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15화 - 도망
그에게 자유를 빼앗긴 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이젠 시간 감각도 무뎌져 버렸다.
방바닥에 널려있는 긴 머리카락들.
그의 괴롭힘과 스트레스로 인해 빠진 내 머리카락이었다.
목에 연결된 줄로 인해, 내 활동 반경은 고작 방에서 화장실 정도.
동물.. 아니, 가축만도 못한 삶이었다.
게다가 그는 내가 두 발로 걷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손을 짚어, 개처럼 네 발로 바닥을 기어야 했고, 그로 인해 멀쩡했던 무릎은 까져서 피가 나지 않는 날이 없었다.
또한 그는 내 입에서 사람 말이 나올 때마다, 거침없이 걷어차고 주먹질을 하며 날 괴롭게 했다.
하루의 일과는 더 끔찍했다.
욱신거리는 온몸의 고통으로 인해 잠에서 깨면, 그들은 밥 먹을 시간이라며 동물이나 먹는 사료를 나에게 억지로 먹였다.
그들이 준 사료를 남기거나, 그들이 보는 앞에서 토라도 하는 순간, 나에게 거침없이 발길질이 날아왔다.
물조차도 쉽게 허락해 주지 않는 그들은 자신들의 소변을 물 대신 마시라며 나를 구타했고, 그때마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구역질을 참아가며 그들의 소변을 삼켜야만 했다.
그들이 돌아가고 나서야 그때가 나에게 유일한 휴식 시간이었다.
그들이 없는 틈에 화장실에 가서 억지로 먹은 것들을 토해내고, 변기에 고여있는 물로 간신히 배를 채웠다.
집은 더 이상 내 집이 아니었다.
어느새 그들의 아지트가 되어버린 집.
그와 그의 친구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내 집에 찾아와, 시끄럽게 떠들고 술판을 벌이며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피우던 담배를 억지로 내게 피우게 하고, 자신들이 마시던 독한 술에 이것저것 쓰레기와 자신들의 정액이나 침 같은 것들을 섞어 내게 먹였다.
그로 인해, 나는 감당하기 힘든 강제흡연과 억지로 먹은 술로 인해 매번 구역질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토해낸 것들을 다 먹을 때까지 내게 끔찍한 폭력을 행사하였고, 그들의 폭력에 굴복해 토해낸 것을 다시 먹으면 억지로 술을 또 먹였다.
그렇게 먹고, 토하고, 폭력이 반복되었다.
그중에 가장 두려운 건 박시후.
그는 위에 행위들은 기본이었고, 자기들끼리 하는 도박에서 지기라도 하는 순간, 나에게 다가와 이유 없이 구타하고 목을 조르며 내 몸에 지우기 힘든 멍을 남겼다.
제발 그만해달라는 말도, 울분 섞인 반항도 할 수 없었다.
개처럼 짖고, 굴복하지 않으면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맞아야 했으니까.
하루하루가 너무 괴롭고 고통스럽다.
언제쯤이나 되어야 이 지옥 같은 삶이 끝나는 걸까.
차라리 이제 그만 날 죽여줬으면 좋겠다.
"차수연."
그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눈이 떠진다.
내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박시후.
억지로 몸을 일으켜 그를 올려다봤다.
"그만 자. 하루 종일 쳐 자고 있어."
침대 다리에 이어져 있던 줄과, 등 뒤로 결박당한 두 손이 풀어진다.
그대로 풀어낸 줄을 잡아당기는 박시후.
목에서 연결된 줄이 팽팽해진다.
"나와."
그에게 거실로 끌려 나간다.
"오~ 수연이 안녕~?"
"쟤야? 저 새끼한테 도망치려다가 잡힌 애가?"
시끌벅적한 분위기.
또 온갖 술판을 벌이며 화투를 치는 남자들이 보인다.
자신의 손목에 목줄을 휘감고 자리에 앉는 박시후.
그리고 그는 옆에 있던 날 끌어안아 자신의 다리 사이에 앉혔다.
"푸핫! 진짜 기르는 강아지 같은데?"
"귀엽지? 사무실에 우리 영웅이랑 교배 시켜볼까?"
"영웅이면 그 존나 큰 개 아니냐?"
"어, 사냥견이라 존나 용맹해. 크크.."
그들의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박시후는 자신의 손으로 시야를 가린 내 머리카락을 걷어냈다.
눈 앞으로 다가오는 그의 스마트폰.
그는 자신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개 사진을 보여주며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소리를 했다.
"야 수연아, 우리 영웅이랑 한번 해볼래? 요즘 발정기거든."
"아으.. 으으으.."
"우리 영웅이가 요즘 암컷 맛을 못 봐서 미치는 거 같더라고."
사진속에 있는 책상보다, 훨씬 거대한 커다란 검은색 개.
박시후라면 진짜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걸 알기에, 그를 올려다보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푸흡.. 야야. 농담이야! 농담!"
"아 씨바.. 술맛 떨어지게."
그의 옷깃을 붙잡아,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끊이질 않는 남자들의 웃음소리.
그러다 갑자기 대화의 대상이 나를 향한다.
"수연이도 한 잔 줘야지? 내가 기가 막히게 말아줄게."
"비율은?"
"2:1이지. 물론 소주가 2야."
"애 죽이려고 작정했네."
빈 맥주컵에 소주와 맥주가 동시에 따라진다.
그리고 가득 채워진 맥주잔은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남기면 알지?"
"우으으.."
"팔 떨어진다. 빨리 안 받냐?"
나는 눈앞에 다가온 술잔을 애써 못 본 척하고 박시후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야, 차수연. 너 뭐하냐?"
박시후의 목소리.
고개를 올려 그를 쳐다봤다.
"빨리 안 마셔? 뒤질래?"
"아으.. 으.."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아가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는 한숨을 깊게 내쉬고 술이 든 잔을 받아 그곳에 침을 뱉었다.
"카악..! 퉷!!"
다시 내 앞으로 온 술잔.
술로 가득 찬 술잔에 그의 가래침이 섞여, 하얀 침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는 게 보였다.
"마지막이다. 먹어."
"으흣.. 흐으윽.."
싸늘해지는 박시후의 표정.
오싹한 느낌이 들은 나는 서둘러 술잔을 손에 쥐었다.
"씨발, 아직도 망설이네? 야 거기 몽둥이 갖고 와."
"아, 아..!!"
받아든 술잔을 억지로 입에 털어 넣는다.
"꼭 매를 들어야 말을 듣는다니까."
"우웁..!!"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아가며 억지로 끝까지 밀어 넣었다.
언제 먹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 지독한 술.
속이 뒤집히는 것 같다.
나는 다 마신 술잔을 내려놓고, 그에게 기대듯이 쓰러져 버렸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내 몸은 술을 거부했다.
"하아.. 아.. 흣..!"
나는 금방이라도 올라올 것 같은 구역질을 억지로 참아가며 그에게 꼼짝도 하지 않고 안겨 있었다.
"잘 마시는데? 수연이, 한 잔 더?"
"됐어, 잠깐 쉬게 해. 어제도 한바탕 해서 힘들 거다."
"어제는 왜."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그의 손길이 느껴진다.
"어, 밥 못 먹겠다고 땡깡 부려서 나한테 뒤지게 맞았지."
"그래서 온몸이 멍 투성이구만."
"저번부터 궁금했는데 쟤 허리에 있는 너랑 똑같은 문신은 뭐냐? 커플 문신 뭐 그런 거야?"
"그냥 저새끼 지 꺼라고 영역표시 하는 거임. 싸이코새끼."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화투를 치는 도중에도 그들은 내 몸 구석구석 주물러 대며, 또 내게 억지로 술을 먹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올라온 취기로 인해 머릿속이 점점 이상해지는 걸 느꼈다.
거세게 흔들리는 파도에 몸을 맡겨, 멀미가 나는 듯한 느낌.
박시후가 움직일 때마다,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올라와 구토를 할 것 같았다.
"우으으.. 흐으.."
그의 옷깃을 붙잡고 움직이지 말아 달라는 뜻을 보내본다.
그러나 그는, 내 행동 따위는 일절 신경 쓰지 않고 남자들과 화투를 치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구역질.
참을 수 없었던 나는, 내 허리를 감싸고 있던 그의 팔을 뿌리치고 고개를 돌렸다.
"우웨에엑!!!"
"아, 씨발."
목까지 차오른 것들을 모두 뱉어내자, 몸에 힘이 빠져나가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읏.. 하아.. 하아.."
조용한 분위기.
정신이 들고보니, 시끌벅적한 그들의 웃음소리는 온데간데없었고 내 거친 숨소리만이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싸늘하게 식어 있는 남자들의 표정.
잘못됨을 느낀 나는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박시후의 손목과 내 목에서 팽팽하게 연결된 줄은 더 이상 내가 그들에게서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 아아아..!!!"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는 박시후.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 잘못했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그러나, 이런 내 필사적인 애원에도 그의 발길질은 멈추지 않았다.
"아흐윽!!"
말리는 이 하나 없는 일방적인 폭행.
그의 계속된 일방적인 폭력에 나는 정신을 잃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땐 남자들은 이미 돌아가고 난 뒤였다.
불 꺼진 어두운 방.
욱신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아으윽..!!"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참기 힘든 엄청난 고통이 온몸에 퍼졌다.
고통을 참고, 침대에 기대어 몸을 웅크렸다.
아무도 없는 불 꺼진 방에서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흐끅.. 끄읍..! 흐으윽..!"
이렇게 살아갈 바엔 차라리 죽고 싶었다.
그러나 굳게 마음을 먹어도, 아무리 굳게 다짐해도 소용없었다.
그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내 마음은 그에 대한 공포심에 먹혀버려 죽고자 하는 의지도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울고, 다짐하고, 포기하고를 반복하다 지친 나는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하아아.."
깊은 한숨만 나오는 현실이 날 미치게 하는 것 같았다.
억지로 잠에 들려는 찰나, 내 목에서 침대 다리까지 이어진 줄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바로 앞에 보이는 힘 없이 늘어진 내 두 손.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침대 다리에 묶인 매듭을 풀었다.
목에 있는 목줄엔 나사가 박혀있어 손으로 풀어낼 수는 없었지만, 침대 다리에 묶인 매듭은 손쉽게 풀어낼 수 있었다.
"하아.. 하아..!!"
숨이 거칠어진다.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 조심히 거실로 나오자, 온갖 쓰레기와 술병으로 뒤덮인 거실 풍경이 보인다.
그때, 신발장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여행 가방.
그것이 내 것임을 알아 차린 나는, 조심스럽게 발소리도 내지 않고 그곳으로 향했다.
지퍼를 열자, 도망치기 위해 챙겨두었던 옷가지와 스마트폰이 보인다.
속옷을 입을 틈은 없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을 가릴 수 있게 큰 티셔츠와 스커트를 꺼내 대충 입은 뒤, 스마트폰을 챙겨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집 밖으로 나왔다.
계단에 올라서려 하자, 마음이 흔들린다.
'박시후 한테서 도망칠 수 있을까?'
'잡히면 어떻게 해야 하지?'
다시 거칠어지는 숨소리.
그에게 새겨진 공포가 계단을 오르려는 내 발을 붙잡았다.
"겨, 경찰..!"
마음을 다잡고, 꺼져있는 스마트폰의 전원을 누른다.
전원을 아무리 눌러도, 켜지지 않는 스마트폰.
스마트폰의 화면은 0%의 배터리 잔량만을 표시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모습에 마음이 급해진다.
그가 돌아오기 전에 서둘러 도망쳐야 하는데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입술을 꽉 깨물고, 억지로 발을 내디뎌 계단을 올랐다.
벽에 손을 짚으며 밖으로 나오자, 빛이라고는 없는 어두운 밤하늘이 보인다.
얼굴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 내고, 서둘러 시내에 있는 경찰서를 향해 걸었다.
오랫동안 두 발로 걷지 않아서인지, 조금만 걸어도 다리의 피로가 장난이 아니었다.
불안한 마음에 뒤돌아보며, 주변을 살피면서 빠르게 걸었다.
시내로 향하는 길이 오늘따라 길게만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아.. 하아..!!"
한참을 걷다, 가로등이 켜진,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 멈춰 섰다.
시내로 가려면 지나야 하는 길인데도,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던, 자주 걷던 그 골목길이 오늘따라 유독 무섭게 느껴졌다.
[딸랑~!]
갑작스러운 종소리.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나는,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골목으로 들어가는 길, 맞은편에 있는 편의점에서 나는 소리였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카운터에 앉아있는 아르바이트생이 보인다.
나는 서둘러 그 편의점으로 들어가, 아르바이트생에게 부탁을 했다.
"어서 오세요."
"저, 저.. 저저..!! 저기..!!"
"네? 무슨 일이에요? 진정하세요."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아, 말조차 똑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그는, 말로 하기 힘들면 글로 써달라며 내게 메모지와 볼펜을 건네주었다.
종이에 112를 쓰려는 순간, 또 박시후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더 큰 고통만 돌아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라는 생각에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저기.. 괜찮으세요?"
"아, 으.. 그.. 그그.."
"혹시.. 경찰에 신고해드려요..?"
아르바이트생의 물음에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치마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과, 조금만 배터리를 충전해 달라는 글을 메모지에 작성해 건네주었다.
"아, 네.."
충전기에 꽂히는 스마트폰.
나는 계속 밖을 경계하며 충전 중인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고, 나는 조금씩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급해진 마음에 스마트폰을 달라고 말한 뒤, 그것을 건네받고 편의점을 뛰쳐나왔다.
이제서야 켜지는 스마트폰.
떨리는 손으로 최근 통화목록에 저장되어 있는 지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짧은 통화음이 지나고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수연이..?"
"허억.. 허.. 지, 지지.. 지아야..!!"
"걱정했잖아.. 일주일 넘게 전화도 안 받고.."
"나, 나나.. 나나 좀.. 나 좀 도.. 도도, 도와줘..!!"
"수연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불안함에 이상하게 말이 똑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지금 당장 날 찾으러 오겠다며 내 위치를 물었고, 나는 지금 내가 있는 위치를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안심할 수 있도록 끝까지 전화를 끊지 않았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저 멀리 그녀가 탄 택시가 오는 게 보인다.
서둘러 그녀가 타고 왔던 택시를 다시 타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녀의 집에 도착하자, 긴장이 풀린 나는 그대로 기절하듯 잠이 들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