이어서 자신의 손에 있던 반지도 빼내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 ​ “잘 지내라. 뭐, 죽지는 말고.” “시, 시후야아!! 가지 마아!!” ​ ​ 매정하게 뒤돌아 병실을 빠져나가는 박시후. ​ 급해진 마음에 그를 붙잡으려 침대에서 내려오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 ​ “아흐윽?!! 시후야!!! 시후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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