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채진아 (1)
혜진이와 첫만남이 일주일이 되었다.
그동안 혜진이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내가 먼저 연락할까 생각했지만 왠지 자존심이 상해서 하지 않았다.
찌질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다.
그 일주일 사이 나는 다른 여자와 매칭이 되었다.
닉네임은 다소 유치한 ‘하트뿅’이었다. 나이는 28살. 나와 동갑이었다.
하트뿅의 소개글이 좀 독특했다.
[섹스만 원하는 새끼들은 좀 꺼져줄래? ]
웃긴 게, 소개글은 이렇게 적어 놨지만, 프로플 사진이 헬스장에서 분홍색 레깅스를 입고 엉덩이 쭉 내밀어 강조한 사진이었다.
섹스어필은 하지만 섹스는 거절이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헬스장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이다.
눈에 튀는 색에 딱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고 운동은 안 하고 사진만 찍는 여자들. 그런 여자들 대부분이 남자들이 쳐다보면 인상을 찌푸리지만, 마음속으로는 쳐다봐주길 원할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내 의견이다. 절대적으로 맞는 의견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매칭를 확인하고 있을 때, 하트뿅이 먼저 인사 문자를 보냈었다.
[하트뿅/ 안녕하세요~]
[수줍은 멍멍이/ 안녕하세요!]
[하트뿅/ 어디사세요? 저는 동구에 살아요.]
[수줍은 멍멍이/ 저는…]
이번 채팅도 저번에 혜진과 비슷한 내용으로 흘러갔다. 가벼운 신변잡기. 그러다가 카톡 아이디 교환해서 구체적인 약속 날짜 잡기.
하트뿅은 나와 25km거리나 떨어진 동네에 살았다.
광역시라 같은 도시이긴 했지만, 이 정도면 타지라고 봐도 무방했다.
가볍게 만날 수 있는 동네 친구를 구하던 나에게 25km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하지만 한번 만나볼 생각이었다. 절대 분홍색 레깅스에 혹한 것이 아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25km를 갈 필요는 없었다. 하트뿅이 중간 지점에서 만나자고 먼제 제안한 것이다.
나는 운전해서 중간지점으로 차로 달려갔다.
술을 먹을 예정이라, 나중에 대리를 부를 생각이었다.
우리는 중간지점에 있는 C역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생각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역 입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매칭녀를 기다렸다.
잠시 후 하트뿅은 나타났다. 나는 그녀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왜냐 사진과 똑같은 분홍색 레깅스를 입고 있었으니까.
펑퍼짐한 검은 후드티가 엉덩이까지 내려와 엉덩이의 민망한 부분을 가려 줬지만, 그대로 레깅스의 색깔이 분홍색이라 눈에 띄는 편이었다.
그녀는 야구 모자를 푹 눌러써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전체적인 실루엣은 사진과 비슷했다.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고 있는 듯했다. 나는 먼저 하트뿅에게 다가가 말했다.
“하트뿅?”
“그… 무슨 멍멍이.”
“수줍은.”
하트뿅의 후드티 주머니에 양손을 푹 넣은 채 말했다.
“아, 맞다. 수줍은 멍멍이. 프로필 보니까 우리 동갑이던데, 말 놔도 되지?”
“이미 놓고 있는데 왜 물어봐?”
“하하하, 그냥 예의 상 물어본 거야.”
두 번밖에 없지만 어플에서 만난 여자들은 전부 초면에 묻지도 않고 반말했다. 어플로 만난다는 사실 자체가 가벼운 느낌이라서 다들 서스럼 없었다.
우리 둘은 역 앞에서 어디서 마실지 고민했고, 나는 하트뿅에게 조용한 술집으로 가자고 말했다.
하트뿅은 동의했고, 우리는 조용해 보이는 이자카야 술집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먼저 음식과 술을 주문했다. 그리고 나는 하트뿅의 컵에 물을 따라주고 그녀에 앞에 두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서로 이름을 아직 말 안 했네.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은 한정진.”
“내 이름은 채진아. 반갑다. 한정진.”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건넸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는 피식 웃으며, 채진아의 악수를 받아주었다.
내가 맞잡자, 채진아는 자기 팔을 흔들었고 그 반동에 내 팔도 흔들렸다. 채진아는 팔을 흔들면서 말했다.
“반갑구만, 반가워!”
“그게 뭐야. 아저씨 같은데?”
“뭐야, 드라마도 안 봤어? 거기서 나오는 악수법인데. 정진이 너 티비 안 봐?”
“티비는 잘 안 봐서. 드라마 좋아하나보네?”
“좋아하지. 요즘에 ‘동네인기’에 빠졌는데, 너 알아? 요즘 다 보던데?”
“아, 그건 스트리밍으로 보고 있지. 거기 나오는 배우가…”
그렇게 대화하다 음식과 술이 나왔고, 우리는 서로의 술잔을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했다.
어느덧 빈 술병이 두 개가 되었고, 술기운 덕에 어색함이 사라진 우리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눈이 살짝 풀린 채진아는 턱을 오른쪽 팔꿈치를 책상에 대고, 턱을 괸 채 내게 질문했다.
“마지막 연애는 언제 했어?”
“흠… 일 년? 그 정도 되겠다.”
“오, 오래됐네! 왜 헤어졌어? 바람폈어? ”
“바람은 무슨...뭐 흔하디흔한 성격 차이지. 진아, 너는?”
“나? 한 달? 아니 삼주? 삼주 정도 된 것 같아. 한 달은 아직 아니고.”
“최근 일이네. 왜 헤어졌는데?”
“전 남자 친구가 너무 병신이어서. 들어봐, 걔가 한 달에 200 겨우 벌었거든?”
“돈 적게 번다고. 병신이라고 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채진아가 테이블을 손바닥 팍- 내려쳤다.
저렇게 치면 아플텐데.
“아이 씨, 끝까지 들어. 난 남자가 돈을 얼마벌든말든 좆도 신경 안 써. 그냥 열심히만 살면 돼.”
“그럼?”
“자기 주제를 몰라서. 갑자기 보여 줄 게 있다며 우리 집으로 왔는데, 무슨 외제 차를 타고 온 거야.”
“외제 차?”
“그래, 내가 누구 차 빌려온 거냐고 물어봤는데, 자기 차래. 물었지, 네 월급으로 유지도 제대로 못할 거라고. 그러니까 자기는 감당할 수 있대, 식비 줄이고 쓰던 폰 요금제를 알뜰폰인가 뭔가로 바꾸고 하면 된다고.”
“왜 병신인지 알겠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 자기 주제도 모르고 외제차 몰고 다니다 패가망신 하는 사람들.
하필 그런 사람이 채진아의 전남자친구였나보다.
“내가 그때 진짜 어이가 털려서. 어쨌든 걔가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물어봤지. 그럼 우리 데이트 비용은 어쩔 거냐. 그것도 아껴서 차 할부금 낼 거냐.
그렇게 물어보니까 아무 말도 못하더라.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헤어지자고 했어.
시발! 자기가 욜로 인생 사는 건 그렇다 치고, 나를 조금이라도 생각했으면 차를 사면 안 됐지! 개 쓰레기 새끼!”
채진아는 감정이 갑자기 북받쳐 올랐는지 마지막 ‘쓰레기 새끼’ 라는 말을 너무 크게 말했고, 주변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사람들을 우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을 향해 미안하다는 표시로 고개를 여러 차례 숙였다.
“야야, 소리가 너무 크다. 다 보잖아.”
“미안… 갑자기 화가 나서.”
자신도 부끄러웠는지 채진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막힌 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녀에 빈 술잔을 채워주며 대화 주제를 전남자친구에서 다른 화제로 돌렸다. 마침 소개팅 어플에서 본 분홍색 레깅스 사진이 생각이 나기도 했고.
“괜찮아. 술이나 마시자. 아 맞다. 너 운동해? 사진 찍은 거 보니까 하는 거 같던데.”
내 말을 들은 채진아가 오른팔을 어깨 높이로 들어 안쪽으로 구부리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흔한 근육 자랑 포즈였다.
“응, 나 헬스장에서 트레이너로 일해.”
“오, 운.동.하.는 여.자.”
내가 고조 없이 일정한 톤으로 칭찬하자, 채진아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아, 너무 영혼 없어.”
“하하,내가 칭찬에 어색해. 그런데 트레이너가 술 마셔도 되는 거야? 그 뭐냐 유튜브 같은 데서 보면 술 먹으면 근손실 나서 안 마신다던데.”
“뭐, 맨날 먹는 것도 아니고 가끔 마시는 건데. 괜찮아. 내가 뭐 대회 나갈 것도 아닌데. ”
“그런가? 헬스장에서 일하는 건 어때?”
헬스장. 운동은 숨쉬기가 전부인 내게는 너무 무서운 곳이었다.
"흠, 좋기는 한데. pt 영업하는 게 힘들지. 내가 남자회원들을 많이 코치하는데, 식단관리나 운동스케줄 조정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카톡을 자주 하는 편이란 말이야.
보통 회원님들은 다 매너가 좋으신데, 가끔 식 이상한 놈이 걸리면 피곤해져."
"이상한 놈? 뭐 치근거려?"
"트레이너란 직업이 어떻게 보면 서비스직이니까, 내가 서비스정신을 가지고 누구든 사근사근하게 운동을 알려 준단 말이야.
그러다 보면 착각하는 새끼들이 한명 씩 꼭 나와.어느새 나도 모르게 회원이랑 썸을 타고 있다니까?”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는데?”
“심하지 않으면, 그냥 PT 횟수 채우고 다음번에는 스케줄 안 맞다고 거절하지. 심하면 관장님한테 말해서 트레이너를 바꿔 주던가, 아니면 회원권이랑 PT 환불해주고 쫓아내던가 해.”
“트레이너라는 직업도 참 힘드네. 그래도 항상 운동하는 직업이니까 몸 좋겠다?”
“뭐야? 보면 몰라? 나 몸매 좋아.”
“후드티로 몸매를 꼭꼭 감싸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하, 어이없어. 보여줘?”
채진아는 여태까지 쓰고 있던 모자를 확-하고 벗었다. 짙은 갈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목에 살짝 닿는 짧은 단발이 그녀와 잘 어울렸다.
나는 무슨 뜻인지 알면서도 장난으로 헛소리를 했다.
“뭘, 아, 너 머리카락 보여준다고?”
채진아는 자기 잔에 있는 소주를 단숨에 비워내고서 탁-하고 내려 놓으면서 말했다.
“크.. 아니. 내 몸매 보여준다고! 왜? 보기 싫어?”
“아니 그건 아닌데…”
나는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조금은 음흉하게 말이다.
“여기서 보여주는 건 아니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채진아는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당연히 아니지. 여기 말고... 다른 데서 보여줄게.”
나는 눈을 게슴츠레 눈을 뜨고 있는 채진아를 바라봤다. 그녀의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었는데, 그 살짝 보이는 입속에 내 성기를 넣어고 싶었다. 그 망상에 벌써 가랑이가 부풀어 올랐다.
요망하다. 채진아.
나는 지갑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서 나가고 싶다는 제스처였다.
“이만 나갈까?”
채진아는 내 행동에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