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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75. 고블린 슬레이어


#75. 고블린 슬레이어 *** 어두컴컴한 방. 테이블 위에 뭔가 끄적이던 중년인이 돌연 혼잣말을 내뱉었다. "일 처리는 잘 됐겠지?" "물론입니다." 중년인 앞에 흑의에 복면을 쓴 남성이 나타났다. 마치 닌자를 연상케 하는 의복. "몇 명이 들어갔나." "최근 게이트 이상 현상으로 코스트가 B급 둘에 C급 둘까지 들어갈 수 있더군요. 한계까지 넣었습니다." "실력은 확실하겠지?" "그래 봐야 병아리들인데, 충분할 겁니다." "병아리라고 무시해선 안 돼, 특히 박선호는." "B급 중 한 명이 메이즈 러너입니다.." "호오, 메이즈 러너라.. 힘을 꽤 쓰셨구만. " 중년인은 기분이 좋은 듯, 담배를 한대 꼬나 물었다. "좋은 소식 기다리지. 가보게." "네." 흑의의 사내는 올 때와 같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 이주 간의 준비 기간이 지났다. 스쿼드 비상하는 매는 헌터 아카데미에서 배정 받은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게이트 관리국 7급 헌터 지창윤입니다." "박선호입니다." 출입 금지 타포린과 형광띠가 덕지덕지 붙은 휀스를 넘어 담당 관리원을 만났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워진 걸 보니 공무원이 꿀직장이란 말은 이제는 옛 말인듯싶다. 몇십년간 안정적으로 관리가 되던 것이 요즘 이상 현상을 자주 일으켜 어디서나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궁지에 몰린 정부는 결국 아카데미 인력까지 끌어다 쓰는 형국이다. -저기 보이시나요? 게이트 공략 방송 많이 기대해주세요~ 멀리서 서연주가 방송 녹화 멘트를 날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여기 받으시죠." 관리원이 주먹만 한 디바이스를 넘겨 줬다. "게이트 공략 중 긴급 상황 발생 시 이 쪽의 붉은색 버튼을 누르시면 지원조가 파견될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이쪽과 이쪽에 사인 해주시죠." 넘겨 받은 태블릿에 떠 있는 계약서에 서명한 뒤, 그에게 넘겨주었다. 내용은 뭐 게이트 내부에서 사고 발생 시, 클리어 시 어떤 보상이 있는지 등등 그런 것에 대한 동의 서명지였다. 대충 보고 서명하니, 아리가 옆에서 '앗' 하는 소리와 함께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어 째려보았다. "그럼, 무운을 빕니다! 다음 구역으로 출발하자!" 그는 태블릿을 넘겨 받기 무섭게 차량에 올라 어딘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겁나 바쁜가 보네..' "미리 읽어 봤어, 별거 아니니 신경 쓰지마. 연주누나~ 이거!" 아리의 눈빛이 안도의 눈빛으로 돌아온다. 서연주가 내 목소리를 듣고 총총걸음으로 뛰어 온다. "선호 씨! 관리원에게 받은 게 이건가요?" "응." 서연주가 디바이스에 뭔가를 꽂고 손짓을 하니, 손목에 찬 시계에서 홀로그램 스크린이 펼쳐졌다. 『E급 게이트 고블린 던전 』 필드의 크기: 3 평방 킬로미터 게이트 내부에 고블린 던전에 다수의 고블린이 서식. 채취 가능 물품: 게이트 내부에 자생하는 식물. 채취 금지 물품: 고블린의 장기 . . . 기본적인 정보는 알려주는 느낌이다. "고블린…. 나쁜…." 신지윤이 언제 다가왔는지, 화면을 보며 앙증맞은 손을 부들거린다. "젤 쎈 놈으로 달랬더니 고블린을 줬네. 근데 고블린 나오는 곳은 보통 F수준 아닌가? 왜 E급이지." "아마 필드 전투가 아니라 던전 내부 전투라 그런 것 같아요. 고블린들이 사는 곳이면 동굴 수준일텐데, 아무래도 좁은 공간에 어둡기까지 하니 난이도가 하나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죠." "그래도 최고 빡센 걸로 달라고 했는데 고블린이라니.. 좀 실망이네." "후훗. 고블린 무시하다가 죽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 줄 아세요? 어쨌거나 비상하는 매의 장으로써 첫 원정을 앞두고 소감 한마디 부탁 드려요." 서연주가 마치 마이크를 든 것처럼 주먹을 세워 입가에 갖다 댔다. "국민 여러분!! 제 귀에 도청장치가 있습니다!!!!" 사위가 적막에 휩싸였다. 한번쯤 해보고 싶었단 말이지. 시간을 돌려 다시 제대로 인터뷰 했다. "크흠. 앞으로 활약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괜히 말 길게 해 봐야 없어 보인다. "간결하네요. 그럼 리더,바로 출발하나요?" "갑시다." "나쁜 고블린…." "출바알~" 우리는 철구를 선두로 게이트로 진입했다. *** 게이트 내부는 울창한 수림이 있는 숲이었다. 한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활엽수림이 숲을 밀도 있게 채우고 있다. 점차 뜨거워지는 한국의 기온과는 반대로 서늘한 기온이 느껴진다. "철구. 풀 베는 것 좀 도와." 주머니에서 철검을 하나 꺼내 철구에게 건네주었다. "오키. 어느 쪽으로 갈 거야?" "보통 던전이 있는 게이트는 던전 내부에 생명체만 다 죽이면 클리어 된다고 하니 일단 동굴을 찾아 보자고. 산 중턱 쯤에 있지 않을까?" "오케이. 그럼 일단 올라갈게." 철구가 허리까지 올라와 바지를 더럽히고 있는 풀을 베며 등산을 시작했다. 철구가 베지 못하는 작은 나무들을 벨 요량으로 검을 하나 더 꺼냈다. "선호 씨, 근데 자꾸 어디서 칼이 나오는 거예요?" 공간 확장 주머니가 안주머니에 있다 보니 품에서 자꾸 뭘 꺼내는 것처럼 보였나보다. "공간 확장 주머니."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 서연주에게 보여 주었다. "에엥? 이,이거는 공간 확장이 아니잖아요!" 서연주가 주머니를 받아 살펴보더니, 눈을 부라리며 내게 달려들었다. "응? 그럼 뭔데?" "자, 이거 봐보세요.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이 보여요, 안 보여요?" "으음.. 안 보이네." 서연주가 주머니를 펼쳐 안을 보여 주지만, 안은 새카맣다. "그쵸? 일반적인 공간 확장이 걸린 것은 내부가 보인단 말이예요. 이거는 공간 확장을 넘어서서 이 차원 주머니라고 할 수 있는 거라고요!! 이거 어디서 났어요!?" "아,아버지한테 받았는데.. 뭐 잘못 됐어?" "나도 볼래…." "이게 뭐길래 그래요, 언니?" 서연주의 호들갑에 길을 가다 말고 스쿼드 전원이 선호의 주위로 모였다. 저기에 손을 넣어 촉감으로 이거다 싶은걸 대충 꺼내서 썼던 터라, 내부가 보이고 안 보이고 그게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 "선호 씨~ 저거~ 나중에 좀 빌려 주면 안 될까요~? 연구하고 싶은 게 있어요~" "그거야 문제 될 거 없지." "저런 게 있다고 들어 본 적도 없어요 저는! 아버님이 주시면서 뭐라고 안 하시던 가요?" "그냥.. 절대 잊어 버리지 말라고 하시긴 했지." "아버님도 참 쿨하시네. 저런 보물을 어디서 구하셨지?" "게이트에서 얻었다던데." "이런 게 있었으면 진작 알려주셨어야죠!" 그냥 비쌀 거라 예상만 했지, 확장 기능에서 뭔가 차이점이 있는지 알게 뭔가. "지윤아, 이거면 저번에 우리 연구 중이던 거에서 뭔가 그림 나올 거 같은데?" "아공간…. 게이트와 비슷한 원리인 듯…." "언니, 이거 봐요. 제 주먹이 사라졌어요." 아무튼, 세 명이 주머니 하나를 둘러싸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뭔가 귀여운 그림이다. "철구야. 우리는 길이나 뚫자." "크큭. 저게 뭐길래 저렇게 난리들이야?" "그러게. 우린 먼저 가고 있을 테니까, 잘 따라와~" 주머니를 둘러 싸고 수다 중인 세 여인을 뒤로하고 동굴을 찾으러 발걸음을 옮겼다. 풀을 베며 등산하던 중, 드론에 동굴 하나가 포착되어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 "으.." "내,냄새." "와.. 이게 대체 무슨 냄새야." 고블린 동굴은 한마디로 그냥 시팔이었다. "철구야. 혹시 방구꼈니?" "아,아니거든!!" 철구가 아니면 고블린이 범인인데.. 고블린 냄새가 이렇게 심할 줄이야. 예전에 신지윤을 구하면서 한번 들어가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땐 미처 몰랐다. "슬슬 어두워지네요~" 서연주가 가방에서 LED 손전등을 꺼내 하나씩 쥐어 주었다. "프라이데이, 나노 슈트 활성화." 서연주의 악세서리가 흐물흐물 녹더니 어느새 전대물 슈트를 입은 듯한 형상으로 바뀌었다. 헬멧의 눈 부위에서 빛이 은은히 나오는 것이 간지가 난다. "와.. 언니. 저번에도 봤지만 그 슈트 너무 멋져요." 아리가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아리 너도 갖고 싶니?" "네.." "이거 재료가 귀해서, 구해지면 나중에 하나 만들어 줄게." "와, 정말요?" "응!" "나도…." 신지윤과 아리가 서연주의 양팔에 매달렸다. 서연주가 큰언니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철구는 긴장한 듯 뒤에서 떠는 잡담에 신경을 끄고 앞만 주시하고 걷고 있다. -끼엑껙! -케르륵!! -케륵케륵! 고블린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큰 소리로 떠들면서 들어가니, 정찰병인지 동굴 초입에서부터 고블린이 튀어나왔다. "찌리리공." -짜자자작!!! -키에에엑!!!!!! 신지윤의 번개 마법에 사위가 순간 밝아지며, 무언가 탄 냄새가 진동을 했다. "찌리리공" -짜자자작!!! "찌리리공" -짜자자작!!! 신지윤은 과거에 맺힌 한을 풀듯 나머지 인원이 뭘 해 보기도 전에 보이는 즉시 고블린을 구워버렸다. "마법 진짜 사기네." 솔직한 소감이다. 마법사 한 명 있냐 없냐에 따라 전투의 질이 바뀐다더니, 사실이었다. "마법이 사기가 아니라, 지윤이가 사기인거죠. 저런 위력의 전기 마법을 무영창에 가깝게 난사하다니.." "지윤이 잘한다~" 그녀들도 한마디 씩 칭찬을 했다. "마력 모자라…." 찌리리공을 난사하던 신지윤이 잠시 뒤로 빠졌다. "다음은 내 차롄가~!" 철구가 앞으로 나서서 용감히 걷기 시작했다. 한 무리의 고블린이 더 나왔지만, 철포삼을 익히기 시작한 탱커를 상처입히기엔 무리였다. "으랴아아압!!!!" 철구가 몸통 박치기와 주먹질로 고블린들을 곤죽으로 만들었다. -퍼억!!! "하앗!!" 마지막 고블린을 벽에 메다 꽂고 어깨로 뭉개는 순간이었다. 번쩍하는 빛과 함께 철구가 느닷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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