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이방인
이 도시에 이사 온 지 어느새 한 달이 되었다. 직장 때문에 고향을 등지고 이 도시로 상경했다. 그 탓에 이곳에서는 친구는커녕 아는 사람도 없었다.
간신히 합격한 직장의 입사 두 달차 밖에 되지 않아 아직은 사람들과 어색했다.
“후우… 오늘도 힘들었다.”
나는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10평 안 되는 오피스텔 방에 도착해 옷을 대충 벗어 던진 뒤 씻지도 않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싸구려 매트는 내 몸을 불편하게 감싸주었지만, 너무 힘든 하루를 보내고 온 탓에 싸구려 매트의 푹신함마저 천국 같았다.
이 도시에 온 후부터 퇴근하면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고, 아니면 커뮤질은 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러다 핸드폰을 놓고 멍하니 천장을 보았는데, 순간 나 자신이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에서 항상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온 덕에 외롭다는 감정을 몇십 년 동안 몰랐는데, 타지 생활 한 달 만에 외롭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천장을 멍하니 보던 중 방금 커뮤질을 하다 가 커뮤니티에 붙은 광고가 생각났다. 소개팅 어플 광고였다. 나는 원래 이런 것에 관심이 없었는데, 외로운 탓인가, 갑자기 관심이 갔다.
그래서 홀린 듯이 소개팅 어플을 깔았다. 해외에서 넘어와 한국에서도 나름 유명한 어플이었다. 예전에 친구들이 이 어플로 여자를 만난다고 했을 때, 한심한 짓거리를 한다고 핀잔을 준 기억이 났다.
나는 그때의 나를 반성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소개팅 어플 프로필을 대충도 아닌, 정성을 들인 편도 아닌, 그저 적당하게 작성했다. 무난무난하게 말이다.
나는 과거의 고향 친구처럼 여자 친구가 필요해서 소개팅 어플을 설치한 건 아니었다.
아니, 조금은 바랬지만 여자 친구가 아닌 동네 친구를 먼저 만들고 싶었다.
어플의 형식은 프로필을 옆으로 넘기면서, 마음에 드는 프로필을 발견하면 하트를 누르고, 상대방도 내 프로필을 보고 하트를 누르면 서로 매칭이 되는 시스템이었다.
프로필의 소개 글은 대부분 평범했지만, fwd라던가 BDSM이라던가 알 수 없는 약자를 적어놓은 여자들도 있었다. 궁금해서 구글 검색창에 쳐보니 성적인 의미가 담긴, 미래의 섹스파트너에게 전하는 은밀한 단어였다.
순간 혹해서 하트를 누를까 했지만, 나는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나름 나이를 먹었고 이런 것에 혹해서 만나 봤자 의미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도 몰랐고.
나는 몸이 외로운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외로웠다.
나는 프로필을 옆으로 넘기며 주로 동네 친구를 구한다는 소개 글이 적힌 프로필에 하트를 눌렀다.
그렇게 한참 누르다 보니, 오늘 주어진 하트를 전부 사용했다. 하트를 더 얻으려면 유료 인앱 결제를 해야 했는데, 상당히 비싸다.
고민했다. 결제할지, 말지.
“삼만 삼천 원… 비싸네.”
하지만 곧 월급날이니 큰맘을 먹고 결제했다. 결제가 완료됐다는 문자를 보고 잠깐 현탐이 왔지만 나는 계속 프로필을 넘겼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프로필이 보이면 하트를 눌렀고, 그 짓을 계속 반복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고 말았다.
***
아침이 되었다.
나는 눈가에 낀 눈곱을 떼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먼저 고향 친구들의 안부 문자가 먼저 보였다. 이 자식들을 당장에라도 만나서 술 한잔하고 싶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리고 난 더 이상 백수도 아닌 직장인이기에 시간 내기도 어려웠다.
한번은 내려가야 하지만 고향에 가려면 최소 이틀을 써야 하므로 마음을 크게 먹어야 했다.
친구들에 문자에 힘들다는 징징거리는 내용의 답장을 하고 다른 알림을 확인했다.
은행 결제 내용, 게임 이벤트 알림 내용… 쭉 내리다 보니, 하트모양의 알림이 떠 있었다.
[동네 고양이님과 매칭이 되었습니다! 당장 확인하세요!]
내가 누른 프로필 중 누군가와 매칭이 되었나보다.
몇십개의 프로필을 누른 탓에 어떤 프로필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프로필을 눌러보니, 전신거울에 얼굴을 핸드폰으로 가리고 찍은 전신 샷이 한 장 있었다.
몸매는 평범했다. 청바지 핏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고 상의는 펑퍼짐한 티셔츠를 입어 알기 어려웠다.
그리 정성 들여 찍은 사진은 아니었다.
나이는 22세. MBTI는 ENFJ 키는 167, 거리는 5km…소개 글을 보니, 이 근처 대학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동네 친구를 구한다고 적혀 있었고, 이상한 사람은 연락 x 라고 되었었다.
“어플에서 정상적인 사람 만나는 것도 웃기는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 나도… 하고 있네.”
어플을 하는 내가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니었다. 잠깐의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지고 프로필을 눌러 채팅을 보냈다.
[수줍은 멍멍이 / 안녕하세요!]
첫 인사말을 고민했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멘트가 없었다. 그래서 평범하게 보내고 뒤에 느낌표를 찍어 활기찬 느낌을 주었다.
이게 맞는가 싶었다.
답장은 내가 출근하는 시간까지 오지 않았다.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핸드폰을 책상 위에 덮어놓고 업무를 시작했다.
나는 신입이었고, 업무시간에 핸드폰을 볼 틈은 없었다. 물론 신입인 덕에 과도한 업무가 주어진 건 아니지만, 현재 업무만 해도 신입에게는 벅찬 일이었다.
그래서 점심시간 돼서야, 핸드폰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트 모양의 알림이 와 있었다. 보낸 지 5분도 안 된 따끈따끈한 메시지였다.
[동네 고양이/ 안녕하세요! 어디 사시나요??]
나는 벽에 걸린 아날로그 시계를 봤다. 30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그동안 이 여자와 채팅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
나는 문자를 보냈다.
[수줍은 멍멍이 / 저 남구 살아요. 동네 고양이님은 어디 사세요? ]
바로 답장이 왔다.
[동네 고양이/ 저도 남구 살아요! 혹시 몇 살이세요? 저는 22이요!]
[수줍은 멍멍이 / 저는 28이요! 학생이세요?]
프로필에서 다 확인한 사실들이었지만,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또다시 물어봤다.
[동네 고양이/ 네네! 내년에 졸업해요!]
[수줍은 멍멍이 / 아하! 무슨 과예요? 저는 회사 다니고 있어요]
그렇게 문자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 끝나기 오 분 전이었다.
나는 저녁에 다시 연락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핸드폰을 책상에 엎었다.
그리고 나는 멍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쳐다보며 키보드를 쉴 새 없이 두드렸다.
피곤해 죽겠다.
***
그날 저녁 ‘동네 고양이’와 카카오톡 ID를 주고받았고, 문자의 텀은 길었지만, 몇 주간 꾸준히 연락했다.
그 결과 주말 저녁에 만나 동네 공원에서 산책 겸 간맥을 하기로 약속했다.
누군가 오해할지 몰라서 다시 한번 말하는데, 나는 ‘이 여자와 자야겠다’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그저 동네 친구를 만들고 싶어서 소개팅 어플을 설치한 것이다.
하무튼, 동네 친구를 만들 목적을 가진 나였기에,
전혀 꾸미지 않고, 더벅 머리에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나갔는데, 우연히도 동네 고양이도 검은 후드티에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멋쩍게 웃으며 눈인사했다.
“오빠, 실물이 훨씬 낫다. 사진을 왜 그런 거로 했어?”
“나름 신경 써서 찍은 건데, 이상해?”
“응. 많이 이상해.”
그녀는 첫 만남이었지만,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나는 큰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금방 친해질 것 같은 느낌이라 좋았다.
닉네임 '동네고양이'의 실제 이름은 ‘서혜진’이었다.
어두컴컴한 저녁 탓에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혜진이의 얼굴은 예쁜 편이었다.
무쌍이지만 큰 눈이 특징이었는데, 요즘 인기 있는 여배우와 비슷한 눈이랑 비슷해 마음에 들었다.
또 왼쪽 입술 아래 자그마하지만 선명한 흑색점이 있었는데, 위치가 적절해 혜진이의 밋밋할 수 있는 얼굴에 포인트로 보였다.
뭔가 그 점에서 색기를 발산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편의점에 미리 사 온 맥주를 혜진이에게 건넸다. 혜진이는 고맙다고 말하며 주먹을 쥐고 내 가슴팍을 살짝 쳤는데, 꽤 자연스러운 스킨십이었다. 그래도 내가 6살이나 연상인데, 이게 바로 여대생의 패기인가 보다.
나는 혜진이의 외모와 나에게 하는 친근한 행동을 보고 판단했을 때, 학교에서 남자 꽤 홀리고 다니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일단 공원 산책로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혜진이와 나는 걸으면서 캔맥주를 홀짝거리며 취미는 뭔지, 술은 좋아하는지, 담배는 피우는지 등 사소한 얘기를 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풀었다.
혜진이는 타지에서 대학 때문에 몇 년 전 이 도시로 이사 왔다고 말했다.
혜진이은 나 이전에도 어플로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고 말해 줬는데, 어플로 만난 사람들 중에는 물론 이상한 사람도 있었지만, 좋은 사람도 있었고, 그 사람들과는 지금까지도 만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소개팅 어플로도 동네 친구를 만드는 게 정말 가능하구나!’라고 생각했다.
사실 미심쩍었는데, 실제로 동네 친구를 만든 사람을 보니 설레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혜진이로 시작해 많은 동네 친구들을 만들고 싶었다.
한창 얘기하다 보니, 우리는 산책로의 끝에 도착했고, 동시에 캔맥주도 바닥을 보였다.
시계를 보니 아홉 시, 헤어지기는 조금 아쉬운 시간이었다.
나는 제안은 하지만 거절해도 크게 상관없다는 듯한 무심함을 담은 말투로 혜진에게 말했다.
“우리 한 잔 더 할래?”
“어디서?”
“뭐, 근처 술집에서?”
혜진은 웃으며 내 어깨를 손바닥으로 살짝 쳤다.
“...다음에, 다음에 마시자. 룸메가 기다리고 있어서 들어가 봐야 해.”
“아쉽네.”
“나도 아쉬워. 연락할게.”
집으로 가는 혜진이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마른 입술 탓에 조금 아팠다.
조금 전에 모습이 자기를 어떻게 해보려고 찝쩍거린다고 혜진이가 생각할까 걱정되었다.
나는 정말 동네 친구를 만들고 싶은 마음인데.
동시에 자괴감도 들었다. 외로움을 이겨 내지 못해, 낯선 여자애에게 이러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후우… 모르겠다.”
여기서 고민해봤자, 의미 없었다.
나는 밤공기의 기분 좋은 차가움에 머리를 식히며 열평짜리 자취방으로 천천히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