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채진아
채진아와 최현승의 만남을 뒤로 한채 나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서 씻고 난 뒤 밀린 유튜브 영상들을 하고 나니 어느새 10시가 되었다.
‘카페를 떠난 게 세시간 전이니 지금 쯤 대화가 끝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때 마침 채진아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떻게 됐어?”
[…모레에 엄마랑 해서 만나기로 했어.]
잘된 일이지만 채진아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뭐 좋은 일로 만나로 간건 아니라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잘됐잖아. 그런데 목소리가 왜 힘이 없어.”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 최현승 그 사람이 너무 말이 많아서…]
대체 무슨 말을 그렇게 열심히 했길래 그 체력 좋은 채진아가 기가 빨려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걸까?
“그래? 뭐 어쨌든 잘되서 다행이네.”
[그렇지… 지금 어디야?]
갑자기 내가 어디에 있는 지는 왜 묻는거지?
“나는 지금 집이지. 내일 출근도 해야하니까 이제 자려고.”
[벌써 잔다고? 안돼.]
”왜 자면 안되냐?”
[내가 너네 집 지금 갈거니까.]
“어딜? 우리 집?”
[응]
“왜?”
[좀 가서 쉬자. 얘기할 것도 있고.]
갑자기 우리 집으로 오겠다는 채진아.
나는 여자친구가 있는 입장으로서 집에 여자를 들이기는 꺼려져서 거절하려 했다. 뭐 이미… 선은 넘었지만 그래도 더 이상은 넘지 말아야 하는 거잖아?
“그게...”
[oo오피스텔 ooo호 맞지?]
“어, 어. 맞긴 한데”
기억력도 좋은 채진아.
[알았어. 지금 갈게.]
“뭐?”
[뚝….]
나는 끊긴 핸드폰을 허망하게 쳐다봤다. 남의 집에 오는 걸 이렇게 통보식으로 해도 되는건가 싶다.
“뭐야?”
다시 전화를 걸어봤지만 채진아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띵동
그리고 삼십분 뒤 현관문 벨소리 울렸다. 인터폰으로 확인해보니 정말로 온 채진아였다.
-띵동
“진짜로 왔네…?”
불청객이지만 찾아온 사람을 매정하게 쫓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일단 문을 열어주었다.
“아, 피곤하다.”
문을 열어주자마자 나를 못 본 척 지나쳐 바로 침대로 직행하는 채진아.
그리고는 애교 많은 강아지처럼 침대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문지르고 있었다.
‘…저번에 현아가 하고 난 뒤 이불 안 빨았는데.’
차마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기에 나는 채진아가 열심히 어머니의 애액 및 기타 여러가지가 묻었던 이불에 얼굴을 문지르는 걸 지켜만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채진아는 한참을 이불에 얼굴을 문질렀다. 그러다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뭐야? 네 이불에서 왠지 너무 포근한 냄새 나. 마치… 우리 엄마 향기 같은데?”
“…어?”
순간 몸이 경직됐다.
…그 어떻게 보면 당연히 내 침대에서 현아의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한데… 그렇게 많이 흘렸으니까.
그런데 그 냄새가 평소 냄새랑 비슷한가? 그럴 수가 있나?
“정말로. 뭐지? 신기할정도로 똑같은데? 우리 엄마 안으면 나는 향기 같아.”
나는 이마에서 식은 땀 한줄기가 흐르는 것을 느끼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하.하. 우연이겠지.”
“으아아아… 뭐야. 그 어색한 웃음은… 그런데 너무 좋다. 너무 포근해서 잠이 오네.”
다시 침대 이불에 얼굴을 묻는 채진아. 잠시 후 채진아의 눈은 점점 감기고 있었다.
“아니…얘는 대체 왜 온거야?”
나는 엎드린 채진아의 어깨를 툭툭치면서 잠드려고 하는 채진아를 깨웠다.
“야야. 자지마. 우리 집에 온 목적이 있을 거아니야? 그리고 잠은 집에 가서 자.”
“아, 아. 맞다.”
채진아는 가느다란 상체를 세우면서 입가에 묻은 침을 스윽-하고 닦아낸다.
“그래서 우리집에 왜 온건데?”
“아. 남자가 쪼잔하게 그냥 오면 안되냐?”
“야. 네가 온 거 여자친구가 혹시나 알게 되면 나 죽어.”
“너랑 나랑 말 안하면 아무도 모르는데?”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너 이상하다. 우리가 뭐할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무서워 해? 우리 뭐할거야?”
내가 마치 이상한 사람이라도 된 듯 쳐다보는 채진아. 당황스러움을 감추기 어렵다. 내가 이상한건가? 내가 마치 비정상인 척 몰아가는 채진아.
나는 바보처럼 소리를 냈다.
“어?”
“전처럼 섹스할 것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신경쓰냐고.”
너무나도 직설적인 말. 채진아의 성격이 원래 저런 걸 알고 있지만…
“…아 그러긴 한데.”
괜히 부끄러워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채진아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근데 정진아. 한정진.”
“응?”
채진아의 얼굴을 바라봤다. 채진아는 묘한 열기를 가진 눈빛으로 미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저 표정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과거에도 몇번 봤던 표정이니까.
몇초 후 나를 곤란하게 만들만한 일을 만들겠다는 표정이다.
“나 하고 싶다.”
“뭐라고?”
‘설마설마했는데…’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고 싶다니? 무엇을? 섹스를? 누구와? 나랑? 지금?
채진아가 무엇을 하고 싶다는 건 ‘나 하고 싶다’라는 말을 들을 때 부터 눈치 챘다. 그러나 혹시 몰라서 다시 물어봤다. 나랑 섹스하자는 거냐고.
“뭘 하고 싶다는 거야?”
“몰라서 물어? 섹스 말이야. 섹스.”
오르손 검지와 엄지를 붙여 동그란 원을 만든 다음 왼손 검지를 세워 동그란 원에 넣었다 뺐다 하는 채진아.
무척이나 상스러운 제스처에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너 네가 여자친구 있는 거 알잖아.”
“알아. 아는데 내가 하고 싶다고. 지금.”
“…안돼.”
“왜, 내가 너랑 하고 난 뒤에 동네 방네 소문내고 다닐까봐. 아까도 말했다시피 너랑 나랑 입 다물면 아무도 몰라.”
“안돼.”
“하아…정말?”
채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입고 있던 레깅스를 한번에 내렸다. 분홍색 팬티와 아름다운 다리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레깅스를 방한구석으로 내던진 채진아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저 꼴로 유혹하는 표정이 아닌 맘에 안든다는 눈빛이라니… 채진아 다웠다.
“이래도?”
“안됀다고.”
이제는 상의 니트를 벗어 던지는 채진아. 브래지어의 색은 팬티와 같은 분홍색이었다.
“내가 안 꼴려? 전에는 존나 따먹었잖아.”
지금 이런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하면 이상할 수도 있는데.
채진아가 열심히 양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모으며 말을 하는데 저렇게 모아도 그다지 크게 보이지는 않았다.
“야. 그만해.”
“정진아.”
채진아가 속옷차림으로 한발자국 씩 다가온다. 역시 운동을 열심히 하는 얘라서 그런가 마치 속옷 모델이 걸어오는 것만 같았다.
“왜?”
“나 지금 힘든 상황이잖아. 너도 알지? 아빠는 실종이고 엄마는 약쟁이가 됐어.”
어느새 내 턱 아래에서 도착해서 나를 올려다보는 채진아. 그 눈에는 깊은 슬픔이 어려있었다.
“그래. 알아. 그런데 그거랑 이렇게 막 나가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정신차려!”
“위로를 받고 싶은데 주변에 너 밖에 없어.”
채진아가 나를 꼭 껴앉는다.
“위로를 꼭 섹스로 해야해? 말로도 할 수 있잖아.”
“너 말 존나 못하잖아. 네가 말로 위로해줘도 전혀 위로가 안될 것 같은데?”
“…하.”
“한번만, 한번만 하자. 존나 불쌍한 년에게 적선한다 생각하고.”
채진아의 자기비하 적 발언에 나는 화가 나 소리쳤다.
“야! 무슨 말을 그딴 식으로 해?”
“시발! 내가 이딴 식으로 말할 정도로 힘들고 급하다잖아!
채진아는 내 품에서 벗어나 큰 소리로 맞받아 친다. 그 이후로 서로의 고성이 몇번 오갔다.
어릴 때 우리 집 옆에 중년의 부부가 살았는데 매일 밤마다 부부싸움을 하는 지 남녀의 고성으로 시끄러웠다.
마치 우리가 그 부부가 된 것 같았다. 그 때 그 부부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다니 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된걸까?
“하아…”
“하아…”
큰 목소리로 다투는 건 웬만한 운동보다 체력을 필요한 일이었다. 채진아도 체력이 방전된 듯 침대에 털썩 앉았다.
“한정진.”
나는 고개를 삐딱하게 하며 대답했다.
“왜?”
“옆에 앉아봐.”
채진아가 옆에 자리를 손바닥으로 탁탁 친다.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안한다고.”
“뭐 별 거 없는 네 도덕심 때문에? 지랄 좀 하지마.”
‘지랄’ 이라는 말에 인상이 찌푸려진다. 또 말싸움이 해야할 것 같다. 나는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지랄?”
“그래. 지랄이지!”
“야!”
“시발! 왜 소리 쳐! 소리 쳐야하는 건 나지! 우리 엄마랑은 떡치고는 나랑은 못치겠다고? 그게 지랄아니면 뭔데?”
“…뭐라고?”
“내가 모를 것 같았어?”
채진아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내 가랑이 사이를 잡았다.
“윽!”
가장 중요한 부위가 채진아의 손에서 꽉 쥐어졌다. 아프기는 더럽게 아팠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어떻게 채진아가 자신의 엄마랑 내가 잔걸 알아낸걸까?
아니야. 알 수가 없다. 누가 말하지 않는 이상…
나는 일단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 증거도 없는데 채진아가 어떻게 알겠어?
“으…윽. 무슨 개소리야? 네가 네 엄마랑 또 했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지랄하지마. 엄마한테 다 들었으니까.”
“뭐?”
“엄마한테 직접 들었다고!”
시발 이게 뭔 개 같은 상황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