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채부장 (1)
“한사원, 이제 회사가 익숙해졌나 봐.”
어느 날과 다름없이 일을 하던 도 중 , 홍보마케팅부 채부장님이 갑자기 내 어깨를 주무르며 말을 걸어왔다.
이렇게 따뜻한 인간이 아닌데, 갑자기 왜 이러나 싶었다.
나는 쓸데없는 스킨쉽에 불쾌함을 느꼈지만,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고, 거짓 웃음을 지으며 애써 감췄다.
“다 부장님이 잘해주신 덕이죠.”
“내가 뭘 했다고. 한사원이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지. 우리 커피 한잔 마실까?”
‘갑자기 웬 커피…?’
“아, 네. 좋죠. ”
채부장을 따라 탕비실로 들어가니, 채부장은 갑자기 다급하게 탕비실 문을 쾅하고 닫더니, 몸으로 입구를 완전히 막았다. 저래서는 밖에서 아무도 들어오지도 못한다.
문에 체중을 실어 기대고 있는 채부장은 친절했던 얼굴을 지우고, 평소 특유의 싸가지 없는 얼굴로 바뀌었다.
채부장은 그런 모습에 나는 ‘이 새끼 또 또라이짓 하네’라는 생각했다. 채부장의 기행은 회사 내에서 아주 안좋은 의미로 유명했다.
‘또 무슨 지랄을 하려고…’
채부장은 덧니가 유독 튀어난 얼굴로 나를 잠시 노려보더니, 입을 열었다.
“야, 너 봤지.”
“네? 뭘 봐요?”
나는 당황스러웠다. 너무 뜬금없는 말이다.
뜬금없이 뭘 봤다는 걸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얼마 전에 비상계단에서 본 장면이 생각났다.
‘아, 그 일 때문이구나.’
사건은 삼일 전 일어났다.
나는 잠시 채진아와 잠시 통화하기 위해, 사람이 드문 곳을 찾고 있었다. 그때 때마침 비상계단 철문이 보였고, 나는 비상계단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 소리가 계단 밑에서 나는 것 같아, 계단 밑을 빼꼼이 머리를 빼서 내려보니, 한 남녀가 상의는 입은 채 하의는 둘 다 무릎에 걸칠 정도로 내려놓고, 남자가 열심히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 진짜 깡도 좋다.’
나는 고개를 젓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려는 찰나, 허리를 흔들던 남자가 갑자기 위를 쳐다보더니, 결국은 나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그런데 아주 익숙한 얼굴이다.
‘...홍보마케팅 부서 부장 채건호?’
채부장은 마치 메두사 본 마냥 얼굴이 그대로 돌처럼 굳었다. 그리고 여자에게 뭐라 말하더니, 둘이 허겁지겁 옷을 챙겨입고 나와 반대인 밑층 계단으로 내려갔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채부장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이 생각났다.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비상계단 문을 밀면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또라이에, 불륜남에. 진짜 뭐 하는 인간이야.”
***
“너 이 새끼! 모른 척할래?”
내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소리치는 채부장
내 몸이 격하게 흔들리고 있음에도 나는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회사 비상 계단에서 뒤치기 섹스. 뭐 좆에 미치면 그럴 수 있다 치자. 하지만 채부장은 다 큰 딸이 있는 40대 중후반의 유부남. 그런 사람이 회사에서 신원불명의 여자와 섹스한다. 아내와 회사 비상계단에서 섹스할리도 없고. 빼도박도 못하고 불륜이다.
뭐 신원 불명 여자라고 말해도 회사 여직원 중 하나겠지. 얼굴을 못 봤지만 실루엣을 봤을 때, 최소 30대 초반 여성. 모르지만 유부녀일 수도 있다.
“...야. 정진아! 내가 너 들어올 때부터 얼마나 잘해줬냐. 어? 말 좀 해 봐.”
내가 회사에 이 사실을 알리면 어떻게 돼지?
아마 채부장과 정체불명의 여직원은 해고당하겠지. 해고만 당할까?
아니, 채부장과 정체불명의 여직원의 가정은 박살이 나겠지. 내 말 한마디에 화목한 가정이 두 개나 산산조각 날 것이다.
“비밀로 할 거지? 어? 야!”
머리가 아프다. 생각을 많이 해서일까, 아니면 채부장이 자꾸 내 몸을 흔들어서 멀미가 난 것일까? 어쩌면 둘 다 일수도 있다.
조금만 더 흔들리면 채부장 면상에 토할 것 같아, 나는 어깨를 잡은 채부장의 손을 힘을 주어 떼어냈다.
채부장은 내가 손을 강제로 치우자 당황한 눈치더니, 내게서 한 발자국 떨어지며 경계하는 눈치였다. 나는 채부장의 눈동자에서 겁을 먹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채부장은 전형적인 강약약강 스타일의 사람이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머리를 긁적이며 채부장에게 물었다.
“...분명 아닐 것 같지만 오해하면 큰일 나니까,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비상계단에서 그 여자분, 채부장님 아내분 아니죠?”
내 민감한 질문의 채부장은 달군 쇠처럼 새빨개지더니,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다.
“하아… 대체 어떻게 하실려고. 그 상대방 분도 회사 분 같던데…”
“정진아.”
갑자기 채부장은 내 허리춤에 있던 두 손을 모아서 꽉 잡더니,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키가 작은 채부장이라 올려다보는데 그 모습이 몹시 꼴 보기 싫었다.
“그… 말 안할 거지.”
나는 최부장의 나이에 맞지 않는 역겨운 초롱초롱한 눈빛이 너무 부담스러워, 고개를 숙여 피했다.
그다음 그리고 채부장의 손아귀에서 손을 빼내며 말했다.
“말 안 하겠습니다. 골치 아픈 일에 엃히기도 싫어서요. 절대 말 안할 테니까, 저 이만 가 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고마워. 한사원. 내가 나중에 보답할게.”
“아,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천천히 나오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채부장을 탕비실에 남겨두고 자리로 돌아왔다.
“후~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았는데.”
솔직히 그냥 확 회사에 꼰질러 버릴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채부장이란 인간은 동정할 가치도 없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짤려서 노숙자가 되든 말든 상관없었다. 오히려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 가정을 망칠만한 용기가 없었다.
내 한마디로 인해, 채부장의 가정과 정체불명의 여자의 가정은 파탄 날 것이다. 어쩌면 그 가족들은 밀고자인 나를 죽일 놈처럼 원망할 수도 있다.
나는 누군가 나를 죽도록 원망하는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채부장의 추잡한 불륜을 회사에 고발할 용기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넘어가는 게 나에게나 채부장에게 좋은 일이었다.
앞으로 채부장의 일은 채부장의 일이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채부장 생각을 저 멀리 치워 버리고 책상 위에 두고 간 핸드폰을 확인했다.
채진아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채진아: 오늘 7시야. 잊지 마.]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채부장이 아니라, 퇴근 후에 만날 진아였다.
***
여섯시가 되자마자 칼퇴한 나는 차를 몰고 채진아가 있는 동네로 달려갔다.
나는 채진아 집 근처에서 채진아를 픽업한 뒤, 중앙에 큰 호수가 있는 시민공원으로 향했다.
채진아와 오늘 공원에서 가볍게 달리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내게 운동이라고 해봤자, 숨 쉬기 운동이 전부고. 그 외 운동은 전부 귀찮지만, 레깅스를 입은 채진아와 함께 운동 하는데 귀찮은 건 기쁜 마음으로 참아낼 수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레깅스를 입고 몸을 풀고 있던 채진아가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나이 차 많이 나는 누나처럼 나를 동생 대하듯이 말했다.
“힘들면 말해. 누나가 속도 맞춰줄게”
“...내가 생일 더 빠르다.”
“곧 서른인데, 유치하게 생일 따지네? 우리 정진이 언제 어른되나?”
“말을 말자.”
우리는 공원을 달리기 시작했고, 한 바퀴 정도 돌자 나는 점점 숨이 차오르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 나에 비해 채진아는 멀쩡해 보였고, 어느새 나보다 몇 발자국은 앞서 나가고 있었다.
“...하아..하아. 맞춰준다더니.”
젖 먹던 힘마저 써가며, 따라잡으려 했지만 채진아를 따라잡느건 불가능했다. 채진아는 뛰는 중에 가끔 뒤를 돌아보며, 나를 놀렸다.
“운동 해야겠다~ 남자가 비실비실해서 써?”
“하아…하아…”
그렇게 두 바퀴 째, 젖 먹던 힘까지 다 썼지만, 나는 죽을힘을 다해 채진아를 뒤 따라 뛰어가고 있었다. 사실 한계는 아까 부딪 쳤지만, 앞에서 실룩거리는 핑크색 레깅스가 자꾸 자석이라도 된 마냥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동그란 복숭아 두 개가 자꾸 날 따라오라고 유혹하는데, 차마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어느새 채진아는 저 멀리 점이 되어가기 시작했고, 나는 손을 끝까지 뻗어 봤지만, 분홍색 복숭아가 저 멀리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아.”
나는 결국 뛰는 것을 멈추고, 발걸음을 늦춰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면 뒤에서 채진아가 뛰어올 것이고 그때 다시 뛸 생각이었다. 물론 채진아에 뒤에서 말이다.
그렇게 공원을 천천히 걷다 보니, 저 멀리 채진아가 누군가와 대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중년의 부부 같아 보였는데, 남자 쪽이 왠지 익숙해 보였다.
채진아에게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체형이 익숙한 게, 분명 내가 아는 사람 같았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 채진아에게 말을 걸었다.
“누구셔?”
“아, 인사 드려. 여기는 우리 부모님. 엄마, 아빠. 여기는 제 친구예요.”
“아, 안녕하세요. 한정진이라고 합니다.”
나는 채진아의 말에 허리를 숙이며 중년 부부에게 인사했다.
“...한사원?”
그 때 귓가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절대로 여기 있어서는 안될 만한 인물의 음성.
나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오늘 낮 회사에서 본 얼굴이었다.
내 목소리는 떨릴 수 밖에 없었따.
“...채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