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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76. 유비무환(有備無患)


#76. 유비무환(有備無患) *** 고블린과 드잡이질하던 철구가 갑자기 번쩍이는 빛과 함께 사라지고, 이어서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들 어디야? 이렇게 넓은 동굴이었나 여기? -지금 스캔 중이에요. A급 던전 미궁에서 지금과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는 걸 들은 적은 있는데, 고블린 던전에서 미궁화라니.. -이제 이상한 냄새가 안나… -그러게. 선호야? 우리 어떡하지? 따로 길을 찾아볼까, 아니면 그냥 기다릴까? 고민을 해 봐야 하는 상황이다. 처음 사라진 철구 놈은 아직도 연락 두절. 그 뒤로 철구와 마찬가지로 한명 씩 사라지기 시작해서 결국 선호만 남았다. -일단 대기하고 있어. 최악의 상황이라고 가정하면, 무법자들이 우릴 뒤쫓아왔을 수도 있어. -아리야.지윤아. 언니가 저번에 준 거 있지? 누가 접근하면 그거 작동 시켜. 늦으면 안 돼. -네, 언니. -응…. 다행인 점은 서연주가 지난 무법자 사건 이후로 발명한 디바이스, 일렉트릭 쉴드를 비상하는 매 팀원에게 지급했다는 점이다. 내부에 탑재 된 마력석으로 작동하며, 쉽게 표현해서 전기가 흐르는 쉴드를 작동시킨다. 원리는 모르지만 스스로 충전까지 한다면 마력량이 가장 적은 아리를 기준으로 최대 3시간은 유지할 수 있었다. -스캔 완료 됐어요. 맵을 공유할게요. 지금 저희는 사방으로 흩어져 있네요. 기존에 저희가 있던 동굴이 아니라 뭔가 다른 공간으로 이동 된 것 같아요. -다들 계속 대기해. 내가 철구 쪽으로 지금 바로 이동할테니. 그는 스탬피드를 최대로 활성화하고 전속력으로 뛰어 나갔다. *** 무법자. 대한민국에는 많은 무법자들이 있다. 개 중에 제일 악질이고 강한 놈들은 무법자 협회 소속 간부들이지만, 그들은 깊은 곳에 숨어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무법자는 따로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다. 흔히 헌터들이 보게 되는 무법자들은 대부분 어딘가 불만을 품거나, 돈이나 어떤 보상을 위해 헌터로 생활하다 무법자로 돌변하는 놈들이 대부분이다. 지금 철구를 둘러싸고 있는 4인 1조 또한 그러한 케이스. "이쪽은 B급 둘에 C급 둘이나 있다. 쓸데없는 반항은 그만두는 게 어때?" "너희들은 누구지? 왜 우릴 습격하는 거야!" "우리 고객님께서 너희가 게이트에서 나오는 것을 원치 않거든." 검은색 로브에 가면을 쓴 남성들 중 한 명이 손에서 스펠을 띄웠다. 철구는 마력을 두르고 달려들까 생각도 했지만, B급이 둘이라는 소리에 괜한 객기는 버리기로 했다. 어디서 떨어트렸는지 귀에 꽂아 둔 통신 장비는 없어졌지만, 이럴 때 쓰라고 받은 네모난 디바이스는 품에 고이 잘 있었다. 디바이스를 작동 시키기 무섭게 원형의 쉴드가 쳐졌다. 철구의 커다란 덩치로는 살짝 좁은 감이 있지만, 안정적으로 작동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저,저 자식이 뭔가 했다! 공격!!" 철구 덩치 못지않은 전위 둘이 달려듬과 동시에 마법사의 스펠에서 마법이 사출되고, 마력 총에서 불을 뿜기 시작했다. -콰과과강!! "히,히이익!!" 한껏 몸을 움츠리고 충격에 대비하기 무색하게 쉴드는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철구는 디바이스에 표시된 점등을 바라봤다. [87%] 한 번의 공격에 13%라는 수치가 줄어들었다. 전에 설명들은 대로 디바이스를 손에 쥐고 마력을 일으키니 충전 중 표시가 뜨며, 디바이스에 충전 된 마력이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한다. "치다 보면 부서질 거야! 계속 공격해!" "끄아아악!!!" 쉴드에 달라붙은 전위 둘이 쉴드를 주먹으로 내려치기 무섭게 쉴드에서 튀어나온 전기가 그들을 지졌다. "쉴드에서 떨어져! 우리가 공격하지." 마법사가 쉴드를 깨기 위해 주문 영창에 들어갔다. "제,제일 쎈 거로 박아보라고!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젠장, 이 병아리 새끼들이 어떻게 저런 장비를 갖고 다니는 거야!" *** 이제는 잊혀진 S급 특수 능력 보유자 김택진. '메이즈 러너'로 유명한 그는 불안 해지기 시작했다.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그의 S급 특수 능력 '미로'로 인해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쇄도했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집단이란 집단에서 모두 그를 원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공간 관련 특수 능력자. 김택진은 그렇게 가장 많은 연봉을 지급하기로 약속한 기업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계약이 끝나기 무섭게 기업에서 방출되고 말았다. 자신도 발동 원리를 모를 뿐 더러, 옆에서 연구하는 입장에서도 별다를 바 없었던 것. 기업은 적당한 가격에 그의 능력에 대한 연구 결과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기업과 연구기관에서는 더 이상 그를 원하지 않았다. 게이트 내부의 몬스터나 마수들에게는 영향을 끼칠 수 없고, 오로지 인간에게만 사용 가능한 '미로'라는 특수 능력은 그를 필연적으로 무법자로 이끌었다. 그의 능력은 뭉쳐 있는 인간들을 '미로'에 빠트려 하나씩 각개격파하기에 딱 좋은 능력이었다. "쳇, 총알이 얼마 안 남았어! 쉴드가 불안정 한 걸 보니 얼마 안 남았다! 전위들은 제압 준비해!" 김택진이 옆에서 영창 중인 마법사의 이번 공격에 쉴드가 깨지면 남은 총알을 퍼부을 생각으로 철구에게 총구를 조준했다. 전위들이 보고만 있자니 뭐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주변의 돌을 주워 쉴드에 던지다 말고 택진의 오더에 쉴드 근처로 접근했다. "록 스파이크!" 마법사의 주문이 외쳐졌다. 바닥에서 뾰족한 바위 조각이 솟아오르며 철구를 보호하던 쉴드가 마침내 깨지고 말았다. -탕! 탕! 쉴드가 깨어진 것을 확인하기 무섭게 김택진의 마력 총에서 불이 뿜어졌다. "으,으아악!!!" 철구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총성이 울리고 조금 뒤의 일이다. 쉴드가 깨진 것과 동시에 몸을 웅크린 채,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을 끌어올리고 땅을 굴렀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충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기하던 전위의 주먹질이나 마력 총에 몸이 한 두 발 꿰뚤릴 것을 예상했는데, 별다른 일이 없었다. 질끈 감았던 눈을 뜨니 당황한 표정을 한 세 사람과, 마치 듀라한처럼 몸통과 목이 따로 노는 마법사가 있었다. 김일제 패거리에 괴롭힘 당할 때처럼, 설마 이번에도 기적처럼 그가 구해주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서,선호냐?" 그 말에 선호의 손에 쥐어진 마법사의 수급이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그래. 너는 심심하면 어디서 줘 터지고 있냐? 그게 네 역할이긴 하다만은." *** E급 게이트를 도는 아카데미 1학년 병아리 5인조 중 남자 둘은 죽이고 여자 셋은 생포하라는 주문이었다. 메이즈 러너 입장에서 이보다 간단한 오더는 없었다. '미로'를 사용한 뒤 남자는 하나씩 처리하고 남은 전리품을 취하기만 하면 간단한 상황이다. 정석대로라면 전위한테 먼저 힘빼기보다 딜러 역할을 하는 박선호를 먼저 노리는 것이 맞다. 하지만 B급헌터에 준하다는 평가를 받는 딜러를 상대하는 것보다, 병아리에 불과한 동료 하나를 인질 삼아 그를 맞이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여성들은 '미로'에서 되도록 멀리, 전위를 자신들에게 최대한 가깝게, 박선호는 그 가운데 위치하게끔 능력을 발동한 것인데. "마,마법사가 죽었어!" "잡아!!" "자,잠깐 기다려라!!!!" 자신들은 서로 누군지는 모르고, 작전을 위해 능력만 공유한 상황이다. 급조된 파티이니만큼 이런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가 불안한 것은 당연지사. C급 전위 두 사람이 박선호에게 시선을 돌려 달려들었다. 김택진이 철구라는 전위를 겨눴던 총구를 선호에게 돌려봤지만, 총알을 휘게 하는 능력이 없는 이상 덩치 둘에게 가려진 그를 쏘아 맞힐 방법은 없다. -츠팟!! 그렇게 생각한 찰나, 전위 둘에게 은빛으로 이루어진 섬광이 날아들었다. -터털썩! 그에게 달려들던 전위 둘이 무슨 이유에선가 바닥에 쓰러졌다. 뭔가 한 건가? 손에 검이 있긴 한데, 뭔가 휘두르는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 김택진은 문득 목 뒤가 서늘해지는 감각에 그를 겨누던 총구가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음? 분광검법이라.. 생각보다 괜찮은데?" 그가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바닥에 쓰러진 전위들의 몸통과 목이 분리되어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주변엔 동료 무법자들의 시체들 뿐이다. "우,움직이지 마!" 전위가 아닌 이상 그도 마력 총에 급소를 맞는다면 분명 쓰러진 동료들처럼 싸늘한 시체가 될 것이다. 무슨 방법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총알보다 검이 빠를 수는 없다. "이거 지형 바꾼 게 네 능력이야? 총 내리고 동굴 원위치 시켜 놔. 그럼 살려는 드릴게." "움직이지 마! 쏘,쏠 수 있어!!" 김택진은 총구를 그의 머리에 겨누고 윽박을 질렀다. 그러자 선호가 검을 들어 김택진과 같이 그를 겨누었다. 둘 사이의 거리는 10m가 넘는 상황. 하지만 택진의 입장에서 마치 그의 검은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그의 칼날에 비치는 것은 자신의 목이 아닐까. -탕! 탕! -팅! 팅! 마력 총에 의해 그의 머리가 터져 나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그는 오히려 마력 탄환을 흘려내며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그가 접근하자 차가운 돌풍을 만난 듯 머리가 휘날린다. -철컥 철컥 은빛 섬광이 손어림을 스쳐 지나간 순간 애지중지하던 대구경 리볼버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그 순간 비명을 지를 틈조차 없이 리볼버를 쥐고 있던 손을 끔찍한 고통이 장악하기 시작했다. "철구야. 이제 네가 상대해도 되겠다." "뭐,뭐? 나?" 툭 하고 떨어지는 택진의 오른손과, 떡 하고 벌려진 입에서 흐르던 침을 닦은 철구가 당황하며 몸을 서서히 일으키는 것은 동시에 발생한 일이다. "가라! 철구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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