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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채부장 (2)


“한사원?” “채부장님?” 채부장은 당황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채부장은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되는 치부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인 내가 자기 딸아이와 친구였다는 사실에 놀랐을 거다. 나도 채진아의 아버지가 채부장이라는 사실에 경악했다. ‘채’씨라는 성이 흔한 씨는 아니었지만, 채부장의 얼굴은 채진아와 닮은 점이 하나도 없어서, 남이 보기에는 저 둘이 부녀 관계라는 사실을 절대로 알아챌 수 없었다. 서로 당황해서 굳어 버린 남자들을 보고, 그 옆에 있던 중년여인이 말했다. 훗날 채진아가 나이를 스무 살 정도 더 먹으면 저런 모습일 것 같았다. “둘이 아는 사이예요? 저쪽 청년이 말한 것들어 보니까, 같은 회사 사람인가 보네요?” 채부장은 황급히 대답했다. 그 모습이 매우 수상해 보였지만, 채아와 중년여인은 전혀 눈치채지 못해 보였다. “어, 그. 맞아. 얼마 전에 신입이 들어왔다고 했지? 바로 이 친구야.” “아? 바로 그 친구예요?” “어,어.” 채진아와 닮은 중년여인은 나를 관찰하는 눈빛으로 한번 쭉 스캔했다. “반가워요. 저는 이이 부인이예요. 아, 그리고 진아 어머니이고 하구요. “ 말을 끝내고 고개를 깊이 숙이며 인사하는 채진아 어머니에 모습에, 나는 그보다 더 고개를 숙이며 다시 인사를 드렸다. 채진아와 닮아 무척 미인이였고, 나는 채부장이 저런 예쁜 아내를 두고 바람을 폈는지 도무지 범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 네 안녕하십니까. 저는 채부장님 아래서 일하는 한정진입니다. 진아 친구이기도 합니다.” 고개를 숙이면서도 이 상황이 얼마나 이상한 상황인지 체감을 할 수 없었다. 정신이 멍해지고 그냥 사람 자체가 순간 멍청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누구나 어버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채진아가 내 어깨를 주먹으로 툭 치며 이 상황이 무척 신기하다듯이 말했다. “뭐야? 우리 아빠랑 같이 일했어?” “어, 어. 이거 참 우연이네. “ “진아야. 사람을 툭툭 치면서 말하는 버릇 고치라니까.” “뭐, 어때. 친구인데.” 채진아의 어머니가 채진아를 질책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에 빠졌다. 사내 불륜남이 바로 채진아의 아버지였다니, 정말 개 같은 상황이었다. 잊자고 다짐한 게 몇 시간 전이었는데! 정말 막장 드라마도 이러진 않을 것이다. 채부장이 내 어깨를 누가 봐도 과장된 느낌으로 두드리며 친한 척했다. “하하, 그러게나 참. 이거 우연이네. 우리 한사원이 우리 딸내미랑 친구일 줄은 상상도 못 했네! 하.하.” “우리 한사원? 당신이 많이 아끼는 직원인가 봐요. 당신 회사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는 건 처음 들어봐요.” “음음! 내가 한사원을 유독 많이 아끼긴 하지. 일도 잘하고 외모로 훤칠하고.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잖아! 허허!” 채부장의 의도된 과한 칭찬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는 채부장의 거짓 장단에 일단은 맞출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괴감이 들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나로서는 뭘 어쩌겠는가? 방법이 없었다. “어머, 그런데 정말 우리 진아랑 단순한 친구 사이 맞아요? 말하는 모습 보니까, 단순한 친구치고는 많이 친해 보이는데?” 채진아가 그 말에 웃으면서 말했다. “아! 엄마! 진짜 정진이랑 정말 친구 사이야. 정진아, 우리 정말로 단순한 친구지?” “아…예. 맞습니다. 진아랑 저는 정말로 단순한 친구 사이입니다.” ‘물론 남자 친구는 아니지만, 섹스는 했습니다.’ 라는 말은 속으로만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채부장에게는 절대로 말할 수 있는 비밀이 하나 있는 셈이다. 진아의 어머니는 진아와 나를 묘한 눈빛으로 말하더니, 내 오른손을 잡아채서 두 손으로 꽉 감싸 쥐었다. 왠지 방금 전 채부장과의 상황이 머릿속에 스쳐 갔다. 슬쩍 채부장을 보니, 채부장의 표정을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내 손을 꼭 붙잡은 진아의 어머니가 나긋나긋한 어투로 내게 말씀하셨다. “그런가요? 그나저나 우리 진아와는 정말 친한 친구고, 우리 남편과는 아끼는 직장동료 사이니까, 우리 집안과는 평범한 인연이 아닌 것 같네요. 혹시 이번 주 금요일 저녁에 시간되나요? 시간이 된다면 저희 집에서 저녁 식사라도 하시지 않겠어요? 저도 정진씨랑 친해지는 기회를 갖고 싶어서 그래요. 저에게 기회 한번 주시겠어요?” 거절하는 게 나았지만. 웃는 얼굴로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중년의 미부의 간절한 초대에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나는 정말로 내키지 않았지만 금요일 저녁에 뵙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그 상황을 지켜보던 채부장의 얼굴은 점점 잿빛으로 물들어갔다. 나랑 저 인간은 왜 이렇게까지 엮이는지, 지금, 이 상황에서는 운명의 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채진아의 부모님께서는 먼저 자리를 떠나셨고, 나와 진아는 점점 사라지는 진아네 부모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대화하고 있었다. “세상에, 아빠랑 너랑 같은 회사 다니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그렇지? 정진아?” “...그러게. 너무 신기하네.” 나는 딜레마에 빠졌다. 채진아에게 진실을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감춰야 하는가? 라는 딜레마. 너무 어려운 선택이다. 누구든 이 상황에서 그러지 않을까? 평소에 이성적으로 호감이 가는 (이미 잤지만)여자 사람친구에게 ‘당신의 아버지가 회사 여직원과 비상계단에 떡 치는 모습을 제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면 어디 나와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때, 채진아가 내 어깨를 툭툭 주먹으로 치면서 고양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히히, 이제 우리 부모님도 봤으니까, 상견례는 큰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좋겠네~ 정진이.” “...뭐라는 거야.” 채부장과 채진아의 닮은 점을 하나 찾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온종일 헛소리한다는 점이다. “아, 아니구나. 이미 금요일에 상견례가 잡혀 있구나. 꼭 정장 차려입고와야 해? 알았지?” “어차피 퇴근하고 바로 갈 거라, 정장 입어야 해.” 채진아가 뭐가 그렇게 웃긴 지, 배를 붙잡기 까지 하면서 폭소를 터트렸다. 그러면서도 주먹으로 나를 툭툭 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 “푸하하하, 너 왜 이렇게 표정이 굳었어? 농담이야! 농담! 아, 그런데 갑자기 기분 나쁘네? 너 나랑 결혼하는 게 싫어? 어?어? 내가 어때서!” “아, 아니. 나도 좋은데.” “좋기는! 표정이 다 썩어가는데!” “하아…” “이제 한숨까지 쉬네!” 나는 점점 강해지는 주먹질을 느끼며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고심했다. 진짜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정말 재수 없는 날이다. *** 금요일 회사. 출근부터 퇴근 십 분전인 지금까지. 채부장과 나는 끊임없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렇게 서로의 눈치만 살피다, 시간이 지나퇴근 시간이 되었다. 나는 다른 직원들이 퇴근하는 모습을 보다, 어느 정도 사람이 사라지자, 채부장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차 가지고 오셨습니까?” 채부장은 나를 보지도 않고 나와 같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난 출퇴근할 때 지하철 타고 다녀.” “아…” 잠깐의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나는 다시 말했다. “제가 오늘은 차타고 왔으니, 같이 타시고 댁으로 가시죠.” “...자네, 입사 초반에 차 없다고 하지 않았나?” 차가 있다면 잡무가 늘어날 것 같아서 없다고 하고 다녔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밝히게 됐다. “...얼마 전에 샀습니다.” “아…”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내 뒤에는 최부장이 한 발자국은 떨어진 거리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한 검은색 승용차 앞에서 디지털 차 키를 눌렀고,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차문의 잠금이 풀렸다. “...타시죠.” “...그래. 자네 먼저 타게.” “예.” 내가 운전석에 먼저 앉으니, 채부장이 조수석 문을 열고 조수석에 착석했다. 나는 그 모습에 꺼림칙하다듯이 말했다. “...편하게 뒤에 타셔도 되는데.” “...아니, 가는 동안 할 말이 있어서.” “...출발하겠습니다.” 차는 출발했고 시내를 달리기 시작했다. 운전하면서 나는 채부장이 할 말이 뭘까 생각해봤지만, 추측하기가 어려웠다. 할 말이 있다던 채부장은 차가 출발한 뒤 집까지 도착 10분이 남은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조용하게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그때, 채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다시 말하지만. 꼭 비밀은 지켜줘.” “제가 한 말이 있어서, 지키기는 할 건데...” “아, 고마워.” 몇 초간 정적이 흐르고, 나는 비상계단에서 불륜을 목격한 이 후 채부장에게 계속 묻고 싶었던 걸 이제서야 물어봤다.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제가 진아랑 친구라서 계속 회사내 불륜 관계를 모른 척하기에는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제가 회사를 그만둘 수 없잖습니까?” 내 질문에 채부장은 안 그래도 좁은 어깨를 쪼그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 회환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어, 어. 걱정 안 해도 돼. 정리할 거야. 금방 정리할 거야. 금방. 한사원은 걱정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비밀 꼭 지켜줘.” “...알겠습니다. 꼭 정리하셔야 합니다.” "...알았어."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끝났고, 잠시 후 채부장의 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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