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이도희는 이도희 (1)
내 이름은 한정진.
나이는 스물여덟이고 현 직장인이다.
그리고 여사친의 아버지의 불륜을 목격한 자며, 그 여사친의 아버지는 내 직장 상사라는 어이없는 비극 속에 살아가는 불쌍한 소시민이다.
그리고 비극이 있으면 희극이 있는 법. 나에게 그 희극의 배경은
주말이며, 그 희극의 주인공은 이도희. 이.도.희 이 세글자는 나에게 무한한 평온과 행복을 선사하노니.
뭔 지랄이냐고?
네가 도희의 매력을 몰라서 그래.
조금만 도희랑 놀다 보면 너도 도희맘이 될 걸?
***
요즘 주말에 도희와 차타고 놀러 다니는 재미에 푹 빠졌다.
채부장 일로 스트레스가 극심한 요즘에 도희와 만남은 큰 힐링이 되었다.
주말마다 만나다보나 도희의 특징을 자연스럽게 파악했는데, 일단 그중 하나는 평소의 진지한 언행과 달리 생각 외로 엉뚱하다는 거다.
지금도 그렇다. 전동 휠체어에 앉아 파리지옥은 유심히 관찰하던 도희는 뒤에 있던 내게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물었다.
“파리가 죽으면 파리지옥에 가나요?”
“내가 파리 사후세계를 고민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그건 아니지 않을까?”
파리가 죽으면 파리지옥
무슨 부장님 같은 농담을 진지한 얼굴로 물어보는 도희. 귀여워 죽겠다.
“그리고 파리지옥이랑 우리 언니 속눈썹이랑 똑같이 생겼어요. 사진 찍어서 보여줘야겠다.”
“...언니가 화낼 것 같은데.”
“화낼까요?
“확실히 낼 것 같아.”
“그럼 참을게요. 언니가 화내는 건 싫어요.”
뭐, 대충 이런 느낌이다. 엉뚱하지만 도희는 귀여우니까 상관없다. 도희 Is 뭔들.
“그런데 언니는 어떤 사람이야?”
“흠, 그냥 저랑 똑같아요. 생긴 것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그럼 언니도 예쁘겠네. 도희도 이쁘니까.”
“아이, 뭐래요!”
부끄러워하며 홱-고개를 돌리는 도희는 너무 귀여웠다.
요정이 실존한다면, 꼭 도희 같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가끔 한다.
우리 도희 다리만 멀쩡했다면 여자아이돌 그룹 센터는 했을 텐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수목원에서 재밌게 놀던 중에 도희가 목이 마르다고 해서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고 있었다.
저 창밖에서 도희가 나와 눈 마주치니 팔을 흔들어 주는데, 귀여워 죽겠다. 진심으로 우리 가족 호적에 여동생으로 강제 편입시키고 싶다.
나 같은 사례도 있으니 어떻게 안 되려나. 부모님에게 부탁드려볼까? 진심으로 고민됀다.
음료를 들고 나가니, 도희가 뒤돌아서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누구랑 통화 중이지?
통화가 방해가 될까, 도희에게 조용히 다가가 음료를 건넸다. 친한 친구랑 통화하는지, 도희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톤이 높았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씨ㅂ… 아, 오빠.”
“누구랑 통화 중이야?”
“어, 어. 그 친구예요. 친구.”
내가 오자, 도희는 황급히 통화를 끊었다.
“너무 갑자기 끊는 거 아니야? 친구가 기분 나빠하겠다. 나 신경 쓰지 않고 통화해도 되는데.”
“아, 어차피 끊을 생각이었어요. 친구도 이해할거예요. 착한 애라.”
그 모습이 조금 이상했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요즘 애들인데, 너무 사생활 파고들면 싫어한다. 저 나이 때는 원래 비밀 한두개 쯤은 있는거다.
나는 아까 봐두었던 장소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그럼 이번에 저쪽으로 가 볼까? 꽃밭이 예쁘던데.”
“네! 오빠!”
활기차게 대답하는 도희를 보니,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다. 이런걸 보니, 난 평생 도희맘을 할 운명인가 보다.
***
도희와 주말을 보내고, 이튿날 회사에서 퇴근 후 나는 마트에서 장을 보는 중이었다.
“흠… 목살 샀고, 후추 샀고. 다 샀네.”
결제를 하고 마트를 나서니, 저 앞 벤치에서 날라리 같은 여자애 둘이 담배를 피고 있었다.
나는 혀끝을 차며 지나 가려는 순간, 방금 본 여자애 한 명의 얼굴이 무척 익숙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희?”
아니다. 얼굴은 똑같이 생겼지만, 저 여자애는 두 발로 똑바로 땅을 밟고 서 있었다. 화장도 조금 달랐다.
도희는 최소한의 화장만 하는 수준이었고, 저 여자애는 아이라인이 무척 진했고, 전체적인 화장이 짙은 편이었다.
더군다나 입고 있는 가죽치마는 너무 짧았는데, 우리 도희는 저런 옷을 입지 않는다. 그건 내가 용서치 못한다.
하지만 화장과 옷차림을 제외하면 도희와 정말 똑같았다.
세상에 도희의 도플갱어를 내가 보게 되다니, 절대로 도희와 마주치게 해서는 안 되겠다. 우리 도희 죽게 할 수는 없지.
아무리 봐도 너무 똑같다. 휠체어에 앉은 도희가 일어설 수 있다면 저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생각해 보니 도희에게 언니가 있다고 했는데 설마 저 여자애가 도희 언니인가?
도희가 언니가 있다고만 했지 나이 차가 있다고 말한 적 없었다. 그 말은 즉 저 여자애가 도희 쌍둥이 언니인 확률이 높았다.
동생은 그렇게 착한데, 언니는 저렇게 날라리라니.
극과 극이다.
나는 나중에 도희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그 옆을 지나가려는 찰나 도희를 닮은 여자애 옆에 앉은, 조금은 평범하게 생긴 여자애가 말했다.
“도희, 이번 주말에도 바뻐?”
뭐, 도희?
난 도희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구석진 곳에 숨어 버렸다. 다행히 내 수상쩍은 행동은 저쪽에서 눈치 못챈 모양이다.
나는 구석에서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그 오빠라는 사람 왜 자꾸 만나는 거야?”
“재밌으니까.”
“재밌다고? 얼마나 재밌으면 다리도 멀쩡한 년이 할머니 전동휠체어 타고다니는 지랄을 할까?”
“안 그래도 뒤질 맛이야. 처음에 컨셉을 잘못 잡았어. 그냥 간신히 걸어 다닐 수만 있는 병약 미소녀 컨셉이나 잡을 걸. 할머니 몰래 휠체어 타고 나가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우엑, 자기 입으로 미소녀래. 님 양심 어디?”
“좀 닥쳐. 나 오빠한테 카톡해야 하니까.”
“시발, 진짜 좋아하냐? 스물 여덟이면 아저씨 아냐?”
“무슨 아저씨야. 오빠 동안이야. 얼굴이 좀 무섭게 생겼지만.”
정말 큰 착각을 할 뻔했다. 저 여자애가 말하는 사람처럼 내 얼굴은 전-혀 무섭게 생기지 않았다.
교회 오빠 같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고, 절대로 날 얘기하는 게 아닐 것이다.
아마 저 도희와 똑같이 생긴 날라리도, 그날라리가 말하는 내용도 다 우연의 일치겠지. 우리 도희가 절대 그럴 리…
“시발,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현실 부정을 멈추고, 두 다리가 멀쩡한 도희에게 다가 섰다.
“으악! 오빠 왜 여기 있어요!
갑자기 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지자, 도희는 위를 올려다봤고 나와 얼굴이 마주쳤다. 도희는 깜짝 놀라며 소리치며 손에 있는 담배를 놓쳐 버렸다.
“안녕, 도희야. 오늘은 다리가 멀쩡하네? 컨디션이 좋은가 봐?”
“그게… 오빠, 제가 다 설명할 수 있어요.”
“설명해 봐.”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야! 튀어!”
-후다닥
저 멀리 도망가는 도희. 나는 도망가는 도희를 쫓아 갈 생각은 없었다. 그저 똥 씹은 표정으로 바라볼 뿐. 뭐 도희가 아니더라도 얘기들을 사람은 있으니까.
나는 벤치에 아직 앉아 있는 도희의 친구를 보며 말했다.
“넌 왜 도망 안 가?”
“...쥐 났어요.”
아, 자세히 보니, 다리를 벌벌 떨고 있었다. 뭐가 무섭다고 저렇게 벌벌 떠는 지.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벌벌떠는 도희친구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약간의 협박 비스무리를 하며 도희친구에게 도희의 진실을 물었다.
처음에는 비밀을 지키려 했지만, 내가 주먹을 움켜지는 걸 보여주니 바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도희는요…”
이름은 이도희가 맞았지만, 나머지는 전부 거짓말이다. 실제 나이는 22세. 현재 연극영화과 휴학하고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아르바이트 중.
도희는 채팅에서 남자를 만날 때마다, 컨셉을 다르게 잡았다고 한다. 어쩔 때는 미혼모였고, 이튿날에는 소녀가장이었고, 그다음 날에는 학폭피해자였다.
어느 날 도희가 그런 짓을 하는 이유를 물어봤는데, 도희는 ‘미래의 배우가 되기 위해서 실전 연기 경험을 쌓는 거야. 그리고 재미있잖아’라고 대답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엉뚱했으니 그러려니 하고 지냈다고 했다.
그렇게 어플로 컨셉놀이를 하던 중 결국, 나한테 들킨 거고.
“하아…”
“그래도 도희는 오빠 정말로 좋아했어요. 언젠가 꼭 말한다고 했구요. 그러니까 너무 도희에게 실망하지 말아 주세요.”
“...말해줘서 고맙다.”
“저… 제가 도희에게 전할 말 없을까요?”
도희에게 할 말은 없다. 할 욕만 넘칠 뿐이지.
하지만 나는 화는 났지만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괘씸한 어린애에게 욕한다고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응, 없을 것 같네. 그리고 이거”
나는 지갑에 있는지폐를 손에 잡히는 대로 도희 친구에게 건네주었다.
“이걸로 과자나 사 먹어.”
“...저 스물 두 살인데요.”
“스물두 살이면 과자 안 먹어?그래서안 받을 거야?”
“저 과자에 미친년이에요. 감사합니다. 오빠.”
도희 친구는허리를 90도 숙이며 내 손에 있는지폐를 가로 챘다.
나는 혀끝을 차고 집에나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뒤돌아서니, 도희가 저 멀리 나무 뒤에서 나를 힐끔힐끔 훔쳐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다람쥐 같았다.
“쟤 뭐 하는 거야.”
“숨는다고 숨은 걸껄요. 아마 자기는 안 보일 거라고 생각할거예요. 제가 데려올까요 오빠?”
도희 친구가 내 옆에 팔짱을 끼면서, 내 혼잣말에 대답했다. 나는 어이없는 눈으로 도희 친구를 쳐다 봤다.
“...넌 안 가니? 다리에 쥐도 풀린 것 같은데.”
“받아먹은 게 있는데, 그냥 갈 순 없죠.”
보기와는 다르게 신의가 있는 친구였다.
“이름이 뭐야?”
“구설영이요.”
“좋아, 설영아. 지금 당장 이도희를 끌고 온다. 실시.”
“실시!”
뛰쳐나가는 구설영을 보고 왠지 포켓몬 트레이너 된 느낌이었다.
나는 설영몬이 도희몬을 잡아 오기를 벤치에 앉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